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자유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21).
신약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려고 주신 '자유'를 논할 때 사용된 세 단어가 있다.
(1) '죄 사람'을 말하는데 사용됨 - 하나님의 용서함.
(2) '권세'로 번역한 것이 있음 - 주 예수님께서 보혈로 사신 그 이익과 권위를 우리에게 주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심.
(3) 감옥의 문을 열듯이 죄수를 자유하게 하는 자유(고전 7:22).
속박 아래 있는 생활은 결코 속박당하는 생활에서 우리를 건지지 못한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속박을 받는다. 그들은 자유롭게 주님을 따르지 못하며 환경의 압제를 받아 사람과 세상을 두려워한다. 사탄은 그리스도인이 그러한 자유의 생활을 체험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모든 흑암의 권세는 이미 골고다의 능력에 의해 패배했다. 골고다의 승리는 또한 이 점에서 우리를 이기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성경)은 사탄이 그의 능력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마땅히 얻어야 할 자유를 얻지 못하도록 어떻게 저지하는지를 말해 준다.
죄의 능력과 옛 생명의 능력
죄의 능력과 옛 생명의 능력은 이미 십자가 위에서 깨끗이 처리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믿음의 행위를 가져야 한다. 로마서 6장 11절의 '여기라'는 어떤 일에 대한 우리 의지의 태도를 말한다. 이 '여김'은 육체 안의 능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써 하나님께서 참되게 보시는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옛 본성의 원수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고난
사탄이 이용하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고난이다. 로마서 8장 18절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고난은 종종 우리가 빛을 얻는 길임을 본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생명을 얻게 되고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련하고 아주 빈곤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을 잘 통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문ㅌ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모든 거난과 순조롭지 않은 환경을 다 주님에게서 온 것으로 여기는 데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순조롭지 않은 일들을 당할 때 "나는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뿐 고난 들 중에 어떤 것은 사탄 마귀에게서 온 것임을 모른다. 수란스러움과 압제와 혼미함 등은 영성의 진보를 저지한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마땅히 이것들을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을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사탄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이 사랑에서 나온 것이고, 무엇이 죄에서 나온 것인지를 본별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영과 하나님의 뜻으로 모든 것들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골고다의 가르침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우리가 직면하는 고난을 식별해야 한다. 하나님에게서 온 것은 받아들이고 사탄에게서 온 것은 거절해야 한다.
하나님의 목적
로마서 8장 37절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고 말한다. 즉 승리 안에서의 이김이 최고도의 이김이다. 이김은 최고점에 이르렀다, 유혹과 환경과 감정과 고뇌와 압제 등의 체험에 대해 우리는 그것이 옛 '나'에게 속한 것인지 새 '나'에 속한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새 '나'에 속한 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십자가 위에서 그것을 넉넉히 이겼으므로 그것은 우리 발아래에 있다. 그러나 이상에서 말한 모든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은 어떻게 그것을 다스리는 가에 관한 것이다. 승리의 방법은 옛사람인 나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다.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성령께서그것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을 다만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가 당하고 있는 영적 압제가 원수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지를 식벽하지 못한다! 필요할 때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진보는 다 싸움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언제나 당신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죽은 태도를 취해야 하며 또 한 면에서 성령께 순종하여 마귀를 제어해야 한다. 그럴 때 당신은 성령께 더 깊이 사로잡히게 되고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마귀의 능력을 상실될 것이다.
사탄을 짓밟음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사탄을 상신의 발아래에 상하게 하실 것이다(롬 16:20). 성령은 골고다의 승리가 우리에게 실재가 되도록 우리를 하나님과의 교통 안으로 이끄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위는 사탄의 모든 능력을 상하게 하여 이길 수 있다(눅 10:19). 승리는 그리스도인의 필수적인 생활이다. 패배한 그리스도인은 아무 열매도 거두지 못한다. 압제를 당함과 믿음이 견고치 못함과 의지가 무력함롸 생각이 혼미케 됨과 영작 억눌림과 기도하지 못함과 외부적인 힘을 다스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 힘에 좌우 되는 것 등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안배하신 것들이 아니다. 많은 믿는 이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그들을 위해 예비한 넘치는 넉넉한 승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망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 곧 마귀는(히 2:14)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며 그들 가운데 두루 다니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는 연약하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마귀의 표적은 바로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대처해야 하는가? 주님과 연합한 믿는 이들은 사망을 제어할 수 있다. 그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그는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역사 안에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마귀에게서 온 것은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마귀의 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것이다"(요일 3:8).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이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고 말하는 논조를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날 세상과 교회의 상태를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성경에 예언들이 다 기록되어 있다고 묻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태도를 취해서도 안된다. 일례로 성경은 말세에 배도의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일은 성경에 이미 예언된 과거 사실이므로 이제는 사람들의 배도 행위를 경계하거나 책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이 시대의 죄악을 저지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시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마귀의 노정에 장애물이다. 그리스도인은 골고다의 능력으로 모든 교회들과 각 분야와 가정들 안에서의 마귀의 일을 진멸하도록 간구해야 한다. 마귀의 일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 마귀의 일이 멸해지는 것을 보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저지하는 반대 세력을 우리 발아래에 상하게 하라(짓밟으라). 그 반대 세력은 이미 주님의 발아래 짓밟혔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그 세력은 우리의 발아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