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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풍경은 사람의 몸속에 들어와서 평생을 함께 산다.
함께 숨쉬고,함께 앓아 눕고,함께 꿈을 꾸기까지 한다. 그때의 풍경은 이미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사람의 몸속에 들어온 음식물처럼 살이 되기도 하고 피가 되기도 하며 온몸을 순환한다.
나고 죽고 거듭 태어나며 윤회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는 세포들처럼 점점 더 육체에 가까워져 간다.
풍경은 육체성을 띠게 되고,육체는 풍경에 좀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 행복한 밀착을 통하여 풍경에 중독된 자들은 하나의 풍경이 될 줄 안다.
몸속의 풍경에 의탁하여 몸이 지닌 한계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어느 낯선 바닷가 그의 머릿결을 쓰다듬고 간 바람처럼,바람을 따라 가뿐히 지상으로 떠오르던 모래알처럼
생을 가뿐히 초극할 줄 알게 된다.
잊을만 하면 문득문득 덧나는 상처처럼 떠오르는 풍경,한밤에도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 줄담배를 피우고 밥그릇 커피를
연거푸 마시게 하면서 막막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풍경,그런 풍경 하나를 이 쓸쓸한 생에 가슴에 품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내게 몰운대는 그렇게 사무치는 곳이다.
몰운대 하면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엿보이는 그런 고요한 절벽'이라고 노래한 황동규의 시 '몰운대 行'이 먼저 떠오를지 모르겠지만,부산에도 엄연히 몰운대가 있다.
부산의 몰운대는 태백시 황지못에서 시작된 낙동강이 525㎞ 대장정을 달려와서 바다와 만나는 곳,낙동정맥 마지막 끝자리에 우뚝 솟아 올라온 섬이다. 아니,그것은 섬이 아니라 이제는 뭍으로 이어져 있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란 섬이었던 것을,낙동강에서 내려온 토사가 쌓여 인근의 다대포와 연결시켜 버렸다.
부산 사하구 다대동 산 144 몰운대는 대자연이 집필한 한 권의 훌륭한 사랑학 개론서다.
섬이 뭍과 이어져버리다니! 하나가 되버리다니! 나는 몰운대 가파른 벼랑 위에 서서 모든 그리움의 끝은 섬이 아닐까,
감히 그런 잠언투를 흉내내 본다.
생각해보라! 강하구 끝에 있는 섬을 그리워하여 낙동강 칠백리 물결에 살을 부스러트리며 울었을 상류의 바위들을.
웅크린 제 몸과 꾹 다문 제 입술이 모두 사라져버릴 때까지 매운 파고에 살을 저미며 달려왔을 바위들의 끝도 없는 여정을.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라!
까마득한 옛날 가장 먼저 하구 끝 바닷가에 이르렀던 모래알과,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섬을 눈앞에 두고 속절없이 파도에 쓸리고 있었을 모래알 하나의 절망을. 그렇게 수백 년을 한결같이 부서져내린 모래들의 눈부신 절망이 쌓이고 쌓여 섬을 뭍으로 이어놓은 것이다. 아니 뭍을 섬까지 이어놓은 것이다.
그런 도저한 열망의 몸짓들이 흘러가서 다다른 곳이 몰운대다.
몰운대는 우리들 가벼운 사랑과 이별의 조리법을 초라하게 만들고, 종래는 우리들이 사랑하다 그만 둔 것들,
그리워하다 영 잊어버린 것들을 아슴아슴 호명해보게 한다.
썰물진 해변의 속살을 드러낸 모랫벌을 지나서, 곰설은 내음 싸하게 스며드는 다대포 객사에 서자,
멀리 모래알을 새알처럼 품고 있다가 편대를 지어 을숙도 쪽으로 날아가는 물새들이 보인다.
나는 하릴없이 몰운대가 좋아서 아예 부근으로 이사를 와버린 한 시인의 시구절을 되뇌여 본다.
한 섬이 흘리는 눈물이
한 섬이 흘리는 눈물에게로 가네.
한 섬의 눈물이 불이라면
다른 섬의 눈물은 재(灰)
불과 재가 만나서
보이지 않게 빛나며
어제는 가장 따스한
한 바다의 하늘을 꿰매고 있었네.
-강은교 '섬' 중에서
저물어가는 하늘 끝에 별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있다. 강의 끝이 바다라면 지상의 끝은 하늘이겠지.
강의 끝에 섬이 있다면 지상의 끝에 떠있는 섬은 아마도 저 별이 되겠지.
몰운대 앞까지 들어선 횟집과 노래방,인간의 집들도 연연히 불을 켜들고,수평선 너머 집어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그 모든 사이에서 모래와 모래가 등을 부비며 우는 울음 소리가 까끌하게 들려왔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신발 바닥에 모래들이 붙어 따라왔다. 낡은 셔츠 소매끝에서도,머리카락 사이에서도
모래알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렸다.
저 모래들에게 나는 여전히 닿을 수 없는 하나의 섬이었던 것이다.
-<시인의 에세이중에서>-
첫댓글 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동안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서.. 생각하고 있었군요.. 자연 그대로도 볼수 있는 또 다른 눈을 가져야겠습니다~
몰운대....제가 한번씩 자주 가는 곳이기도합니다...시원한 바람과 갯내음이 너무 좋아서 소나무 숲길을 빙빙돕니다....시간 되시면 몰운대로 오셔서 삶의 여유로움을 즐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