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의사(義士) 일완 홍범식 선생 고택
2022.10.11(화) 충북 괴산에서 개최된 민통 창설 제41주년 민족통일 전국대회(13:00~15:00)후
15:30~16:00 약 30분 동안 의사(義士) 일완 홍범식 고택을 탐방한다.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 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 하던지
조선사람으로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빼았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아라.
<홍범식 선생이 아들에게 남긴 유서 중에서(1910.8.29)>
충청북도 민속문화재 제14호, 국가 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괴산 홍범식 고가(槐山 洪範植 古家)는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 선조 때 김정승이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철종 11년(1860)부터
홍판서가 살았다는데 지붕에서 발견된 기와에 '옹정팔년사월(䔨正八年四月)' 이라는
명문이 있어 1730년 경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1984년 당시 소유자의 이름을 따 '괴산 이복기 가옥'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국가민속문화재에 지정되었으나,
1990년 증축으로 인한 원형 훼손과 소유자의 재산권 행사 등의 이유로 1990년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이후 2002년 12월 20일 일안 홍범식 선생과 관련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북도의 민속문화재 제14호로 다시 지정되었다.
입구에서 바라 본 홍범식 고택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있는 이 고가는 정남향으로 지어진 건물로,
정남향으로 지어진 안채 구조는 정면 5칸·측변 6칸의 ㄷ자형 집으로 중앙에 큰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3칸씩의 방과 부엌을 두고 오른쪽에는 3칸 마루를, 서쪽에는 2칸 툇마루를 두었다.
앞으로 2칸의 별채가 있는데 후대의 것으로 보인다.
왼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2고주 5량가이며, 장혀를 받친 남도리집이다.
지붕은 합각으로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홍범식 고택은 금산군수로 재직하다 1910년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순국한
일완(一阮) 홍범식(洪範植, 1871∼1910) 고택으로
근대 역사소설의 이정표가 된 '임꺽정(林巨正)의 작가 벽초(碧初) 홍명희(홍범식의 자녀)의 생가로
홍명희는 1919년 3 · 1운동 당시 이 집 사랑방에서 괴산 만세 시위운동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홍범식 고택 안내문
괴산 홍범식 고택 대문채
이 가옥은 1730년(옹정 8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은 중문(中門)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 안채, 서쪽에 사랑채를 좌우로 배치하고 사랑채 앞에 행랑채를 두었다.
홍범식 선행은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1902년에 내부주사.혜민서참서를 역임하고 1907년에 태인군수가 되었다.
1909년 금산군수가 되었으나 이듬해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통분을 이기지 못하여 자결하였다.
정부는 그의 충철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다.
1907년 태인군수에 부임했을 때 일제침략에 항거하는 정미의병이 일어나자
적극적으로 의병보호에 힘써 일본의 체포망을 피하게 하였으며
1909년 금산군수 부임시절에는 선정을 베풀어 주민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1910년 국권사실후 울분을 이기지 못해 선산에 올라가 자결하였다.
그가 남긴 유서중 5통은 일본경찰이 압수함으로써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의사홍공범식추모비(義士洪公範植追慕碑)
아랫 사랑채
사랑채
사랑채는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적으로 뒷산의 자연경관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조화시키며
오밀조밀한 내부공간을 연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좌우대칭의 평면구조를 갖는 중부지방의 살림집의 특징적인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사랑채는 1919.3.19 괴산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고 전하는 3.1만세운동 유적이다.
안채에서
안채 귀에 있는 뒤주와 김치광
안채 뒤에 있는 광채
광채와 장독대
안채 뒤의 장독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