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이스라엘에 선자자가 있음을 알리이다(지은혜)
(열왕기하5:1~10말씀)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는데 성경에서는 그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왕하1:5)라고 했다.
이것은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아 권력의 실세에 앉은 인물이라는 뜻이다. 나아만은 뛰어난 능력과 충성심으로 자신의 주인인 아람 왕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인물이며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 이 승리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아만이 하나님에 대해 알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와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풀고 계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놓고 볼 때 하나님을 안 믿는 불신자의 성공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경우가 있는데 나아만은 처음에 몰랐지만 하나님을 알게된 후에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사실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나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왕의 총애를 받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지만 그에게도 문등병 환자라는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다.
오늘 날 의학 용어로는 '한센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무서운 병에 걸리면 피부가 흉하게 일그러지고 감각을 잃기 때문에 당시의 의학으로는 이 병은 치료가 불가능 했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격리를 당해야 했기에 환자들은 짐승 취급을 받으며 살았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저주로 생긴 병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는 나아만이 그 저주스러운 문등병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나아만은 전혀 예상치 않던 곳에서 구원의 손길이 열렸는데 아람군이 포로로 잡아온 이스라엘 출신 여인 종이 나아만의 아내의 하녀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는 어린 나이에 타국으로 끌려와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살펴 볼 것은 나아만의 구원이 다름아닌 보잘것 없는 한 소녀 노예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나아만은 여종의 말을 흘려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나님을 아직 모르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사람이라면 남들이 그냥하는 말에도 심각하게 반승하는데 특히 하나님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한 사람은 그게 바로 선택 받은 사람의 증거이다.
하나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끌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하나님의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누군가가 그 어느곳에서도 그 말을 붙잡고 살아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문등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지던 병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 병을 고쳐달라는 것은 있을수도 없는 일이며 하늘에서 별을 따달라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만약에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당장에 엘리사를 생각했을 것이다.
당장 생각이 안 났다 해도 기도만 했다면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해 주셔서 나아만을 안내했을 것이다. 영적으로 메마르면 위기 상황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지만 반대로 믿음을 가지고 영적인 눈으로 정신을 차린다면 주님이 보인다. 믿음없는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존재를 보지 못했다. 8절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평안하며 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항상 듣기 때문에 문제 앞에 주늑이 들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게는 거룩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결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참 선지자의 존재는 참 하나님의 존재를 대변한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우상으로 가득한 아람 사람들에게 그 어떤 존재도 인생의 위기 앞에서는 무기력 하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귀한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50. 여호와의 복병(지은혜)
(역대하20:20~23말씀)
오늘 본문은 역대하20:20~23절 말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전투태세를 갖추고 적들에게 나아가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향하는 믿음을 가지고 전장에 나가라고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호사맛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 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여호사맛은 백성들과 의논하여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을 택하는데 그 방식이 바로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 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한다"(21절)
여호사맛은 군대 앞에 정예부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찬양대를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다.
또한 찬양대는 갑옷을 입은게 아니라 거룩한 예복 즉 세마포를 입고 찬양을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볼 때 정상적인 전술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패한 것은 유다가 아닌 적들이 패한 것이다. 갑옷이 아닌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복장을 한 찬양대가 찬양을 시작하자 도무지 사람의 머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적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들은 전멸하고 패한다. 그렇게 전쟁은 끝나서 유다 백성들은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브라가"골짜기 즉 "축복의 골짜기"라고 한다. 그 참혹한 전쟁터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복스러운 장소로 변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었다에 대하여 혹자는 여기에서 "복병"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 또는 군대, 특히는 은밀히 활동하는 천사를 가리킨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볼 때"복병"은 잠복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하늘의 군대를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유다 군대를 가리킨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유다 군대는 전혀 싸울 준비를 갖추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17절)
그렇다면 그 복병은 무엇인가?
그 복병은 동맹군의 일부 즉 다시 말하여 세일산의 거민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어떤 무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귀한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51. 참 이스라엘 사람(지은혜)
(요한복음1:47~51말씀)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요한복음1:47~51절 말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나오는 예수님은 그 어떤 사람을 만나기 전에 먼저 그 속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2:24~25)
여기에서 볼 때 빌립과 나다니엘 모두가 메시아를 고대하던 사람이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것을 보면 나다니엘은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메시아가 오시기를 고대하면서 기도를 했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예수님이 모든것을 다 파악하시고 알고 계신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나다니엘은 예수님을 보고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49절)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이 바로 자신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메시아임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지만 구약성경의 전통과 요한복음의 용례로 볼 때 여기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 보내신 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보여진다.
(단7:1~14, 시편8:5, 요9:35)
그런데 천사가 인자인 예수를 기점으로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 한다는 것은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꾸는데 하나님의 천사가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꿈을 꾼 야곱이 그 계시의 장소를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라고 했다.(창28:17) 그런데 여기에서 사다리는 예수님으로 대체된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유일한 사다리요.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뇨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새 포도주요, 새 성전이요, 새 이스라엘로 나타나듯이 그는 새 야곱의 사닥다리인 것이다.
디모데후서1:5절에서도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디모데를 보기 원한다고 했다. 진실한 사람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떤 도움을 주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좋은 것이기 때문이며 또 이런 사람은 진실의 빛이 퇴색해 가는 또 다른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며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볼 때 육쳬의 할례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사람이 참 이스라엘인이라는 것을 볼 수 있다.
귀한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52.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마태복음27~20~26말씀)
오늘의 본문은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성사 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는 내용이다.
마태복음26:3절에 언급된 예수님을 체포하여 죽이려는 의도가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볼 때 저자는 그들의 의도대로 모든것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볼 때 27장 2절에서 저자는 그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은 예수님을 반드시 사형에 처하되 유월절 기간 만은 피하고자 했던 의도가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지도자들의 치밀한 음모는 빗나가고 오히려 그가 유월절 기간중에 십자가에 처형되기 위해 배반을 받을 것이라고 한 예수님의 예언(26:2)이 정확하게 실현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마태는 이 재판을 언급하기 전에 유다의 사건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 빌라도에게 넘겨진 예수님의 무죄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밭을 예레미아의 예언 성취로 돌림으로 무죄한 예수님이 가져 올 구원의 혜택을 예고한다.
예수님의 무죄성
첫째-빌라도 자신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자신에게 넘겨준 것은 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예수님은 빌라도 앞세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많은 고소를 받았지만 전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시고 빌라도가 크게 놀랄 정도로 침묵하셨다.
셋째-빌라도는 그의 아내가 보낸 메시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넷째-그는 유월절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죄수를 풀어주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고자 했다.
다섯째-종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요구할 때 빌라도는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사형언도를 내리면서 자신은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무죄하다고 선언했다.
여섯째-강도 바라바를 석방시킬 것을 요구한 모든 백성들은 예수님의 피를 그들과 자기들의 후손이 책임질 것이라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무죄성을 시인했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 라는 칭호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의 성격을 확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저자는 예수님께서 은밀하게 역설적인 방법으로 그의 왕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유일하게 한 한마디의 말씀은 그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는 빌라도의 질문에 "네가 말하였도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 답변은 빌라도가 친히 예수님을 "유다의 왕"이라고 말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왕적인 신분을 인정하는 단 한마디 말씀과 모든 고소에도 불가하고 완전 침묵하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신분과 자격으로 그의 역설적인 왕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빌라도는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강도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 한후에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내주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범죄자를 대신하여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는 대속의 진리를 분명히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채찍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로써 십자가 죽음에 관한 예수님의 예언이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되게 되었다. 여기에서 저자와 독자들의 관점으로 볼 때 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예수님께서 멸시와 고난과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왕으로서의 왕권을 행사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일 예수님께서 무력을 통해 그의 왕권을 행사해서 참으로 왕이라고 하셨다면 예수님은 결코 유대인의 왕이 아니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권은 고난을 통해서 은밀하게 행사되는 역설적인 왕권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당하신 멸시와 천대는 예수님이 참으로 고난을 통하여 왕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있음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여기에서 볼 때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일이 전혀 예상밖의 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친히 예언하신 사건의 점진적인 성취임을 독자들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귀한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나균용목사님과 나은혜사모님.
2023년 한해도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게 하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2023년 한해도 꾸준히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신학생들을 사랑해 주시고 신학생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해 주시고 후원으로 섬겨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이며 주님이 하셨습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