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法王子住
가. 菩薩의 十種無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無着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於一切世界에 無着하며 於一切衆生에 無着하며 於一切法에 無着하며 於一切所作에 無着하며 於一切善根에 無着하며 於一切受生處에 無着하며 於一切願에 無着하며 於一切行에 無着하며 於一切菩薩에 無着하며 於一切佛에 無着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能速轉一切衆想하야 得無上淸淨智慧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집착 없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세계에 집착이 없고, 일체 중생에게 집착이 없고, 일체 법에 집착이 없고, 일체 짓는 일에 집착이 없고, 일체 착한 뿌리에 집착이 없느니라.
일체 태어나는 곳에 집착이 없고, 일체 소원에 집착이 없고, 일체 행에 집착이 없고, 일체 보살에 집착이 없고, 일체 부처님께 집착이 없나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능히 일체 모든 생각을 빨리 전환하여 위없는 청정한 지혜를 얻느니라.”
*
법왕자주(法王子住)
*
법왕자주, 여기서 자(子)자만 떼면 법왕이다. 법왕이 되면 관정주로 넘어간다.
사실은 법왕자주에서 사무애변재가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법왕자, 태자가 되면 거칠 것이 없잖은가. 일촉즉발이다.
*
보살(菩薩)의 십종무착(十種無着)
*
법왕자주에서는 능선지십법이라. 열 가지의 법을 잘 안다. 열 가지 무착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무착(有十種無着)하니 :또 열 가지 무착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무엇이
위십(爲十)고 :열 가지인가.
*
소위어일체세계(所謂於一切世界)에 :이른바 일체세계에
무착(無着)하며 :집착하지 않고
어일체중생(於一切衆生)에 : 일체중생에
무착(無着)하며 :집착하지 않고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일체법에
무착(無着)하며 :집착하지 않고
어일체소작(於一切所作)에 : 일체소작에
무착(無着)하며 :집착하지 않는다.
이 네 가지를 먼저 잘라서 볼 수 있다.
능엄경 제4권에 ‘심궁만법(深窮萬法) 결통의체(決通疑滯), 만법을 전부 깊이 궁구해서 의심나는 것을 뚫어라’ 하는 대목이 나오고 거기에는 ‘세계기시(世界起始) 세계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다’ 하는 내용이 주역(周易)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온다.
예를 들어서 물인 수기운에 땅기운이 밀리면 뭐가 되는가? 목기운이 된다, 돌에 금기운이 있는데 이것이 불기운에 녹으면 물기운으로 흘러버린다. 돌이 딱딱한 데 부딪혀 버리면 불이 나온다. 바다에서도 불이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능엄경 제4권에 자세하게 나온다.
능엄경 3권 말미에는 완전히 우리의 신심을 확실하게 안 흔들리게 붙잡아놓고 4권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능엄경 3권 말미에는 여러분들이나 저나 누구든지 중이면 다 외우는 구절이 있다.
순야다성(舜若多性)이 가소무(可銷亡)이언정, 망할 망자를 없을 무로 읽어야 된다. 순야다성이라고 하는 것은 허공성이다. 허공이 녹을지언정 삭가라심(爍迦羅心)은, 대바다 같은 마음, 철썩같은 내 마음은 무동전(無動轉)이라,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비교하자면 보현행원품에 ‘허공끝이 있사온들 이내소원 다하리까’ 차라리 허공이 녹으면 녹았지 내가 안 변하겠다고 하는 투철한 신심, 발보리심과 같다.
그것을 능엄경에서는 ‘세계기시(世界起始) 세계가 일어날 때’라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전개된다.
제가 지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동진주 해놓고, 9주 법왕자주로 넘어가잖는가? ‘이렇게 연결을 잘 해놨네’ 제 스스로 이런 생각, 착각이 든다.
세계가 일어나면 세계는 반드시 누가 딛고 사는가?
중생이 딛고 살아야 된다. 중생이 딛고 살면 거기에서 온갖 법이 벌어진다. 음악도 있고 미술도 있고 색성향미촉법, 문화계가 다 형성이 된다. 그런 것이 온갖 법인데, 온갖 법이 일어나면 하는 것마다 업이 많아진다.
제가 지금도 감기가 맹맹한데 어제 아레 혈압약이니 감기약이니 한꺼번에 약을 여남은 개 탁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그렇게 물을 한 모금 마실 때, 그 물이 오줌으로 갈 거는 오줌으로 가고 방광으로 가고, 눈으로 와서 눈물이 될 건 눈물이 된다. 희한하지 않은가.
약도 통증 가라앉히는 약은 통증으로, 염증 가라앉히는 약은 염증으로 간다. 소화시키는 약도 마찬가지다. 약들이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가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약은 녹기 때문이다.
사람도 화엄경이 녹으면, 글자가 녹으면, 자연수행이 되어서 구절구절이 자기들 일상생활을 할 때 방편으로 가서 지혜가 나올 것 같다.
요즘 우리 범어사 학인들이 졸업했는데도 강원에 다시 와서 화엄경을 듣는다. 대교반 졸업하고 다시 와서 화엄경 공부를 하는 조금 못난 학인이 있다.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야매 학인을 두세 분 받았다.
우리가 아이패드로 수업을 하는데 한참 같이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제가 책 한 권씩을 준다.
“자 한 권 두 권.”
어떤 때는 하루에 댓 권씩 책이 갈 때도 있다. 4명이 앉아서 카톡으로 책이 왔다 갔다 하지만 책은 한 번도 왔다 갔다 하지도 않고, 아무리 많이 줘도 0g이다.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은데 분명히 가기는 가고, 보기는 본다.
그러니까 ‘이수사변(理隨事變) 사득이융(事得理融) 진망교철(眞妄交徹)’이다.
진짜와 허망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진망교철, 망이 바로 진이고 진이 바로 망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똑같다.
화엄경은 흔히 그걸 갖다가 ‘일일중생 앞에 전부 부처님이 다 현전하셨다’ 라고 얘기한다.
승음보살장(勝音菩薩章) 수승한 음성의 보살 게송이 무엇인가?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객관적인 것이 아니고 나한테 대입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내가 이 생각 저 생각, 희노애락 다 따라다녀도, 나는 어디 한 군데도 간 적이 없고, 내 침대에 늘 자고 있었다.
내가 이 꿈 저 꿈 다 꿔봐도 꿈에 가본 적도 없다.
“아유 스님이 어젯밤 제 꿈에 나왔는데요?”
“내가 느그 집에 가지 않았다.”
일체법에 집착이 없고 일체 짓는 업, 소작에 집착이 없다.
작업이 업이다. 업에 집착이 없고
어일체선근(於一切善根)에 : 일체선근에도
무착(無着)하며 : 집착이 없다.
금강경에도 ‘부주색보시(不住色布施)하고 부주성향미촉법보시(不住聲香味觸法布施)’이라고 나온다. 금강경도 화엄경과 이런 식으로 다 연결이 된다.
어일체수생처(於一切受生處)에 : 일체수생처에
무착(無着)하며 : 무착이다.
‘나는 좋은 집에, 부잣집에 태어날 거야’ 요새는 애완동물들이 부잣집에서 잘 먹고 잘사니까 ‘나는 저 집에 가서 다음생에 개라도 될거야’ 이런 사람도 있다.
발원을 해도 희한한 발원을 한다.
차 타고 다니고 옷 좋은 거 입고 다니는 애들 개 고양이 있잖은가. ‘나는 저 집에 가서 개로 태어난다’는 사람도 있고 고양이로 태어난다는 사람도 있다.
화엄경을 못 보니까 같이 놀 수준이 아니다.
그런 분들이 여기 문수선원에 오면 어떨 것 같은가? 잔다. 잠잠하다.
어일체원(於一切願)에 :일체원에
무착(無着)하며 : 집착이 없고. 무원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원력이 없어서 무원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바라는 바가 하나도 없다’ 이런 뜻이다.
어일체행(於一切行)에 :일체의 행에
무착(無着)하며 :집착이 없고
어일체보살(於一切菩薩)에 :일체보살에
무착(無着)하며 :집착이 없다.
잘난 사람한테도 집착이 없는데 못난 사람한테는 더 없어야 된다. 불사선 불사악이라.
“시집가면 좋은 일 하나도 하지 말래이. 착한 일 하지 마.”
“그럼 못된 일을 할까요?”
“착한 일도 안 하는데 못된 일은 더 안 해야 된다.”
어일체불(於一切佛)에 :일체 부처님의
무착(無着)이 : 집착이 없는 것이
시위십(是爲十)이니 :열 가지다.
결론은 부처님이다. 결론은 보살까지 갔다가 부처님까지 갔다가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이러한 법에 안주하면
즉능속전일체중상(則能速轉一切衆想)하야 :곧 즉능 속전 일체중상이라. 능히 모든 생각들을 돌려
득무상청정지혜(得無上淸淨智慧)니라 : 득무상청정지혜이니라. 위 없는 청정한 지혜를 얻는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말을 이렇게 바꿔놓든지 저렇게 바꿔놓든지 상관없다.
나. 菩薩의 十種平等心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平等心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積集一切功德平等心과 發一切差別願平等心과 於一切衆生身에 平等心과 於一切衆生業報에 平等心과 於一切法에 平等心과 於一切淨穢國土에 平等心과 於一切衆生解에 平等心과 於一切行에 無所分別平等心과 於一切佛力無畏에 平等心과 於一切如來智慧에 平等心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平等心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평등한 마음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공덕을 모으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차별한 소원을 내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중생의 몸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중생의 업보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법에 평등한 마음이니라.
일체 깨끗하고 더러운 국토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중생의 알음알이에 평등한 마음과, 일체 행에 분별할 것 없는 평등한 마음과, 일체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는 데 평등한 마음과, 일체 여래의 지혜에 평등한 마음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그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크게 평등한 마음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평등심(十種平等心)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평등심(有十種平等心)하니 :또 열 가지의 평등심이 있다.
하등(何等)이 : 어떤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의 평등한 마음인가.
소위적집일체공덕평등심(所謂積集一切功德平等心)과 :이른바 모든 공덕을 모으는 평등한 마음과
발일체차별원평등심(發一切差別願平等心)과 : 모든 차별한 소원을 내는 평등한 마음이다. ‘이 사람도 잘 되게 해달라, 저 사람도 잘 되게 해달라’는 마음이다.
어일체중생신(於一切衆生身)에 : 일체중생의 몸에
평등심(平等心)과 : 평등심과
어일체중생업보(於一切衆生業報)에 :일체중생 업보의
평등심(平等心)과 : 평등심이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친소 이런 것을 다 떠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어일체법(於一切法)에 : 모든 법에
평등심(平等心)과 : 평등한 마음과
어일체정예국토(於一切淨穢國土)에 :일체의 정예, 지저분하다든지 깨끗하다든지 3D 직종이라도 청소부라도 하시고 똥차라도 다녀야 우리가 지금 깨끗하게 살 것이 아닌가. 사실은 깨끗하고 더러운 국토에
평등심(平等心)과 :평등한 마음과
어일체중생해(於一切衆生解)에 : 일체중생 알음알이의
평등심(平等心)과 : 평등한 마음과
어일체행(於一切行)에 : 일체행의
무소분별평등심(無所分別平等心과 : 분별하는 바가 없는 평등한 마음과
어일체불력무외(於一切佛力無畏)에 :일체 모든 부처님의 힘과 두려움 없는 데
평등심(平等心)과 : 평등한 마음과
어일체여래지혜(於一切如來智慧)에 :일체여래의 지혜, 부처님 여래 지혜의
평등심(平等心)이 : 평등한 마음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완전 평등심을 뭐라고 하는가? 정등(正等) 완전한 깨달음을 정각(正覺) 정등정각이라 하지 않는가.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이라고 한다.
등(等)자는 원래 계급 등자다. 1등, 2등, 3등 같은 등급, 그 등수가 없는 것이 평등이고 등수가 전부 다 똑같은 것, 누구든지 정정당당한 것이 정등이다. 그것이 정등이고 평등이고 동등이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약제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이 법에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평등심(則得如來無上大平等心)이니라 : 즉득여래 무상 대평등심이다.
크게 평등한 마음을 얻을 것이니라.
제9주 법왕자주까지 했다.
(10) 灌頂住
가. 菩薩의 十種出生智慧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出生智慧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知一切衆生解出生智慧와 知一切佛刹種種差別出生智慧와 知十方網分齊出生智慧와 知覆仰等一切世界出生智慧와 知一切法一性種種性廣大性出生智慧와 知一切種種身出生智慧와 知一切世間顚倒妄想에悉無所着出生智慧와 知一切法이 究竟皆以一道出離出生智慧와 知如來神力이 能入一切法界出生智慧와 知三世一切衆生의 佛種不斷出生智慧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於諸法에 無不了達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출생하는 지혜[出生智慧]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이해[解]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일체 부처님 세계의 갖가지 차별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시방 그물의 한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라.
엎어지고 잦혀진 등의 일체 세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일체 법의 한 성품과 갖가지 성품과 광대한 성품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일체 갖가지 몸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일체 세간의 뒤바뀌고 허망한 생각에 모두 집착한 데 없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라.
일체 법이 구경에는 다 한 길로 벗어남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여래의 신통한 힘이 일체 법계에 능히 들어감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세 세상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모든 법에 통달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
관정주(灌頂住)
*
보살(菩薩)의 십종출생지혜(十種出生智慧)
*
잘 아시다시피 관정(灌頂)의 정수리 정(頂)자는 아뇩다라, 무상, 최고, 최승, 최상을 뜻한다. 제일 꼭대기에 물을 부었다는 것은 왕위에 즉위한다는 뜻이다.
그것을 관정수기(灌頂授記)를 준다고 하는데 마정수기(摩頂授記)와 똑같은 뜻이다.
어떤 식물이든지 씨앗을 뿌려서 떡잎이 돋고 다시 본잎이 나고 줄기가 뻗고 꽃이 피고 또 다른 변화로서, 꽃과 전혀 다른 결과로 열매를 맺는다.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으로 갈 때마다 하나하나 쭉 흐르는 물이지만 하나의 고개를 넘어가는 맥락이 있다.
인생살이도 그렇다. 사람도 젖만 먹어야 될 때가 있고, 젖을 떼고 이유식을 거쳐서 밥을 먹을 때가 있다.
어린아이 시기, 소년 시기, 청소년기를 거치고,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쭉쭉 나가는데 계속 연결되어서 크는 것 같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갑자기 떡잎이 돋았다가 떡잎이 확 다 지고 새잎이 쑥 돋아나서 줄기를 쭉 뻗기도 한다. 어떤 가지에서 꽃이 확 핀다든지 꽃이 사그라들고 열매가 조롱조롱 달린다든지 열매가 익어간다든지 안에서 씨가 익어간다든지 각각의 다른 과정들이 있다.
공부를 하면서도 그런 것을 많이 느낀다.
그런 기준점이 되는 것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 묘각이다. 그리고 최고의 결과를 불과(佛果)라고 한다.
불과(佛果), 열매 안팎이 허공처럼 익어버린 것, 완전 여의주로 익어버린 것,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그런 것을 지금 우리가 계속 공부하고 있다.
곤충을 보더라도 곤충의 알이 있고, 유충 되는 애벌레가 굼벵이로 꼬물꼬물한다.
땅속에서 7년, 17년씩 굼벵이로 버틴다.
처음부터 알이 톡 튀어나와서 웨앵 울고 다닐 수가 없다.
일정한 시간 알의 과정을 계속 자기가 버티고 있다가 또 애벌레의 과정을 어느 정도 시간 지키고 있다가 드디어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서 어느 날 날개를 달고 나방이 되고 나비가 되어 훨훨 난다.
곤충이 그렇게 알이나 애벌레나 번데기나 성충의 과정을 거친다. 식물이나 물건도 마찬가지다.
아이패드 같은 물건도 이것이 하나 탄생할 때까지 연구실로부터 나오는 것이잖은가. 설계도로부터 건물이 하나 탄생하는 것까지 쭉 성장하는 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단계가 탁탁탁탁 드러날 뿐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몇 년 동안 쭉 공부를 한다.
서장(書狀)에 나오듯이 ‘한 삿대 올라가면 열 삿대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우리는 올라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는 화엄경이 굉장히 많이 늘었다. 엄청나게 늘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머리 나쁜 사람이 저 뒤에서 두 번째 앉아 있는 스님이다. 인물만 좋지 머리는 얼마나 나쁜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 화엄경 독송하는 것을 보니 유튜브 간경을 하는데 제가 꿇어앉아서 들을 정도로 엄청 울림이 있고 듣기가 좋다.
자기도 모르게 일정한 수준까지 비슷하게 가다가, 계란이 계속 계란인 줄 알았는데, 어느날 보니 병아리가 톡 튀어나와 버린다.
계란을 삼칠일 되기 전에 톡 튀어나오게 하면 못쓴다.
삼칠일까지는 계란으로 버티자. 그다음은 솜털이 난 병아리로 버티자. 그것도 지나고 나면 또 중닭이 되고 큰 닭이 된다.
그런 단계들이 있잖은가.
모든 것이 ‘아 저렇게 흘러가는구나’ 새 이파리가 야들야들 할 때는 다 따서 나물을 하고 억센 것으로는 안 한다.
지금 공부하는 과정도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이런 것이 다 그렇다.
이런 것을 가지고 제가 된장법문이다, 모심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비유를 해드렸다.
오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관정주까지 오면 엔간히 맥시멈까지 올라온 것이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야구공의 실밥이 몇 개인가?
정확하게 108개다.
108개인데 투심볼이 있고 포심볼이 있다.
스님들 혹시 아실지 모르는데 아나운서가 투심이라 하고 포심이라고 한다. 야구를 보면서 그런 걸 정확하게 알고 보는 것이, 여기 공부하면서 글 보면서 정확하게 하나하나 헤집어 보는 것이다.
그냥 ‘던지면 던졌지’가 아니다.
직구를 던질 때도 실밥 두 개에만 손가락을 걸쳐서 던지면 투심(two seam)이라고 하고, 네 개에 딱 걸치면 포심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4개에 걸쳐 던지는 것이 변화가 더 다양할 것이다. 실밥이 많이 걸쳤으니까 확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 어떤 것은 싱크볼이라고 해서 가다가 툭 떨어지는 볼도 있고 커브로 가는 것도 있고, 옆으로 돌아가는 것, 앞으로 가는 것이 있다. 야구선수도 볼 하나를 가지고 그렇게 다양하게 던진다.
그런데 아까 변재가 나오고 부처님께서도 설법할 때 ‘요 중생한테는 요렇게 해야 되고, 저 중생한테는 저렇게 해야 되고 굉장히 다양하게 해야 된다’ 이런 뜻으로 지금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어쨌든 관정주 들어가서 한번 보자.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출생지혜(有十種出生智慧)하니 : 십종 출생 지혜하니
하등(何等)이 : 하등이
위십(爲十)고 : 위십고. 열 가지 출생하는 지혜가 있다. 어떤 지혜가 뻗어져 나오느냐
소위지일체중생해출생지혜(所謂知一切衆生解出生智慧)와 :이른바 여기서 열 가지 출생 지혜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인가? 십주 중에서 제일 마지막이니까 당연히 출생 지혜가 되어야 점안을 하지 않는가? 출생 지혜가 나와야 한다. 일체중생의 지혜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며
지일체불찰종종차별출생지혜(知一切佛刹種種差別出生智慧)와:일체불찰 종종 차별 출생 지혜라. 부처님 세계 갖가지 차별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고
지시방망분제출생지혜(知十方網分齊出生智慧)와 : 시방 인연의 그물의 분제 ‘어디서 어디까지 연결되었다’ 길고 짧은 정도를 아는 지혜다. 시방 그물의 한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고
지복앙등일체세계출생지혜(知覆仰等一切世界出生智慧)와: 어떤 세계는 엎어지고 어떤 세계는 잦혀지고, 어떤 세계는 내가 마음에 드는 세계이고 엎어지는 세계이고, 어떤 세계는 내가 자빠지는 세계이고 마음에 안 드는 세계다.
사람도 아주 되바라진 사람도 있고 그렇잖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그런 따위의 모든 세계를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다.
보살 수행자는 어디에 가더라도 ‘묶어놔도 자유롭고 풀어놔도 방만하지 않다’ 이런 뜻일 것이다.
지일체법일성종종성광대성출생지혜(知一切法一性種種性廣大性出生智慧)와 : 모든 법의 한 성품과 갖가지 성품, 일성도 알고 종종성도 알고 종종성 보다 더 나아가서 광대성도 안다. 광대성 한 성품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며
지일체종종신출생지혜(知一切種種身出生智慧)와 :일체 종종신 갖가지의 몸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며
지일체세간전도망상(知一切世間顚倒妄想)에 :지일체세간 전도 망상에
실무소착출생지혜(悉無所着出生智慧)와 : 실무소착, 일체 세간살이라고 하는 것에 전도망상을 실무소착이라.
실무소착을 한 자로 딱 줄이면 떠날 리(離)자일 것이다.
일체세간전도망상을 줄이면 세간(世間) 두 자일 것이다.
그러면 이세간품이다.
그러니까 제일 마지막에 일곱 번째까지 이렇게 왔다.
일체세간의 전도망상에 모두 다 집착하는 데 없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와.
지일체법이 모든 법이 어떠냐? 일체법이 본래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 즉심자성이다. 마음의 자성이다. 마음의 자성인데 어쩌란 말이냐? 마음의 자성이 본래 없지 않느냐? 자성이 무소유지 않느냐?
그래서 육조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인데 하처(何處)에 야진애(惹塵埃)냐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그 어디에 번뇌가 있었더란 말이냐’ 라고 했다.
*
지일체법(知一切法)이 : 일체법이
구경개이일도출리출생지혜(究竟皆以一道出離出生智慧)와 : 구경에, 필경에는 개이일도출리출생하는 지혜라. 모든 법이 필경에는 한 길로 벗어남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다.
번뜩 떠오르는 것은 보살문명품의 현수보살의 게송이다.
화엄경에서는 현수보살이고, 원각경에서는 현선수보살(賢善首菩薩)이다.
제가 큰 강백스님께 여쭤보았다.
“스님,현선수가 현수지요?”
하니까
“응, 현선수가 현수지.”하셨다.
원효스님께서 좋아하시는 게송이 무엇인가?
일체무애인(一切無礙人)은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라.
모든 부처님은 무애인은 소지장(所知障)과 번뇌장(煩惱障)을 다 탈피해 버리기 때문에 일체무애라. 부처님을 무애인이라고 한다. 구경에는 일도출생사라. 한길로 벗어났다. 마음을 의지해서 벗어났다. 필경에는 한길로 벗어난 줄 알고 일도로 출생하는 지혜이고
지여래신력(知如來神力)이 : 여래의 신통한 힘이
능입일체법계출생지혜(能入一切法界出生智慧)와 : 능입, 나왔다. 능입, 그러니까 각 회차에 삼매에 드는 것도 전부 다 능입이다. 능입해인삼매, 능입무량방편삼매, 능입선사유삼매, 능입보살지광삼매, 능입보살대지광삼매, 능입찰나제삼매, 능입불화장엄삼매, 능입사자빈신삼매 그렇게 나온다.
능입 들어간다. 입이라는 것이 ‘깨닫는다, 들어간다, 심오한 것을 안다’ 이런 뜻이다.
일체의 법계에 능입해서 모든 법계에 능히 들어감을 알고 환히 깨닫는 출세간의 지혜다.
지삼세일체중생(知三世一切衆生)의 : 지삼세일체중생의, 삼세 일체 중생의
불종부단출생지혜(佛種不斷出生智慧)가 :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을 안다.
삼세중생이 불종부단고라.
기신론에 이대목이 고대로 나온다. 불종부단고(佛種不斷故)로,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게 하고자 이 논을 짓는다’ 이렇게 해놓았다.
‘유법(有法)이 능기마하연신근고(能起摩訶衍信根故)로, 이 법이 있어서 마하연 대승에 대한 믿음, 선근의 공덕의 뿌리를 일으킬 수 있는 까닭으로 이 기신론을 설한다’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고자 하기 때문에 설한다’ 라고 해놓았다.
부처님의 종자를 끊지 않음을 알고 출생하는 지혜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라.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즉어제법(則於諸法)에 : 모든 법에
무불요달(無不了達)이니라 : 통달하지 못함이 없느니라.
나. 菩薩의 十種變化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變化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一切衆生變化와 一切身變化와 一切刹變化와 一切供養變化와 一切音聲變化와 一切行願變化와 一切敎化調伏衆生變化와 一切成正覺變化와 一切說法變化와 一切加持變化가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此法하면 則得具足一切無上變化法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변화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의 변화와, 일체 몸의 변화와, 일체 세계의 변화와, 일체 공양의 변화와, 일체 음성의 변화이니라.
일체 행과 원의 변화와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는 모든 변화와, 일체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변화와, 일체 법을 말하는 변화와 일체 가지(加持)하는 변화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온갖 위없이 변화하는 법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변화(十種變化)
*
불자(佛子)야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변화(有十種變化)하니 : 열 가지 변화가 있으니
하등(何等)이 : 어떠한 것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냐.
여기서부터 두 번째 단락이 되겠다.
변화해서 있다고 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라는 말이다.
보화비진요망연(報化非眞了妄緣)이라. 보신 화신은 망령된 인연이다.
소위일체중생변화(所謂一切衆生變化)와 :일체 중생의 변화와
일체신변화(一切身變化)와 : 일체 몸의 변화와
일체찰변화(一切刹變化)와 : 일체 세계의 변화와
일체공양변화(一切供養變化)와 : 일체 공양 변화와
일체음성변화(一切音聲變化)와 : 일체 음성의 변화와
*
일체행원변화(一切行願變化)와 :일체 행원의 변화.
제가 범어사에 94년도에 와서 올해 딱 31년 만 30년을 살았는데 그대로 남아있는 법당이 하나도 없다.
전부 기와를 번와(翻瓦)하든지 대웅전도 번와를 새로 했고, 관음전도 새로 했다. 지장전 하나가 불났던 것을 늦게 지어서 그냥 하나 있다. 팔상전 새로 짓고, 서지전 새로 다시 번와하고, 다 서까래를 갈았다.
주지실 뜯고 새로 짓고 제가 있는 방 패엽실 새로 뜯고 짓고, 원주실 새로 뜯고 짓고, 보제루 그 큰 법당을 다 뜯고 새로 지었다.
종무소 새로 법당 번와하고, 해행당 다 뜯어버리고 없애버리고 설법전 지어버리고, 제가 와서 강주스님 방 새로 뜯고 지었다. 휴휴정사도 두 번이나 새로 뜯고 지었다.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보니 제가 여기 있은 지 30년 밖에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모든 전각을 쏴악 물갈이 다 했다.
노스님들도 얼마나 많이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우리도 이제 멀지 않았다.
스쳐가는 인연들을, 나한테 왔던 것, 가는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다. 변화에 대해서 너무 집착할 것도 없다.
일체교화조복중생변화(一切敎化調伏衆生變化)와 :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하는 모든 변화와
일체성정각변화(一切成正覺變化)와 :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모든 변화와
일체설법변화(一切說法變化)와 : 법을 말하는 모든 변화와
일체가지변화(一切加持變化)가 :모든 가지하는 변화이니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다.
그 변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한 것이 무엇인가?
재행무상(諸行無常)이다.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약 이 보살들이
안주차법(安住此法)하면 : 이러한 법에 안주하면
즉득구족일체무상변화법(則得具足一切無上變化法)이니라 : 즉득구족일체무상변화법이다.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바로 온갖 위없는 변화법을 구족하게 되느니라.
이래서 종경록(宗鏡錄) 같은 데는 이렇게 해놓았다.
자벌레를 아실 것이다. 자벌레가 녹색 이파리를 먹으면 녹색이 되고, 갈색 잎을 먹으면 갈색이 된다.
중도 인간 카멜레온이 될 필요가 있다.
제일 대표적인 분이 누구인가?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그다음 두 번째 은메달은 32응신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다.
그런 분들이 변화하는 것은 변화가 실(實)은 아닌 줄 알지만 변화를 통해서 실(實)로 갈 수밖에 없기때문에 변화하는 것이다.
소발자국이 실제로 소는 아니지만 소발자국이 아니면, 소똥이 소는 아니지만 소똥으로 인해서 소를 찾는다.
마노라(摩怒羅)존자의 게송이 이렇다.
수류인득성(水流認得性)하면 분별심을 화두로 들었지만 이 분별심이 의식이 끊어져 버리면, 나의 견성자리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무의식 상태로는 화두를 못드니까 명료의식을 가지고 화두를 들지만 결국은 이 명료의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놈을 앞잡이 세워서 무의식의 세계로까지, 끝까지 돌진해서 견성자리, 심성까지 들어간다.
심성은 무의식이잖은가. 그렇게 되면 5식 6식 7식 8식이 전부 일심(一心)에서 한 몸, 한 뭉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가르칠 때까지는 따로 분별하고 ‘이것의 능력이 어떻고’ 하지만 돌아보면 한 솥에 같이 삶아진 것이다.
|
첫댓글 사람도 화엄경이 녹으면, 글자가 녹으면, 자연수행이 되어서 구절구절이 자기들 일상생활을 할 때 방편으로 가서 지혜가 나올 것 같다....고맙습니다 _()()()_
_()()()_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_()()()_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