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제가 이웃님의 글에 이런 답글을 달았습니다.
"***님의 손톱 하나에도 온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뜬금없는 말 같습니다. 별로 과학적이지도 않고요. 지리산에 사는 도사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는 진짜 막연하고 추상적인 말에 불과할까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런 걸 생각해보죠.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슬하에 자식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자식은 누가 만들었나요?
틀림없이 나와 배우자 둘이서 만들었다고 하실 겁니다.
제가 다시 묻겠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의 머리카락을 만들어 보세요. 손톱을 만들어 보세요. 만드실 줄 아세요?
.......
참 신기합니다.
아주 간단한 아이의 머리카락, 손톱 하나도 만들 줄 모르면서 우리는 내가 내 아이를 만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생각이나 말은 진실을 반영하기 힘듭니다.
말이나 생각이 어떤 틀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손톱을 이야기하려면 케라틴이나 섬유단백질, 유전자, 중금속 함유량, 진화의 역사가 어떠니 하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을 해야 하니까
그보다 훨씬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청바지를 놓고 이야기해보죠.
지금 제 방에 국산 청바지와 청바지에 달린 단추(쇠로 만들었다고 치고요^^)가 있습니다.
청바지와 단추가 지금 제 방에 있기까지 몇 사람의 힘이 필요했을까요? 10명? 100명? 아니면 300명?
아마도 우리는 청바지 만드는 공장 노동자들이나 이 옷을 우리 집까지 운반한 택배기사들만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청바지의 단추를 만들기 위해서는 쇠가 있어야 합니다. 쇠는 위와 같은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여 뽑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용광로를 뜨겁게 달구려면 석탄 비슷한 코크스가 있어야 합니다. 코크스는 누가 캐냈고, 누가 가져왔을까요?
포항제철소는 또 누가 어떻게 하여 세우게 되었을까요?
저 거대한 용광로를 움직이려면 전기가 있어야 합니다. 전기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전기는 누가 처음 발견했을까요?
그리고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보석의 일종인 호박(琥珀)입니다. 5천만 년 전쯤, 소나무나 전나무에서 나온 송진이 단단하게 굳어서 된 것입니다.
기원전 7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전기의 일종인 정전기 현상에 대한 기록을 남긴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는 호박을 문지르면 가벼운 물건들을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는 걸 알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호박을 당시 그리스에서는 elektron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어로 전기는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라고 하는데
바로 이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보석인 호박을 가리키는 elektron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전기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이용하기 위해선 영국의 의학자 길버트,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뮈센브뢰크,
프랑스의 쿨롱, 독일의 리히텐베르크, 이탈리아의 볼타, 독일의 물리학자 옴,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페르,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와트 등 수많은 학자와 기술자의 노력, 과학의 발전이 있어야 했습니다.
쇠의 재료가 되는 철광석은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는 철광석을 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수입하여 씁니다.
위 사진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철광석 광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철광석을 한국까지 운반해오기 위해선 위 사진과 같은 거대한 배가 필요합니다.
대체 이런 배를 만들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연구와 실험과 경험과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인류는 처음부터 철을 사용할 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나무나 돌 등으로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알게 된 뒤로도 긴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으로부터 3천800년 전쯤, 지금의 터키 지방에 살던 히타이트족이 철을 만들어
칼 같은 도구를 만드는 법을 알아냅니다. 히타이트족은 인류에게 철기문명 시대를 선물한 것이죠.
위 유물은 히타이트족이 철로 만든 단검입니다.
지금까지 청바지에 달린 단추의 재료인 쇠에 대해서 아주, 아주 간단히 살펴봤습니다만
정작 청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네요^^
처음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했던 백인들은 1850년대가 되어 금을 찾으려는 골드러시가 일면서
미국 서부로, 서부로 몰려듭니다. 본격적인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기 시작한 거죠.
서부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곳곳에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천막촌이 세워지며 야단법석이었죠.
리바이 스트라우스
당시 미국의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1829~1902년)는 광부들에게 천막을 만들어 팔며 큰 재미를 봤습니다.
그때 한 군납 브로커가 10만 개가 넘는 대형 천막에 들어갈 천의 납품을 주선해주겠다고 나섭니다.
스트라우스는 몇 달에 걸쳐 이 천을 제작했는데 그만 군납이 막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울화통이 치밀어 술을 마시려고 술집에 간 스트라우스는
거기에서 광부들이 찢어진 바지를 수선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천막을 만드는 질긴 천으로 바지를 만들면 잘 닳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의 아이디어는 적중했습니다. 광부들이 모두 그의 새로운 바지를 찾았으니까요.
나중에 스트라우스는 이 바지의 옷감을 데님(denim)으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푸른색으로 염색했습니다.
그때 라트비아에서 온 이민자인 제이콥 데이비스가 아이디어를 줍니다.
데이비스는 주머니 모서리 등에 금속 못인 리벳을 이용하여 잘 터지지 않는 청바지를 특허 출원하자는 제안을
스트라우스에게 한 거죠.
드디어 오늘날의 청바지가 탄생하여 광부들뿐만 아니라 다른 일반인들도 즐겨 입게 되었습니다.
독일 바이에른 출신의 가난한 청년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니 군납이 뜻대로 이루어지거나 스트라우스가 술집에 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캘리포니아의 금광 이야기도, 스트라우스 이야기도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로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입니다.
이탈리아의 뱃사람이었던 콜럼버스는 유럽의 왕들을 찾아가 서쪽으로 가면 인도로 가는 뱃길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배 등을 지원해달라는 제안을 하지만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콜럼버스의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이었습니다.
위 그림은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의 만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해는 1492년, 이사벨 여왕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져 있던 스페인을 통일한 해였습니다.
이사벨 여왕과 콜럼버스 덕에 신대륙이 발견되었고, 이후 많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청바지는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요?
제가 읽은 자료들을 보면 대부분 6.25 전쟁 무렵, 미군들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대략 이때부터 청바지를 입은 미군이나 한국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청바지가 젊음과 반항과 자유의 상징이 되며 젊은이들이 즐겨 입게 된 배경에는
유명한 영화배우 제임스 딘이 출연한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등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함께 <맨발의 청춘>이란 영화도 한몫을 했고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자본주의가 발전해야 했습니다.
청바지가 유행하며 대량 생산이 이루어져 지금 이 방에 청바지가 있게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가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서양 세력이 동양을 침략하지 않았을 것이고,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위 사진 속 옷과 비슷하거나 여기에서 살짝 유행이 바뀐 옷들을 입고 있을 것입니다.
청바지 대신에요.
결론 삼아 청바지 단추의 재료가 되는 철이나 구리 이야기로 되돌아 가보겠습니다.
철이나 구리는 어떻게 하여 만들어졌을까요?
태양보다 큰 별은 연료를 태우며 빛을 내다가 마지막 순간이 되면 위 그림처럼 초신성 대폭발을 일으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정말 드라마틱한 사건이죠.
별이 탄생하여 연료를 태우며 빛을 내고, 마지막에 초신성 대폭발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별은 수소와 같은 간단한 원소들을 철, 구리 등 갖가지 물질로 바꿔서 우주 공간에 뿌립니다.
이렇게 우주에 뿌려진 물질들이 모여서 지구가 되었습니다.
즉 청바지 단추의 재료가 되는 철이나 구리는 초신성 대폭발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결국 청바지와 단추 이야기는 초신성 대폭발과 초신성을 만든 우주로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티끌 하나에 온 우주가 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손톱이라고 청바지의 단추와 다를까요?
손톱 하나에도 온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