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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핵 르네상스를 맞은 독일을 가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 들어가는 글: 재난 자본주의의 시대, 대안을 찾아 독일에 가다
When the last tree is cut,
the last river poisoned,
and the last fish dead,
we will discover that
we can't eat money
마지막 나무가 잘려나가고
마지막 강이 오염되고
마지막 물고기가 죽으면
우리는 돈을 먹고 살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린피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의 사회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던 차였다. 일본의 환경 운동 단체인 ‘나무늘보 클럽’의 츠지 신이치 교수가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난 지 3개월째 되는 6월 11일을 기해 전세계적으로 탈핵 행사를 하려고 하니 한국에서도 함께 하자고 연락을 보내왔다. 그의 메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11 사태 이후 집중도 안 되고 생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터널을 빠져나온 것 같습니다. 한결 맑아진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간 우리는 엑스레이를 통과하였고, 많은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나의 일부, 그리고 지구의 일부가 죽었고, 그 주검은 지금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어서 그는 일본 동북부 지역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인 자연재해 지역에는 전국에서 자원 활동가들이 몰려왔으며, 주민들은 피난소에 모여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개별 이주보다는 커뮤니티로 함께 이주하자”, “지역을 재생에너지로 거듭나게 하자”는 등의 구상을 나누면서 날로 활기찬 기운이 뻗치고 있는 반면, 원전 사고가 난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방사능의 공포로 뒤덮인 죽음의 땅에서 분노만 삭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원전 사고 원인을 천재지변으로 돌려보려는 도쿄전력과 우유부단하게 눈치만 살피는 정부, 서로 소통하지 않는 채 양분화 되어 있는 ‘원전 과학 학계’사이에서 주민들만 지옥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츠지 교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천국으로 만들 것인지 지옥으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다”면서 일본 시민들이 행동을 개시했음을 알려왔다. 그 첫걸음으로 2011년 6월11일, 후쿠시마 원전 재해 발생 3개월이 되는 날, 사람과 자연을 상하게 하는 전력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탈 원전 100만인 집회’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 집회에 대해 생각을 떠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대안이 없지 않느냐며 가볍게 넘겨 버리고 싶어 했다. 사건이 너무 많이 터지다 보니 생각하기조차 싫은 것일까? 정말 대안이 없을까? 마침 그간 ‘운하반대 교수모임’을 주도하던 이원영 교수로부터 방학 중에 후쿠시마 사건 이후 급격하게 에너지 정책전환을 해낸 독일을 둘러보는 여행을 조직해보려 한다는 연락이 왔다.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겠다던 집권당이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격적으로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경위를 직접 가서 알아봐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주저없이 합류하기로 했고 견학팀이 구성되었다. 공식적인 일정은 6월 28일부터 7월 5일까지로 수도 베를린(Berlin), 그리고 최근 선거에서 녹색당이 승리를 기록해서 독일을 놀라게 한 보수적 도시 슈투트가르트(Stuttgart), 마지막으로 생태도시의 대표격인 프라이부르크(Freiburg)를 다녀오는 일정이었다. 다양한 전공과 배경을 가진 교수, 연구원, 종교인, 시민운동가들은 8일간 정부 접대실에서, 교수 세미나실에서, 시위 현장에서, 그리고 버스 안에서 참으로 알찬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
원래 긴 비행기 여행을 가면서 일주일 정도만 있다가 오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번에도 공식 일정 전후로 다른 여정을 덧붙였다. 베를린에서는 문화·생태 공동체 ‘우파 파브릭(The Ufa Fabrik Berlin)’의 게스트 하우스에 닷새간 머물면서 21세기의 마을의 삶에 대한 공부를 새로 하였다. 우파 파브릭은 동서독 통일 이후 문을 닫게 된 필름 인화 공장 지역을 새로운 문화와 예술로 활성화시킨 창조적 청년들의 주거지이다. 마지막 도시인 프라이브루크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보존으로 가장 모범을 보이고 있는 빅토리아 호텔과 오래된 도심의 여관에 머물면서 중세적 분위기가 역력한 도시가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느껴보고, 동시에 2차 세계 대전 이후 머물었던 프랑스 주둔군이 빠져나간 후 지역에 들어선 독특한 생태 실험구역인 보봉(Vauban) 마을을 둘러보았다.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자연의 경고를 듣고 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할 것인가? 이 결정은 앞으로 우리의 생사를 좌우할 주요한 결정임에 틀림없다. 1·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나치의 본산지였던 독일, 1970년대 녹색당의 등장과 함께 탈핵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었던 독일에서는 후쿠시마 사건을 계기로 지금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할 새로운 기운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독일 국민들은 “원자력? 됐거든요!.”라고 적힌 깃발을 꽂은 채 자건거를 타기도 하고 베란다에 “No Nuke!”의 플레카드를 내걸면서 일상속에서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원전 폐기를 주장하며 있었다. 이런 기운을 두고 독일 유학중인 환경 운동가 염광희 씨는 ‘탈원전 르네상스’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탈원전 문명’에 대한 탐구는 이제 시작다.
이번 여행 중에 내가 보고 싶어 한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독일 국민이 거의 혁명에 가까운 ‘원전 폐기’ 결정을 내리게 된 경위에 대한 것, 두 번째는 하필 독일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게 된 보다 거시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전지구적 탈근대화의 방향에 대한 것, 세 번째는 그들의 일상적인 실천과 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 세 주제를 삼차에 걸쳐 정리를 해볼 생각인데 이 글에서는 일단 첫 번째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2. 글로벌 위험 사회의 성찰과 결단 - “원자력? 됐거든요!”
“후쿠시마로부터 배운 것은 원전 폭발사고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고 이제 벗어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에너지 효율향상기술과 재생 에너지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 탈원전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독일의 책임이라고 느꼈다. 이제 세계가 바뀔 것이다. 예전 상태 그대로는 사실상 경쟁력도 없다.” 이 말은 이번 독일 에너지 혁명을 끌어낸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17인 윤리 위원회(이하 17인의 윤리위원회)’ 귄터 바흐만(Guenther Bachmann) 사무총장이 한 말이다.
우리 견학팀은 마치 19세기 말 ‘신사 유람단’처럼 ‘선진국’에서 뭔가 배워보겠다고 무척 분주하게 다녔다. 첫날부터 오전, 오후로 나누어서 독일에서 이런 획기적인 정책결정을 내리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분들을 만나고 다녔는데 수원대 도시계획학과 이원영,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 김정욱, 같은 대학원의 윤순진 교수가 핵심적 역할을 했다. 독일에 체류하는 환경 운동가이자 유학생인 분들이 인사들과 다리를 놓는 역할을 하면서 워낙 ‘거물급’이라 짬을 못 낼 것이라고 염려했지만 견학팀의 간절함을 하늘이 알았는지, 대단한 분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었다. 첫 날 오전에는 베를린 자유대학의 미란다 슈로이어(Miranda Schreurs)를 만났다. 베를린 자유 대학의 교수이자 EU환경 자문위원장이자 ‘17인의 윤리 위원회’ 위원인 그로부터 아주 적절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우리는 이어서 연방 환경부 재생에너지 정책관, 주요 환경단체 BUND 대표 바이거(Hubert Weiger) 교수, 17일의 윤리 위원회 바흐만 (Kunter Machmann) 사무총장,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바덴-뷔뎀베르크주(Baden-Wurttemberg)의 환경부 국장, 그리고 하천 전문가 베른하르트(Hans Helmut Bernhard) 교수 및 그곳에서 환경관련 연구와 운동을 하는 교포 지식인들을 줄줄이 만났다.
일단 우리는 ‘원전 찬성론’자였던 메르켈 총리와 집권당이 이런 파격적 정책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소상히 들었는데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독일 정부의 발표를 이끌어낸 것은 민간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역할이 아주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녹색당은 이 17인의 윤리위원회에 “외부 전문가를 불러 정부가 원하는 답을 이끌려한다”고 불참하였다는데 어쨌든 이 위원회가 중재를 해서 경이로운 국민적 결단을 하게 만들었다. 2011년 4월 4일에 출범하여 5월 30일, 곧 8주 안에 보고서를 내야 했던 이 위원회는 전 독일 환경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독일의 대표적 화학기업 회장, 사회학자 울리히 벡, 가톨릭 주교, EU 환경 자문회의 의장인 슈로이어 교수 등 종교 지도자, 재계 인사, 정치인, 대학교수, 시민단체, 노조 관계자로 구성되었고 이들의 보고서가 받아들여져서 독일은 “2022년 원전 완전 폐쇄”란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독일에서 벌어질 수 있는지 슈로이어 교수에게 물었더니 그는 첫째 요소로 체르노빌 사고의 경험을 들었다. 1986년 체르노빌 사태 때 낙진이 독일 땅에 떨어지면서, 방사능 낙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날아간다는 사실을 경험했고 그 이후 방사능비와 방사능이 섞인 우유와 음식물, 그리고 방사능에 노출된 어린이 놀이터 문제로 고심하던 때의 기억을 독일인들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또 알리는 것, 그리고 그 피해를 다시 입지 않겠다는 결단이 이들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 슈로이어 교수는 독일의 반핵·환경 운동의 특수성을 언급했는데 1960년대부터 독일에서 활발하게 일었던 환경운동과, 특히 정치계로까지 진출한 녹색당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1970년대에 환경 운동, 특히 반핵운동 진영이 핵심이 되어 만들어진 시민사회에 뿌리를 둔 정당으로 1980년에 생태, 사회, 직접 민주주의, 비폭력을 가치로 전국 규모의 정당으로 탄생한 정당이다. 특히 독일 녹색당은 체르노빌 사고 당시 이미 원내에 진출해 있던 터라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영향력을 키웠고 1998년에는 사민당과 적록 연정으로 집권당이 되면서 대대적으로 정책을 바꾸어 낼 기회를 가졌다. 애초 연립정부를 세울 때 “원자력 발전소를 점진적으로 폐쇄한다.”는 합의문을 작성했으며 2002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는 원자력법을 개정하여 새로운 원전 건설을 불허함과 동시에 원전의 최대 수명을 32년으로 못 박았다. 이로서 자동으로 2022년에는 원전이 완전 폐기되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와 함께 사민당-녹색당 연립 정부는 ‘재생 가능 에너지 법(EEG)’,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 등의 제도화를 통해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밀었다. 노동 부문에서 세금을 거두는 대신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오염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등의 제도를 착실하게 마련해갔던 것이다.이런 과정을 통해 지난 십여년 동안 독일은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을 축적해갈 수 있었다.
2005년 선거에서는 사민당과 녹색당이 지지를 잃어, 사민당과 기민당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은 변함없이 고수하였다. 하지만 2009년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원자력 산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기민당과 자민당의 보수적 연합정부가 집권하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보수정권은 2010년 8월 가동 중인 원전 17기의 수명 연장, 그리고 태양광 전력 매입 가격을 인하하는 등의 정책을 취하면서 그간의 원전 철폐 정책을 뒤집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가격인하가 시작되기 전에 발전소를 하나라도 더 지으려는 기업과 시민들에 의해 오히려 이 정권 때 태양광 발전소는 급격하게 늘었다고 한다.
2010년 가을부터 메르켈 총리의 원전 수명 연장 결정에 반대하는 반핵 집회가 일기 시작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이후 독일 정부는 대규모 반핵 집회의 집중포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메르켈 총리는 기존 원자력 관련법을 개정해 평균 12년 수명 연장을 밀고 나간 장본인인데 예정대로라면 35세를 일기로 폐쇄되어야 할 슈투트가르트 인근 네카베스트하임 원전이 수명연장으로 다시 살려지게 되자 시민 6만 여명이 장장 45km의 인간띠를 만들어 늙은 발전소의 조속한 폐쇄를 요구했다고 한다. 3월 14일 전국적으로 11만 여명이 각자의 지역에서 후쿠시마를 위로하고 원전의 조속한 폐쇄를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했고, 3월 26일은 대도시 4곳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반핵 인파 25만 여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시위 뿐 아니라 선거에서도 보수적 정권의 개발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특히 매우 보수적인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서 일어난 지방선거의 결과는 독일 전역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었다. 그 지역은 역사상 최초로 보수당을 제치고 녹색당 주지사를 선택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재독 교포는 “대구에서 민노당 시장이 당선된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구체적으로 보수적 주정부가 오래된 기차 역사를 없애고 새 중앙역을 짓고 역사 부근을 거대한 소비지역화 하려는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라는 사업에 대대적으로 거부를 표시한 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메르켈 총리는 긴급히 방안을 모색하던 중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17인 윤리 위원회’를 출범시키게 된 것이다.
사실상 슈로이어 교수는 윤리 위원회에서는 입장 대결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논의를 했다고 하였다. 독일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과 수요를 따졌으며 가동 중인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지, 그 원전이 다 필요한 것인지, 에너지 가격의 큰 인상 없이 대체할 다른 에너지원이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토론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좁혀질 기미가 안 보이자 전격적으로 공개 TV 토론을 하기로 하였고 4월 18일에 공영 방송인 피닉스를 통해 11시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시국토론회를 개최했던 것이다. 토론회에는 17인의 위원들과 그린피스, 태양광 에너지 관련 교수, 핵공학자 등 30명의 외부 전문가가 참석했고 시청자들이 이메일, 전화, 문자 메시지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런 토론이 다음 날 신문 등 매체를 통해 또 한 번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바흐만 사무국장은 인터뷰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한 이런 사안은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기에 국민들에게 모든 토론과정을 개방하기로 했으며, 실제로 이 방법은 국민들의 전폭적인 참여 속에서 합의를 도출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다고 하였다. 대국민 공개 토론에서는 원자력의 한계, 곧 우라늄 채굴기간이 100년 정도라거나, 핵무기의 위협이나 원전 확산과 폐기물 문제가 거론되었고, 동시에 원전 폐쇄에 대한 낙관적인 시나리오의 문제점도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간 계산하지 않았던 것을 계산에 넣으면 차세대 기술력인 재생 에너지 쪽이 경제적으로도 경쟁력이 있으며 에너지 안보와 자립의 중요성도 강조 되었다 한다. 실제로 독일은 2000-2009년 200억 유로를 투자해 재생 에너지 의존도를 6.3%에서 16.2%로 끌어올렸고 많은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과를 내었다.
이 모든 실질적 토론에 더하여 이 위원회가 우리 견학 팀에게 감동을 준 것은 세대에 대한 고려였다. 박정희 시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국민윤리’라면 치를 떨던 기억이 있는 분이 많아서 “왜 이름이 윤리 위원회냐?”고 재차 질문을 하였는데 ‘세대 간 형평성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전은 한 세대가 자신들이 쓸 전기를 위해 만든 것이고 그것의 폐기물은 후세대에게 엄청난 위험을 남기게 될 것인데 그 문제를 어떻게 할지를 두고 본격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핀란드에서는 앞으로 십 만년을 보관해야 할 핵폐기물 저장소를 거대하게 짓고 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이로쿼이 부족에서는 추장이 뭔가를 결정하기 전에 이후 7세대까지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에 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세대 간 형평성의 정신인 것이다.
이런 대대적 토론을 통한 민의를 파악한 과정을 거친 위원회가 그 후 40일간 다시 논의와 연구를 거친 후에 “2021년까지 모든 원전의 폐기”라는 결론을 내린 보고서를 메르켈 총리에게 제출했고, 5월 30일 메르켈 총리는 내각을 소집해 7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이 보고서를 채택한다는 대국민 발표를 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마침 메르켈 총리의 제안이 연방의회표결에 붙여지는 날이 베를린에 머물고 있어서 이른 아침 출근 전에 연방의회 건물 앞에서 환경단체들이 벌이는 시위에 참석할 수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 환경단체 회원들이 역사적 표결을 기다리면서 메르켈 총리의 ‘십년 내’ 시간표보다 더 줄어야 한다면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날 연방회의의 표결은 하원의원 513명중 찬성 426, 반대 79, 기권 8표로 83%의 지지를 얻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탈원전 문명’을 여는 시대적 전환이 독일에서 시작된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연히 프라이부르크에서 중년의 택시기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자신은 생태주의를 떠드는 사람들이 싫고 했다. 직업상 자동차로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인데 자건거가 늘어나면서 운전하기가 아주 힘들어졌고, 특히 생태 마을인 보봉 지역에 들어가면 자동차 운전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처럼 취급당하기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녹색당도 자기가 보이게는 무리한 정책을 추진해 왔고, 대체로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잘난 척하기 때문에도 그들을 좋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살려면 큰 집에, 그것도 이웃과 좀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데 보봉지역은 이웃과 너무 붙어 있어서 자기는 전혀 좋아할 수 없는 동네라고 했다. 그런 그가 원자력 발전은 절대 반대 한다고 했다. 딸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다음 세대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보수적인 그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서건 딸을 사랑하기 때문이건 원전폐기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일에서는 적어도 ‘탈원전’의 방향에 관해서는 거국적 합의를 이루어 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독일의 이러한 정책 전환의 배경에는 물론 독일 나름의 독특한 역사가 작용하고 있다. 우선 원자력 발전소는 실제로 원자폭탄에서부터 진화한 기술이다. 원자폭탄을 만든 많은 선진국들은 2차 세계 대전 전후로부터 핵발전 기술을 발달시켜왔는데 특히 1970년대 석유 파동 때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으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원전기술 대국으로 국력을 높이고자 했다. 양차대전의 패전국으로 원자폭탄 개발을 못하게 된 독일은 당연히 원전만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고, 이것이 녹색당과 사민당의 연록 정부를 거치면서 에너지 공급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설계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23%의 에너지를 원전으로 충당해온 독일은 2022년 원전 완전 폐쇄로 인해 생길 전력충당을 크게 기술발전과 에너지 절약으로 해결해가려고 노력 중이다. 독일은 현재 2050년까지 모든 건물을 기후중립적인 건물로 만들고 건물의 이중창을 삼중창으로 하고 석탄 에너지를 열병합 발전으로 효율을 높이려는 등 대체 에너지 산업에 대한 세금 감면과 각종 지원을 통해 지속적으로 에너지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또한 기업과 “기후보호와 에너지 효율 파트너십‘을 맺어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을 독려하면서 녹색 일자리 창출을 적극 추진 중인데 연방 환경부 보고서(2010)에 따르면 2007년에는 27만개, 2010년에는 36만개의 일자리가 생겼는데 이 숫자는 자동차 산업이 만드는 것보다 더 많은 숫자라고 한다.
이미 태양광, 풍력, 잘 자라는 나무를 잘라 만드는 ‘바이오 매스’, 나무와 가축 분뇨 등을 섞어서 만드는 ‘바이오 가스’ 등 재생 에너지 생산으로 방향전환을 하면서 독일의 대표적 풍력발전기 생산업체인 노르덱스는 제품 90%를 수출하고 있고 해상풍력단지 조성 등의 여러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또한 독일은 태양광 누적 설치량이 세계 1위이며 태양전지분야에서도 선두를 달려왔다. 최근 중국산 태양전지 보급이 늘어 독일세금으로 외국 업체 배만 불린다는 비판이 일어서 태양 전기구매 금액을 점차 삭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독일은 스마트 그리드 등 송전과 저장 관련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도 선두에 있는데, 이런 움직임은 단지 독일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사실상 북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를 두고 적극적 협력관계를 맺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이다. 기존 주택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기존 신축 주택을 에너지 효율성 주택으로 재건하는 연차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존화력 발전의 효율이 30%인데 열병합을 통해 80% 이상 올리려는 기술적 실험도 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 면에서는 일반 가계만이 아니라 교통 통신 분야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전기 값이 오늘 경우, 시민들의 항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는 한국 교수들의 질문에 전문가들은 이구동성 “국민이 선택했기 때문에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고 말했다.
독일의 원전 폐쇄 선언은 세계에 큰 파급 효과를 일으켜 스위스는 2034년까지 완전 폐쇄를 결정했고,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2014년부터 하려던 원전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으며, 핀란드 역시 더 이상 원전을 짓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아사히신문의 7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본국민 77%가 원전 폐기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아사히 신문이 한 2007년 여론 조사에서는 부정적 여론이 27%였고 4월 18일 조사에서는 41%였는데 현재까지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3.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다 – ‘탁월함의 네트워크’를 기대하며!
독일은 인구 면에서 남북한 합친 것보다 조금 많은 8천만 정도이고, 땅도 남북한 합친 것의 두 배 정도인 나라이다. 국민 1인당 소득은 4만 불로 한국의 2배이다. 우리 일행은 독일이 낳은 ‘기적적인 결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날이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기 시작했다. 기자 출신이자 ‘강과 습지를 사랑하는 상주 사람들’ 대표인 김영태 선생은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적 생활기반은 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구절이 있는 통일 독일의 헌법을 부러워했고, 동국대 사회학과 조은 선생은 탄탄한 중산층과 대기업 몇 개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사회가 아니라 ‘강소기업’(강한 소기업)이 주가 되는 생산 구조를 들여다 보면서 다시 아주 기본적인 노동과 사회계급 체제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했다.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 행동 집행위원장’ 김용국 선생은 특히 독일을 둘러보는 내내 참담한 표정이었다. 한국의 전력 생산 관련 원전 비율은 설비부분으로는 2010년 기준으로 18.716MW로 전체의 24.6%이고 생산 비율로는 31.4%이며 ‘제 5차 전력 수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2024년까지 설비 용량은 31.9%, 생산비율로는 48.5%를 잡고 있다고 한다. 독일은 원전 비율 23%를 11년 안에 제로(0)로 만들겠다고 하는데 한국의 경우는 반대로 점점 늘려간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독일에서는 정책 전환을 하면서 원전 관련 주식은 크게 떨어지고 재생에너지 분야 주식이 크게 오르고 있다. 사실상 투자가 달라지면서 새로운 기술영역이 확대될 것이며, 그 분야가 고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영역으로 GNP 2만 불을 넘어선 한국에서도 당연히 진입해야할 분야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 정부에서는 CO2 배출을 않는다는 면에서 원전 에너지를 ‘녹색 에너지’라고 부르기도 하고-이런 생각은 기후 온난화에 대한 위기감이 크게 일었을 때 잠시 통용되던 때가 있긴 하였다-일본경제가 원전 사고로 주춤한 기회를 이용해 떼돈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탈원전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공격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최근 탈원전 논의가 시작되자 원자력 발전에 대한 광고를 더욱 대대적으로 하는 현상이나 외국의 원전사업 수주를 대단한 환경사업으로 해석하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2011년 봄, 아랍 에미리트 원전 건설 사업을 따내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그 원수를 만나러 가기도 출국하기도 하였다. ‘원전 대국’인 프랑스가 입찰경쟁에서 진 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책임 추궁을 당하자 담당 기업체의 답변은 한국 원전기업에서는 안전에 대한 고려가 덜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의 입찰조건을 내 걸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에너지 전환을 해낼 핵심적 변수는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것인데, 한국의 상황을 통계로 꿰고 있는 동행자 김용국 선생에 따르면 2002년 독일의 1인당 전력사용량은 6,258kw 인데 한국은 6,362kw로 앞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08년 기준으로 독일은 6,602kw인데 한국은 8,423kw로 계속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에너지를 계속 사용하게 부추기며 ‘급 중심’의 정책으로 치닫는다면 에너지 전환은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 독일의 경우,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전제로 2050년까지 에너지 사용을 2007년도 수준의 50%로 줄인다는 것이 요지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시민들의 자발적 절약과 함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 투자를 해야 한다. 숫자로 말하면 독일이 정한 단위 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은우리나라의 가장 에너지 효율이 좋은 아파트의 절반 이하로 정해졌다고 한다. 정부가 담배와 술과 유흥 산업으로 돈을 벌면서 돈을 벌기 위해 국민들에게 많이 사기만을 권한다면, 그래서 GDP를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그 정부는 분명 문제적 정부일 것이다. 원전 이나 CO2 배출 에너지를 계속 쓰라고 부추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와 비슷한 결과를 초대할 것이다. 국가가 하는 일은 장기적인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는 것이지 돈벌이가 아님을 이제 분명히 할 때가 되었다. 그러나 전력 생산과 판매, 유통을 독점한 체제에서 기득권을 가진 편이 변화를 반길리 없다. 그런 면에서 에너지 생산과 유통을 분리시키는 제도 개선부터 해야 한다는 재독 교포 전문가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그들은 비전과 제도를 공히 바꾸어낸 것이다.
우리는 독일을 견학하면서 그들의 성숙한 시민 의식을 부러워하고 오래된 숲을 지키며 환경 친화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온 모습에 감동하였다. 급진적인 정치를 추구했던 녹색당과 사민당의 ‘적록연정’, 50만 일반 회원을 가지고 있다는 환경단체 ‘분트’ 등 노련한 환경단체들과 원칙주의 노선을 지키는 그린피스 등이 벌이는 다양한 연대 활동, 이를 이끌어가고 또 단단하게 뒷받침해준 전문성 높은 연구소와 지식인들, 그리고 ‘자기 앞마당’을 지키려는 소시민들의 노력을 부러워했다. ‘세대 간 협약’을 이루어낸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연대하여 거대한 힘을 발휘한 그 사회를 보면서 우리는 마음 깊이 감동했고, 실은 “우리는?”이라는 질문을 속으로 던지며 절망하였다.
우리는 안 되는 것일까? 서구 열강의 침입 앞에서 러일 전쟁을 치른 일본이 미국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자존을 유지했다면 우리는 그 물결에 굴복한 전례를 갖고 있다. 결국 이번의 거대한 전환기에도 시대착오적인 체제를 고수하면서 실패의 역사가 되풀이하게 될 것인가? 바로 이웃 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났는데도 풍향의 차원에서 안도를 하는 사회, 사건이 터진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대학이란 곳에서도 제대로 탈원전이나 재생 에너지에 대한 콜로키움조차 열리지 않는 나라, 원자력에 대해 국민 64%가 긍정적이어서 원전에 허용적인 면에서 세계 2위를 기록한다는 나라, 이웃 나라의 엄청난 재앙을 보면서도 곧 ‘평온’을 되찾은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이번 여행에 동행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양기식 신부는 “저항을 멈추면 고통이 시작된다.”라는 명구를 남겼다. 독일국민이 내린 이번의 대 합의는 결국은 저항을 멈추지 않은 시민들과 시민의 힘을 믿은 전문가들의 연합해서 이룬 성과였다. 우리들은 마음 속 깊이 ‘근대문명’이 더 이상 지속가능한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감지하고 있다. 감지는 하고 있지만 더 알고 싶지 않거나 알고자 할 겨를이 없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공포의 상황을 더 이상 공포로 느끼지 않는 것, 물어야 할 질문을 하지 않는 것,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의 수행에 충실한 것, 이것이 실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갖고 오는지에 관해서는 일찍이 세기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탁월한 통찰력으로 인류에게 경고를 내린 바 있다. 모두가 일상의 수행에도 지켜가는 지금, 우리는 다시 아렌트를 초대해 그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다.
1961년 이스라엘 법정에서는 유태인 학살을 수행했던 SS 조직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그 재판을 지켜본 아렌트는 실제 재판 과정에서 만나본 후 그가 전혀 악한이 아니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아이히만은 나치의 어떤 목적이나 대의도 알지 못하는, 지극히 가정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량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며 즐거워하는 살인마도 아니었고, '유대인'을 죽여야만 한다는 의도와 목적 하에 효율성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것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이었기에 최선을 다해서 하였다. 아이히만은 반문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만일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으로 인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2006)이란 책에 “그의 행위가 아무리 괴물 같다고 해도 그 행위자는 괴물 같지도, 악마적이지 않았다. 우리 모두의 안에는 아이히만이 있다.”라고 썼다. ‘악’이 얼마나 평범한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게 우리 곁에 자리할 수 있는지, 성찰의 부재가 어떤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증언한 것이다.
이웃 후쿠시마 원전 사고 뉴스를 듣고도 별일 없는 듯 굴러가는 일상을 보면서, 더구나 후대에 대해 일말의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는 나만은 아닐 것이다. 혹 불감증을 원하는 군중심리가 우리 안에 스멀스멀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지금 일본에서는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원전 세력과 탈 원전 세력 간의 대결 말이다. 두 세력은 마치 막부시대의 신구 대립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상호공방을 하며 실력 겨루기에 돌입했다고 한다. 원전 카르텔, 또는 원전 마피아란 단지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 건설, 전기기술분야만이 아니라 그 발전으로 이익을 얻는 금융 보험 업계, 광고업계와 언론, 정치 자금을 챙겨온 정치계와 연구비와 졸업생, 취업, 그리고 퇴직 후 재취업 기회를 갖는 대학교수와 연구소를 망라한 거대한 세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지금 일본의 프로원전 진영에서는 비용이 너무 들어서 탈원전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고 이를 뒷받침 하는 연구자료들이 발빠르게 나오면서 대중들에게 제공되고 있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후쿠시마 이후의 일본처럼 원전 카르텔진영에서는 비용 때문에 원전을 폐쇄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고 한다. 통계와 전문용어로 그럴 듯한 전문적 보고서를 쓰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기존 연구소와 기업에 많이 고용되어 있다. 기업에 고용된 연구원들은 사실상 전 시간을 투여하여 뛰는 용병들이라 할 수 있다. ‘탈원전’ 쪽의 시민 연구소들은 사실 숫자 면에서는 이들과 대결할 수가 없다. 다행히 기업과 시민사회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열정과 방향성이 주는 차이이다. 현재 기업의 고용연구원들은 결국 돈 위해 일해야 하는 ‘자발적 노예(willing slave)’이지만 시민사회 연구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 열정과 창의성면에서 월등한 차이가 나게 되어 있다. 공개 토론을 통해 독일 시민사회의 탁월한 전문가들은 이 논리의 허구를 밝혀내고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낸 것이다.
체르노빌 사태에서 이미 잘 드러났듯이 기술적 문제와 새로운 생물학적 불확실성에 따른 문제는 공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재난의 심각성과 그것이 인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전문가들’의 대립은 좁혀지지 않았고, 사실이 밝혀져도 언론 통제가 심해서 보도를 지연시키거나 왜곡하는 일이 일어났다(Petryna, 2002). 독일에서 시민 대토론회가 필요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 통계 자료로 시시비비가 가려지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의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많은 사람들은 전문가란 해당분야에 대해서 아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나는 전문가란 해당분야에서 저질러 질 수 있는 큰 오류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면에서 그간 원자력 발전을 추진해온 분야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안고 있는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그것을 가동시켜왔기 때문에 ‘전문가’가 없었던 셈이다. 진짜 전문가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하는데 실은 지금은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패러다임 혁명’이 일어나는 시점이라 따져서 해결될 일은 아닌 것이다.
어쨌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앞으로 올 7 세대를 생각하며 국가적 삶을 기획해야 한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가 펴내는 8월 24일자 뉴스레터를 보면 올해도 “8월 21부터 우리는 미래 세대가 치러야할 희생의 대가”로 살아가게 된다고 쓰고 있다. 우리는 지구가 한 해에 제공하는 자원과 서비스를 8월 21일을 분기점으로 다 소비했고, 8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는 미래 세대의 자원을 갉아먹고 산다는 것이다. 그 자원과 서비스에는 숲과 바다의 이산화탄소 흡수작용, 마실 물의 저장, 원료와 식량의 생산 등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요소들이 모두 포함된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세대 간 형평성’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에너지 전환(energy shift)’라는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에너지 절약(energy down)’이라는 실행기획을 짜가면 된다.
물론 그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위기를 일으켰을 시기에 통하는 사고방식”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는 없다. 체제 안팎에서 새로운 시대의 싹을 틔워가고 있던 생활인들과 전문가들이 서로의 현장에서 만나 상호 시너지를 낼 때, 그래서 ‘탁월함의 네트워크 (network of excellence)’가 빛을 발할 때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독일 환경 연구소와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나는 실은 통계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 통계를 가지고 잘 놀아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국가공동체’ 차원의 일에 관여하려면, 그래서 비전과 제도를 바꾸어내려면 보다 수준 높고 치열한 작업이 필요하다. 학문간 융합이 필수적이며, 특히 자연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이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이번 여행을 통해서 이다. 독일과 북유럽지역은 세계의 패권에 관심을 가진 미국, 프랑스와 같은 대국주의적 나라와 달리, 지난 20여년간 탁월한 감각과 능력을 가진 연구진과 시민 엔지니어들을 키워내고 있었으며 그들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냈다. ‘프렉탈’의 시대에 그들이 만든 파문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일고 있다.
이 시점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삶의 현장을 가진 시민과 전문가들의 네트워킹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한 근대 문명과 결별하기, 그리고 각자의 현장에서 ‘탁월함의 네트워킹’을 통해 새로움을 심어갈 때다. 새로운 시대의 전문가, 새로운 시대의 시민이 되기 위한 행보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견학을 통해 나는 멋진 목수와 엔지니어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 목수와 엔지니어들을 길러낼 마을과 학교 이야기를 다음 기회에 이어가보려고 한다.
참고문헌
[반핵 르네상스를 맞은 독일을 가다: 2011 독일 견학 교수 리포트](M 명문 미디어 아트 펙).
김용국, 2011 “지역 반핵운동가가 바라본 탈핵과 대안”, 독일 견학 교수 리포트 33-42쪽
김영태, 2011 “독일의 탈원전 정책 어떻게 나왔나” 독일견학 교수 리포트 43-52쪽
박란희, 2011 “탈원전 독일을 가다: 100년 후 석유 우라늄 고갈 시대 에너지 세계패권을 노린다.” 53-72쪽
양기식, 2011 “저항을 멈추면 고통이 시작된다.” 2011 독일견학 교수 리포트 139-146쪽
염광희, 2011 “반핵 르네상스 맞은 독일” 독일 견학 교수 리포트 73-83쪽
장정욱, 2011, 8월 16일 “후구시마 원전 사고와 원자력의 미래” 프레시안 발표 원고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818005557
아렌트, 한나 2006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한길사
Petryna Adriana 2002 Life Exposed: Biological Citizens after Chernobyl.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