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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운(財運)
박 태 원
“요새 우리가 재수가 없는 게, 그게, 모두 그 때문이지…… 정녕코 그 탓이에요, 그 탓!”
툭하면 아내가, 그렇게, 반은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면서도, 속으로는 은근히 나의 동의를 구해오고, 구해오고 하였던 까닭에, 그야 물론, 처음에는
“듣기 싫어!”
라느니 ,
“원, 그, 어리석은 수작 좀, 작작 허우!”
라느니 하고 일소에 부쳐버리려고도 하였던 것이나, 일이란 참으로 공교로워서, 갈수록에 아내의 이른바 우리들의 ‘재수’라는 것이 막혀, 나의 경륜하는 일은 하나도 여이하게 되는 것이 없었고, 그때마다, 아내는, 또, 오직 ‘그 탓’ 하나만을 내세웠던 것이므로, 요즈막에 이르러서는 어느 틈엔가 나의 사상마저 제법 미신적인 경향을 띠게 되어, 그래, 아내의 하는 말에 대해서도, 전과 같이 어리석다고 비웃는다든, 듣기 싫다고, 물리친다든, 그렇게 듣지는 않고서,
“글쎄.”
하고, 절반은, 그의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는 태도를 취하게끔 되었다…….
나는, 본 일이 없으니까, 무엇을 어떻게 모셨는지 모를 일이었으나, 금년 들어, 우리 집 행랑 사람은 그들의 거처하는 방 모퉁이에다 무엇인지를 하나 모셔놓고, 그리고 행랑어멈은 밤마다 우물로 나가, 정화수를 떠다가 바치기 시작하였다 한다.
우리가 우리의 어린것들을 봐주게 하기 위하여, 작년 겨울부터 고용하고 있는 계집아이의 보고하는 바에 의하면, 그것은 솔가지를 한 아름이나 되게 묶고, 그 위에 짚을 덮어서 만든 물건으로 이것은 분명히 터주를 모신 것에 틀림없다고, 우리 집에 오기 전에, 잠깐 제 시골 이모 집에 가서 있었다는 이 계집아이는,
“시굴서들 모셔놓은 것하고, 똑같애요. 꼭, 한 모양이에요.”
하고, 말하였던 것이나, 아이에게 배우지 않더라도, 벌써 같은 짐작이 있었던 듯싶은 아내는, 순간에, 지극히 불쾌한 표정을 짓고 내가,
“그까짓 거, 뭣을 모시거나 모른 체허구 내버려두지, 뭘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한 것에 대해,
“아이. 모르시건, 국으루 가만히나 계슈. 우리두 안 모셔놓은 터주를 행랑에 든 게 왜 모셔? 참, 벨꼴을 다 보겠네.”
하고, 아내는 자못 괘씸한 듯이 윗니로 아랫입술조차 깨물어보았던 것이다.
이날 저녁 때, 어멈은 마루를 치우러 안으로 들어온 김에, 아내를 보고 말하였다.
“그게, 터주 모신 게 아니에요. 제 집이나 지니고 있으면 모를까, 남의집사는 사람이 터주가 무슨 터줍니까? 겨우내, 몸은 아프구, 꿈자린 뒤승숭허구, 그러길래, 그걸 하나 만들어놓고, 정성을 들여보자는 게죠. 그게 내 몸의 업을 받은 게지, 터주 모신 게 아니에요.”
저의 몸의 업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까닭을 알 수 없는 노릇이었으나, 아내는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고,
“그걸, 난, 그년이 밖에서 터주를 모셨다기에…….”
“아녜요. 우린, 그런 거는 도무지 헐 줄 모릅니다. 입때껏, 그런 건 모르고 살아왔으니 까요.”
“아, 글쎄 말이야.”
“또, 안다 허드래두 안에서두 모시지 않는 터주를 우리가 왜 모시겠에요? 우린, 경우에 없는 일은 안 허니까요.”
“글쎄 말이야. 그래두 그년이 시굴서들 해논 것허구, 아주 똑같다구 그러기에…….”
“그건, 그년이 잘못 보구 그러는 게죠. 터주 모시는 건, 그 속에 항아리가 들었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거엔 그건 없에요. 단지, 내 몸의 업을 받은 게니까요.”
그의 설명을 아내는, 당장은, 그럴 법하게 듣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멈이 우리의 저녁 찬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가자, 아내는 즉시 계집아이에게 명하여, 그들이 행랑방 모퉁이에다 모셔놓았다는 것이, 그의 말마따나 과연 그 속에 항아리 같은 것을 품고 있지 않았나 어떤가를 자세히 조사해오게 하였다.
“네. 속에는, 참말, 아무것두 안 들었군요.”
계집아이는 쭈루루 나갔다 들어오더니, 그렇게 아내에게 보고하였다.
그러면, 그것은, 사실 외람되이 그들이 모셔놓은 터주 같은 것이 아니라, 어멈의 몸의 업을 받았다나 어쨌다나 하는 것에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내는 그래도 종시 마음에 께름칙한 생각을 금할 길이 없었던 듯싶어, 이튿날 아침, 조반을 치르고 나자, 분주하게 어디를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터주가 아니구, 제 몸의 업을 받은 거래두, 우리한테 해가 되면 됐지, 이 〔利〕는 없다는구먼.”
하고, 눈을 깜박깜박한다.
“누가?”
하고, 나는 한마디 물었던 것이나, 구태여 새삼스럽게 물어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가 나의 장모와 함께 자주 다니는 전래집이 있다는 것쯤, 나는 오래전부터 눈치 채고 있었던 것이다.
“글쎄, 남의집사는 게, 그런 건 왜 해놔아?”
아내는 다시 중얼거렸으나, 혼잣말인 듯하기에 모른 체 내버려두었더니, 다음에는 바로 나에게로 향해,
“우리한테 정녕 해가 된다니 이걸 으떡허우?”
하고 눈을 똥그랗게 뜬다.
나는, 물론, 소위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아내의 입에서, 그러한 종류의 말을 듣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남편 된 자는 언제고 그 아내에게 대해 너그러워야 할 것을 생각하고,
“그럼, 곧, 없애버리라지.”
“한번 맨들어논 이상에는 없애두 소용이 없다는걸?”
“그럼, 헐 수 없으니, 그대루 둬두지.”
태평으로 담배 연기만 내뿜고 있었던 것이나, 아내가,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있답디다.”
하고, 나서, 잠깐 나의 기색을 살핀 뒤에,
“우리가 정작 터주를 모셔놓으면, 저의 결 누를 수가 있다는데……”
하고 말하였을 때, 나는 이미 좀더 너그러울 수는 없었다.
“듣기 싫어! 원, 그, 무슨 어리석은 수작이야?”
아내는, 순간에 얼굴을 붉혔으나, 그래도 한마디 하였다.
“당신은, 똑, 그런 거라면 무턱대구 타박버텀 주려 들지. 알구보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그는 은근히 나의 눈치를 살피기에 골몰이었으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좀처럼 자기의 의견을 들어줄 듯싶지 않다고 알자, 그는 마침내, 터주를 모신다는 것은 단념할밖에 없다고 깨달은 모양이다.
얼마 있다가,
“어디, 그거 해놓구, 얼마나 잘되나, 좀 두구 봐야지.”
하고, 아내는, 그러한 어리석은 소리를 입 밖에까지 내어서 한마디 중얼거렸던 것이다.
나는 그러한 나의 아내를 한편으로 가엾이도 생각하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밉게조차 느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너무나 사람이 교활한 행랑어멈에게는, 그야 나도 호감을 가질 수는 없었으나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이른바 윗사람이란 아랫사람에 대해 언제든 관대해야 할 것이요, 더구나, 어리석다고까지 할 만큼 지나치게 선량한 행랑아범에 대해, 나는 그의 행복을 빌지언정, 불행을 바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남의 집 행랑살이 하는 신세가, 정성을 들여서, 그래, 잘되면 얼마나 잘되겠다고, 이루 그러한 것을 세우고 그러 겠다는 말이냐?
물론, 아내는 항변하였다.
“단지 저이만 잘된다면 그만이지만, 저이 잘되는 대신에, 우리가 그만침 해를 입을 테니 걱정이지.”
나는 잠깐 어이없어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나, 그래도 모멸하고 싶은 것을 참고, 온순한 어조로 타일렀다.
“정말 그렇다 칩시다. 허드래두 그만 아니오? 우리 덕 좀 보라지. 상덕을 바라지, 하덕을 바라느냐라는 말두 있지 않소?”
그래도 아내는 말하였다.
“지들 줄 게 어딨어?”
“지들 줄 게?”
나는 가만히 되묻고,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쓴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지들 줄 게 어딨어?―라는 말은, 아내가 전에도 몇 차례인가 그들에게 대해 사용한 말이다.
가난한 탓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이를테면, 사람이 소갈머리가 없고, 잇속에만 밝아, 집의 어멈은 곧잘, 우리들의 눈을 기어서,¹ 된장, 고추장도 떠내었고, 숯이며 구공탄 같은 것도 집어다 썼다.
돈으로 따져본다 하더라도, 사실 몇 푼어치가 안 된다.
달라고 하였으면 좋은 것이다. 물론, 그는 때때로,
“구공탄 한 덩어리만 가져갑니다.”
라느니,
“꼬치장 조금만 주세요.”
라느니 하고, 공공연하게 달라기도 한다. 아내는 그것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과히 불쾌한 표정을 짓는일 없이 번번이 주어왔다. 그렇건만, 그는 공공연하게 청구하기보다는, 그 몇 곱절을, 꼭, 눈을 기어 훔치려 드는 것이었다.
아내는 나나 한가지로, 남들과, 더욱이 행랑것과 시비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그러한 것을 구태여 발기 잡아내려 들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은근히 괘씸하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렇기로 말하면,
“상덕을 바라지, 하덕을 바라겠소?”
하고, 제법 관대한 듯싶게 꾸미는 나도, 내심으로는 아내나 일반이었다.
곱슬머리와 옥니와는 말도 말랬다고 한다. 우리 집 어멈은 옥니는 아니었으나, 머리는 변통수 없는 곱슬머리였다. 또 그 위에, 말이 많아서 된 말 안 된 말 가리지 않고 늘어놓으며, 특히, 툭하면 한다는 소리가, 지금은 이 꼴이지만 예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살았노라 하는 수작이다.
우리가 행랑에 사람을 둔 것은 무슨 돈이나 많아서, 바로 호기있게 살아보려고 한 노릇이 아니다. 우리 식구만이 쓰기에는 방이 많았고, 더구나 행랑이란 주인의 사용할 처소가 아니어서, 그래, 방 하나 거저 주고, 잔심부름이나 시켜먹자는 데서 나온 생각이었다. 더구나 우리 동리는 수도와 약간 거리가 멀었다. 그래 모두들 우물물을 길어다 먹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므로, 단지 물한 가지를 위해서도, 우리 식구들은 행랑아범의 수고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까닭에, 비록 행랑에 사람을 두고 산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경우에 있어서는, 조금도, 생활의 여유라든 그러한 것을 표시하는 것이 못 되었다. 그러한 우리에게다 대고, 전신이야 어떠한 것이든, 현재는 우리 집의 행랑어멈에 지나지 않는 그가, 툭하면, 예전에 제가 잘살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하고 그러는 것은, 그것이 대체 정말이고 아니고를 물론하고, 전혀 객쩍은 수작이라 할 것으로, 그래 우리는 한편으로는 그를 가소롭게 또 한편으로는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의 몇 가지 점만 가지고 따져보더라도, 그가 남의 집 행랑어멈으로, 얼마나 적당치 못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일이나 잘한다면 더러 결점이 있더라도, 주인 된 사람은 모든 것을 그저 눌러보아주어야만 마땅할 것이다. 사실, 집안에 사람을 두는 것은, 그 주요한 목적이 일을 시키기 위한 때문인 까닭이다.
그러나 이 위인은 일을 하면 잘할 터임에도 불구하고, 매사에 꾀를 피우려고만 들었다. 나나, 나의 아내가, 좀 힘든 일을 시키려는 눈치만 채고 볼 말이면 그는 갑자기 급한 볼일도 생겼고, 또 몸살이니, 배탈이니 하고, 병도 잘 났다. 그리고 피하려다 피하려다 못하고, 세찬 빨래라든, 푸지²라든 그러한 것을 하고 난 그 이튿날은, 열에 아흡 번은 정말 병이 나서 앓았다.
그렇게 치고 보면 일에 꾀를 피우는 것도, 절반은 그 몸이 약하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약한 체질을 위하여서라도, 예전에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 팔자 그대로, 지금도 잘살고 볼 말이면, 제 신세는 물론이요, 우리 신세까지 편할지도 모른다. 일 좀 시켰다고 빈번히 앓는 것을 보고는, 우리들의 마음은 번번이 불안하였고 그리고 결국은 그지없이 불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체질이 남달리 약하기로 말하면, 어멈뿐이 아니라, 아범도 일반이었다. 집에서는 조석으로 서너 지게 물 긷기만을 요구하였고, 그 밤에는 더러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의 이십사 시간 중에서는 고작, 한 시간이나 두 시간을 우리에게 빼앗기는 것에 지나지 않건만, 그는 그 나머지의 많은 시간을 별로 자기들의 생활을 위해 유효하게 이용하려 들지는 않았다.
무슨, 기술을 체득하고 있는 터도 아니요, 그렇다고 무슨 밑천이 있어 장사를 할 수 있는 터도 아니니까, 결국은, 대부분의 행랑아범들이 그렇듯이, 막벌이꾼으로라도 나설밖에 없는 처지건만, 그는 될 수 있는 한도까지, 근육노동을 기피하려 드는 모양이었다.
역시, 어멈이나 마찬가지로, 그도 몸이 약하였다. 여자와는 달라서 그래도 남자랍시고, 저는 그러한 이야기를 제 입을 가지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그도 예전에는 남부럽지 않게 잘살았다고 어멈은 말한다. 혹, 모르는 사람은 마누라가 예전에 잘살았다니, 영감도 소싯적에는 고생 몰랐을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나를 핀잔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 집의 행랑 사람은 다 늙게 오직 고생을 같이할 따름이지, 초년의 낙은 각기 다른 배우자와 누렸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 만나서 남의 집 행랑으로 굴러다니기는 오륙 년에 불과한 모양이요, 가만히 살펴보면, 눈치가 그전에는 혹 약물터에서 만나더라도, 전연 초면부지, 남의 집 영감이요, 남의 집 마누라였던 듯싶다.
그러나, 그것을, 처음에는 우리도 모르고 얼마를 지났다. 동리 집 아는 이의 소개로, 우리가 그들을 집에 들였을 때, 그들은 여남은 살 먹은 아들과 함께 그들의 얼마 안 되는 세간짐을 날랐다. 본래의 이름은 길성이라고 있는 모양이건만, 흔히 자기들끼리 그 애를 부르기는 막동이라고 하기에, 늙은 두 내외가 막냇자식 하나만 데리고 살고, 큰 자식들은 따로나서 사나?―—할밖에 없는 노릇 이 었다.
그러나 따로나서 사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아범이 하는 말과, 어멈이 하는 말은 서로 어긋나서, 갈피를 차릴 수가 없었다.
“그래, 큰아들은 어디서 뭘 하고 둘째 아들은 어디서 뭘 하오?”
새벽에 물을 긷고 난 아범에게 내가 물은 말에 대해, 그는,
“강원도 철원에서 남의 집 머슴을 살고 있습죠. 둘째 아들놈은 만주 들어간 지 벌써 삼 년이나 되고요.”
정녕 그렇게 말하였건만, 저녁때, 요강을 가셔서 들고 방으로 들어온 어멈에게,
“둘째 아들은 만주 들어가 있다지?”
하고, 아내가 말을 붙인 것에 대해 그는 얼토당토않게
“아아뇨. 함경도 함흥에서 장사를 한답니다.”
하고 대답을 해, 그만 어리둥절한 아내가 눈을 끔벅거리며,
“오오, 그럼 큰아들이 만주 들어가 있소?”
하고, 다시 물으니까,
“큰 애요?”
하고, 저는 좀더 달리 눈을 끔벅거리더니, 아주 한숨 비슷한 것조차 토하고,
“큰애는 열일곱에 죽었답니다.”
한다.
우리는 비로소, 아범의 말하는 큰아들 작은아들과, 어멈의 말하는 큰아들 작은아들이, 각기 배가 다르고, 씨가 다르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던 것이지만, 지금 데리고 사는 길성이라는 아이가, 그러면,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공통된 자식인지, 또는 다른 자식들이나 한가지로 어느 한쪽의 자식 임에 그치는 것인지, 그것을 알 도리는 없었다.
물론, 아범이나 어멈에게 한마디 물어보면 곧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뭐 구태여, 캐어물어서 알 필요도 없는 일이라, 그래, 묻지 않고 두어두었었는데, 그다음 날인가, 다음다음 날인가, 뜰 앞에서 나의 큰딸 설영 (雪英)이와 늘며,
“애기, 이름 쓸 줄 알어? 난 내 이름 쓸 줄 알어.”
하고, 어디서 났는지, 반 동강이가 난 헌 자막대기로, 한참을 걸려 땅바닥에다 괴발개발 그려놓은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 김길성(金吉星) ―
이라,
‘오오, 그러면, 이 에두…….’
하고, 우리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들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 이틀 되던 날인가 사흘 되던 날, 아범은, 조그만 나무쪽 하나를 반드르르하게 대패로 밀어가지고 와서, 나를 보고, 문패를 좀 써달라고,
“신영수요, 신영수. ―저어, 납 신(申)자에 긴 영(永)에 빼낼 수 (秀) 자.”
하고, 반절만 겨우 깨쳤다면서, 저의 성명 삼 자는 어디서 그렇게 영악하게 배워두었던 것인지, 내가 먹을 갈고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인가.
“길 영자요, 빼낼 수자요…….”
하고 외웠던 것이나, 아비는 신영수건만 아들은 김길성인 것을 보면, 이 막내 녀석이라는 것도, 오직 저의 어미의 자식일 뿐이지, 결코, 집의 아범의 자식이 아닌 것은, 다시 캐어물어보지 않더라도 분명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가 과연 누구의 자식이든 간에, 그들 세 식구 중에서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이 길성이라는 열세 살 먹은 아이뿐으로, 그는 매일같이 벤또를 싸 들고, 효제정인가 어디 그 근방에 있다는 조그만 제약 회사에를 다녔다.
“너 얼마씩이나 받구 있니?”
내가 시험 삼아 물으니까, 달에 칠 원이라든가 팔 원이라든가, 하여튼 미처 십 원은 못 되는 금액이었는데, 그야 때때로 안에서 남은 찬밥 덩이쯤 얻어다 먹기는 한다지만, 그것이 그다지 큰 부조 될 턱 없고, 단지 그만한 수입을 가지고는, 설혹 이처럼 물가가 고등한 시절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 식구 입에 골고루 풀칠을 할 수 없을 것은 바로 뻔한 노릇이다. 그렇건만 아범은 별로 벌이
를 나가는 눈치도 없었다.
“대체, 어떡할 작정인지 모르지.”
아내는 어느 날 저녁때, 그 새로 들어온 행랑식구 이야기를 하다가, 바로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어쩌면, 절반은, 나를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를 일이었으므로, 그때 나는 대답하였다.
“그래두 믿는 구석이 있기에 그러겠지.”
“믿는 구석이 있기는 뭬 있어? 낮에두 어멈이 들어와 그러는데, 속이 상해 죽겠다구……”
“……”
“전에는 어디, 금광으루 따라댕기며, 달에 오십 원두 들여오구, 육십 원두 들여오구 그랬었다나? 그런데. 그때 같이 허든 사람이 요새두 자꾸 편지를 허구, 다시 내려오라는데, 갔으면 좋으련만 안 가구 저렇게 놀구만 있다구…….”
그것은, 그들이 우리 집에 들어온 지 겨우 한 이레가 지났을까말까 한 저녁때 일이었는데, 우리가 잠깐 그러한 수작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행랑에서 내외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리며, 얼마 있다가 아범은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요, 뒤미처 어멈은 안으로 들어 왔다.
“낮부터 속이 상한다더니, 그예 영감허구 싸왔구료?”
아내가 웃으며, 한마디 묻자, 원래 입이 가벼운 어멈은 그러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하러 들어왔다는 듯싶게 한바탕을 늘어놓았다.
물론, 도무지 벌이를 나가려 하지 않는 아범에게 대해 그가 은근히 품고 있던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싸움의 직접 동기는, 길성 이를 사이에 두고 일어난 모양이다.
“……회사에서 우리 막동일, 열흘만큼씩 돈을 주죠. 이 원 얼마라나 삼 환은 못 되는데, 그건 이 녀석이 타가지구 오다가, 그 속에서 빵을 두 개 사 먹었다나요? 벤또야 가지구 댕기지만, 애가 어디 그까짓 것만 먹구 요새같이 기나긴 해에 견디어나겠에요? 아, 배가 안 고파두 먹을 걸 보면, 어른두 그냥 지내치기 어려운 법인데, 번번히 사 먹은 것두 아니구, 참, 얼마만에 사 먹은 걸, 그것두 이를테면 제가 번 돈으루 사 먹은 걸, 명색이 부모라고 앉어가지구, 그런 걸 이루 탄허면 어떡헌단 말예요? 자기 말은, 까먹은 게 나뿌다는 게 아니라, 가짓말허는 게 괘씸허다지만, 저두 부모를 쇠기려구 그래서 그런 게 아니라, 무심쿠 헌다는 소리가 그렇게 된 게죠. 아, 어른두 그런 수가 있지 않어요? 먹구 싶어 사 먹긴 사 먹었지만 집이 가서 부모한테 꾸지람 들을 게 걱정이라, 그러지 않어두 잔뜩 불안스런 마음으로 들어온 녀석을 돈을 세어보자, 너 십 전 한 푼 어쨌니?―그것두 눈을 이렇게 부라리구 소리를 꽥 질러 물어보니, 뭐, 꼭, 가짓말을 하려서가 아니라, 얼떨결에라도 무심코, 몰르겠에요. 난 쓰지 않었에요―그렇게 대답이 나올 게 아녜요? 그런 걸 이루 탄허면 어떡합니까? 사지가 멀쩡하니 펀둥펀둥 놀구만 먹으며, 어린 자식이 십 전 한 푼 까먹었다구, 그것두 제가 번 돈에서 쓴 걸, 그걸 가지구 그러는 게 하 밉쌀머리스럽게, 한마디 했더니, 자기는, 그래두 자기가 옳다는군요. 그래, 홧김에 다시 한마디 했죠. 낼버텀 벌일 해 와야지, 안 해 오는 날이면 밥 안 멕이겠다구―. 막동이가 비지땀 흘려서 번 돈으루 팔어 오는 쌀인데, 그 쌀루 지은 밥을, 그대루 멕일 수 없다구―. 그랬더니 골이 바짝 나가지구, 밖으로 나가버리는군요. 돈은 내가 뺏었으니까, 술값두 없는 터에 가야 어딜 가랴 그냥 내버 려두었죠…….”
우리는 그날 밤 일찍 자느라 아범이 어느 때 들어온지를 모르는데, 들어오기는 분명히 들어온 듯싶은 그가 우리들이 이튿날 아침에 잠을 깨었을 때, 이미 다시 나가고 없었다.
“아마 밥 안 준다니까, 그게 무서워서 새벽같이 벌일 나간 게구료?”
아내가 웃으며 물은 말에, 어멈은,
“몰르죠, 어딜 갔는지…….”
하고, 저도 웃으며 대답하였던 것인데, 정말 굶길까 봐 겁이 나서 그랬는지 아닌지는 알 길 없어도, 이날 아범이 벌이를 나간 것은 사실인 모양으로, 저녁때 돌아오는 길로 물지게를 가지러 안으로 들어온 그를 보니, 진종일 햇볕에 익어 오른 얼굴이 탐스럽도록 빨갰다.
“아, 어딜 그렇게 갔다 왔소?”
아범은 막 중문을 나서려다, 내가 그렇게 한마디 묻는 소리를 듣자, 일부러 댓돌 아래까지 다가와서, 말하기 전에 헤―하고 웃기부터 하며,
“아, 저, 등성이 너머, 집터 많이 닦어논 데 있지 않습니까? 거기 맨 윗터전에 바루 얼마 전부터 전라도 부자라는데, 아주 굉장히 큰 집을 짓죠. 아마, 한 칠팔십 간이나 착실히 되나 보이다. 굴돌이, 부연두, 면에만 다는 게 아니라, 삥 둘러 모조리 달구, 재목두, 옹이 하나 안 박힌 걸루만 골라서 쓰는군요. 돈은 암만이 들든지 상관 말구 잘만 제노란다는군요. 전라도서두 아주 큰 부자래요. 여러 만 석 헌다는군요. 목수들두 꼭 일등 목수들만 뽑아다 헌다는데, 마당에단 또 동물원처럼 온통 연못을 파구, 나무를 심구, 어떻든지 굉장하게 꾸며놀 작정이랍니다그려. 아주. 큰 부자래요.”
“그래, 오늘 거길 갔다 왔소?”
“네, 저어…… 저 아래 자갈 깔린 길모퉁이에 왜 움집 세 채 있지않습니까? 그 이켠으루 첫째 집, 최셔방이라구, 전부터 아는 사람이죠. 그 사람이 게 가서 일을 하고 있더군요. 아, 신서방, 신서방두 일허러 오셨소? ―그러기에, 허허실수루 헐 일 있다면 해두 좋다구, 그랬더니, 사람이 없어 걱정이지 일이야 참 얼마든지 있지―그러는군요. 그래, 최서방이 말을 해서, 오늘은 종일 게서 일을 했는데, 도급 맡어가지구 헌다는 사람이, 우리 올 때, 품삯이라구 일 원짜리 한 장, 십 전짜리 다섯 닢을 쥐어주며, 내일두 오슈, 매일 오슈―그러더군요. 그래 그러마구, 매일 오마구 그랬죠…….”
“그, 잘됐구료. 매일 댕기기 멀지두 않구……”
“멀긴 뭬 멉니까? 바루 저 등성이 하나만 넘어스면 고만인데요―.”
“글쎄 말이야.”
“헌데, 안 허다 허니까, 좀 벅차더군요. 사람이란, 똑, 하루 쉬지 말구, 일을 해야만 되기루 마련인 모양이에요 아, 볕은 어찌 또 그렇게 따거운지…….”
“아, 요새 늦더위가 좀 허우?”
“아, 대단허다마다요. ……허지만, 덥더래두, 똑 이맘땐 이렇게 연일 날이 밧싹 들어야 합죠. 농사엔 똑 그래야만 허니까요.”
“그래, 무슨 일을 했소?”
“그저 이것저것 시키는 대루 했습죠. 아, 모군 서는 거죠, 뭡니까?”
“하여튼 일자리가 생겼으니 다행이오. 시장헐텐데, 어서 물 긷구 저녁이나 먹우.”
“아닙니다. 시장허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헤질 때, 모두들 술 받어다 먹구 헤졌으니까요. 그것두, 어디, 우리가 돈 냈나요? 집 쥔이 한턱 썼습죠. 나이는 사십두 채 못 됐을까 그런데, 아주 사람이 점잖더군요. 전라도 크나큰 부자라, 하는 일은 별루 없구, 그래서,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소풍 겸, 그렇게 역사허는 걸 보러 나온다는데, 지금 살구 있는 데는 재동이라던가요? 나오면, 꼭, 그렇게 일꾼들 술 멕이지, 그냥 들어가는 일은 없답니다 그려. 가던 날이 장날이라구, 오늘 공교롭게, 집쥔이 마침 나와서, 그래, 술 한잔 잘 얻어먹었는걸요. 부게 안주해서, 이만헌 보시기루, 어떻든 녁 잔씩 먹었으니까요.”
오늘, 인생은 그에게 있어, 퍽 이나 고맙고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이야기는 얼마든지 길 듯싶은 것을 마침, 사기 공기를 하나 들고 안으로 들어오던 어멈이, 약간 못마땅한 듯싶은 눈초리로 그를 흘낏 보고,
“자아, 얘기 그만 허구 물이나 어서 길어 와요. 우리 독에두 물이 말렀는데……그냥, 집 짓는 데 가서 일허구 왔다면 그만이지, 무슨 애기가 그렇게 길담.”
한마디 톡 쏘고,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이번에는 아주 은근한 어조로,
“아씨. 어려우시지만, 기름 한 방울만 주세요……그러고, 있으시면, 깨소금두 쪼끔만 허구…….”
하는 꼴을 보니, 아범이 그렇게 일금 일 원 오십 전을 벌어들인 것이 대견해, 기름에, 깨소금에, 갖은 양념 다 해서 오늘 저녁은 한 상 잘 차려 먹일 작정인 모양이다.
“아, 어서 물 길어 와요.”
다시 한마디 하고 나가는 어멈의 뒷모양을, 이번에는, 아범이 매우 못마땅하게 흘겨보았던 것이나, 그래도 잠자코 물통을 덜거덕거리며 중문을 향해 몇 걸음 옮겨놓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다시 돌아서며,
“아, 어제는 너무나 저희들이 무례했습니다. 애 가지구 괘니 다퉜습죠. 아, 막둥이 녀석이 공장에서 돈 타가지구 온 걸, 그중에서 십 전을 까먹었구면요. 먹구 싶은 거 십 전쯤 까먹었기루, 바른대루 까먹었다면야, 그걸 누가 나무라겠습니까? 헌데, 요 녀석이 아니라구 가짓말을 헙니다그려. 그건 못쓰는 게거든요. 가짓말이란 자꾸 느는 법이니까요. 큰일 나죠, 큰일 납니다. 사람은 맘이 똑 정직해야만 허니까요.”
그는 바로 정색을 하고 말을 마친 다음에, 그제야 정말 물을 길으러 밖으로 나갔다.
아범은, 그 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일터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연해 벌이를 나가기 나흘 하고, 닷새째 되는 날은, 온 종일 방 속에 누워서 앓았다.
“언제, 힘든 일을 해봤나요? 막벌이는 못해먹게 태어난 사람이, 후분이 글러서 저렇게 고생을 허니, 그래 병인들 안 나겠어요?”
어멈은 저녁 때 들어와서 그러한 소리를 하고 나갔는데, 그래도 아범은 눕기는 그날 하루만이요, 이튿날은 다시 일터로 나가는 모양이었다.
“요샌, 아주 부지런한데그래?”
“아, 부지런하지 않으면 지가 으쩔 테유? 인제, 가을 후딱 지내구 겨울만 되구 볼 말이면, 그나마 벌이가 없을 테니, 어서 단돈 얼마래두 저축을 해놔야 않겠수?”
“옳은 말이야.”
“옳은 말인 줄 알거든 당신두 부지런히 좀 원고를 써요.”
“좋은 말이야.”
나는 아내와 이러한 문답을 하였던 것이나, 부지런하려고 노력은 하면서도, 소설은 뜻같이 써지지 않은 채, 겨울을 맞이하였다.
평소에도 바깥출입은 별로 안 하는 성미지만, 날이 추우니, 만부득이한 볼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나는 매일을 방구석에서 보냈거니와, 이것은 문필로 생계를 도모하는 나로서는 도리어 잘된 일이라, 할 것으로, 그 겨울을 나는 동안에, 나는 월평균 삼백여 원의 원고를 쓰고, 또 팔 수 있었다.
그러나, 뜻있는 작가라면, 자기의 작품 활동을 원고료 수입의 다소로써 계산해 마땅할 것이랴? 나는 때로 그러한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서글펐던 것이나, 그래도 장작이나마 몇 구루마 더 사고, 옷가지나마 몇 벌 더 장만해, 나의 처자들이 감기 한번 안 앓아보고, 그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하다고 할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행랑에서들은 사정 이 좀 달랐다. 나는 집 속에 들어앉았어야 돈을 벌 수 있는 몸이었지만, 아범은 밖에 나가야만 수가 나는 신세다. 그러한 그가, 겨우내, 방 속에서 지냈으니, 가을에 좀 벌었다는 것이, 대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단지 그것을 가지고는, 그 살림살이가 심히 군색할 것은,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아들 녀석만은 그대로 회사에를 다녔다. 받는 것도, 칠 원이 팔 원이 되었다든가, 팔 원이 구 원이 되었다든가, 하여튼 일 원가량 오른 눈치였으나, 그것은 이를테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것이다.
이러한 때에 철원인가 어디서 머슴을 살고 있다는 그들의 큰아들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그는 어범의 아들이 아니라, 아범의 아들로, 그들의 막내둥이인 길성이가 그 성이 김가인 대신에, 그는 신가가 분명해, 아범이나 어멈은 이제는, 각기 저들의 친자식 하나씩을 데리고 한방에 모인 폭이 되었던 것이나, 물론, 그의 출현을 어멈은 반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아, 제일에, 잠자리가 불편해서 살 수가 없구먼요. 막동이허구 셋이서만 자더래두 협착헌 방이…….”
큰아들이 와서 있기 시작한 지 사흘짼가 되는 날, 어멈은 들어와서 아내를 보고, 그렇게 말하였다.:
“큰아들이 올해 몇 살이유?”
“그애가 스물일 곱이랍니다.”
“보기에 사람이 얌전한 것 같던데·…‥”
“아이야 성질은 괜찮아요. 허지만 한 가지 병이 있죠.”
“무슨?”
“술이 아주 고래랍니다.”
“술을 그렇게 잘 먹어?”
“말두 마세요. 간밤에두 새루 한 시에 들어왔는데, 술이 잔뜩 취해가지구 언덕배기를 올러오다, 눈구렁에 가 빠졌다던가, 옷을 온통 흙투성이를 해가지구 왔군요. 그래두 그러구래두 온전히 제 집을 찾어왔으니 다행이지……”
“그래, 서울에는 왜 올러온 모양인구?”
“괘애니 올러왔죠? 무슨 긴헌 볼일 있을 까닭 있에요? 시굴구석이 염쯩이 나니까, 괜시리 그렇게 올러온 게죠.”
“그럼, 좀 있다가, 쉬, 도루 내려갈 모양이유?”
“모르죠. 자세헌 이야기가 도무지 없으니까……, 허기는 제 말이 장사를 해볼까구두 허지만…….”
“장사라니 무슨 장사?”
“저, 서울에는, 본정엘 가더라도 도무지 구해볼 수 없는 거라나요? 이상헌 담배 물부리를 큰 상자루 하나 가뜩 담어가지구 왔는데…… 참, 서방님 하나 드린다며…….”
어멈은 밖에 나가더니, 즉시, 딴은 보지 못하던 물부리를 두 개 들고 들어왔다. 된 모양은 보통 담배 물부리나 한 모양이었으나,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무슨 돌 같기도 하고, 쁠 같기도 한 것이, 도무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다에서 난다는구먼요. 아따 이름이 뭐라던가?……”
“그래, 이걸, 어디서 그렇게 구해가지구 왔다우?”
“원산에 있는 제 동무한테서 사십 환이라나 오십 환이라나에 물려 받었답니 다그려.”
“아, 몇 개나 되게 그렇게 많이 줬단 말이유?”
“몇 갠지 알 수 없죠. 하여튼 무척 많으니까요. 여러 백 개, 아니, 여러 천 개두 더 될 것이에요. 또, 이걸 갈어서 가루를 맨들어먹으면 아주 소함⁴ 많은 약이 된다는군요?”
“무슨 병에?”
“아이참, 무슨 병에 신효쿠허다더라? 원, 정신 좀 봐, 어떻든 소함은 그중이라던데…….”
“그럼, 매일 놀구 있지 말구, 어서 들구 나가 팔라지 그러우?”
“아이, 그럴 주변이나 제법 있으면 좋게요?”
“아, 주변이구, 뭐구가 있수? 길거리에서라두 팔면 파는 게지.”
“아이, 서울 와서는 꼴에 또 체면을 채린답시구, 창피해서 그러기는 싫다는군요. 엊그제두 그래 보라구 일렀건만…….”
“그럼, 숫제, 영감더러 나가서 팔아 오라지.”
“그것두 싫다는군요. 그저. 가만히 둬두라기만 허니까 모르죠. 제 말에는 그대루 뒀다가, 진고개 큰 상점에 가서 돈 많이 받구 한꺼번에 넹겨버려야만 헌다니까 누가 압니까?”
그로서 사날인가 지나서 행랑에 큰아들 말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어데 갔느냐고 어멈에게 물었더니, 어제, 문안 아는 사람을 찾아본다고 들어가더니, 아마 게서 간밤은 묵은 모양 같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은 사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범이나, 어멈이나, 별로 궁금쩍게 생각하는 눈치도 없었다. 양식도 적고, 용돈도 없는데, 군식구 하나 던 것만 다행하다고 여기는 듯싶었다.
행랑에서, 무엇을 모셨다는 것은, 이때 전후하여서의 일이거니와, 아범이 도무지 벌이는 하는 것이 없고, 자기는 또 자기대로 밤낮 몸이 아프니까. 하 답답한 김에, 뭐 몸의 업을 받았다거나 어쨌다나 하는 것을 만들어놓고 그처럼 밤마다 정성스레 정화수를 바치고, 바치고 하는 모양이었는데, 설혹, 정성만 들이면 운이 터질 수 있는 것이라손 치더라도, 맹물 한 그릇쯤 떠놓고 비는 것
으로는 아무 영험이 없는 것인지,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듯싶었던 것이, 궁즉 통⁶이라고, 담뱃값에도 잔뜩 궁하고 보니, 없던 꾀도 나는 듯싶어 어느 날, 해 질 무렵에 아범은 술이 한잔 얼근해가지고 들어오며, 마침, 마루 끝에 나와 앉아 있던 나를 보고, 언제나 마찬가지로, 우선, 헤― 하고 한 번 웃은 다음에,
“오늘, 벌이를 좀 허구 들어오는 길입니다.”
하고, 내 말을 기다린다.
“무슨 벌이요?”
“그, 참 아시는지, ……자식 놈이 원산서 사왔다는 물부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 오늘 조금 들구 나가보았습죠. 창신동 큰 행길가에 가서 그냥 길바닥에다 벌리구 앉었더니, 사람들이 지나가며, 더러 걸음들을 멈추구 들여다두 보구, 집어들구두 보구, 그러는군요. 이 물부리가 담배를 암만 먹든, 진이 도무지 올러오는 법이 없단 말이에요. 웬, 무테안경 쓴 양복쟁이가 얼마요― 허게, 이십오 전만 내랬더니, 선뜻 돈을 내겠나요. 그 양복쟁이한테 판 게 말허자면 마수걸이죠. 그 사람이 사는 걸 보더니, 다른 사람두 나서서 하나 다우, 하나 다우, 해서, 오늘 반나절 앉어서 판 게 삼 환 오십 오 전이에요.”
“삼 환 오십오 전이라? 그, 적지 않은 돈이로구료. 그럼, 몇 개를 판 셈이 되나?”
“열여섯 개요.”
“열여섯?…… 열에 이 환 오십 전허구 여섯이면 오륙 삼십, 이륙 십이……일 환 오십 전허구…… 셈이 틀리는데그래. 꼭 사 환이래야만 될 텐데……”
“으째서요?”
“아, 열여섯 개 팔었다지 않소?”
“네, 열여섯 개요.”
“이십오 전씩 열여섯이면 사 환이래야 맞어.”
“그, 웬일인가? 셈을 잘못 쳐서 받은 일은 없는데…… 또박또박 큰 건 이십오 전. 좀 작은 건 이십 전씩, 세서…….”
“뭐? 작은 거?”
“네. 좀 작은 건 오 전 싸게 해서 이십 전씩 받었죠.”
“아, 이십 전짜리가 있어? 그렇다면 셈이 맞을 게요. 난, 모두 이십오 전씩에 팔었는데 그렇다는 줄 알구…….”
“아닙죠. 좀 큰 건 이십오 전― 좀 적은 건 이십 전― 그렇게 해서 열여섯 개를 판 게죠.”
“장사가 되니, 좋긴 하구먼두, 아들이 그렇게 가만히 위해 두란 걸, 마구 팔어 말이나 안 듣겠소?”
“아, 언제 팔면 안 팔 건가요? 또, 제 애비 에미는, 굶어 죽을랄 텝니까? 내, 낼두 또 들구 나가봐야죠.”
“그래, 장사 재미에 점심두 굶었수?”
“왜, 굶기는요? 빵떡 두 개 사 먹었죠. 아, 왜 예펜네들이 광주리에다 이구 댕기며 파는 오 전짜리 빵떡 있지 않습니까? 그거 두 개 십 전어치 사 먹구, 지금 오다가 순댓국 해서 술 석 잔 받아 먹구, 나머지 삼 환 오 전 가지구 들어오는 길이랍니다.”
그 일이 설혹 힘이 들고, 힘이 든 분수로는 벌이가 시원치 않다하더라도 감히 사양하지 못할 처지에 있는 아범으로서, 벌이도 괜찮을 뿐 아니라, 별반 공력이라 할 공력이 필요치 않은, 이 물부리 장사는 아주 재미가 깨가 쏟아지는 것이 있는 듯싶었다. 그는 연일, 아침 먹고 나갔다가는 저녁에 돌아오며, 돌아오면 으레, 나나, 아내를 보고,
“오늘은 암만을 팔았죠.”
“오늘은 암만을 팔았죠.”
일일이 보고를 하는데, 그 ‘매상고’는 다소의 가감이 있기는 하였으나, 평균해 삼 원 각수⁷는 으레, 되는 모양이었다.
대체, 아들이 원산인가 어디서 사들일 때는 한 개에 얼마꼴이나 주었던 것인지, 그것을 알아야, 순이익이 얼마 됨을 따질 수 있을 것이나, 사기는 아들의 돈으로 샀고, 판 돈은 그대로 아범의 수중으로 들어오는 터이니, 아들만 잠자코 있어준다면, 한 개 팔아 이십 전, 이십오 전의 돈이 그것이 고냥 모두 공으로 생긴 것에 틀림없다.
‘미상불 재미두 붙이게 됐어……’
하고, 나는 속으로 악의를 품지 않은 웃음을 웃어보며,
“어제는 종로 오정목으루 가서 팔었는데, 게가 벌이가 낫겠죠? 저 ― 창신동버덤 말씀이에요…… 오늘은 아주 배오개⁸ 네거리루 가볼 작정입니다. 조금이래두 사람 많이 댕기는 번화헌 데가, 단 한두 개래두 더 팔릴 게 아니겠에요?”
아침에 장사를 나가며, 또 일부러 안으로 들어와서 그러한 말을 늘어놓는 아범에게,
“아아무렴, 장사란, 좌처’가 좋아야 허니까……, 하여튼, 오늘은 가서, 어제 갑절만 팔어오구료.”
하고, 격려를 하였던 것이나, 결과는 뜻밖으로, 그는, 딴 때 없이 이날, 오정이 지났을까 말까 할 때에 돌아와서, 도무지 요사이 며칠 동안, 써야 할 원고가 써지지 않아, 방 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헌 잡지만 뒤적거리고 있던 나를,
“서방님, 방에 계십니까?”
하고, 불러 일으켜놓고,
“오늘은 벌이가 아주 글렀습니다.”:
“아, 왜 그랬단 말이오?”
“아, 오늘은 배오개 네거리루 나가지 않았겠습니까? 곧장 그리루 나가가지구, 길가에다 벌려놨더니, 그저 눈 깜짝헐 새에, 다섯 갤 팔었습니다그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그대루만 팔린다면, 뭐, 오늘 하루에, 여러 수십 개 팔릴 모양이에요. 이거 실없이 자리는 잘 잡었다구 좋아했더니, 아, 웬걸이요. 교통 순사가 와서, 길가에 벌려놓구 파는 놈은 그저 모조리 붙들어 갔구먼요.”
“원, 저런…….”
“헐 수 있나요? 끌려서 경찰서루 모두들 들어갔는데, 그래두 나는 딴 사람들한테 대면, 고생 안 헌 셈이죠. 아주 주리때¹⁰ 경을 친 놈두 있는데, 나는 그냥 공그리¹¹ 바닥에 잠깐 꿇어만 앉혀놓구, 야단을 치는데, 인제버텀은 꼭, 정가표를 써 붙이구 팔라는군요.”
“아, 팔라기는 팔래?”
“그럼요. 처음에, 얼마씩에 입때 팔어왔느냐?―묻겠나요? 그래서 작은 건 이십 전, 큰 건 이십오 전에 팔었댔더니, 이제버텀은 큰 걸 이십 전, 작은 걸 십오 전씩에 팔라며, 꼭 정가표를 써붙이라는군요. 네― 곧, 써붙이겠습니다― 했더니 그만 나가라구…… 다른 놈들은 모두 그대루 경찰서 안에 붙들려 있는데, 나 하나만 먼저 나왔죠.”
“그, 무사허게 잘됐구료.”
“외레 운수가 존 셈이죠.……헌데, 지금, 바쁘시지나 않으세요?”
“왜?”
“물부리 정가표 좀 써주셨으면 허구요.”
“아, 그럽시다.”
“그럼, 나가서 종이를 가지구 오겠습니다.”
아범은 행랑으로 나가더니, 조금 있다가, 사방 세 치가량 되게 네모반듯하게 오린 마분지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뭐라구 쓰누?”
“남양 빨부리 한 개에, 큰 건 이십 전, 적은 건 십오 전이라구 쓰시면…….”
“남양, 뭐?”
“남양 빨부리요.”
“남양, 파이프가 아니오?”
“네, 네.”
나는 펜을 들어, 모쪼록 예쁜 글씨로,
南洋 ペイプ
大 二十錢
小 十五錢
하고, 써주었다.
“이럼, 되겠지?¨
“아, 훌륭헙니다.”
아범은 받아들고, ˙小 十五錢’의 잉크가 덜 마른 것을, 잠깐 후우 후 불어 말리더니,
“내일은 다시 창신동이나 종로 오정목으루 나가볼까 봐요. 자리는 배오개 네거리만 못허지만, 그래두, 한 번 그런 일을 당했더니, 어째, 마음이 께름칙 허구먼요.”
하고, 자기 처소로 물러 나갔다.
그처럼 중도에 조그만 곡절이 있기는 하였으나, 아범의 물부리 장사는, 그뒤에도 순조롭게 되어가는 모양으로, 그야 비가 며칠씩 쏟아져서 장사를 못 나간 날도 있기는 하였으나, 하여튼 달 반이나 그밖에 더 안 되는 동안에 오륙십 원의 수입은 착실히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러한 그와는 반대로, 나는 근래로 도무지 원고를 쓰지 못해, 초조하고 우울한 중에 그날그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게, 모두, 그 때문이지…… 정녕코 그 탓이에요 그 탓!”
아내는 아범의 장사가 잘되고, 그 대신 내 원고가 안 써지는 탓을, 행랑에서 그 뭐 모셔놓았다는 것에다 돌리려 들었다.
“듣기 싫어! 제발 좀, 어리석은 수작, 작작 허기루 합시다.”
나는 그렇게 타일렀으나, 아내는 용이히 저의 의견을 굽히려 안했다.
“그럼, 왜, 그것 해논 뒤루, 저이들은 잘되구, 우리는 이 꼴이유?”
“이 꼴이라니?”
“아, 사월 이후루 도무지 되는 일이 없지 않수?”
“……”
“삼월까지두, 매월, 삼백여 원씩은 또박또박 생겼었는데, 인젠, 도무지 돈을 벌지 못허니…….”
“내가 원고를 안 쓴 까닭이지.”
“원고는, 그래, 왜 안 쓰시는 거유?”
“안 쓰는 게 아니라, 안 써지는구먼.”
“그게, 글쎄, 이상허단 말이야.”
“이상허긴, 뭬, 이상해?”
“하여튼, 그걸 없애버리래야만 해.”
“아, 한번 맨들어논 건, 없애버려두 소용이 없다면서?”
“그럼, 우리가 정작 하나 모셔보겠수?”
“그, 왜. 자꾸, 어리석은 수작이야?”
“글쎄, 그러니까 말이지.”
“인제 다신, 그런 말, 내 앞에서 내지 말우. 자아, 난, 사랑에 내려가서 원고를 시작할 테니, 아이들 울리지나 않도록 각별 단속이나 허우.”
그러나 노력을 해도 원고는 써지지 않았다. 단순히 우리들의 생활을 위해서만, 원고를 쓸 것이 아니라, 아내의 계몽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붓대는 결코 나의 임의대로 놀려지지 않았다.
까닭에, 내가 그처럼 중언부언 당부를 하였건만, 아내는 여전히 나의 앞에서,
“똑 그눔의 것 때문이지, 그눔의 것 때문이야!”
하고, 몇 번씩, 어멈 몸의 업을 받았다나 하는 그 물건을 저주하였고, 좀더 근본을 캐어서, 원, 만들어놓기는, 사람마다 제 몸 위해 하는 노릇이니까 용혹무괴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안에서 아주 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편 말, 이루 들어보기 전에 제 손으로 곧 치워버려야만 마땅한 노릇을, 그저 모른 체하고 요사이도 물 떠다 놓고 빌기에 골몰이니, 그따위 경위가 대체 어디 있을까 보냐고, 아내는 그러한 어멈을 심히 괘씸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나는 아내를 딱하다 생각하였던 것이나 그와 동시에 아내에게 지지 않을 만치 어멈을 괘씸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아이 봐주는 년이, 밤낮 안팎으로 드나들며, 여기 말, 저리로 전하고, 저기 말, 이리로 옮기고 하는 터이니, 제 몸의 업을 받았다나 어쨌다나 하는 것으로, 나의 아내가 두통을 앓고 있다는 것쯤, 귀가 아프도록 들어서 알 것이다. 그렇건만, 종시, 너희야 좋아하거나 말거나, 나는 나 할 것, 하고야 말겠다고, 매일 밤마다 우물로 나가서 물 한 대접씩 길어가지고 들어오고, 들어오고 하는 그 마음은 확실히 가증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러하였던 까닭에, 그 우직하고 선량한 아범이 눈치코치 못 차리고, 장사만 나갔다 돌아오면, 연해 안으로 들어와서,
“오늘은 암만을 팔았에요.”
“오늘은 암만을 팔았에요.”
하고 보고를 하더라도, 이미 전과 같이 그 선량한 것을 사랑해보려고는 하지 않고, 나는, 곧잘, 너무나 지나치게 어리석은 그 위인을 비웃으려만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운도, 무한정하고 계속될 수는 없었던 것이, 어느 날인가, 저녁 때 돌아온 아범 이 아주 풀이 죽어가지고,
“아, 오십 평생에 처음 당해보는구먼요.”
하기에, 또 무슨 어리석은 수작을 하려나?―하였더니, 오늘, 길거리에서, 전이나 한가지로 남양 파이프라는 것을 팔다가, 경관에게 눈에 불이 나도록, 따귀 세 대를 맞고, 호령 톡톡히 당하고 쫓겨 왔다는 것이다.
“그럼, 뭐, 없는 사람은 먹지두 말구, 굶어 죽으란 말인가?”
자기 방에서 아범의 하는 이야기를 모조리 들은 듯싶은 어멈이, 고무신짝을 찍찍 끌고 들어오며 입을 비쭉거리고 중얼거렸다.
“똑 길거리에서는 팔지 말라니, 이 장사두 다 해먹었지?”
“다 해먹긴? 원, 참…… 경관한테 뺨 몇 대 얻어맞었다구 저렇게 겁이 나서야, 세상을 어떻게 살어가누? 맞어가면서두, 벌 것은 벌어야 먹구살지.”
“허지만 어찌 지독허게 따귀를 갖다 붙이는지…… 매일 한 번씩만 그렇게 맞었다간 사람 골병들기 꼭 알맞겠던데?”
“매일 뭐―경관이 헐 일이 없어서, 당신 같은 사람들 뒤따라 댕기겠수? 며칠씩, 뜸을 들였다가는 한차례씩 그렇게 혼구녕을 내는 거지.”
“딴은, 그래. 경관이 매일 그악을 떨지는 않지. 그저 불계¹²허구 매일 나가봐야지. 아직두 절반이나 넘어 남었는데……”
그리고, 그는 그 이튿날로 장사를 나갔던 것이나, 다시 그날로 또 나가려 하였어도, 그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에도 몇 번인가 다니러 와서는, 제가 돈 많이 주고 사들인 것을 그처럼 아비가 함부로 들고 나가서, 헐값에 팔아버린다고 게걸대며, 그때마다 이 원도 달래 가고, 삼 원도 빼앗아 가던 큰아들이, 종로 어느 상점에 교섭이 되어 한꺼번에 넘겨버리기로 하였다고, 마침내, 남은 물부리를 상자째 들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어멈은 말도 말고, 아범까지도, 그뒤 며칠을 두고 그 불효막심한 자식을 가지고 말이 많았다.
“그래 제 부모가 어려운 살림에 고것 좀 팔아 보태 쓰는 게, 그렇게두 원통허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지. 그게 덩치만 컸지, 소견은 우리 막등이만두 못해.”
“허지만 본래 제 물건이니까, 가져가두 헐 말은 없지. 그동안, 한 절반은, 그래두 팔어서 우리가 긴히 썼으니까…….”
“아, 우리가 긴히 쓴 게 뭬 있수? 그때마다 찾어와선, 삼 환 다우, 오 환 다우 허구, 기가 나서 뺏어간걸.”
“그래. 그것도 참 적지는 않어.”
“아, 경관한테 뺨까지 얻어맞어가며 팔어 왔어야, 절반은 지 존 일 해줬지 뭐유?”
“헌데, 그래, 남은 걸, 그걸, 얼마나 받구 상점에다 넹기기루 했을까?”
“누가 아우? 얼마나 받기루 했는지…… 허지만 암만을 받던 소용없세요. 그 돈으루, 제법, 제 양말 한 켤레 사 신게 될 줄 아우? 인제, 알난봉¹³ 동무 녀석들허구, 술집이 가서 모조리 털어 바치구 말걸.”
“그렇지 그래. 그 자식이 되지두 못헌 게 돈만 헤피 쓰려 들구…….”
“인제 두구 보구료? 며칠 안 가서 빈털터리가 돼가지구, 엉금엉금 집으루 기어들 게니…… 허지만, 난 받지 않을걸? 밥이 아까운 게 아니라, 고 소행허구 맘보가 미워서…… 당신이 뭐라든, 난, 집이 안 들일 테니 그런 줄만 아우.”
“아, 나는 언제 그눔 들어오는 거 좋아했나?”
그리고 또 우리가 의외이었던 것은, 물부리를 송두리째 아들에게 빼앗긴 지, 이삼 일이 못 가서 어멈이 이제껏 오랫동안을 두고 정성을 들여오던, 그 제 몸의 업을 받았다나 어쨌다나 하는 것을 제 손으로 없애버린 사실이다.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였으면, 마땅히, 그 남양 파이프라는 것을 모조리 팔아먹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옳은 것을, 반 넘어나 그 가증한 아들놈에게 빼앗기고 말게 해주었다고, 그래서 홧김 에 없애버린 것인지, 안에서 하도 그악을 떤다고, 그래, 견디다 견디다 못해 축출을 한 것인지, 그것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노릇이나, 설혹, 우리 때문에 없애고 싶지 않은 것을 없앤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오 일 전이 아니었던 것은, 다행한 노릇이라 할밖에 없었다. 만약 그것을 없앤 뒤에, 아범이 경관에게 눈에 불이 나게 뺨을 맞고, 그리고 마침내는 그 아까운 물부리들을 아들에게 빼앗기고 만 것이라면, 그들은 응당 신벌(神罰)이라든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을 것이요, 따라서 그들로 하여금 신벌을 받도록 그악을 떤, 나의 아내를 미워하였을 것에 틀림없다.
설혹, 그들은, 나의 아내를 원망하는 일이 없다 하더라도, 아내의 마음은 적 잖이 죄스러웠을 것이 아니겠느냐?
아내의 의견대로 좇는다면, 이제는 우리들의 행운을 저희¹⁴하는 아무것도 없어야만 옳을 것이다. 앞으로는 원고를 못 쓰고, 돈을 못 벌어들이고 하더라도, 어디다 핑계 댈 곳도 없는 것이 아니냐?
나도, 이제부터, 우리들의 생활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을 해야만 한다.
-끝-
2016년 6월 7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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