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판장에겐 함께 낮술을 즐길 수 있는 친구가 몇 있습니다. 다들 멀쩡한 직장에 근무하지만 부러 평일 중에 전일 또는 반일 휴무를 할 수 있게 근무일정을 조정해 놓았습니다. 딱히 갑판장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서도 종종 함께 어울려 낮술을 즐기곤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의 입맛이 다 제각각이고 또 각자의 자리에서 한 성깔하는 캐릭터들이라 각각의 주장을 다 들어주려다 보면 갑판장이 만족스럽질 않습니다. 갑판장도 강구막회에 몸을 담기 전이라면 이런저런 모임이 잦다보니 그닥 만족스럽지 않은 자리라도 별 내색을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빛을 내주곤 했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릅니다. 외식업종사자들은 남들이 놀고 먹을 때가 오히려 더 바쁜 서비스업이라 업무에 충실하려면 이런저런 모임에서는 발을 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모임은 갑판장의 업무시간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니 간간히 갖는 모임이 더욱 반갑기도 하지만 그 시간을 최대한 즐겨야겠다는 마음도 앞섭니다. 좋기로는 나도 즐겁고 상대방도 즐거우면 더 할 나위가 없겠지만 어디 그러기가 쉽습니까. 차선으로 나라도 즐거울 수 있는 모임이라면 가급적 참석을 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즐거운데 내가 즐겁지 않거나 또는 상대방도 나도 즐겁지 않은 경우라면 굳이 소중한 기회비용을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암튼 지난 수요일 낮에는 셋이 모였습니다. 제철은 아니지만 간만에 복지리를 먹기로 약속을 정했습니다. 복이 먹고플 땐 대개 단골 일식집에 미리 특별주문을 넣어 코스로 즐기거나 충무로 뒷골목에 있는 복집에서 지극히 서민적인 복매운탕 국물을 안주삼아 소줏잔을 기울였습니다.
단골 일식집에서 풀코스로 먹자니 제철이 아니라 들인 비용에 비해 만족도가 떨어지겠고, 지극히 서민적인 식당의 냉동복매운탕 맛이야 뻔 할테니 이 날은 입맛이 그닥 동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끄집어 낸 것이 낙원동 대복집의 복지리였습니다. 거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은 비용과 분위기라 아저씨 서넛이서 낮술 한 잔 찌끄리기에 딱입니다.
갑판장은 냉동복이라면 다진 마늘을 왕창 넣은 칼칼한 매운탕으로 즐기지만 어느 정도 맛을 기대할 수 있는 복집에서라면 수육이나 지리(맑은탕)로 즐깁니다.
냄비속을 살펴보니 오늘은 까치복입니다. 아마도 당일 사정에 따라 까치복과 밀복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회가 포함된 풀코스가 아니라면 굳이 값비싼 참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입니다. 어정쩡한 크기의 참복보다 차라리 씨알이 큰 밀복이나 까치복이 탕거리로는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좋기로는 2~3kg급 이상이라야 복 좀 먹었내 하며 트림이라도 시원하게 할테지만 대개의 식당에선 언감생신입니다.
대복집의 복지리는 인당 두 토막 정도 내줍니다. 개인당 내주는 와사비간장은 갈은 배로 맛을 보탰습니다. 냄비 바닥에 깔린 콩나물은 국물을 시원하게 내는 역할로만 쓰라는 듯 양이 좀 아쉽습니다만 그 대신 미나리 인심은 후합니다. 뻘겋게 무친 복껍질무침이 이 날은 살짝 군덕내가 비치고 미나리의 숨이 다소 죽어 있어 그냥저냥 먹을 만은 했습니다만 복지리의 맛에는 못 미쳤습니다. 그래도 따로 값을 받는 것이 아니니 감지덕지입니다.
맛난 복집에선 복지느러미로 맛을 낸 히레술을 안 마시면 좀 섭섭합니다. 대복집에서라면 히레소주가 맞춤입니다. 비록 희석식소주지만 두 홉들이 스뎅주전자에 부어 따끈하게 내주기에 구수하니 복지리랑 궁합이 좋습니다.
2013년 구월 초순에 아저씨 셋이서 낙원동 대복집에서 복지리 3인분, 볶은밥 두 공기, 병맥주 한 병, 히레소주 한 주전자를 먹고 마시고 7만9천원을 지불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첫댓글 아하! 모임공지를 올려드렸는데 반응이 없으실 때는 그런 의미셨던 것이군요.
괜히 전화까지 해서 확인해드려 죄송합니다 ㅋㅋ
p.s 까치가 저깄네.. 저기 앞접시에 있었네...
까치가 그 까치나 저 까치는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