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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 제2 교의편
□ 제1장 일원상
□ 제4절 일원상 서원문 - 2
반갑습니다. 오늘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 강적들만 오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집에서 쉬시고 영상으로 보시지 왜 오셨습니까?
비가 오는 데도 오신 그 마음에 법신불 사은님의 큰 위력이 은혜가 함께
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난주에 일원상 서원문을 시작하였습니다. 간략하게 요약을 하면서
하겠습니다. 이 서원이라는 것을 대종사님은 단, 306자에.. 반야심경보다
더 은혜가 있고 위력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소중한 일원상 서원문을
내주셨습니다.
왜 서원문을 내놓았을까요?
진리, 신앙, 수행을 내놓았는데 그럼 되었잖아요? 왜 서원을
내놓았느냐? 서원이 없으면 진리도 신앙도 수행도 사실은 다 교리일
뿐이고 하나의 관념일 수 있고 하나의 지적 접근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신앙적 서원, 수행적 서원이 있어야지 그 신앙과 수행을 통한
그 진리 꽃을 우리가 피워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원은
하나에 종자이면서 싹이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여러분 마음에는 어떤 서원의 싹이 자라고 있습니까?
일원상 서원문으로 말하면 진급을 하겠다는 서원, 위력을 얻겠다는 서원,
체성에 합하겠다는 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을 얻겠다는 진리의
내용을 내가 확실히 알아서 인과에 대한 신앙, 영생에 대한 수행을
하겠다는 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개인의 서원을 넘어서서
일원상의 서원으로 가주어야 한다.
일원상의 서원.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서원이 있지요. 저는 돈 벌어서
집을 장만할래요. 이런 것은 서원이라고 하지 않고 개인의 희망, 꿈이지,
서원은 아닌 것입니다. 서원이라 하면 성불제중이라든가 재셍의세라든가.
일원상에 대한 서원이 영생에 대한 진리에 대한 서원이어야 하지
개인의 꿈을 서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결국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은
꿈이요. 꿈 깨면 허망한 꿈이요. 나중에 보면 없어질 꿈이다.
겨우 사람 몸받아서 태어나서 산다는 것이 개 돼지하고 별 차이 없이
먹고 살고, 입고 살고, 벌어먹고 살고, 새끼 나서 새끼 키우다 죽으면
그것 참 너무 허망하지 않습니까? 너무 허망할 것 같습니다.
가슴에는 상처투성이요. 회환과 원망 투성이면서 답답함을 안고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또는 인간적 고뇌와 아픔 속에서 눈물 흘리고 웃다가
때로는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술로, 때로는 여행으로, 때로는 음악을
통해서 내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잠시 주사 한 대 맞는 것으로 잠시
잊어버리고 싶고, 잠시 잠자는 걸로.. 나의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다. 서원은 행복이다. 그것도 영원한 행복이다.
근원적 행복이다.
있다가 없어질 나중에 불행이 될 순간의 기쁨이 아니라,
갈수록 행복하고 내생에도 행복하고.. 이것이 그 사람이 비로소 서원에
대한 생각이 있는 것이지 그냥 몸뚱아리 하나 ‘착하게 살아야겠다.’
이 정도는 서원도 아니고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사람들과 우리의 차이는 바라는 원이 다르다.
어떤 사람이 쓰는 시간, 쓰는 돈, 만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원이
뭔지 알 수가 있다. 여러분 한 주일간 어떻게 시간과 돈을, 또는 누구를
만나고 다니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일년에 일생에 큰 계기가
없다면, 그런 것이 모여서 자기 일생이 될 것이고 그것이 내생의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텔레비전 보고 놀았다. 그 사람의 미래는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언제 죽을지 알았겠어요?
죽을 줄 알았으면 연습 안 했죠. 연습하다 죽었는데..
이 서원이라는 것은 감정으로 한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 흘리면서
내는 게 아니에요. 그러다가 맨 정신 차려봤더니 옛날 습관 나오고 욕심
나오는 것… 감정의 발로가 서원이 아닌 것입니다.
서원은 깊이 깊이 내재된 우리의 깨끗한 마음. 그것을 건드리고 거기에
바탕 한 영원한 계획입니다. 그것이 바로 서원입니다.
서원은 어떤 지엽적인 순간적인 짧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영원한
계획이요 감각적 욕심, 욕망과 반비례한 내용이다. 욕망이 많을수록
서원은 작아지고 욕망이 많을수록 서원과 거리는 멀어지고 욕망이
많을수록 서원은 자기와 관계 없는 것이 됩니다.
서원이 없을수록 두려움은 커집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서원이 없을수록 원망은 많아집니다. 서원이 없을수록 절도가
없어집니다. 어쩌다 바라는 것을 서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감정적으로 울면서 생각하는 것은 서원이 아닙니다.
결국은 알고 보면 모든 사람들의 원을 모아서 그 뿌리를 들어가면
사실은 일원상 서원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원이 가다가 맙니다.
겨우 자기 먹고 살 것 죽어다 노력하다가 한번씩 옆을 돌아보고 불쌍한
사람들 보고 눈물 흘려주고 ARS 한 번 눌러주고 봉사 활동 한 번
가주고 도와주고 돈 좀 도와주는 것 그것이 서원이 아닙니다.
서원은 사람만이 세울 수 있는 것이고, 동물은 서원을 세울 수 없습니다.
서원은 정말 죽어서도 대단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 서원의 힘으로
어떤 걸 해낼 수 있고 서원을 품은 사람은 진리가 호의를 해줍니다.
어떤 일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든든합니다. 서원이 없는 사람은 항상
불안합니다. 서원이 있어야 수많은 경계 속에서 감정에 의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서원이 있어야 사람이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서원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되고 들떠있지 않습니다.
제가 옛날에 서울대학생 연합회에서 부교무 때인데 글을 내달라고 해서
써준 글이 있습니다. 그걸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서원과 믿음 두 가지에
대해서 쓴 것입니다.
[ 서원은 일시적 욕구의 발로나 감정의 선택이 아니다. 서원이 없는
사람은 목표가 없이 바다에 떠돌아 다니는 부표와 같아서 그 어떠한
것도 의미가 없다. 서원은 우리의 방향을 결정하여 준다. 서원은 수단이
될 수 없고 목적 그 자체로서 재색명리 때문에 서원을 수단화 하거나
뒤로 한다면, 그것은 서원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서원은
그 무엇도 뺏기지 않는 청정한 마음이요. 생명력, 결단이기 때문이다.
개나 돼지는 이런 서원이 없다. 그러나 최령한 인간은 서원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고 진급할 수 있으며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서원은 재가출가 법납 남녀노소 선악귀천 유무식과 상관없는 그야말로
조촐한 한 마음이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보배
중의 보배이다. 이러한 서원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난과 유혹의 경계에서도 버팀목이 되고 샘물이 솟는 원천이 된다.
한 때 교리를 많이 알고 많은 재산을 모아 놓은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서원이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고 계속할 수 없다. 그 누가 빼앗아
가려 해도 빼앗아 갈 수 없고 그 누가 짓밟으려 해도 짓밟힐 수 없는
이 서원. 한 때 욕심에 흔들리고 넘어지더라도 결국 일어설 수 밖에
없는 이 서원이야말로 그 무엇에 견줄 수 있으랴. 결국 서원을 향한
걸음걸음은 진급이요 행복이요. 욕심만을 향한 걸음은 갈수록 강급이요
아픔과 허무일 뿐… 그렇다면 나. 우리의 서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대종사님과 여러 스승들의 서원인 일원상의 서원이요.
바꿔 말하면 성불제중이요 제생의세이다. 우리 마음 공부인들이여
이런 스승님과 영생을 파수공행하지 않으시렵니까? ]
이게 제가 썼던 글입니다. 괜찮습니까?
아름다운 보배가 있는데 그 보배는 정말로 깨끗한 마음이요,
때가 끼지 않은 마음이요. 그것이 바로 서원인 것입니다.
이 서원이 서지면 거기에 따라붙는 게 신심인데요.
신심에 대해서 썼던 글도 있는데
[ 무엇에 대한 믿음인가... 대산종사님께서는 4대 분리심신이라는 법문을
주시면서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에 신심이 돈독하길 당부하셨다.
믿으면 어떻고 믿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무신 무수 무수요 반신 반수
반수요 전신 전수 전수라 하셨다. 진리, 법, 스승, 회상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수행이 없게 되고 원하는 혜복은 받을 수 없고, 진리, 법, 스승,
회상에 대한 믿음이 반이면 수행이 반이 되고 원하는 혜와 복은 반을
받게 되고,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에 대한 믿음이 전부이면 수행을
전부 하게 되고 원하는 혜복을 다 받게 된다. 누구나 원하는 혜복을
온통 받고 싶다면 온통 수행으로 온통 믿어야 된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진리와 법과 스승과 회상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말씀하는 동시에
또한 이 법문이 나오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살다 보면 경계를 따라
이 네 가지에 믿음이 안 가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때 이 법문을
사용하라는 스승님의 자비로움이 아닌가 싶다. 신앙의 위력이 OO되면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믿는 것이 참신앙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모습이요 우리 대종사님의 참된 제자라 생각한다. 믿고 정성을 바치되
결과를 간섭하지 않는 믿음이야 말로 결과는 진리의 몫이지 나의 몫이
아니다. ]
아주 오래됐네요. 저도 새롭네..
제가 일원상 서원문의 진리의 내역을 설명하는 것도 참 좋습니다만 삶의
방향.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씨앗, 최초의 마음이랄까요? 앞으로
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물론 어린아이는 사탕 주면 좋고 편하면 좋고
맛있으면 좋고 재미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 아이가 아닌
바에는 이제 서원을 세워야 하는데 이 서원의 방향을 이렇게
스승님들께서 안내를 해 주셨습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방향을 갖되 그것이 어떤 대종사님이 말씀하신
방향으로 자기의 재능과 재주의 방향이 잡아진다면 그것이 아마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집을 보면 서까래도 있고 보도 있고 기둥도 있고 문짝도 있고 주춧돌도
다 있습니다. 집을 구성 하는데 이것저것이 있듯이 서원도 방향을 잡되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은 각각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서원이 아닌
욕망만 있다면, 그것은 나중에 진급보다는 강급으로 위력보다는 일원의
위력보다는 안 좋은 위력으로 체성은 거리가 멀 것이고 육도에서
강급으로 가기가 쉽다.
제가 이 말을 드리면 되게 부담스러워 해요. 원불교는 맘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종교가 아닌 것 같다. 또, 저 정도 서원을 세우고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것 상관없이 이게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일원상은 사실이고 우리의 참 마음도 사실이고 가장 효과적인 삶이
서원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뭐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게 사실이니까.
그것을 믿고 그 방향에 같이 맞춘 사람은 그 사실적인 삶은 은혜가 될
것이고, 그것을 믿지 않고 자기 재주에 자기 지혜, 자기 지식으로
판단하면 옆길로 갈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아프다 괴롭다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알아서 받는 것이다.
일원상 서원문 내용으로 들어가는데요, 오늘
서원문의 앞부분은 대소유무. 일원상의 진리가 나와있습니다. 그 다음
뒷부분.. 다음주 ‘우리 어리석은 중생-‘부터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수행으로써 할 것이냐. 서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가 나와있습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
하나씩 하겠습니다. 일원은 언어도단의 입정처다. 그렇습니다.
이 뜻을 풀어보면 일원은 언어, 도단이라는 것은 길 ‘도’자가 아니라
여기서는 말할 ‘도’자입니다. 언어로 말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대종사님은 유무초월의 생사문이고
사은의 본원이고 성품이라고 하기 전에 먼저 언어도단의 입정처란 말을
탁 내놓으셨다. 진리의 본체를 먼저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런 말은 다른 종교에도 많이 있습니다. 노자께서 도덕경을 쓰셨는데
맨 앞부분에 보면 ‘도가도면 비상도요 명가명이면 비상명’ 이라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道可道 非常道
도를 가히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일원을 일원이라고 하면 일원이 아니다. 천원인가?
/ ㅋㅋㅋ
일원을 일원이라고 하면 일원이 아니다. 진리를 진리라고 하면 진리가
아니다. 이것이 일원상 진리 설명에 나왔죠? 무엇입니까?
맨 처음에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는 자리다.’ 고 했습니다.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
이것이 언어도단의 입정처와 똑같은 소리다. 무슨 이야기인가?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요. 일체중생의
본성인데, 대소유무의 분별이 없는 자리이다. 일원은 대라고 할 것이냐?
소라고 할 것이냐? 유라고 할 것이냐? 무라고 할 것이냐? 그 말입니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것이 있죠?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
그 마음이 커? 그 마음이 작아? 그 마음이 있죠?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게 있지요? 더 들어갔더니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데 없어요? 있잖아요?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없다고 할 수 있어요..?
크다면 한량 없이 크고 작다면 한량 없이 작고 분명이 있는데 없고,
없냐? 그러면 또 있다. 이것을 뭐라고 하냐? 언어도단이면서 언어명상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언어명상이 끊어진 자리
언어명상이 끊어진 자리다. 언어.. 명상.. 뭐라고 말 할거냐? 이 말이다.
이 일원. 우리 참마음을 뭐라고 말 할 것이냐? 그것도 마음이라고
했으니까 그렇다. 그 다음 명.. 뭐라고 이름을 지을 것이냐? 하도 이름
짓기 어려우니까? 일물이라고 했다. 일물..
일물一物은 장령長靈하야 개천개지盖天盖地라
수심결에 나온 말이다. 일물은 장령이다. 이 한 물건은 장령 신령스럽게
길고 그런데 개천개지다. 하늘을 덮고 땅을 덮는다. 그러고도 남는
것이다. 이 일물은 천지보다 먼저 생긴 것이다. 천지를 덮고도 남은
것이다. 지구가 없어져도 이것은 남는 것이다. 이것을 일물이라고 한다.
이것을 뭐라고 말할 것이냐? 기독교는 이것을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유가에서는 뭐라고 했냐? 이것을 ‘도’라고 했다. 또는 무극이라고 한다.
극이 없다. 태극이라고 한다. 그렇게 다 이야기를 한다.
이것을 알려주려고 불교에서는 이 뭐꼬? 화두를 들죠? 화두선을
간화선을 주축으로 해서 한국의 조계종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 하나 들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화두 하나 들고… 앉아서
이 한 물건이 무엇이냐? 이게 뭐냐? 이걸 선을 통해서 그 자리를
꿰뚫으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전부다.
결국 이 자리는 언어로써 표현하기 어렵다 그 말입니다. 뭐라고 이름을
붙일 것이냐? 형상도 없고 형상이 끊어진 자리다. 이것이.. 그런데 굳이
언어로 표현하니까 법신불이니 일원이니 하느님이니 도니 무극 태극이니
자연이니 이런 명칭을 굳이 붙여서 하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허공과 같기 때문에 그 안에서 지구도 생기고
천지도 생기고 너도 생기고 나도 생기고 그 속에서 온갖 것이 생기는
것이다. 없기 때문에.. 없으면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허공과
같아서 우주보다 더 큰 것이다. 천지보다도 먼저 생겼다. 서가모니
부처님 이전부터 있었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일원이라는 것이고
하느님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이것을 알려주려고 우리 대종사님은 변산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죠.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변산 구곡로에 변산 아홉 개의 굽이굽이 길에 석립 청수성이라..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돌이 물소리를 들어? 아니..? 돌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물소리를 들어? 돌이 어떻게 물소리를 듣냐? 돌이 물소리를
듣는 것과 여러분이 지금 제 목소리를 듣는 것이 똑같은 것이다.
여기서 툭 터져 버려야 하는데…
‘교무님.. 나는 지금 교무님을 쳐다보는 아는 마음이 있어서 듣는다
치지만 돌이 어떻게 듣는지요?’
그 마음이 어디 있어? 언제부터 있었어요? 어떻게 생겼어요? 이뻐요?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그 마음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이것을 알려고
온갖 의두요목이 있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몸받기 전 몸은 어떤 몸인가?
즉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 이 아는 영지는 어떤 것이냐? 그 말입니다.
너무 먼 것 같죠? 어저께 잠잘 때 꿈도 없을 때 그 아는 영지는 어디
있느냐? 지금 내 목소리를 듣고 아는 것이 꿈 꿀 때는 있다고 하지만
꿈도 없을 때는 그것이 어디로 갔느냐? 이런 것이 뭐 하나 있어서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인가?
부처님이 49년 동안 녹야원에서 발제하까지 법을 설하고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 고 했습니다. 무엇이 들어서 설했습니까? 서가모니
부처님은 나하고는 달리 깨달은 지혜가 하나 생긴 것이 있어가지고
그것이 들어서 설했어요? 만약에 서가모니 부처님이 이것이 들어서
설했다고 하면 그것은 부처님이 아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정말 부처님이라면 그것이 딱 맞습니다. 그렇지 49년 간 법을 설했는데
무엇이 들어서 설했느냐? 무엇이 들어서 설했냐? 이 말입니다.
깨친 이 마음. 지혜가 따로 있어서 그것이 들어서 설했느냐? 그것이
있었느냐? 이 말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서가모니 부처님이 아닙니다.
한 법도 설한 바가 없기 때문에 비로소 부처님인 것이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처님이 된 것이다. 이것은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도 않는다.
다 짝한 것이거든. 모든 것이 이쁘고 밉고, 천과 지,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 좋고 나쁘고, 태어나고 죽고… 모든 것이..
성공하고 실패하고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고 고통이 되고 낙이 되고..
다 짝이 되는데, 이 일원이라는 것은 짝하지도 않아 어떤 것도. 만법과
더불어 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이것을 뭐라고 말할 것이냐?
이것은 만법이 귀일이라. 한 물건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만법이
한 물건이다. 도솔천을 떠나지 않으시고 이미 왕궁가에 내리시니... 맞지..
떠나긴 뭘 떠나고 내리긴 뭘 내려. 꽃을 탁 들었어. 가섭이 미소를
지었네. 내가 가섭한테 준다. 그랬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독생자 예수님,
하나님이라 그런다. 그렇지. 이 한 물건은 전지 전능해요. 독생이다.
천상 천하 유아 독존이지. 만세 멸도에 상독로다. 이것을 일원이라고
합니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죠? 제가 말하는 것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하는
사람은 감을 잡은 사람이고… ‘무슨 소린지 모르것다.’ 하는 사람은 이
의두라는 것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안 해봤다.. 제가 지금 말한 것은
지식도 아닙니다.
이 일원이라는 것은 알고 모르는 것을 넘어 선 것입니다. 안다는 것도
아닙니다. 안다면 그것은 짝하는 것이다. 아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한
생각 이전자리다. 부모로부터 몸받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이다. 천지가
나기 전부터 여여자연 있던 것이다.
이것을 언어도단의 입정처라. 뭐라고 할 거냐?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아는 이 마음, 여러분의 정신, 성품은 뭐라고 할
것이냐? 정신이니 성품이라고 말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훤히 아시잖아요? 이것이 언제부터 있었어요? 어디로가 죽으면?
어떤 스님이, 공부 좀 하겠다는 사람이 딱 왔어요.
다짜고짜 ‘네가 누구냐?’ 그랬어요? 이름 지어진 내가 난가? 명예 있는
내가 난가? 몇 살 먹은 내가 난가? 육신이 난가? 내 성적이 난가?
무엇이 나냐? 이 말이다. 뭣이 나요? 뭣이 나인가?.
이것을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 고 말한 것이다. 네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가 또 한 말이 있죠. ‘다이몬의 소리를 들어라’ 소리 없는
소리를 들어라. 이것을 수은 선생은 ‘천어’, ‘천서’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기독교의 요한복음에서는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똑같은
말입니다. 공자님은 오도일지관지(吾道一以貫之)다.
하나로 탁 꿰 뚫려 있다.
‘나에게 하나의 경전이 있으니, 이 경전은 지묵으로 된 것도 아니요.
한 글자도 없는데 항상 빛을 발하고 있다.’
불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뿌리 없는 나무.
음양 없는 땅.
메아리 없는 골짜기
나무에 어떻게 뿌리가 없이 나무가 있나? 골짜기에는 소리가 있는데
울리지 않는 골짜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대산종사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공부 잘하는 아들
대산종사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러니까 대종사님이 ‘너 가르쳐 주지 마라.
네 엄마에게 가르쳐 주지 마라.’ 그래서 안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그 답을 못 듣고 돌아가셨습니다.
스승의 가장 큰 은혜 중 하나가 안 가르쳐 주는 은혜이다. 교육학에서
참 중요한 것이다. 멘토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다. 내가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이미 전지 전능한 능력이 있고,
부처님의 지혜광명이 있고, 엄청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게 만들고
그것이 빛을 발하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교육이다. 그래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라고 했죠. 인도. 우리는 안내 해
주는 것입니다. 광대무량한 낙원의 맞이는 자기가 하는 것이다.
유무초월의 생사문인바를 하겠습니다.
이 무슨 말이에요? 저 문짝이 있지요? 저 문이 지금 여기서 볼 때는
안이에요? 밖이에요? 안이죠. 밖에서 저 문짝을 보면 밖이죠? 그래요
안그래요? 문이라는 것은 안이면서 밖이고, 안도 아니면서 밖도 아닌
것을 문이라고 합니다. 문이라는 것은 어떤 경계를 말한다.
이해하시겠어요? 이게 생사문이다.
생사문(生死門)
무슨 이야기냐?
생사문이라는 것은 생이면서 사고 생도 아니고 사도 아니라는 그 소리다.
자, 유무초월이다. 유무는 상대의 세계를 말한 것이죠. 초월은 절대의
세계를 말한 것이다. 생사는 어떤 조화, 변화, 인과를 말한다.
이 일원의 자리라는 것은 앎이다 지(知)다. 부지(不知)다. 알고 모르는
것을 넘어선 것이다.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넘어선 것이다. 지, 부지를
초월한 생사문이다.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그것뿐이냐? 미추. 이쁘고
밉고 크고 작고 상생 상극..
참회문에 이런 소리가 나오죠?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그러죠?
상생도 아니고 상극도 아니다 그 말이다.
변, 불변도 넘어서 남녀도 아니야. 이런 것을 전부다 초월한다. 왜?
그러죠. 지금 제 목소리를 듣는 마음이라는 것은 이런 상대의 세계를
넘어서 있다. 마음에는 원래 이런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능히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본래 이런 것을 초월한
것이다. 넘어서서 그대로 생사가 있고 선악이 있고 그런 것이다.
넘어서서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자기가 명예가 하나 있다면 명예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 명예에 딱 착해 있다. 그 명예가 본래 어디
있어요? 명예를 넘어선 명예 이어야지. 그래야 그 명예가 없더라도
괜찮지. 그렀죠?
아까 보세요. 마이클 잭슨이 춤을 추니까 팬들이 미쳐버리잖아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에요? 감정의 마음이다. 슬픔, 희노애락의 상대적
마음이다. 그런데 진짜 우리의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초월한 마음에서
그 마음이 나왔을 뿐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마이클 잭슨을 따라 죽은 사람은 없나? 비틀즈의 존 레논이 어떤 사람의
총알을 맞고 죽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젤 유명한 사람이,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존 레논.. 이렇게 세 사람인데…
존 레논이 대단했어요? 존 레논이 죽으니까 따라 죽은 사람이 6명이나
되었습니다. 우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알아요? 신문을 좀 보세요. ㅋㅋㅋ
그것은 초월해서 낸 마음이 아니라 상대의 세계에 푹 빠져버린 것
이에요. 상대의 세계에 푹 빠지면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일원의 마음은 초월해서 낸 변화 한 것들을 능히 활용 할 줄
알아야 한다. 생사가 묘유이고, 초월이 진공이다. 진공해서 묘유를
내야지.. 초월한 마음에서 내야 한다. 그래야 누가 죽더라도 죽음이
없는데 바탕 해서 죽음을 바라보고… 그런데 이 초월하지 못하니까
가슴에 상처가 되어서..
보통사람이 어떤지 아세요? 내가 카톨릭 학교를 나왔는데,
자기 수명을 체크하는 게 있어요.. 운동을 매일 30분씩 5일 이상 한다.
더히기(+) 몇 년. 담배 몇 갑 핀다면 빼기(-) 몇 년. 술을 계속
먹는다면 빼기(-) 몇 년. 그 중에 부모가 80세까지 살면 더히기(+) 8년
또는 10년 정도 됩니다. 생각 보다 많았습니다. 그 중에 부인이나 엄마,
자식이 죽었을 때 빼기(-) 8년 이었습니다. 상처가 아주 큰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과 사를 넘어서..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원래
생사가 없습니다. 천지보다 먼저 있고, 지구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이
우리 마음이다. 내가 낸 이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은
일원상과 같은.. 허공과 같이 툭 터져서 그대로 본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알면은 생사를 초월한 데서 생사가 있구나 변화구나..
생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한다. 또 생사가 오고가고 오고가고
또 이 몸을 받는 것을 알면 빼기(-)가 아니고 더히기(+)입니다. ‘아!
공부시켜줬구나…’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초월하지 못하니까 그것이
상처가 되가지고.. 회사에 짤렸다거나 사람이 안 됬다던가, 누가 어떻게
했다던가. 부모나 자식이 죽었다 하면 이 초월을 못하는 거야.
그 마음의 세계에서. 원불교를 다니는 것은 언제 써먹자는 것이냐?
그럴 때 써먹자는 것이다..
이 초월이라는 것이 뭐냐 면, 어떻게 보면은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또는 수용하는 것이다. 감수하는 것, 달게 받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것을 자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초월이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참 초월하기 어렵죠. 그런 경계를 당하면..
저도 사실 어려워요. 왜 상처가 안되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공부하는
사람은 상처 없는 가운에 상처가 되어야 한다.
팔산님이 돌아가시니까 대종사님이 우시니까 옆에서 ‘상심하지
마십시오’ 라고 옆에서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상심이야 하겠는가?
그 동안에 정의를 봐서 어찌 눈물이 안 나오겠는가?’ 그대로 유무를
초월해서 슬픔을 나타낸 마음입니다. 초월만 해도 안되고 초월 한 것을
바탕 해서 능히 슬플 수 있고 기쁠 수 있는 것이다.
아까 콘서트에서 자지러지는 것은 초월이 아니라 그 속에 폭 빠진
것이다. ‘오 마이클. 마이클. 마이크~을… !’ 정신 못 차리고.. 그래서
오늘 뭐라고 했습니다. 제가 마이클 잭슨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음악의 세계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마이클 잭슨이 아무리 음악적으로
뛰어나고 국가 사회를 위해서 명예가 있다고 해도 이 유무초월한 자리를
모르면 애기와 같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애기 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젊을 때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시험에 떨어져도 자살
안하고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그것을 초월해서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무 초월의 생사문이다. 이거 하나 가지고도
제가 몇 달을 할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이 회의를 했는데 말이죠. 자기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니까 그 사람을 째려보면서.. 회의 끝나고 그 사람과 갑자기 거리가
멀어진다. 회의를 하다 보면 의견과 반대될 수도 있지, 어떻게 내
생각하고 항상 똑 같애..? 내 생각도 어떻게 항상 맞을 수 있어요?
그래서 회의를 하는 거지 다양한 의견들이 모으고.. 회의를 하더라도
유무를 초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옳다는 것에 꽉 집착을 해서
반대되는 걸 용납을 못하는 것입니다.
남자는 남자라는 것에 집착해 있고… 그렇죠. 월산님? ‘내가 어떻게
설거지를 해?’. 성품에는 원래 남녀가 없는 것입니다. 노소도 없고,
그 초월한 상태에서 선배가 있고 후배가 있고, 노가 있고 소가 있고
남자 여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차별이 있는 세상이라도 차별이 없는
것을 바탕 해서 차별을 능히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현상에 꽉 묶여서 난 남자다. 난 부자다. 그리고 자기를
용납을 못합니다. 이것은 얼마든지 변화되는 것이다. 선인이 악인으로
변하고 악인이 선인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잖아요? 돌고 도는 것이다.
그렇지만 돌고 돌기 이전에 그것이 어디서 기어 나왔냐? 아무것도 없이
초월한 그 본래 우리 일원상 자리 그 본래 마음에서 선한 마음,
악한 마음. 또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남자로 태어나고 여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부자로 또는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이 인과다. 진급도 하고
강급도 하고. 그런 것이다.
그러면 계속 진급하고 계속 강급하느냐? 그것 쉽지 않은 일이다.
좀 잘 살면 교만하고 좀 가난하면 자학하고. 부자 집 아들이 공부
잘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자 집 아들이 얼마나 X가지 없습니까?
또 어려운 집 아들이 자학하면서 부자 집 차 펑크 내고 다니는 사람도
있고. 어려우니까 더욱 열심히 해서 아까 마쓰시다 고노스께 같이 크게
변화된 사람도 있잖아요? 그것이 다 다른 것이다.
재밌지..? 이 한 줄만 갖고 살아도 정말 인생을 크게 상처 없이 살 수
있다. 내가 사는 것이 있고 없고 상대의 세계에서 그것을 초월한 자리를
바탕 해서 인과를 수용하게 되고 변화를 받아 드리게 되고 때로는 내가
그 변화를 바꿀 수도 있다. 내 본래 마음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상대의 세계는 다 마음이 나타난 것 아니에요? 상극 인연, 상생 인연 다
내 마음에 따라 달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미 초월 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결국 어디서 나온 것이냐? 텅 빈.. 초월한.. 본래 허공과 같은 내 마음이..
다 인연 따라서 만들어 간다. 가난한 사람, 부자인 사람. 이쁜 사람 미운
사람 상생 상극이 그 속에서 아무 것도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이지만,
설사 가난하고 미워하는 상대가 있지만 그것도 더 들어가보면 다 초월
한데서 나온 것이다.
원래는 없는 것이다. 원래 처음부터 부자이고 잘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 알고 보면.. 그 안에 이면에 들어가면 선인도 악인도 똘똘한
사람도 안 똘똘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원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대 평등의 세계입니까? 이것이 부처님의
대자대비입니다. 대종사님의 따스한 우리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빵 사주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이 한 줄에 대종사님이 날 얼마나
아끼시는 마음인가? 나를 건지시는 마음이다. 이 절절함을 느낄 때..
재미가 있지 그렇지 않으면 옆에 누가 단원이 한마디 뭐라고 하면
골아서 안 나오고..
진급한 사람도 있고 강급한 사람도 있습니다. ‘교무님 좋아 죽겠어요.
교무님 부처님 같아요.’ 하다가 골아서 사라졌어요. 생사가 생멸
아닙니까? 더 들어가면 생주이멸이라. 생긴 것은 잠시 머물렀다가
떠난다.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묘하지. 그렇게 근심 걱정 있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굳게 마음을 다짐했건만
어느새 마음은 변화 했는지… 이것이 생사문이다. 변화문이다.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변화하죠? 변화 안 하는 것 있습니까?
변화 안 하는 허공과 같은 것이 있기 때문에 다 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안에서 다 있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허공과 같이 변화 하지
않는 텅 빈 그것이 없으면 변화 자체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본원이요. 이 우주만유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이
그 텅 빈 허공에 바탕 해 있다는 말이다. 텅 빈 일원상에 바탕 해 있는
것이다. 천지도 알고 보면 개천개지라 그랬죠? 천지도 이미 다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모두 다 일원에 바탕 해 있는 것입니다.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다. 기독교에서도 하느님에 바탕 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같은
소리다.
제불조사 범부 중생의 성품으로 ..
성품이 똑같죠. 어떤 사람은 제불이 되고, 어떤 사람은 범부가 되고,
어떤 사람은 중생이 되느냐? 그것은 성품은 똑같다 하지만 이 속에
그 사람이 어떻게 심신 작용을 하느냐에 따라서 진강급이 있어지는
것이다. 인과가 있어지는 것이다. 유무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 일원상 장은 전부 대소유무로 되어 있다. 언어도단의 입정처요
유무초월의 생사문은 대자리를 설명한 것이고, 방금 설명한 천지부모
동포법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성품으로는 소자리다. 그 허공과 같은
일원이 천지 부모 동포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
자리로 말하면 제불조사 범부중생의 성품이다.
모두 다 일원에서 나온 것이다.
제불조사 범부 중생을 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품은 일원이다. 개의 성품,
범부의 성품, 조사 성품. 부처님의 성품도 일원이요 결국 같은 성품이다.
따로 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근원으로 들어가면
다 인과의 이치에 의해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고, 어떤 심신작용에
의해서 그런 것이고, 실지로 들어가면 본래 그대로 다 하나인 것이다.
나타나는 육신, 형상은 제불조사 범부중생으로 심신 작용을 하고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실지로 들어가면 다 똑 같은 하나다.
이 제불의 씨앗, 범부의 씨앗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일원의 세계이다.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다시 또 두 가지로 설명한 것입니다. 능이성 유상은 능히 이뤄진다.
유상으로 이루어진다. 항상 있다.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변화하잖아요. 머리카락도 생겼다 빠지고.. 피부도 세포가 변화하고
있고.. 뼈도 바뀌고 있고.. 다 변화하는데?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능이성. 그것을 유상이라고 한다.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 이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유상으로 보면 이렇고. 무상으로 보면 이렇다. 유무를 초월해서 그대로
천지 부모 동포가 있습니다.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부모 동포
법률세계 따로 있고, 초월한 세계 따로 있고 그것이 아닙니다.
잘보세요.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하여.. 유상이라는 것은 항상
있다는 것은 불변한다는 말이다. 무상 - 항상 하지 않는 것은 얼마든지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존재가 말이죠. 항상 있는 이 성품자리가 있으면서 이 몸,
이 피부, 어떤 마음은 다 변화하는 것이잖아요. 능이라는 것이 뭐냐?
능히 그렇다는 것이다. 능히 돌고 돌아, 이것을 우리 정전의 표현에
다른 말로는 자재 한다. 돌고 돌아. 똑같은 소리다.
유상으로 보면 상주불멸로 여여자연 하다. 지금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이 마음이라는 것이 부모로부터 몸 받기 전에도 꿈도 없이 잠 들어도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이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상주 불멸로
여여자연 해. 불멸해요. 상주 - 항상 머물러서 불멸 - 멸하지 않다.
지구는 45억년 전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이 마음이라는 것은 생긴 바도
없고 멸한 바도 없다. 그래서 여여자연 해..
무상으로 보면 변하는 것으로 보면 우주로 말하면, 성주괴공 해. 만물은
생로병사로, 또, 사생은 심신 작용을 따라 이것은 육도로, 변화를 시켜.
이 무량세계가 어떻게 생겼냐?
유상으로도 무량세계를 전개하고 무상으로도 무량세계를 전개하였다.
우주는 성주괴공 했다. 성주는 양이고 괴공은 음이다.
생로는 양이고 병사는 음.. 다 음양의 원리다.
성주는 진급이고 괴공은 강급이다. 생노는 진급, 병사는 강급이다..
지금은 우리가 진급기라고 한다. 우주의 강급기가 뭐야. 공이라고 한다.
괴공.. 그래서 우주가 진급기가 되기 때문에 인류가 많이 생겨나고
문화가 자라나고 크게 발전하고 그러는 것이다.
이 진급기의 기준은 대종사님께서 1924년, 갑자년을 기점으로 해서
우주가 후천 시대에서 선천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 순간에
바뀌겠습니까만은, 그렇게 바뀌는 계기다. 지금은 진급기라고 한다.
옛날 보다 얼마나 빨라, 얼마나 쉬어, 얼마나 좋아졌어요. 인류의 역사가
알고 보면 먹고 사는 역사였다. 전쟁의 역사이고 하루 세끼를 먹는 인류
역사가 별로 없었어요. 옛날에 다 두 끼 먹고 살았습니다. 밥 한 번
편하게 먹고 산 인류 역사가 없었어요. 왕족, 귀족들이나 잘 먹고
살았지. 나머지 서민, 일반 백성, 노예들은 정말로 어렵게 살았어요.
어떻게 보면 사람 삶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좋아졌냐?
자. 우주는 내가 맘대로 못하죠? 우주는 어떻게 변해요? 성주괴공이
우주의 자연현상 입니다. 자연 법칙에 따릅니다. 그것을 천업이라고
합니다. 우주는 자연법칙에 따라 천업으로 되요. 성주괴공으로,
그 다음, 이 만물이나 사람은 사생은,, 이 필연 법칙에 의해서
인과법칙에 의해서 진,강급을 하게 되어있다. 우주는 순환을 하죠
그러면서 만물이 생멸하고 인류 문화와 흥망이 그 성주괴공의 이치에
따라서 같이 흘러간다.
예를 들어서 파리가 어떻게 진급합니까? 물었습니다. 대산 종사님
식사하려니까. 파리가 대산 종사님이 먹을 밥에 딱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시자가 파리를 쫓아내면서 ‘저 종법사님 저 파리는 어떻게
해야 진급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대산 종사님이 ‘저런 것은
우주의 진급기를 만나면 모를까 좀처럼 진급하기 어렵다.’ 고 했습니다.
우주는 진급 강급을 한다, 진급은 성주, 강급은 괴공. 성주를 만났을
때는 진급읋 하고 괴공을 만났을 때는 강급 한다.
겁은 긴 세월로 말하면 편하다. 겁에는 소겁, 중겁, 대겁이 있다. 과학이
발전해서 년 수가 정확히 나온다. 소겁이 모여서 중겁이 되고 중겁이
모여서 대겁이 된다. 1소겁이 어떻게 되냐, 년 수로 말해드릴게요.
1소겁 = 15.998,000년
중겁이 되려면 곱하기 20을 합니다.
대겁이 되려면 거기다 다시 곱하기 4를 합니다. 그러면 1대겁이 됩니다.
그래서 성주괴공을 해서 성겁기가 되면 어떻게 되면 육지가 넓어지고
인구가 늘고, 평균 수명이 늘고, 사람의 키가 커지고, 평등세상이 되고,
인권존중이 되고, 밝아지고 서로 돕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선해집니다. 이것이 성겁기다. 옛날에는 어떠했나요? 이와 반대였죠?
평균 수명 몇 년 안되었고, 키도 작고, 차별세상이고, 인권은 무슨
인권이야. 어둠 그 자체다. 무슨 상부상조? 사람이 선해져요? 아니죠.
옛날에 권력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었습니까. 그래서 6.25
터진 것입니다. 옛날 양반들이 악독해서 서민들 우려먹고 똑똑한 사람들
귀향 보내고 다 사약 먹이고, 그 한이 뭉치고 뭉쳐서 6. 25 전쟁이 나서
막 죽이고 그런 것이다. 정산 종사님이 그러셨다. 다 인과의 원리다.
다 어두운 세상이어서 그렇습니다.
이 우주는 자연 법칙을 따른다. 이것을 천업이라고 그런다.
천업은 내 맘대로 돼요? 안돼요? 되는 것도 있고 안 되는 것도 있다.
성주괴공은 내 맘대로 안 됩니다. 그런데 내 마음에서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날씨가 추우면 옷을 입으면 됩니다. 따뜻하게..
비가 많이 오면 우산을 쓰면 됩니다. 그것이 천업을 임의로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또, 만물은 생로병사를 한다. 만물이 생로 병사 맞습니까? 생로병사 하죠.
우리도 생노병사하고.. <워낭소리> 보면 소가 몇 년 만에 죽던가요?
40몇 년 같이 살다 죽었죠? <워낭소리> 안 보았어요? 아침에 심고
올리고 좌선하고, 낮에는 열심히 사은에 보은하고, 저녁엔 헌배 하고
전서 사경하느라고 <워낭소리> 못 봤죠? 전 할 일이 없어서 <워낭소리>
보았습니다. ㅋㅋㅋ 농담이었습니다.
만물은 생로병사.
사생은 심신작용.
사생은 뭐냐? 태란습화 입니다. 태는 뭐예요? 우리가 다 태로
나왔습니다. 고래도 태로 나왔죠. 주로 사육은 태로 나옵니다.
란, 여기서 알로 난 사람. 혁거세?? 있나요? 없죠?
대개 두 다리나 날개 있는 것들입니다.
습화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과학적으로.. 습은 습기. 습한 데서
자동으로 생긴 것. 그게 뭐죠? 희한하죠? 옛날에 두엄 자리 보면
그 안에서 뭐가 나오잖아요. 모기니.. 어디 시궁창에 보면 기가 막히게
뭐가 기어 다니다가 날아가는 것이 생기죠? 모기 뀌뚜라미 매미 이것은
사실 알고 보면 알이죠. 옛날 사람들은 현미경이 없으니까 그것을
습 이라고 한 것입니다. 습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서…
알에서 나와서 기어 다니다가 그것이 날개를 달고 날라가죠. 그것을
화생이라고 합니다. 변화할 화자다. 날개가 달 줄 알죠. 잠자리 매미..
붙어있다 날라가죠? 그걸 화라고 하는데 변화할 화자다...
벼룩이나 빈대 같은 것을 말한다.
결국 사생은 유정물이다. 출생방식은 네 가지다. 그런데 나오긴
나오는데 여섯 가지 길로 갈라진다. 그런데 어떻게 갈라지냐, 몸을 받은
것이 세 가지, 몸을 못 받은 것이 세 가지.. 유정물은 몸을 받은 것도
있고 몸을 못 받은 것도 있다. 그것이 육도다.
내가 설명하나 더 드리고 싶은 것은 심화반이라 생각해서..
이 사생에 무슨 사생이 있느냐? 심중사생이 있다.
하나는 탐심, 부심, 산심. 란심이다. 이렇게 네 가지로 말한다.
산심은 산란함. 란심은 어지러울 란..
이렇게 심중사생으로도 이야기 합니다.
이 마음에 의해서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육도 이야기 하겠습니다.
천상
인도
수라
축생
아귀
지옥
천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강급입니다. 올라가는
경우가 진급입니다. 대종사님 당대에 다람쥐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대종사님이 축원을 해 주었죠? 그러면 축생 몸 받았던 다람쥐가 위로
올라갈 수 있죠. 축생은 자기의 힘으로는 위로 못 가고 우주의 진급기나
큰 성자의 기운, 합력으로 올라 갈 수 있다.
여기서 몸을 받은 것은 인도, 축생, 지옥이다. 이것은 현실에 몸을 받은
것이다. 나머지 천상, 수라, 아귀는 영계입니다. 몸을 못 받은 것입니다.
수라에서 지옥까지를 악도라고 합니다. 천상과 인도를 선도라고 합니다.
육도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심상육도, 생활육도, 현실육도
입니다. 심상육도는 마음으로 육도의 세계가 있습니다. 생활 속에
육도의 세계가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현실 속에서 육도. 좀 전에
제가 설명한 것은 현실 속의 육도입니다. 그 현실육도는 심상육도와
생활육도를 거쳐서 현실육도로 오는 것입니다.
탐심이 많으면 아귀, 치심이 많으면 축생, 성질 잘 내면 지옥입니다.
천상은 무욕 청정, 인도는 선악 상반이라고 합니다. 착한 일도 했다
악한 일도 했다, 그러죠?
수라 몸을 받은 것은 좀 전에 심중사생에서 말한 부심, 산심. 부심은
항상 마음이 안정이 안 되고 둥둥 떠있는 사람이 있다. 산심 막
어지럽고 복잡하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면 나중에 사람 몸 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라보를 받기 쉽습니다. 싸돌아 다니기 좋아하는
사람 있잖아요?
그 다음에 생활육도로 보면 천상은 수도생활을 좋아한다. 인도는
자리이타이다. 자기가 이익도 보고 다른 사람도 이익을 주고,,
수라에서는 부랑주의.. 부랑아 같은… 낭만주의다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맨날 일생 노는 사람 있죠? 기타나 들고 베짱이 같이 싸돌아
다니고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이다. 일생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폴란드를 갔는데 거기서 한국 여자를 만났는데 자기는 6개월 동안
돈을 벌어서 6개월 동안 여행을 다닌답니다. 그 사람 나이가 삼십 대
후반이었습니다. 시집도 안 가고 그 재미로 사는 것입니다. 관광이 재미
있거든요. 이런 사람은 다음 생에 몸받기 어렵습니다. 사은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 자기 즐길 것만 찾고 다닙니다. 부모의 은혜, 천지의 은혜,
많은 사람들의 은혜, 국가에서 나라를 지켜주고 다 건설해 주니까.
자기는 싸돌아 다니고 놀러만 다니면.. 이런 사람은 사람 몸 받기
어렵습니다. 수라보를 받아서 싸돌아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생보를 받는 것은 인신매매 하는 사람.
아귀보를 받는 것은 걸인 생활을 하는 사람. 노숙자 하는 사람 있죠?
노숙자 잠깐 할 수 있겠지만, 일생을 걸인으로 사는 사람은 아예,
아귀의 생활이다. 아귀의 생활이라는 것은 탐심으로 사는 것이다. 옛날
어떤 기자가 명동에서 한 번 해보았더니 수입이 굉장히 많더랍니다.
하루 수입이 10 몇만 원이 되더랍니다.
학교 다닐 때 점심 시간에 젖가락 딱 하나 들고 나타나는 거 봤죠?
아주 못된 놈들입니다. 그런 애들이 나중에 공금을 함부로 씁니다.
미국에 롤스로이스를 두세 대를 가지고 있는 거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일생의 직업이었습니다. 나중에 기자가 알았습니다. 밖에서 걸인으로
돈을 받아서 자기는 엄청난 부자로 사는 것입니다. 이건 인과도 모르는
것이고 그런 사람은 사람의 몸은커녕 개나 돼지로 태어나서 일 죽어라
하고 나중에 빼 까지 다 주는 것이다. 빚 갚으니라고..
그 다음 지옥보는 어떤 경우냐? 현실에서는 옥중생활입니다.
이것이 사실 알고 보면 전부 다 마음의 세계입니다. 심신 작용을 따라
육도로 변화를 시킨다고 했잖아요? 심신작용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육도로 이렇게 변화가 된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고 그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현실육도로써 이렇게 받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되어서 질문이 있으면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타이핑:
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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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참참 감사합니다. 비가 쏟아지는 화요일이었죠. 갑작스런 단체회식으로 참석 못하였는데 이렇게 소식 전해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죠 비도 오는데 수고 많았습니다. 힘내세요 ^^
나의 서원은 무엇일지 다져보게 해주시는 좋은 말씀들. 감사합니다.
서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빨리 공개하세요 고맙습니다. ^^v
살짝쿵 얘기해 줘도 좋습니다. ㅋㅋㅋ
4대 분리신심을 4대 불이신심으로 수정해 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다시 보니, 참 좋네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