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산과 필경재 그리고 수서동성당
나는 지금 할미산을 걷고 있다.
할미산은 핏줄처럼 얽힌 작은 길이 많다. 등산객들로 북적거리는 둘레길도 있고,
거미줄이 몸에 닿는 것을 걷어내며 걸어야 하는 은밀한 장소도 있다.
나는 나만의 작은 공간에서 때론, <물놀이> <새소리> <El conder pasa>를
오카리나로 불어대기도 한다. 마누라가 듣기 싫다고 집에서 못 불게하기 때문이다.
할미산은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걸을 수 있는 남산보다 조금 높은 산이다.
어미 품 같은 산. 태종 헌릉이 인근 내곡동에 자리 잡으면서 할미산은 대모산(大母山)으로
업 그래이드된다. 이른 새벽녘에 샛길따라 걸을 때, 불쑥불쑥 산적처럼 나타나는 등산객을 만날
때는 가끔 놀래기도 한다.
국수봉으로 불렸던 높이 293미터(남산보다 조금 높은)의 산모양은 여승의 앉은 모습과 같다는
설과 여자의 앞가슴과 같다고 하여 대모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구룡산과 이어진 어미품 같은 대모산은 그래서인가 샘물이 많다.
샘물은 맑고 차고 부드럽고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최고의 물은 탈이 없는 물이기도 하다.
옛약수터1.2, 실로암약수터, 쌍봉약수터, 개암약수터,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성지약수터이다.
대모산에는 약 18군데의 젓줄 같은 샘터가 있다. 그리고 불국사라고 하는 절의 샘물도 맛이 좋다.
우리 국문과 동기생들은 산을 즐겼다. 코로나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매년 해외의 산들을 다녔다.
백두산 종주, 일본 호다카다케 봉, 그리고 H.K의 Dragon's Back( 유네스코 지정 트레킹 코스)를 걸었다.
토테이완에서 Bag wave Bay까지 8,5 km 길을 4시간에 걷기도 했다.
지난 금요일엔 동기생 8명이 대모산 둘레길을 걸었다. 매달 양재천이나 뚝섬 강변을 산책하곤 했으나
山이라고 이름이 붙은 곳은 코로나이후 처음이다. 수서역에서 올라서 로봇 고등학교로 내려오는 길을
2시간반이나 걸려 내려왔다. 예전에는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그렇게 용을 쓰고 걸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수서동성당>은 지하철 3호선 수서역과 일원역 그 사이에 있다.
<수서동성당>은 1992년 9월24일 주보성인<예수 마리아 요셉 聖가정>으로 설립되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떨어지는 빛이 예쁘기도하지만 공간의 개방성 그리고 가로 경관과 같은 공공적
영역을 존중한 건축물로서, 바라볼 때마다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아들의 결혼식도 <수서동성당>에서 했다. 내게 손주를 두명이나 안겨주었으니 효도는 물론
애국자라고 할 수 있다.
성당의 현관이 위치한 메인 파사드(건축물의 얼굴)는 오른쪽에 높은 종탑을 세운 로마네스크 고딕양식
그리고 사제관이 내부로 연결되어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아주 큰 성당이다.
<수서동성당>의 마당과 잇대어서 조선시대 전통가옥인 <필경재>와 광평대군 후손들의 무덤이 있다.
한국의 조선시대 전통가옥 <필경재>와 15,6세기 유럽 스타일의 성당이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어울린다.
종교건축으로서 갖는 의미를 넘어 공간에 대한 표현력과 예리한 눈썰미를 보여준 건축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필경재>는 광평대군 후손으로 11대 종손이 관리하고 있다. 지금은 궁중음식의 맥을 이어가는
고급 식당으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도시 서울 강남에서 조선시대와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고,
그 향수에 취할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이다.
우리는 있을 때 있는 것의 소중함을 종종 잊고 산다.
<심유첩/心有睫>이라던가......마음속에 눈썹이 있다는 말이다.
눈(眼)은 제 눈썹을 못보지만 마음은 제 눈썹을 본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아야 소중한 것을 잃지 않게 된다.
하루하루의 나날들이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시시하고 하찮은 것들로 가득차 있다.
또 그 하찮은 것들이 때론 밤잠을 설치게도 하고, 늘 우리를 짓누르고 몽롱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떠난 뒤에 통곡할 필요가 없다.
바람이 불거나 날이 저무는 일도 매일 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다.
숲 사이로 언듯언듯 비치는 하찮은(?) 햇빛이 따사롭다.
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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