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16:1-4절
제 목 : 복이 아니면 저주이다
일 시 : 2024. 10. 30.
시편 16:2-7/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편 16편은 다윗의 믹담입니다. “믹담(Michtam)”이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의 확실한 의미는 아직 밝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몇 가지 견해가 있을 뿐입니다.
① “믹담(Michtam)”이란 단어는 본래 “조각한 어떤 것, 곧 광석, 금”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으니, 이 시가 황금과 같이 귀중한 시라고 보아서, ‘황금의 시(golden psalm)’, 금언시(金言詩)로 보고 있습니다. ② “믹담”이란 말은 “덮다”를 뜻하는 외래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원수로부터의 보호를 간구하거나 찬양한 시이거나, 입을 다물고 허밍(humming)으로 노래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③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개인적인 기도나 묵상시’, ‘속죄의 시’라고 해석합니다. 이런 견해들을 보면, 믹담은 ‘황금시’, ‘묵상시’, ‘침묵의 기도’, ‘구원을 구하는 기도’ 등 다양한 해석이 있으나 대체로 황금시, 금언시로 이해하면서 다윗의 걸작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믹담’이란 제목이 붙은 시로서는 시편 6편, 16편, 56∼60편이 있습니다.
시편이나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다윗의 수많은 고백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16:2,8-10절은 제가 매우 좋아하고 날마다 암송하는 시이며 말씀입니다. 특별히 2절을 보시면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자신의 주님(주인)이시고,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에서 복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참 신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귀신, 잡신)들을 섬기는 행위는 저주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복이 아니면 저주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4절을 보시면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신이란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신, 즉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허다한 잡신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무지해서 신이라고 섬기는 신들이 많지만 그들이 섬기는 신은 섬기면 섬길수록 저주가 임하고, 괴로움이 더해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저의 총신신대원 동창 한 분이 우리 나라에서 제사를 가장 많이 지내는 10대 가문을 일일이 찾아가서 조사를 해서 졸업논문을 썼는데 하나같이 제사를 많이 지낸 장손의 가정이 가난하고 그들의 자식들이 일찍 죽거나 장애인이거나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거나 알콜 중독자가 되었거나 이혼했거나 등등 자식들이 잘되는 집이 없었다고 합니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는 말씀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불교나 무속국가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도 좋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고 했습니다.
1) 먼저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피의 전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 구절에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는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피 흘리는 살인적 행위를 상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본 문맥은 제사나 예배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피의 전제는 이방종교에서 행해진 하나의 제사의식으로 제물을 드리는 중에 피를 마시는 의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린아이를 제물로 삼아 드린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국가에서는 국가 신에 대한 제사에서 사람(아이들을)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자식을 죽여서 제사하는 것을 너무나 가증스러운 죄로 보고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저주는 없습니다.
2) 그리고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름은 물론 이방 신들의 이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율법은 우상의 이름이라도 부르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습니다. 출23: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신12:3/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본 구절을 통해서 볼 때 전적으로 하나님만 섬기며 그 명령을 준수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복이 아닌 모든 것은 저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는 저주를 멀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5절에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고 했습니다.
5절부터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복이 되는 이유들을 소개합니다.
따라서 5절의 고백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게 된 것은 그 근거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기업이 될 것을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민18:20/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다윗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에게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오직 하나님만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잔이라고 했는데 잔이란 인간 누구에게나 주어진 분 복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시11:6절에도 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시11편과 본문에 나오는 잔이란 의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다 주어지는 잔(분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 잔 안에 담겨지는 것은 각기 다릅니다. 악인의 잔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담겨져 있어서 악인들은 그것을 마실 것이지만 의인의 잔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담겨져 있어서 의인들은 구원의 복을 마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잔이란 자유롭게 마시는 연회석의 잔이 아니라 반드시 모두 다 마셔야 하는 운명의 잔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분 깃을 지키시나이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어진 기업과 잔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만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산업 즉 기업이며, 그의 구원과 축복이라는 잔의 소득이며,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기업과 잔의 소득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복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6절에는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라고 했습니다.
1)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라고 했습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이란 측량기사들이 줄자로 땅을 측량해서 내 땅과 다른 사람의 땅을 분명하게 구분하듯이 그렇게 정해주신 구역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서 구역이란 구체적으로 정해진 어떤 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아름다운 곳이란 다윗의 거주지였던 예루살렘과 그 근방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이 오직 하나님만을 자신의 복으로 고백하며 사는 행복한 삶의 경험을 비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으로 자기의 기업을 삼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습니다(5절).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어떠한 환경적 요인을 아름답게 보았을 리 만무합니다. 따라서 아름다운 곳이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땅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신 그의 삶이 행복한 것이었고, 이러한 행복한 삶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구별하여 정해주신 기업으로서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유일한 복이라고 고백하는 사는 삶 자체가 아름다운 구역입니다.
2)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기업이란 5절에 언급된 산업, 또는 잔의 소득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기업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다윗의 유일한 기업이었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이나 땅의 기름진 복이나 자녀 손들이 잘 되는 복은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7절에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1)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고 했습니다.
훈계하다란 야아쯔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충고하다, 조언하다, 조언을 받다, 조언자, 모사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충고를 하고 조언하셨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다라는 뜻입니다. 만약 이것이 아니었다면 다윗은 결코 하나님의 기업을 누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기쁨으로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아름다운 기업(행복한 삶)을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양심이란 킬랴라고 하는데 신장, 또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선한 양심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교훈하다란 야샤르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징계하다, 교육하다, 가르치다 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다윗이 밤마다 영감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을 사랑하시고, 다윗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시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밤마다 가르치시고 교훈하셨으니 얼마나 완벽하게 그를 인도했겠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이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리켜 주는 나의 주님이시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라고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있어서 복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은 다 저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말씀만을 읽고 듣고 깊이 묵상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 외에 것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복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주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아닌 모든 것은 다른 신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 외에는 모두가 다른 신입니다. 유튜브를 좋아하는 것도 다른 신이고 저주입니다. 왜 저주를 좋아하고 추구합니까?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계속해서 시편 16:8-9/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도 영도 육체도 안전히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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