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의 풀어 쓴 한자 이야기 -04. 존경(尊敬)
2004년 9월 공직에 임용되었다. 의령군수로부터 임용장을 받은 날, 지인 한 명 없는 이곳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하려니 앞날이 막막하였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올려다본 밤하늘은 어둡기만 하였고, 사방에서 풀벌레 울음소리는 요란했다. 우두망찰, 한참을 서 있으려니 북극성이 필자를 향해 깜빡이고 있는 게 아닌가! 순간, 잃었던 길을 되찾은 것처럼 위로와도 같이 용기가 샘 솟았다. 대관소찰, 자세히 보니 다른 별들도 다 제자리에서 묵묵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공직 생활의 명확한 실마리를 종잡을 순 없었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북극성이 일러주고 있었다.
고대로부터 선원들이 길잡이로 여겼던 것이 북극성, 순우리말로 붙박이별이다. 선원들이 풍랑을 만나 길을 잃고 정처 없이 조류에 떠밀려 갈 때, 비구름 사이로 그 별을 보았을 때의 심정이 필자와 같았으리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는 북극성이 선원들에게는 존경을 넘어 신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때부터 붙박이별과 같이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았고 필자의 심정에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떠 올랐다.
다산을 사숙(私淑)하며 여유당 정약용 선생의 한문 서적을 원문으로 읽고 싶어 한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장에 꽂혀있는 스물 여권의 한자 관련 책들이 그동안 노심초사한 필자의 열정을 대변해 준다. 그리고 존경의 대상으로 품은 다산 선생의 관련 책도 열다섯 권이 넘는다. 이에 존경의 대상인 다산 선생을 사숙하듯 존경(尊敬)이라는 한자를 풀이해 보고자 한다.
공경할 존(尊)는 술익을 추(酋)에 법도 촌(寸)이 결합 된 한자이다. 전자는 다시 ‘나눈다’를 의미하는 나눌 팔(八)과 술을 담는 그릇을 형상화한 술 유(酉)로 파자해볼 수 있다. 후자는 한의사가 환자의 손목 맥박을 짚는 모양을 형상화 한 글자로‘헤아리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맥을 짚을 때의 엄지손가락의 길이로 한 치(3.03㎝) 등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나아가‘작다’와 촌수의 뜻으로도 사용되는데 촌지(寸志:얼마 안 되는 작은 뜻)와 촌수(寸數:친족 사이의 멀고 가까운 관계)가 용례가 된다. 공경할 존을 이루는 한자를 종합해서 풀이하자면,‘술병을 법도에 맞추어 제삿상, 또는 윗사람에게 바친다’하여‘공경하다’‘높이다’의 뜻이 된다. 존귀(尊貴)와 자존심(自尊心)이 좋은 용례가 될 수 있다.
공경할 경(敬)은 진실할 구(苟)에 칠 복(攵=攴)을 짝지운 글자다. 전자는 땅 위에 풀이 자라는 모양을 본뜬 글자인 풀 초(艹=草)와 손으로 물건을 감싸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쌀 포(勹)에 입 구(口)로 조합된 한자인 굽을 구(句)로 파자해 볼 수 있다. 풀이해 보면, 풀이 다 자라면 일자로 꼿꼿이 서 있지 아니하고 바람 등에 의해 굽어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후자는 점을 치는 나뭇가지를 의미하는 모양자 점 복(卜)에, 오른손의 모양을 본뜬 자로 오른손을 자꾸 쓴다는 뜻에서 또 다시의 의미를 내포하는 또 우(又)가 결합 된 한자이다. 오른손에 회초리를 잡고 종아리를 치는 형국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공경할 경을 풀이해 보면 회초리를 들고 부모나 스승의 심정으로 성심껏 가르쳐 주는 분을 진심으로 공경한다는 뜻이다. 경의(敬意:공경하는 마음)가 이에 알맞은 용례이다.
요즘 탄핵으로 전국이 혼란스럽고 팍팍한 삶 속에서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까? 필자에게는 두 분이 계십니다. 공직자로서 이승을 하직한 분으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계시고, 필자와 동시대인으로 사는 전직 공무원도 계신다. 바로〈달팽이〉란 시집을 일곱 번째로 상재한 분이다. 그분의 시 한 수를 소개해 본다.
사람들이 나더러/ 느리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이 아니고/ 토끼가 아니고/ 참새가 아니다/ 그들과 다투어서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이 걸음이/ 가장 빠르고/ 가장 유연하다/ 그러면서 누릴 것 다 누리며/ 생존의 의미를 지켜간다/ 나는/ 그들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산다/ 나는/ 달팽이다// - 윤재환 「달팽이」전문, 달팽이가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달팽이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교훈을 주는 시를 읽고 시인을 더 존경하게 되었다.
벌써 공직 생활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좌충우돌 천방지축 사연도 많았지만 이젠 최소한 올곧은 공직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알게 모르게 필자를 이끌어준 동료와 선후배들 덕분이리라. 그들에게 허리 숙여 감사 인사와 함께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필자 또한 북극성은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는 공직자로 탈 없이 퇴직하고 싶은 것이 작은 바람이다.
※ 사숙(私淑) :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
尊 | = | 酋 | ( | 八 | + | 酉 | ) | + | 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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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경할 존 |
| 술익을 추 |
| 나눌 팔 |
| 술 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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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도 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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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 | = | 苟 | ( | 艹 | + | 句 | ) | + | 攴 | ( | 卜 | + | 又 | ) |
공경할 경 |
| 진실로 구 |
| 풀 초 |
| 굽을 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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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 복 |
| 점 복 |
| 또 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