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개인적인 노력의 여지
이의: 만약 모든 존재가 오로지 그 자신의 물질적 성품에 따라서 행동한다면, 그리고 그 자신의 물질적 성품을 갖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다면, 아마도 개인적인 노력의 여지는 없을 것이고 가르침은 완전히 무의미할 것입니다.
대답: 신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34. 감각들이 감각의 대상들에 대한 애착과 혐오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대는 그와 같은 느낌들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그대의 적들이다.
소리와 같은 모든 감각 대상들에 관하여, 마음에 드는 대상을 향한 좋아함과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에 대한 싫어함이 각각의 감각 안에서 반드시 일어난다.
이제 나는 개인적인 노력과 가르침의 여지가 있는 곳을 그대에게 말해 줄 것이다.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맨 처음부터 좋아함과 싫어함의 지배를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개인의 물질적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로지 좋아함과 싫어함을 통해서만 그것의 경로로 그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남들의 의무를 행하기 시작한다.
반면에 그것들의 적81을 통해 이러한 감정을 억제한다면, 그는 오직 가르침만 유념하게 될 것이며 더 이상 그 자신의 물질적 성품에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이 둘의 지배를 받지 않게 하라. 그것들은 그의 적들이며, 마치 길 위의 도적들처럼 그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데 장애물들이기 때문이다.
좋아함과 싫어함에 이끌리는 사람은 가르침을 오해할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무(다르마)를 따라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후자도 의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35. 다른 사람의 의무를 잘하는 것보다는, 이점이 없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하는 것이 더 좋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다가 죽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의 의무를 하면 위험하다(자신의 가능성을 나타나게 하지 않는다. 지옥으로 가게 한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자신의 의무를 행하다 죽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의무를 완벽하게 행하며 사는 것보다 더 낫다.
다른 사람의 의무는 지옥과 같은 위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