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SPAM)’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프랑스에 주둔한 독일 측의 참호에서 고생하고 있을 때 같은 시기, 프랑스에 주둔한 미군측 연대(미육군 88사단 351보병연대)에는 Jay Homel이라는 보급을 담당하는 병사가 있었다.
그는 미군에게 보급할 돼지고기, 소고기를 담당하였는데 미국에서 운송할 때 뼈를 바르지 않은 채로 예하 부대로 이송되어 왔다. 그러므로 이동할 때 불편하고 무거울 뿐만 아니라 후처리에 손이 많이 가는 문제가 있었다.
게다가 예하부대에서 장병들이 식사 후에 참호에 버리는 뼈 때문에 온갖 병균의 온상이 되기도 하였고,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1차 대전이 끝나고 보급 병의 신분을 유지한 채, 무사히 목숨을 보존하여 미국으로 돌아온 호멜은 아버지의 정육사업을 잇게 되었다.
호멜은 새 상품으로 운반과 보관이 편리한 햄 통조림을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미 양념이 되어 있어 조리가 간편하기는 했지만 가격이 비싸서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미국이 대공황을 맞게 되고 살림이 팍팍해지자 호멜은 값싼 햄 통조림 개발을 기획한다.
늘 버리기만 하던 돼지 어깨살(unwanted cut 또는 nonprofitable cut)을 그라인더에 넣고 뼈 채로 간 다음에 조미료를 듬뿍 넣어 햄을 만들어 캔에 담았다. 초기에 고객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마케팅 차원에서 호멜은 그 싸구려 햄의 이름을 공모하게 되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SPAM (Spised ham, 줄여서 SPAM)이다.
어찌되었거나 이 스팸은 맛이 좋았고 조리가 간단하였으며 무엇보다 버리는 고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값이 저렴하여 인기가 있었다. 그리고 히틀러에 의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팸은 미군의 건강을 책임지는 최고의 영양식 반열에 오른다.
미군의 메인디쉬가 되었고 나중에는 미군뿐만 아니라 연합군에게도 보급되어 수 백 만 군인들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미군과 함께 이동하여 미군의 건강을 책임지는 제품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도 보병들은 참호를 파고 참호전을 벌였는데 참호에 고여 더럽게 썩어있는 물로 인한 참호족(足)이 발생하여 고생하였다. 하지만 미군은 쌓여만 가는 빈 스팸 캔을 참호 바닥에 깔고 켜켜히 쌓아 올리니 그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되었다.
그랬더니 스팸의 빈 캔으로 인해 Trench foot(참호족)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또한 스팸 깡통에 고여 있는 기름은 로션 대신 병사들의 얼굴을 미끈하게 유지시켰고, 그 기름으로 총구를 청소하여 총신을 늘 깨끗이 유지하니 늘 방아쇠만 당기면 총알이 효과적으로 발사되었다.
그들은 무좀이나 습진에도 이 기름을 발라 증세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고, 이 기름으로 불을 피워 겨울의 한파를 피하기도 하였으며 스팸을 구워먹기도 하였다.
스팸은 보급하기 쉬운 캔 형태로 제조되어 전방 구석구석으로 보급이 가능하였고, 게다가 열량이 높아 군인들의 체력을 유지시키고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였다.
당시 적군인 독일군이나 일본군은 제대로 된 식량 보급을 받지 못하여 영양실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었으니 사기 면에서 미군과 큰 차이를 보였다. 전시 상황에서 이런 영양실조 현상은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연합군도 비슷하였으나 이러한 현실을 파악한 미군은 스팸을 조달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2차 세계대전 동안 스팸은 1억 개 이상이 보급되었으며 스팸 덕에 참호 근무로 인한 희생자가 현저하게 줄어든 연합군은 그 승리의 원인을 스팸에서 찾기도 하였다.
1차 대전 당시 피아 양 측에서 전쟁에 참여했던 청년 두 명 중 한 명인 히틀러는 20여년 후 2차 대전을 일으켰고, 또 다른 한 명인 호멜은 버리던 고기로 스팸을 만들어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다.
하지만 참호생활 내내 하루 삼시 세끼를 스팸으로 때우며 스팸에 질려있던 병사들은 전역 후 고향에 돌아와 다시 스팸을 만나게 되었을 때 기겁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팸이라는 단어를 좋지 않은 이미지로 사용하였다. 그들은 스팸을 Spare meat (SPAM), 또는 Shoulder of Pork & ham (S+P+AM)으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대응할 필요가 없는 메일, 지워도 지워도 날아오는 끈질긴 메일을 스팸메일(쓰레기 메일)이라 부르게 되었다. 얼마나 지겨울 정도로 먹었으면 이렇게 험한 이미지로 사용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결국 세계대전 시 건전한 병영생활을 위한 발명품으로 버버리에서 공급한 Trench Coat (참호의 축축한 환경에서 병사의 몸을 지켜주던 방수복, 일명 런던 BURBERRY COAT)는 현재까지 최고 명품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수많은 참호 근무 병사들을 질병 및 부상으로부터 지켜낸 스팸은 마치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정도의 상품으로 취급받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아이러니하다.
서로 다른 두 명 중 한 명인 히틀러는 전쟁에서 패하고 나서 결국 자살했으나,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수 천만 명이 (5천만 명 +/-)희생되었으며,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600만 명의 유대인이 희생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 명인 Homel은 전쟁 중 수억 개의 스팸을 팔아 큰 부자가 되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미군이 주둔하였던 나라의 굶주렸던 사람들을 스팸 맛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스팸에 중독된 사람들이 성인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많은 엄마들은 자식들에게 많이 먹여서는 안 될 음식으로 스팸을 분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스팸은 마트에 가면 여전히 인기 있는 상품이고, 특히 명절에 서민들의 선물로 가장 많이 선택되는 제품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