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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逍風)
프롤로그
신이 동물을 창조할 때, 모두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동물들에게 어떤 것이 선물인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으며,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동물들이 창조되고 난 얼마 후, 어느 한 종류의 동물들이 신에게 찾아와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신이시여, 기린에겐 긴 목을, 사슴에겐 멋진 뿔을, 사자에겐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힘을 ······ 이렇게 다른 동물에겐 모두 멋진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희들에게만 선물을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신은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주었습니다. 몇 주 후, 그 동물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저희는 신께서 주신 선물을 귀하게 여겨 등에 고이 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저희는 선물을 받기 전보다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엔 제법 잘 뛰어다녔는데, 이제는 달리기는커녕 걷기도 힘이 듭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신은 인자한 목소리로 그러나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 동물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준 선물은 너희들이 그것을 등에 지고 땅을 힘겹게 다니라고 준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준 선물의 이름은 날개라는 것이다. 그것으로 드넓은 창공을 맘껏 날아다니라고 준 것이니라.”
***
그는 버스를 타는 것이 두려웠다. 얼마 전부터 그는 버스를 탈 때마다, 주위의 낯선 사람들에게 버스의 번호를 물어 봐야 했는데, 그것은 매우 곤욕스런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버스가 코앞에 오기 전까지는 그 버스가 자신이 타고 갈 버스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거나, 그가 기다리는 버스를 타고 갈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 버스는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가한 정류장에 버스를 세우려는 수신호조차 없을 경우, 버스는 아예 정차를 하지 않았고, 정차하더라도 자신이 타고 갈 버스인지를 그가 확인하기 전에 떠나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버스가 저만치 올 때쯤, “저 버스가 몇 번입니까?” 하고 물어 봐야 했다. 그러면 친절히 잘 답해 주는 사람도 많지만, 별 희한한 놈이 다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상한 눈길로 대답을 대신하는 사람도 많다. 이 시대에 문맹인을 보는 것은, 타잔이나 부시맨이 문명인을 구경하기보다 더 어려워졌기에 ‘멀쩡하게 생긴 놈이 숫자도 모르나?’ 싶어 그런 눈빛을 짓는 것이다. 그는 주위의 그 차가운 눈빛이 싫었다. 그러나 그 눈빛을 보지 않기 위해 감행한 모험의 피해는 더욱 두려웠다. 버스는 각 회사마다 모양이나 색깔 그리고 분위기에서 서로 조금씩의 차이가 있어서, 버스의 번호는 보이지 않아도 대충 몇 번인지 짐작이 갈 때가 많다. 그러나 28번인 줄 알고 자신 있게 탄 버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든 다음에야, 사실은 29번이었음을 알게 되었던, 그래서 아까운 차비와 소중한 시간을 허비한 경험을 했던 그는 차라리 그 눈빛을 택하곤 했다. 그러나 그 몸서리치게 싫은 눈빛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기에 그는 다른 질문 방식에 대해 고심했다. “저 버스가 28번 맞나요?” 하고 물으면, ‘저 버스가 몇 번입니까?’ 하는 질문보다는 사람들이 덜 황당해 하는 거 같았지만,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러는데요 ···’ 하는 말을 생략하는 한 주위의 눈빛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낯선 사람들로부터 동정의 눈빛을 받는 것은 더욱 싫었던 터라, 그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되는 유효한 작전을 선택했다. “저 버스가 K대 갑니까?” 이 질문법은 상대방이 그 정답을 모르지 않는 이상, 거의 성공이었다. 다만 이 질문도 바쁜 출근길에 남을 성가시지 않으며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런 일들은 그저 조금 귀찮은 일로 치부하고 말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책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은 그를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일이었다. 글씨들이 입체로 보이고 그나마 조금만 책을 보아도 눈앞이 가물거려, 이내 눈물이 나서 도저히 책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참다 참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학교 안경점에 갔다. 한참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력을 재던 안경사가 말했다. “시력을 잴 수가 없습니다. 전문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셔야겠습니다. 눈에 이상이 있으신 것 같군요.” 그는 어이가 없었다. 그가 끼고 있는 안경알이 바로 이곳에서 맞춘 것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안경점에서 시력 하나 잴 줄 모르나 싶고, 할 말이 없으니까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댄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는 이 엉터리 안경점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문을 나섰다. 그러나 한편으로 ‘정말 내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다.
사실, 그가 ‘시력 측정 불가’라는 낯선 말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은 안경을 쓰고 있지만 오른쪽 눈 하나만은 극히 정상의 눈인데, 그 눈마저 그런 판정을 받는다는 것을 그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기라도 하다면 그것은 그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에 생각조차 두려운 것이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음을 느끼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생기는 시간적 공백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두려움과 싸울 수 없었기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병원에 찾아가기로 마음 먹었다.
며칠 후 그는 마침내 시간을 내어, 7살 때 그 사건 이후, 그나마 왼쪽 눈이 빛을 느끼고 대강의 형체를 보게 해준 안과에 갔다. “어이 김 박사 여기 좀 와서 봐.” 그의 눈을 관찰하던 담당 의사는 저만치 있는 다른 의사를 어린 아이가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한 목소리로 불렀다. “왜 그러는데?” 바빠 보이는 상대방 의사는 귀찮은 듯 물었는데, “이 환자, 원추각막인데.” 라는 말에, “뭐, 원추각막이라고? 어디 봐.” 하고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왔고, 그 소리에 “그래? 어디 나도.” 하며 그 주위에 있던 나머지 의사들 모두 우루루 몰려 들었다. 어린애들 소독차 따라다니듯 병원에 있던 의사들이 모여들어 돋보기 비슷한 이상한 기계로 그의 눈을 번갈아 들여다보며 구경했다. “음, 이게 그 원추각막이라는 거군!” “그래, 나도 실제로는 처음 보는데.” 나중에는 간호사들까지 몰려와서 들여다보았다. 그는 ‘실험용 생쥐에게 감정이 있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한참 동안을 담당 의사를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그에게서 좀 떨어진 곳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윽고 담당 의사가 걱정스런 눈빛을 던지며 그에게 다가 왔다. “원추각막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그는 그것이 병명(病名)인지조차 낯설었다. “그게 뭔데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말 그대로 각막이 원추형(圓錐形)으로 튀어나오는 증상입니다. 그래서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 그리고 왜 제가, 제가 왜 그런 병에 걸렸다는 말씀입니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 ”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아까 느꼈겠지만 흔한 증상이 아니고 ······, 굳이 이유를 말한다면 유전자에 이상이 생긴 거라고나 할까 ······.” 그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유전자의 이상이라면 다운증후군 같은 것 외에는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네? 유전자의 이상이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왜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니까요, 학생.” 의사는 난처한 듯 혹은 답답하다는 듯,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애써 냉정을 찾으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죠?” “그게 ··· 치료 방법이 없다고 할 수밖에 ······ 아,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죠. 다른 사람의 눈을 그러니까, 즉 각막 이식수술을 받으면 되겠죠. 그런데 ··· 그것이 수술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식되는 눈이 학생의 눈과 딱 맞아야 수술도 할 수 있는 거고 ······ 에, 그리고 수술한다고 해도 성공 확률은 50대 50입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는 말을 이전까지는 추상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던 그였다. 그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자리가 꺼지는 느낌에 정신이 아찔했다. 땅 밑으로 떨어지는 그를 깨운 것은 조금은 호들갑스런 의사의 목소리였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실명(失明)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 원추각막을 치료할 수는 없지만, 시력을 찾을 수는 있습니다. 물론 해 봐야 알겠지만 ······.” 이렇게 말하고 의사는 그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에 앉아 무어라 한참을 쓰더니 간호사에게 넘겨 주며 말했다. “일층에 있는 렌즈과에 가 보세요. 학생은 이제 안경으론 시력을 찾을 수 없습니다. 렌즈과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보세요. 그쪽은 제 담당이 아니라 잘 모르지만, 렌즈로 시력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래요. 이쪽에선, 저로선 더 이상 아무 도움을 드릴 수가 없군요. 자 렌즈과로 안내해 드려요.” 담당의사는 불안한 짐 하나를 옆사람에게 넘겨준 사람처럼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자기 책상으로 몸을 돌렸다. 멍하니 있던 그는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간호사의 뒤를 따라 일층으로 내려갔다. 간호사로부터 카드를 건네 받은 의사는 그 카드를 한참을 본 후, 다시 시력 측정을 했다. 오른쪽 눈만을 매우 신중하고 세심하게 진찰했다. “원추각막이 틀림없군요. 음 ‧‧‧ ” 의사는 팔짱을 끼고, 그 행동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얼마나 불안하게 하는지 모른 채, 한 손으로 자신의 입가와 관자놀이를 번갈아 매만지기를 반복하며 그의 앞을 한참을 서성거렸다. 마침내 의사가 입을 열었다. “학생은 특수 렌즈를 껴야 됩니다. 일종의 하드-렌즈죠. 간단히 원리를 설명하면, 학생 오른쪽 눈은 각막이 원추형으로 돌기(突起)가 되기 때문에 하드-렌즈로 각막을 눌러 주어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오세요. 렌즈를 그때까지 만들어 보죠.”
그는 버스가 한강을 건너가기 전 정거장에서 내렸다. 다리 이름이 무엇인지 보지도 않고 발이 닿는 대로 다리에 들어섰다. 수심(水深)을 알 수 없게 탁한 한강은 흐르는 것인지 멈추어 선 것인지 모르게 고요하고, 다만 바람에 따라 수면이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 강물 위로 자신의 지난 날이 보이는 거 같았다.
그가 7살 되던 해의 어느 무덥던 여름날이었다. 그 날 그는 늦은 아침을 먹고 왠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밥을 먹자마자 벌써 데워오는 바깥으로 나가려는 그를 엄마가 만류했지만, 말리는 엄마와 옥신각신하는 과정에서 괜한 고집은 탄력을 받아서 더욱 나가겠다는 맘이 굳어졌고, 결국 그는 승리했다. 오전인데도 그날따라 오후의 무더위 못지 않은 훅하는 더운 바람이 그의 엄마가 걱정하는 먼 곳으로는 갈 엄두가 나지 않게 했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온 그는 곧바로 다시 집으로 들어 갈 수 없는 어린 자존심 때문에, 바로 옆동 아파트로 가서 계단 옆 경사진 잔디밭에 앉았다. 두 팔을 뒤로 해서 땅을 짚고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았다. 해가 구름에 가렸다 나타났다 장난을 하며 약올리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가 지어준 큰 그늘 아래 약간의 바람이 불어 그런 대로 식곤증을 달랠 만했다. 그 때 그가 있는 잔디밭 앞을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사내 둘이 각자 한 손에 야구 장갑을 끼고 지나다가 멈추었다. 놀이터에는 그늘이 없어서, 그늘이 있는 적당한 놀이 공간을 찾아 온 듯, 그들은 매우 서툴게 야구공으로 주고받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지만, 그가 있는 잔디밭 경계선 앞에서 놀이를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멀리서 보면, 그를 가운데 두고 놀이를 하는 형국이었다. 처음엔 어린 그가 보기에 충분히 신기하고 재미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어린 그의 눈에 보기에도 그들의 솜씨는 형편없어 보였다. 그는 곧 싫증이 나 버려, 그의 시선은 하늘, 잔디들 틈에 나 있는 클로버,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로 분산되었다. “꼬마야, 저쪽으로 가라. 거기에 있다가 다친다.” 공을 자주 빠뜨리는 형이, 잘 못하는 자신을 누군가 쳐다보는 게 쑥스러웠는지 갑자기 소리쳤다. ‘웃기고 있네. 자기네들이 뭐라고. 되게 못하면서. 내가 지들처럼 크면 훨씬 잘할 수 있겠다. 메롱.’ 그는 차마 큰 소리로 말하지는 못했지만, 무언의 항변을 하며 꼼짝 않고 있었다. “아, 고 녀석 말 되게 안 듣네.” “야,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하자구. 공이나 받어.” 이번엔 자주 상대방이 잡지 못하게 던지는 덩치 좋은 형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주고받기를 계속했다. 그도 이제는 지겨워져서 ‘집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움츠러 들며 눈물이 나도록 하품을 하다 눈물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는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졌다. 갑자기 눈에 무언가가 날아와 때렸다. 그는 하늘에 숨바꼭질하던 해도 구름도 볼 수 없었다. 곧 이어 누군가에 의해 그는 다시 땅을 보게 되었지만 클로버는 보이지 않았고 공중에 들려 어디론가 떠 갔다.
“이거 몇 개?” “두 개.” “이건 몇 개?” “네 개.” ······ “다행입니다.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글쎄 엄마 말 안 듣고 나가더니 ··· 간 떨어질 뻔했잖아. 이 녀석아.” 그는 집을 묻던 질문에 무어라 대답을 하고, 본의 아니게 그에게 공을 던진 형에 의해 집에 업혀 갔다. 놀란 그의 부모와 병원을 찾아 헤매다녔지만,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은 터였다. 그러다가 유일하게 열려 있던 산부인과 병원의 여의사에게서 ‘손가락 물음’ 진찰을 받고는 안심하고 집으로 갔다.
부은 눈이 조금 아프긴 했지만, 다음 날부터 그는 다시 적당한 개구쟁이로 돌아갔다. 눈의 붓기가 다 빠지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아. 잠깐만.”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 놀다가 눈에 티가 들어가 오른쪽 눈을 비비던 순간 그는 자신의 눈앞에 누가 까만 색 도화지를 들여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손을 떼고 난 그의 앞엔, 무슨 일인가 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맑은 눈망울만 보였다. 다시 오른쪽 눈을 가려 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겁이 난 그는 ‘엄마’를 부르며 집으로 뛰었다.
“2. 0. 다음, 오른쪽 눈 가리고. 자, 이거.” “안 보여요.” “이건?” “안 보여요.” “그럼 이건?” ······ “막대기가 안 보이는데요.” “뭐?” 와하하 웃는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 신체검사 때마다 그는 시력 검사만은 피하고 싶었다. 시력이 좋지 못한 친구들의 경우, 미리 검사판의 작은 글씨들을 외우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고, 그것이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어디를 가리키는지 그 지시봉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야, 쟤는 한쪽 눈은 ‘2.0’ 인데 한쪽 눈은 ‘0.0’이래. 완전히 600만불의 사나이다.” “그래 맞어. 600만불의 사나이.” 와하하하하히히흐흐
고요한 강물 위로 작은 동그라미를 그려 놓았다. 잘 보이지 않는 그의 눈에서 나오는 방울들이 만들어 내는 작은 동그라미들, 그의 눈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흐느낌 없이 자꾸만 흐르는 눈물이 만들어내는 동그라미, 동그라미 그리고 파문 ······ 느낄 수는 있었다.
주일에 미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오는 그를, 안부를 묻는 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친구가 다짜고짜 물었다. “너 소식 들었니?” “뭐 말이야?” “재윤이 형 소식 말이야.” “아, 재윤이 형! 얼마 전에 취직했다는 소식 들었어. 나보고 첫월급 타면 한 잔 산다고 그랬지.” “모르고 있구나 ······ ” “무슨 소리야? 왜? 뭔 일 있어? 결혼이라도 한대?” “그게 아니구. 그 형이 ··· 재윤이 형이 그저께 오토바이 타고 가다 사고가 나서 그만 ··· 그만 죽었어. 술을 조금 마셨대나 봐.” “뭐, 지금 뭐라고 그랬어? 재윤이 형이 죽었다고? 지금 그렇게 얘기한 거야? 맞아?” “··· 그래.”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제 겨우 병 고치고, 이제 좀 잘 살겠다 했더니 죽었다고? 그것도 술 먹고 오토바이 타다가?”
재윤은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결핵을 앓아 그 길을 포기해야 했던, 그런데 십 수년의 고된 투병 생활 끝에 주위 사람들을 기쁘고 또 놀라게 하며 완쾌된 사람이었다. 지난 주 그와 마주쳤을 때는 건강해진 모습으로 얼굴엔 밝은 웃음을 띤 채, ‘술 한잔 사겠다’고 했었다. 그 형이 사주는 술은 그 누구의 술보다 맛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형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 오랜 세월 병마와 싸워 이긴 바로 그 형이 이렇게 가다니······.’ 그는 재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이면 잘살아 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을······?’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듣는 강의는 그의 귀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다. 그날도 강의를 들었다기보다는 멍한 기분으로 강의실에 앉아 있다가 나와서는 발이 이끄는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야, 임마!” 그의 어깨를 누군가 툭 치며 그를 불렀다. “어, 안녕하세요? 형!” “형님 보고 인사도 안 하고 말이야. 형님이 먼저 알은 체해야 되냐?” 선배의 얼굴엔 말의 내용과 목소리와는 달리 반가움의 표정이 그득했다. “죄송해요. 그게 ······.”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 선배는 곧 그의 얼굴에서 어둠을 발견하고 따뜻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 무슨 일 있구나? 그렇지?” “아니예요. 그냥 좀 ······.” “임마, 얼굴에 써 있다. ‘나 뭔 일 있음!’ 하고 말이다. 무슨 일이야? 말해 봐.” 그 선배는 정이 많아 후배들 사이에서 정말 ‘좋은 선배’로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 선배 앞이라, 숨김없이 그러나 주저리주저리 말하진 않고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듣고 있던 선배가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내가 너에게 그 동안 좀 무심했구나. 그래 렌즈를 끼면 정상적으로 볼 수 있는 거니?”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떡하냐?” 선배의 눈빛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좀 도와 줄 거 없겠니?” “도와 주실 거요? 도와 주실 거 있죠. 그런데 ······ ” “뭔데? 말해봐 괜찮아.” “말씀드리기 좀 뭐하지만, 사실 지금 제가 기말고사 앞뒤로 제출해야 될 리포트가 8개 있어요. 그동안 책을 볼 수가 없어서 리포트가 밀리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그래, 내가 도와 줄 일이 뭔지 알았다. 그 정도야 이 형이 도와 줄 수 있지. 그래 어떤 걸 해 줄까?” 그는 쑥스럽고 고마운 마음으로 교양과목 과제 두 개를 선배에게 부탁했다. 선배는 자신의 과제도 많았지만 더 달라고 졸랐고, 그는 선배를 말리다시피 해서 두 개만 부탁했다.
그가 렌즈를 찾으러 갈 날이 되었다.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몇 일 새로 그는 친구들과 선배들에게 과제를 거의 다 빼앗기고 말았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렌즈 찾으러 가는 날짜가 훨씬 지나서도 그의 성격상 병원에 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른 아침 병원으로 빨리 달려 가고 싶었지만, 오전 수업이 있어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 가기로 했다. 그가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싶었던 학과가 철학이었는데, 마침 이번 학기에 그가 존경하는 교수의 수업이 개설되었다. 타전공의 전공 필수 과목을 비전공자가 듣는 것이 무리다 싶기도 했지만, 청강이 아니라 정식으로 수강신청을 하여 듣고 있었다. 다른 수업이라면 혹시 몰라도 그 수업만큼은 빠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업 내내 오만 가지 인상을 다 찌푸리며 바라보아도 잘 보이지 않던 칠판도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잘 보이겠지?’ 하는 희망과 ‘과연 그럴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그의 머리에서 왔다갔다 하는 통에, ‘차라리 그냥 병원에 갈 걸’ 하는 후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술가나 일반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겠만 특히 철학자의 경우 요절한 사람은 그 사람의 철학이 어떻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적어도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는 50세까지는 살다 간 사람이라야 그 사람의 철학 운운(云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의 경우도, 그 사람의 철학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역시 그 사람의 철학에 대해 단정 짓기 힘듭니다. 문학의 경우도--내가 전공자는 아니지만--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요절한 철학자에 대한 강의 중에 이어진 이야기가 알 듯 모를 듯, 그를 심각하게 만들고 말았다.
“어떻게 생각하니? 교수님 말씀 말야.” 그는 수업이 끝나고 바로 병원에 달려가지 않고, 그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에게 물었다. “글쎄, 난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데.” 무엇을 묻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아듣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작지만은 않은 행복 중 하나이다. “어떻게?”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이 아닐까?” “······?” “우리는 보통 천재적 작가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 어떤 생각이 들지?” “음, 그 사람이 조금 더 살았으면 더 좋은, 더 훌륭한 작품을 남겼을 거라고 하며 아쉬워하겠지. 물론 작가뿐만 아니라 발명가, 예술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 더구나 그 사람의 업적이 크면 클수록 더욱 더 世人들의 그에 대한 아쉬음은 클 테고 말이야.” “맞아. 그런데 정말 그래야 하는 걸까? 그 사람에 대한 아쉬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우리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50세의 나이를 넘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없는 것일까?” “······” “예를 하나 들어 볼까? 음악의 천재 모짜르트의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이 요절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의 음악에 대해 평가할 수 없는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모짜르트의 경우만 해도 그에 대한 평가와 비평은 많잖아. 영화도 나왔고.” “그건 그 사람이 워낙 천재니까 그런 거 아냐? 짧은 그 삶 속에서도 남보다 뛰어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천재성 말야. 그러니까 그런 얘기는 꼭 천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천재의 요절만이 평가 받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이른 죽음은 별로 평가 받지 못하는 거 말야. 천재는 ‘천재니까’라는 말로 교수님의 명제에 대한 예외 조항이 되고, 평범한 사람에게만 그 명제가 해당되는 거 아니냐구? 그러나 우리네 인간들은 천재보다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 아니 실제적인 천재는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물론 그래.” 친구의 동조를 보고 그는 더욱 힘을 내어 계속했다. “천재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과 또 엄청난 노력으로 -- 때로는 그런, 자신을 사리지 않는 열정으로 인해 자신의 수명을 스스로 단축시키며 -- 이미 자신의 죽음을 맞기 전에 자신의 몫을 다하고 죽을 수 있는 거지. 그러나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무슨 말이지?” “천재는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자기 분야에서 어떤 업적을 남긴 사람은 그것에 해당되는 마땅한 평가를 받아야 되겠지.” “그러면, 별로 평가 받을 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사람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냐 말이야?” “그것 역시 그 사람의 몫 아닐까?” “그 사람의 몫?“ “응.” “그 사람의 몫, 그 사람의 몫 ······”
‘그 사람의 몫’이란 말이 화두(話頭)처럼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몫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재윤의 삶과 죽음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병원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어떻게 왔느지 모르게 그는 어느새 병원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따라서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러나 절대적 시간의 양이 상대적인 양과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무한히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들이 끝났다. 그는 권투 선수가 자신의 시합의 판정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의사의 입술만 쳐다 보았다. ‘시합? ······ 누구와의? ······?’ 그가 연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의미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을 때,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자리에 앉힌 후 작고 투명한 조각을 그의 눈에 넣어 주었다. 마치 마취 안한 상태로 수술하는 듯한 심정으로 의사의 손에 그는 자신의 눈을 맡겼다. 처음에 그는 심한 이물감에 눈을 잘 뜨지 못했다. 여자들이 몹시도 비극적인 영화를 보며 흘리는 만큼의 눈물을, 단지 물리적인 자극으로 인해 흘리면서 초점을 맞추었다. 눈물을 가득한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몰아내고 세상을 바라 보았다. 그러자 뿌옇던 세상을 싸고 있던 안개가 걷혔다. 렌즈를 넣어준 의사의 손도, 예쁜지 주근깨 투성의 얼굴인지 알 수 없던 간호사의 얼굴이 순간 놀라울 정도로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선명한 시야에 어색함을 느끼고 있는 그에게 의사는 잘 보이냐고 했다. “내 보여요, 너무나 잘 보입니다. 세상이 이런 모습인지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나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행입니다. 렌즈를 낀 상태에서 시력을 재 볼까요?” 의사는 그와는 달리 담담하게 예전에 그를 진찰한 기계로 시력을 쟀다. ‘1.2!’ 장님에 가깝던 눈이 정상의 시력을 넘어서, 오히려 아주 좋은 눈을 가진 사람의 시력과 같아졌다는 사실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을 세상이 그에겐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졌다. 그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그 동안 못 보았던 세상을 조금은 감상하고 가야할 것 같았다. 들 뜬 마음에, 한 번도 타 보지 않은 버스를 아무 주저함 없이 탔다. 버스 안엔 빈자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호기심과 ‘어디든지 좋다’는 배짱이 그의 안에서 귀엽게 다투고 있었다. 그는 지나다니는 한 사람 한 사람들이 어제와는 달리, ‘행인1’ ‘행인2’ 하는 엑스트라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모두가 저마다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생기가 있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의 시력을 찾은 것을 축하해주는 사람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아무도 그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책인지 흔들리는 차안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독서 중인 대학생, 목적지를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차창에 계속 머리를 부딪히며 잠자는 할아버지, 호시탐탐 빈자리를 노리는 아줌마, 이 사람 저 사람 흘끔 흘끔 쳐다보는 아저씨, 차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는 아가씨 ······, 버스 안의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참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음에 그는 새삼 감탄했다. 얼마 가지 않아, 노약자석이 아닌 곳에 자리가 났다. 그곳을 향해 질주하는 아줌마가 없음을 학인한 그는 그를 위한 자리에 감사해 하며 자리에 앉아 눈을 감았다. 하루 종일 늦추지 않았던 긴장이 갑자기 풀어져서인지, 그는 창밖을 보다가 시나브로 잠이 들었다. 갑자기 버스의 속력이 늦추어지면서 깊이 잠들지 않은 그의 눈이 떠졌다. 아직 종점까지는 멀었는지 버스 안에는 사람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그는 차창을 내다 보았다. 숲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초록 내음 나지 않는, 높이높이 솟은 빌딩들의 숲이었다. 그는 그 중에서도 더 높이 솟아 있는 빌딩의 꼭대기를 쳐다보다가, 머리 위에 붙어 있는 버스 노선도를 보았다. 문득 ‘이 버스는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궁금함에 노선을 훑어보다가, 낯선 정거장 이름들 사이로 그가 아는 고궁(古宮)의 이름이 보였다. 순간 다음 정거장을 알리는 안내 목소리에서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의 정거장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떤 힘에 이끌리듯 그곳에 내렸다.
평일이라 한가했고, 그 한가함이 그는 마음에 들었다. 팔짱을 끼고 다정히 걷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눈에 띠는 법이다. 그는 햇살보다 더 싱그럽게 웃으며 지나가는 연인들을 눈으로 좇으며,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다가, 중학교 학생들로 보이는 무리들이 시끄럽게 지나가는 행렬에 그의 시선이 부딪혔다. ‘아직도 이런 고궁으로 소풍 오는 학교도 있구나!’ 그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음을 흘렸다. 몇 십 년 전에 소풍을 이곳으로 왔던 노인네의 한숨처럼 내뱉은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던 것이다. 그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들은 전체 프로그램을 끝내고 반별 모임을 갖기 위해 자리를 잡는 길이었다. 곧 장기 자랑을 하는지 노래를 시키고 부르고 하는 모습도 보이고, 딴 놈이 뭐라 하든 뭔 짓을 하든 제 입으로 열심히 무언가를 계속 집어넣고 있는 녀석도 보인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빙그레 나오는 웃음. 이번엔 더 늙은 할아버지의 미소 같다. 자기의 장기를 드러내는 것이 쑥스러운지 자주 공백이 생겼다. 그러자 한 학생이 자청해서 일어나 노래를 불렀다. 분명히 원래 잔잔한 발라드 곡인데 헤비-메탈로 의도하지 않은 편곡을 해서 부르는 녀석의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이 그에겐 귀엽게 느껴졌다. 그는 또 다른 풍경을 구경하려고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나무에 기대어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학생을 발견했다. 멀리서 보기에 그 학생의 손놀림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린애 같은 호기심에 이끌려 그는 그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는 혹시 자신이 방해가 될까 하는 생각에, 그 학생과 제법 가까워졌을 때는 숨소리도 조심스레 내며 다가갔다. 나무 뒤로 가서 그 학생의 무릎에 놓인 그 ‘무언가’를 보았다.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건 그림을 그리는 스케치북도, 문학 소년의 습작 노트도 아니었다. 그 학생은 옆에 수학책을 펴 놓고는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연습장에는 도형도 그려져 있었고, 문제 풀이도 잔뜩 옆에다 해 놓았다. 얼마 후엔 답을 맞춰 보았는지 제 머리를 쥐어 박으며 자학(?)을 했다. 그는 조심조심 뒤로 물러 나왔다. 뒤에서 누가 자기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다 가는 것도 모른 채 열심인 그 학생의 집중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그를 실망시킨 학생의 뒷모습에 그는 왠지 모를 한숨이 나왔다. 제 친구들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서는, 자신의 억누를 길 없고, 떨쳐 버리지 못하는 감성을 그림으로든 글로든 표현하고 있을 학생을 그는 기대했었던 것이다. 그 때, 서투른 그러나 그의 귀를 끄는 기타 소리가 들렸다. 아까 장기자랑 하던 바로 그 반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다시 그곳으로 가서 기타를 치는 학생을 자세히 보니, 헤비-메탈 하던 바로 그 학생이었다. 비록 코드 변화할 때 징징 소리도 내고 박자도 때로 놓치긴 하지만, 제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분명 영웅 같은 존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별로 덥지 않은 날씨에도 흘리는 그의 땀방울이 아름답게 보였다.
초록에 초록을 더해만 가는 나뭇가지. 그 사이로 부서지는 금빛 햇살들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그 빛방울을 맞으며 그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버스들이 지나간다. 많은 버스들이 지나가고 낯익은 버스가 저만치에서 오고 있는 것이 그의 눈에 확실히 보였다. 그는 버스를 향해 자신 있게, 그리고 힘차게 뛰었다. 이제 그는 다른 사람에게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었다.
***
에필로그
신앙심도 두텁고 또 매우 착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든지 각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열심히 살던 그였지만, 어느날인가부터 자신의 십자가가 너무 무겁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저에게 주신 십자가가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주신 십자가가 제게는 너무나 무거운 것입니다.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제 능력으로 충분히 질 수 있는 십자가를 주소서. 그렇다면 기꺼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십자가를 지겠나이다. 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은 신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 사랑하는 나의 양아, 너의 기도를 들어주마.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십자가를 너에게 보여 주마.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십자가를 골라 그것을 네가 지도록 하여라 --- ‘오, 주여 감사하나이다. 감사합니다.’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의 십자가를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하나 추려 나갔습니다. 고르고 또 골라 마침내 하나의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이 정도의 크기와 무게라면 정말 기꺼이 질 수 있고 충분히 질 만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십자가를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마음에 드느냐? --- ‘예, 이 정도라면 저의 미약한 힘으로도 충분히 질 수 있겠나이다.’ --- 그래. 이제부터는 너의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도록 하여라 ---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고 난 그는 도대체 이렇게 가볍고 예쁜 십자가의 주인이 과연 누구였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뒤에 적힌 이름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 십자가 주인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엔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 2006. 송 원 호 *월간모던포엠 소설부분 신인상 수상작
■ 월간모던포엠 소설부분 신인상 수상 당선소감
대학에서 현대시선독이란 과목을 들을 때의 일이다.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어느 시인의 작품일 것 같은가?’라고 물으셨다. 그 교수님께서는 평론, 시, 소설 3개 부분을 모두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분이셨기에, 나의 동경의 대상이며, 은사님이셨다. 그분의 석박사 및 기타 발표 논문에서 다루신 시인과, 수업 시간에 자주 언급하신 시인들을 기억하며, 우리는 많은 시인의 이름을 외쳤다. 지용, 소월, 미당, 만해, 지훈 ...... 이곳저곳에서 시인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시는 듯, 하지만 어떻게 보면 끄덕이시는 듯도 했다. 한참의 소란이 흐른 후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가장 좋아하시는 시인이 누구세요?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내 작품이야. 그러나 가장 부끄러운 작품들이기도 하지.” 나 역시, 가장 아끼면서 가장 부끄러운 것이 나의 글들이다. 천상병 시인이 말한 바, ‘가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글을 쓰며 바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내 글을 읽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난 틈틈이 글을 써왔다. 오늘은 내 남은 날의 첫날이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부끄럽지 않게 진심을 담아 글을 써왔다.
나는 그 길을 가기로 결정했고, 앞으로도 난 그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이다. 부족한 글을 잘 읽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작년에 고인이 되신 어머님께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 2006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송원호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