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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1.10.2. (일요일)
○ 날씨 : 맒음
○ 장소 : 경주 남산
○ 참석 : 봉천산악회(48명)
○ 산행코스 : 포석주차장-공원지킴터(포석정)-일주도로-상사바위-금오산-
상선암-배리삼릉-서남산 주차장
○ 산행거리 및 산행시간 : 약 7.0km, 3시간40분(휴식시간)후미기준
○산행안내 선두-산친구,중간- 김선일님.후미-김태길님.안창봉총무님.
○ 일정
- 07:00 서울대 입구역 출발
- 08;59 사당역경유 화서 휴계소 도착
- 11;21 포석정 주차장 도착
- 11;24 공원지킴터(포석정은 들어가지 않고 담을끼고)
- 11;49 부흥사 들머리 부흥사로 안가고 남산 일주도로 직진
- 12;14 금오정 이정표
- 12;25 상사바위
- 12;42 금오봉 .삼릉 이정표(금오봉 갔다가 다시 나와 삼릉방향으로)
- 12;47 금오산으로 표기된 정상
- 13;11 정상에서 내려와 적당한 공터에서 점심
- 13;45 여기에도 상사바위가 있음
- 13;50 삼릉계 에서 백미라 일컷는 마애석가여래 좌상
- 14;03 상선암
- 14;12 삼릉계 석불좌상(보물666호)
- 14;26 선각 육존불
- 14;31 삼릉 석조여래좌상
- 14;33 마애 관음보살상
- 14;45 배리삼릉-신라시대-아밀라왕
53대-신덕왕
54대-경명왕
- 15;01 서남산 주차장 도착
- 15;42 산악회서 준비해간 홍어회로 뒤풀이를 즐기고 출발
- 17;40 속리산 휴계소 도착해 못찍은 단체사진도 찍고 휴식
-19;31 죽전휴계소에 도착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민남형님.형수님
내려드리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갖고 서울로~~
-20;00 사당역도착 경주 장거리임에도 모든님들의 협조속에
일찍이 오늘에 일정을 마무리한다
【산행지 개요】
신라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도 경주 남산엔 신라의 흔적이 곳곳에 서려 있다.
남산은 서울의 북한산과 같이 경주의 진산이다. 북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의 타원형으로,
한 마리의 거북이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이다.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해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어 야트막하면서도 큰 산이다.
신라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남산은 온갖 전설이 남아 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한
나정(蘿井)과 초기 왕궁, 나을신궁, 도성을 지켜온 남산신성(南山新城)을 비롯한 4곳의 산성,
망국의 한이 서린 포석정지(鮑石亭趾)가 전설과 함께 지나간 역사를 전하고 있다.
불교를 특히 숭상한 신라는 남산에 그 자취를 고스란히 남겼다. 따라서 남산에는 많은
불상과 탑들이 남아 있다. 그 대부분은 석탑과 석불로서 특히 마애불이 많다. 많은 유물들이
돌로 만들어진 것은 질 좋은 화강암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어져온
바위 신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릉 13기 절터150곳 불상130점 유적과유물600점 남산은 골짜기가60 여개 삼를계곡은
불상이많다고함니다
우리도 봤지만 삼릉에는 소나무 숲도 울창 했지요(2000년12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돼있는
소중한 곳입니다)한군데 모여 있는것이 아니어서 다 돌아 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대
시간상 어려움이 있었지요 (서울도착은 빨리 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산행 이었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 산행에 동참해 주신 여러회원님 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인사를 드립니다.
강은희,권유숙,권순대.금희숙,김기홍,김경님.김동수,곽상섭.김명자,김선일.
김순하.김성용.김여님,김영희.김정숙,김정희.김종윤,김철희,김태길.남이예,
도미자,박선희.박옥순,박은숙.변영실.박순레,박순금.박정숙,방인수.신민남,
성보경.신기수,신순옥,서혜자.안경자.안창봉,유만선,유옥순.이순이,이해숙,
이영자.양수영, 전영진,정인각,정인환.조내희.한현우,황윤향,(48명)
♠ 찬조해주신 고마운님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정인환 회장님: 카로로시와인 4L1통
곽상섭님; 맥주12통피쳐.소주2상자
조내희님 ;소주2상자
남이예님; 아침떡
이순이총무님; 양주1병.복분자1병.죽엽청주1병
권유숙; 삶은밤
↓ 화서휴계소에 들러 아침커피 한잔 하면서 왼쪽 박은숙님.박순금님.정회장님.김성용님.한형우님.변영실님.신부회장님.김여님
↓전영진부회장.김순하님.김회장님.정회장님.신부회장님.한현우님.
↓포석정 주차장에 내려 포석정은 안들리고 바로 남산으로
포석정 담을끼고
↓문화재 있는곳을 황색글자로 구분 해났습니다
남산일주도로
부흥사 들머리
문화재를 볼려면 상서장쪽으로 갔다가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금오봉으로
바위봉에 분재 해놓은듯이 소나무가 멋을내고..왼쪽 정인각님.곽상섭님.처음나오신 오재국님
↓울님들 모두가 같이 잘찍어줘용~~
김선일님.변영실님.이순이총무님
상사바위 나이가 들어도 사랑에 감정은 젊은사람 감정과 똑 같지요 상사병 걸린사람 상사바위에 빌면 사랑이 이루워 진대요
상사바위 위글이 안보여 아래 다시올려놓습니다
옛날 국사곡 어귀에 외로운 할아버지가 살고 있었다. 집안 식구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 버리고,
할아버지는 혼자 살았다. 할아버지는 외로움을 참기 어려워 가끔 식구들 무덤으로 찾아가서 울었다.
그래도 허전하긴 마찬가지였다. 할아버지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 손자를 보는 듯 귀여워하였다.
동리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 중에서도 이웃집에 사는 피리라는 소녀를 퍽 귀여워하였고, 피리도 할아버지를 극진히 따랐다.
할아버지가 80세를 넘었을 때 피리도 자라서 어느덧 꽃다운 처녀가 되었다. 피리는 철이 들면서
외로운할아버지를 불쌍하게 생각하여 맛있는 음식 등을 할아버지께 갖다 드리며 기쁘게 해 드렸다.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제일 고마운 사람이 피리였다.
어느 해 봄 피리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늘 시중을 들어 주던 피리가 없으니
못 견디게 쓸쓸하였다. 다시는 못 올 줄 알면서도 피리를 기다렸다. 어느날도 방안에 앉아 피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살그머니 문이 열리면서 그토록 그리던 피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너무나
반가워 '피리!' 하고 외치며 일어섰으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할아버지의 눈에는 피리의 환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눈을 뜨면 천장에 있고, 이불을 쓰면 이불 속에 있고, 눈을 감아도 눈 속에 나타나서 피리가 생글생글
웃고 있는 것이었다. '피리!'하고 할아버지는 크게 외쳐 보고는 머리를 설레 설레 흔들었다.
그저 자식처럼 귀여워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 처녀 피리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안되지? 안돼' 할아버지는 머리를 저었다. '이제 며칠 안가서 낙엽처럼 질
몸이 꽃봉우리같이 피어나는 피리를 사랑하다니 안될 일이지' 하고, 중얼거리면서 다짐해 봐도 헛일이었다.
피리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느새 뱀처럼 기어나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피리를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양심과 피리를 아내로 삼겠다는 욕심이 머리 속에서 쉴새없이 싸우고
있건만 끝내 무서운 욕망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다 차지하고 마는 것이었다. 어느날 할아는
국사곡 산정에 올라가서 피리가 이사간 마을을 멀리 바라보고 있다가 문득 나무에 목을 메어 죽어 버렸다.
할아버지의 혼은 그곳에 큰 바위가 되어 피리가 살고 있는 마을을 늘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후
피리는 무서운 꿈을 꾸게 되었다. 눈만 감으면 큰 뱀이 몸을 칭칭 감고,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덤벼드는 것이었다. 몸부림을 치며 깨어나면 그것은 꿈이었으나 너무나 소름끼치는 무서운
꿈이었다. 그 무서운 꿈은 한번만 꾸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으면 또 다시 되풀이되고 하니 피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몸은 점점 쇠약해져서 볼품없이 되어 가는데 동리 사람들 사이에는 수군수군 이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피리를 생각하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리워하던 생각이 상사뱀이 되어 피리를
찾아오는 거라는 이야기였다. 오랫동안 밤잠을 자지 못하여 괴로움에 지쳐 있던 피리가 어느날
몽롱하게 잠이 들었는데 몸을 감고 있던 뱀이 할아버지로 변하면서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혀지지 않아
죽어 버렸는데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아 피리 아가씨를 괴롭히고 있으니 용서해 주시오.
살았을 때에는 죽을 길 이라도 있더니 이제 죽었으니 죽을 길도 없구료."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국사곡으로 들어가 바위가 되어 자기를 바라보고 서 있는 꿈을 꾸었다.
피리는 자기를 생각하다가 죽은 할아버지가 죽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피리는 조용히 일어나서 할아버지가 힘없이 가던 길을 따라 국사곡으로 들어가서
정상에 서 있는 그 바위에 올라섰다. "할아버지, 인간세상에서는 나이 때문에 소원을 못 이루었으니
나이를 아니먹는 바위가 되어 원한 맺힌 소원을 풀어 드리겠습니다."하고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피리의 영혼은 또 하나의 바위가 되어 큰 바위 옆에 나란히 섰으니 세상 사람들은 이 바위를 가리켜
상사바위라 한다. 지금 큰 바위부분에 붉게 보이는 반점이 있으니 그것을 피리의 핏자국이라 한다.
경주에 배동들판이 누렇게 황금벌판으로
상사바위를 뒤쪽으로 해서 조내희님과 서혜자부회장님
남산의 푸른 소나무숲
금오산 으로 표기된 정상석 에서의 봉님들
남산과 망산의 유래 의 설명 표지판 재미 있지요
망산을 바라보면서 한대장님이 망산을 갔는대 길이 없답니다 고생좀 했나봐요
점심을 먹고나서 배낭을 꾸리고
금오봉 능선
암능에올라 왼쪽 유만선님.조내희님.도미자님.박순례님.전영진님.김태길님
바둑바위 중턱에 바위를 깍아만든 마애석가여래좌상 을 내려보면서
↓삼릉에 백미라 일컷는 마애석가여래좌상 앞에서의 이쁜 조내희님(선덕여왕 찰영지 이기도 하지요)
김정희님.유만선님.이총무님(윤유상이 왔으면 절하기 바쁠텐데)
미완성 작품인가 마무리가 안돼있고 거칠어요(아래설명문을 보시길)
마애석가여래좌상 위 암능들
상선암 내부
삼릉계 석불좌상 머리가 떨어진걸 보수 하였음 보물 666호(삼릉계곡에 있다하여 계라고 부치는거 같습니다)
설명문을 차분하게 읽어 보시면 이해하기 편할거 같습니다
모든님들 성불 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새로오신 안경자님이 이총무옆에)
↓아~좋아요 박순례님.조내희님.김순하님
선각육존불을 뒤로해서 .도미자님.김태길님.조내희님
선각육존불 아래 설명문을 차분이 읽어 주시길 이해 하시는대 도움이
동국대생들이 주위사방을 다찾아도 찾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된 그 불상은 머리가 없다. 조선 시대의 억불 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머리 없는 불상이 주는 충격적 분위기에 나는 잠시 멍해 있었다. 그러나 옷 주름, 가사(袈裟)의 매듭, 그리고 매듭에 달린 술까지 너무나 사실적으로 섬세하게 조각된 몸체는 머리를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과 위엄이 넘쳤다.
머리 없는 불상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2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경북유형문화재 제19호)이 있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보병(寶甁)을 든 채 연꽃무늬 대좌(臺座) 위에 서 있었다. 돌기둥 같이 생긴 암벽에 돋을새김을 한 것으로 자비로운 얼굴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각 수법이 뛰어나고 정교해 우리나라 선각(線刻) 마애불 가운데 으뜸가는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을 만날 수 있다.
자연 암벽에 선으로 새긴 한 쌍의 마애삼존불로 오른쪽 삼존불의 본존은 좌상이고 양옆 협시보살은 연꽃을 딛고 본존을 향해 서 있다. 대조적으로 왼쪽 삼존불의 본존은 입상이며 협시보살들은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로 연꽃무늬 대좌 위에 꿇어앉아 있었다.
마애 관음보살 상앞에서의 조내희님.전영진님.김태길님.김순하님. 김정희님.안경자님.도미자님.안총무님.신민남부회장님.이순이 총무님
삼계 마애관음보살상
관음보살상 의 설명문
여기에도 목이 없는 좌불이
배리 삼릉에 와 포즈를 취하는 울님들
배리삼릉이란 신라시대 아달라왕.53대 신덕왕.54대 경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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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산친구.유만선님.권순대님.전영진.안총무
서남산 주차장에서의 홍어회 로 뒷풀이 건~배~
↓속리산 휴계소에서 단쳬로 한장 찍고
죽전휴계소
첫댓글 울대장님여러님들 인솔 하라 사진 찍어 컴에 올리라 수고가 많사 옵니다.
대장님~ 항상 감사합니다...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