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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시죠? 세계적인 행사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이 지난 3월 4일부터 시작됐네요.
음, 국제적인 행사라고 해도, 복잡한 국내외 정세로 인해 주목도가 실시간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요.
어디서 전쟁 터졌지, 어디서는 화재 크게 났지, 누구네는 대통령 선거를 한다지.
참으로 복작복작합니다. 그래서 이해는 돼요.
사실 이번 추천은 좀 기획적이고 의도적입니다. 그 목적은 이거죠, 패럴림픽 하고 있다!
네, 뭔가 이렇게라도 안 하면 이 특별한 이슈가 묻힐 듯한 괜한 위기감이 들어서요. 예민한 초식 동물의 영혼이 빙의된 모양.
여하튼, 그래서 이번에 독서 후 추천할 책은 장애인 스포츠에 관한 내용을 담은 소설입니다. 동계 스포츠가 아닌 하계 스포츠지만요.
도서명: 날개가 없어도
저자: 나카야마 시치리
* 이 책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도서관 아이프리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일본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몇 있다. 일단 주로 서평을 썼던 <속죄의 소나타>, <추억의 야상곡>, <은수의 레퀴엠>, <악덕의 윤무곡>으로 이어지는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가 있고,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히포크라테스 우울>로 이어지는 우라와 의대 법의학 시리즈가 있다. 덧붙여 후자는 2편밖에 본 적 없어서 3편은 없는 건가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에 독서한 작품 《날개가 없어도》는 위의 소개한 작품과는 약간 테마가 다르다. 추리물이긴 한데, 그 초점이 좀 다르다고 할까?
사진 설명: 패럴림픽의 상징 ‘아지토스(agitos)’. 홍색과 청색, 그리고 녹색의 초승달이 겹친 문양이다. 라틴어인데, 그 의미를 풀이하면 “나는 움직인다!”
- 평창 동계패럴림픽 마스코트 반달가슴곰 ‘반다비’의 모자가 아지토스를 모티브로 삼은 거다.
사실 이 책은 나온 지 좀 됐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 파일을 다운만 받아두었는데, 그러다 시간에 쫓겨서 보관만 해둔 잒품이었다. 그러다 최근 스포츠 선수와 인터뷰를 하면서 《날개가 없어도》가 떠올랐다. 그 선수는 지난 2월에 개최된 전국동계체전에서 장애인 노르딕스키 부문 시각장애인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에슬론에서 금메달 4관왕에 올랐고, 최우수 선수 MVP로 뽑히기도 했다. 비록 이번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참가 선수는 아니지만, 언제고 자신도 그 무대에 서길 꿈꾸면서 선배 선수들을 진지하게 응원할 거라고 했었다. 차분한 목소리인데, 은연중 어린 티가 나서, 풋풋하다는 인상이 들었더랬다.
얼른 기사 마감 치고 나서부터 이 책 《날개가 없어도》를 읽기 시작했고 말이다. 참고로 완독하는 데 3일 걸렸다.
사진 설명: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트럭. 더 설명이 필요하랴. 색깔도 무난하게 하얀색이다.
- 예전에 퇴근길 건널목에서 트럭에 치이고 바퀴와 노면 사이에 내 오른발이 끼이는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내가 무단 보행한 건 아니고, 운전자 과실이 좀 있었다. 무분별한 플래카드로 인해 운전자 시야 확보가 원활하지 않았기도 했다.
다행히 당시 튼튼한 워커를 신고 있어서 내 오른발은 무사했다. 워커 밑창 부분 뒤꿈치가 갈라지는, 정말 아슬아슬한 선에서 그쳤는데, 신발은 좋은 거 사고 볼 일이다. 아니면, 내 오른쪽 발꿈치가 대신 갈려나갔을 테니까.
작품 내에서 주인공이 당한 사고 대목을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나더라.
불행과 사고는 모든 게 완벽할 때 찾아온다 - 《날개가 없어도》 Starting Point!
“목격자에 의하면 라이트밴이 돌진해서 환자분의 왼쪽 다리가 가로등과 담장 사이에 낀 채로 압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왼쪽 무릎 아래가 개방성 복합골절 부상을 입었습니다.”
스프린터 단거리 육상 선수였다. 실업팀에 소속되어 있었고, 올림픽 출전과 메달도 꿈꿀 수 있는, 미래가 촉망받는 인재였다. 소설의 주인공 사라는 그랬다.
여기서 내공 깊은 독자라면 눈치챘을 수도 있겠다. 내가 죄다 과거형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니, 위에 발췌한 대사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에게 닥친 불운을.
사라는 교통 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었다. 동시에 스프린터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고, 메달리스트의 꿈이 소실됐다. 삶의 목적을 잃었다. 기막힌 건 사고를 낸 당사자가 지금은 소원해졌다고는 하나, 한때 친하게 지냈던 소꿉친구 다이스케였고, 그 녀석이 바로 옆집에 산다는 점이었다.
뭘까, 이 미친 설정은.
책을 보다가 잠시 멈추고 숨 한 번 들이키게 만든 대목이었다. 당연히 사라는 분노한다. 다이스케를 원망하고 저주도 한다. 자격도 없는 무면허, 졸음운전으로 일어난 사고,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는 태도를 보면 자연스레 ‘최소한의 도덕심도 없는 이 인간은 뭐지?’ 하는 심경이 되는 게 지당하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 다이스케가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되며 사건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 및 상해피해에서 살인사건 및 피해자 국면으로 전환된다. 은둔형 외토리였던 다이스케, 방은 2층, 창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방에는 발자국 등 침입한 흔적이 있었다. 흉기는 칼로 추정되며 방이나 집 근처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에 나선 이누카이 형사는 원한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두고 수사하고, 그 과정에서 옆집에 살며 최근 피해자와 가해자로 악연을 맺은 사라 내지는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의혹을 품는데......
사진 설명: 2022년 3월 4일,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개막식의 한 장면. 우리나라 대표팀이 입장하고 있다. 6개 종목에 32명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 방송 해설에 의하면, 전쟁 촉발국 러시아와 그에 동조한 벨라루스가 회원국들의 제제 요구를 받아들인 국제패럴림픽조직위원회 IPC의 결정으로 퇴출당해 우리나라는 35번째로 입장한 듯하다.
TV 시청하며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입수했다. 찍기는 아빠가 찍었다.
요새 대통령 선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국내외 이슈로 까맣게 묻히는 듯한 ‘패럴림픽’을 잊지 말자!
《날개가 없어도》 - 장애인 고용과 장애인 스포츠의 현주소를 보다 On Your Marks!
“You're not disabled by the disabilities you have, you are able by the abilities you have(장애 때문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 때문에 가능해진다).”
하루아침에 꿈이 박살나고, 인생 궤도가 비틀렸으며, 장애인이 되었어도 사라는 살아가야 했다. 절망했다고 죽을 수는 없는 일이고, 하물며 사라에게는 ‘그래도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하지만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이 된 삶은 예전과는 달랐다. 육상 실업팀에서는 탈퇴하게 됐지만, 취직이 취소된 건 아니었다. 일단 장애인이 됐다고 해고하면 세간의 눈초리가 곱지 않을 것이며 언론도 그 건수를 물고 늘어질 테니 말이다. 대신 사내 홍보팀으로 보직을 옮기는 건 불가피했다. 그러나 장애인이 된 사라에게 사회는, 아니 직장이란 조직은 냉정했다. 거의 뭐, 은따 비슷한 레벨로 압박하더만.
차라리 대놓고 퇴사 권고하는 게 낫지, 스스로 퇴사하게끔 유도하는 꼴이 참 치졸하기 짝이 없었다. 남의 일, 남의 사회의 단면이 아니라 더욱 분개하며 읽었다.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일 공산도 높으니까.
‘장애인 고용 의무 제도’라는 게 있다. 장애인 자립과 취업을 활성하기 위해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아래 시행되는 제도로, 국가․지방자치단체와 50인 이상 사업장, 공공기관․민간기업 등에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물론 수시로 안 지켜지는 법과 제도고 말이다. 10년 넘게 안 지키는 기업이 있다며 기사에 뜨기도 한다. 대부분 그냥 벌금 내고 퉁친다. 또 고용하더라도 단기직이나 계약직에 머물뿐, 장기적으로 장애인을 인력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글쎄...... 복지관이나 사회적 기업, 자립생활센터나 특수학교 등 관련 기관 아니고서는 드문 게 현실이다. 더구나 경증 장애인 외에 중증 장애인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장애인 판사나 공무원, 아나운서, 역사 교사, 동양 화가, 의사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직업인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늘긴 늘었다. 또 속기사나 조향사, 스포츠 선수, 문학 작가, 패션 디자이너, 바리스타나 제빵사, 요새 핫하게 떠오른 유튜버 등 장애인 직업군을 개발하려는 시도 역시 알음알음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본인이 시도하든, 뜻 있는 일반인 누군가가 시도하든 말이다. 하지만 ‘지속력’에 관해 묻는다면, 나는 또 고개를 갸웃하다가 ‘글쎄......’라는 애매모호한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고용의 연속성, 직업개발의 연속성이 부족해 맨날 샛길만 뚫리지 시원한 고속도로는 개통되지 않는 장애인 구직 및 취업의 길이랄까?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날개가 없어도》는 중도 장애인이 된 주인공 사라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과 태도, 인식 등을 돌아본다. 비단 장애인 고용율과 은연중 장애인을 꺼리는, 어느 회사에는 있을 법한 기업문화뿐 아니라, 장애인 스포츠 분야에 대한 것도 주인공 사라를 통해 표현한다. 예로부터 예․체능계는 돈이 많이 들기로 유명하다. 하물며 장애인 체육은 말해 무엇하랴. 우리나라는 대한장애인체육회 등의 단체가 장애인 스포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지원이 많이 향상됐지만, 아직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대중 인식도 그렇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사라 또한 장애인 육상을 접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시각장애인이기에 사라가 이제 더 이상 트랙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좌절할 때 곧장 장애인 스포츠를 떠올린 반면, 비장애인으로 살아온 주인공은 우연히 접한 장애인 육상 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뉴스를 보고 나서야 희망을 품게 된다. 장애인 스포츠와 패럴림픽의 현주소를 팩트로 보여주는 듯한 이 전개라니!
뼈를 때리다 못해 너무 맞아서 골병이 들겠다.
사진 설명: 어느 겨울날, 필자의 모습. 손에 피켓을 들고 있다. “대표팀 그래이트!”
- 지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구경 가서 찍은 거다.
2022년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참가한 우리나라 대표팀 파이팅~!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건, 미래를 꿈꾸기에 - 《날개가 없어도》 Set!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도 비장애인 경기와는 매스컴의 취급이 하늘과 땅만큼 다르더군요. 그런데 최근 일본에서도 패럴림픽에 관심이 많아졌고 매스컴도 메달 획득에 일희일우하게 되었습니다.”
어찌저찌 겨우 희망을 발견한 사라는 장애인 육상 선수로 재기할 마음을 먹는다. 메달리스트를 노려볼 만큼 미래가 촉망되는 육상 선수였기에 얼핏 그녀의 재기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트랙 위를 달려본 사람이 더 잘 달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장애인 육상 선수로의 재활은 생각만큼 낙관적이지 않았다. 요만 집자면, 문제는 예산이었다. 스포츠 의족은 그 값이 비쌌다. 왼쪽 다리, 무릎 아래가 없기에 사라는 본래도 의족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일쌍용 의족은 문자 그대로 일쌍생활 용도일 뿐이다. 육상, 단거리 200미터 스프린터에게는 맞지 않았다. 문제는 그 특별한 의족이 고가라는 점, 의족을 제작하는 기술자와 기술력도 아직까지는 부족한 형편이라는 것.
사라는 지역에 장애인체육센터를 통해 혼자서라도 연습을 감행한다. 몸을 만들고, 체력을 키우고, 손목시계로 기록을 측정하고, 의지장구사를 찾아가 자신의 다리가 되어줄 의족을 구매한다. 그리고 마침내 트랙 위에 다시 섰을 때, 호적수 라이벌을 만난다. 그녀와 비슷한 사례를 가진 단거리 스프린터를...... 그리고 처참하게, 압도적으로 깨진다. 그녀는 어떻게든 라이벌을 따라잡고자 노력하고, 의족 제작자이자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로 유명한 외국의 전문가를 다짜고짜 찾아가는 등 ‘과격 + 무모한’ 행동력을 선보인다.
한편 사라가 의족을 구매한 것을 알게 된 이누카이는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 사라네 집안은 유복하지 않다. 그녀의 사고로 인해 집안 경제는 더 어려워졌다. 고가의 의족을 선뜻 구매할 여건이 도저히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사라는 의족을 구매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사망한 다이스케에게는 생명보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수령인은 모친이 아니었다. 보험금을 관리하는 건 높은 승률만큼 악덕을 자랑하는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혹시 그가 사라 혹은 그녀의 부모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일까?
사라는 다이스케에 대한 원한이 있다. 반면 돈은 없다. 그런데도 의족을 살 수 있었다. 그럼 그 자금은 어디서 났을까?
의문이 증폭되는 가운데, 사라는 계속해서 트랙을 달린다. 그리고 호적수 라이벌을 다시금 만난다. 그리고 또 깨진다.
과연 사라는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라이벌을 이기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악덕 변호사와 높은 검거율을 자랑하는 형사가 얽힌 다이스케 살인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사진 설명: 이화 벽화마을의 한 장면. 하얀 날개가 그려져 있다.
- “나는 법을 잊어버렸다 해도 내일 향해 걸어가는 이 길이 언젠가는 더 커다란 날개가 되어 줄 테니~!”
갑자기 가수 럼블피쉬의 노래 <으라차차> 가사 한 부분이 떠오르네.
《날개가 없어도》 - 우리는 장거리 도움닫기를 하는 중이다 Go!
“설령 날개가 없어도 그녀는 무리해서라도 날아오르려 했을 거야. 때로는 포기할 줄 모르는 인간도 있는 법이지.”
소설 《날개가 없어도》는 크게 두 부분의 중심 이야기로 전개된다. 하나는 장애인이 된 사라의 단거리 육상 스프린터 재활기, 둘은 다이스케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다 보면 사건에 관한 추리보다 사라의 재활 및 성장에 더 주목하게 된다. 내가 장애인이라 그런가?
사라는 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무모한 돌진으로 어찌어찌 대학 연구팀의 기술 협력을 얻고, 해외의 저명한 코치를 얻고, 함께할 스태프를 얻지만, 그녀가 ‘1등’을 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만만치가 않다. 심지어 자존심도 버려야 했고, 자신의 주법도 버려야 했다.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온갖 소소한 행복, 맛있는 것을 먹거나 놀거나 하는 삶의 여유도 포기해야 했다. 건강도 일부 나빠질 각오까지 하면서 트랙을 달린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스포츠 선수가 아니기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한 걸 수도 있지만, 스포츠는 이기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성과가 없으면, 그리고 이기지 않으면 선수 개인은 살아남을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특히 마이너에 속하는 장애인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랬다. 성과가 있어야 후원이 오고, 지원이 돼야 장비든 코칭이든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나카야마 시치리는 장애인 및 장애인 스포츠에 대해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흔히 ‘장애인’ 하면 연상되는 어딘가 감성적인 대목을 많이 덜어냈다고 해야 할까.
그 무엇보다 치열해서 순간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 반면 그 치열함이 있기에 주인공이 장애인 스포츠계에 안착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중도 장애인이고 원래 육상 선수였으니, 장애인 육상에도 비교적 쉽게, 그러니까 무경험 선천성 장애인보다 수월하게 입문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심 그렇게 낙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웬걸. 사라는 트랙 위에서 몇 번이고 졌다. 자신을 갈아넣고 나서야 겨우 동등하게 뛸 수 있었다.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 아래 경쟁하는 것이다. 아무리 페어플레이 정신을, 자신과의 싸움을,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을 강조한다고 해도, 직설적으로 말하면, 승패가 나뉘고 싸움이고 다툼이다. 단지 그것이 전쟁보다 폭력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애인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장애’에 가려서 그 사실을 좀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위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고 의지로 밀어붙이는 스포츠는 그야말로 구닥다리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장애인 스포츠는 아직도 좀, 선수의 의지에 무게가 실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보인다. 과학기술 부분을 지원받기 어렵다는 말을 툭하면 들어왔기 때문일까?
그래도 이따금 간행물 월간지 기자 일로 인터뷰하는 장애인 스포츠 선수 및 지도자들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처음에는 솔직히 기사에 실리니까 최대한 좋게 포장한 거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자료 리서치하며 ‘그래도 많이 좋아졌구나’ 납득하게 됐다. 과거에는 없던 연습 경기장이 생기고, 지원 시스템이 생기고 했으니까.
그렇지만 장애인 스포츠의 대중화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일단 패럴림픽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좀 적은 편이고, 누군가는 장애인 스포츠를 보는 것을 불편해하기도 하니까.
차별 같은 게 아니라, 일반적인 신체와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장애를 가진 이들이 달리거나 스키로 활주하거나 공을 쫓는 등 격한 움직임을 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이 그런 경우가 있더라. 우리 어머님.
듣기로 ‘조마조마하다’고 하신다.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는 마음 이전에 장애를 의식하고, 저러다 다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패럴림픽’은 독일 출신 신경외과 전문의 루드비히 구트만이 런던올림픽 당시 영국 남동부 스토크맨더빌 병원에서 하반신 마비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목적으로 양궁대회를 개최한 게 시발점이다. 하반신 마비 환자(Paraplegic)와 올림픽(Olympic)을 합친 말이었으나, 참가 선수들의 폭이 넓어지며 대등한(Parallel)과 올림픽(Olympic)을 합친 말로 바뀌었다. 그리고 패럴림픽의 상징은 홍․청․녹색 초승달이 모인 ‘나는 움직인다’라는 뜻의 아지토스이다.
초승달은 보통 아직 채워지지 않은 것, 채워질 부분이 남은 것, 미완성을 의미한다. 즉, 신체나 기능에 여백이 있는 장애인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나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실제 유래는 차치하고, 그렇기에 패럴림픽의 상징 아지토스가 삼색 초승달이 합쳐진 모양이 아닐까?
장애로 인한 여백을 과학기술이든 훈련이든 정신력으로든 채워서 움직인다는 뜻으로. 아직 발전할 부분이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도 그런 해석을 했던 모양이다. 소설 《날개가 없어도》에서 그런 부분이 드러난다. 그것이 사라가 착용하는 외관부터 비범한 스포츠용 의족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기술 발전에 가능성으로 본다면 말이다. 장애인 스포츠는 인간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유용한 시험대요, 패럴림픽은 그 결과물을 자체 평가하고 스포츠를 통해 선보이는 장이 되는 셈.
한편 작품을 이끄는 흐름 중 하나인 다이스케의 죽음에 관한 진실도 빼놓을 수 없다. 남이야 수사를 하든 의심을 하든 상관없이 트랙을 달리는 주인공에게 좀 많이 묻히는 경향이 있지만, 형사 이누카이와 악덕의 이름을 가진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사이의 밀당도 제법 볼 만하니까.
덧붙이자면 이누카이와 미코시바, 이 둘은 각각 독립적인 시리즈물에서 주인공을 맡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작품 《날개가 없어도》에서는 조연으로 활동한 것이다. 작가 특유의 이런 연출을 접할 때마다 소설이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게 매력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옮긴이의 말에서 알게 된 건데,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도 한쪽 눈에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총평을 적자면, 《날개가 없어도》는 사회와 장애인, 장애인 스포츠의 현주소를 제시한 사회파 작품이면서, 장애인 200미터 단거리 스프린터의 재활을 담은 성장물이고, 그러면서도 추리물 특유의 긴장감까지 놓치지 않은 작품이었다. 내가 장애인이고, 최근 장애인 스포츠 관련 인터뷰를 해서 그런지, 장애인 육상에 더 초점이 맞춰지긴 했지만 말이다.
더디긴 해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장애인 스포츠, 지금도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장애인 선수들.
우리는, 그리고 그들은 지금 계속 더 높이, 더 오래 날기 위한 장거리 도움닫기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오래 달려서 추진력을 얻은 도움닫기는 더 멀리 비행할 수 있는 동력이 되는 법!
날개가 없어도, 장애가 있다 해도 우리는 날아오를 수 있다. 움직일 수 있다. 무기력하지 않다. 장애는 여백일 따름이다. 초승달처럼 비어 있기에 더 채워넣을 수 있는 발전의 가능성.
그런 의미에서 소설 《날개가 없어도》에서 가장 많이 나온 문장으로 서평이자 감상문을 마무리한다. 하루하루, 매일매일을 똑같지만 새로운 스타팅 포인트에 서서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누군가를 생각하며. 우리 장애계도 언젠가 더 높이 날아오르길 바라며. 그러니까......
On Your Marks. Set.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