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목요일 시간은 늦었지만 김해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고 먼저 청도로 갔더니 마침 장날이였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청도에서 잠시 영업을 하다가 처음에 전도와 일을 하기로 하였던 목적지는 밀양이였기에 밀양으로 향했습니다.
밀양 시내에 접어들기 전에 주위에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이는데 그곳에 영업을 할 수 있는 자동차가 보여서 주차를 하고는 자동차 주인을 찾았습니다. 차주는 고추농사를 하시는 분이셨는데 그냥 영업을 하면 안할 것 같아서 고추한박스를
살테니까 하시라고 설득을 하였더니 고추 10키로 한박스 가격을 4만원으로 계산하고 작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고추가 전부 자라는데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듣게되어 하나님의 섭리의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사실 채소와 열매가 몇달 만에 열린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동을 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채소와 열매들을 금방 자라게 하셔서 큰 수고로움이 없이 우리들이 먹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자동차에 맞는 페인트가 없어서 가까운 기아자동차 부품상사에 다녀왔는데 현대도 있고 정비소를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차량 주인을 알려주신 다른 고추농사를 하시는 분께서 만원에 헤드라이트 한쪽 복원을 부탁하셔서
그렇게 해주었는데 커피도 주시고 사람은 좋으나 복음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곳을 지나서 밀양 하교 시간에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밀양강 옆 아파트에서 영업이 성사가 되어 일을 하는데 어느 믿는 여성도님께서 저의 자동차를 보시고는
관심을 가지시고 저에게 오셨고 작업을 보았던 많은 주민들이 저에게 명함을 달라며 문의도 하였습니다.
저녁의 김해에 도착하였습니다.
금요일 아침 비가 내렸으나 등교 시간에 차량으로 동김해를 다니며 차량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가 계속 내려서 일을 하지 못해서 집에서 휴식을 가지다가 김해 외동에서 헤드라이트 한개를 닦았는데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돈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로는 장유와 김해시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저녁에는 초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경기도에서 메르스 때문에
잠시 내려온 여동창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듣기로 경기도에는 메르스로 인하여
거리와 공공장소에 사람들이 없다는 얘기를 들으며 그 심각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처음에는 남자 동창 두명과 여자 동창 한명이 먼저 술 모임을 갖고 있었고 뒤에 도착하여
친구들의 얘기를 듣자니 친구들이 많은 고생을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회장을 맡고 있는 친구는 2살 정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다른 동창은 세상 물정을 알지 못하는
초등학교 시절에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여자 동창은 대학교 시절에 사업으로 잘나가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모와 삼촌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빼앗고 모욕적인 행동을 하여서 아주 큰 상처를 받게되어 지금도 그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고 자식들에게도 멀리해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친구들의 가정사를 들으면서 비록 믿음이 없고 화목한 가정은 아니었느나 부모님 슬하에서 어려움 없이 자란
나는 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그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 동창은 키도크고 미모도 좋은편인데 운동신경도 좋아서 학교를 다닐때 육상 대표로 나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연세대가 기독교 학교라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데 하루는 같은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가 멀쩡한 날씨에
눈이 내리면 학교를 휴학하고 6개월인가 1년 정도를 선교활동을 하겠다고 하였는데 그날에 진짜로 눈이 내려서
그 친구는 바로 휴학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자신에게는 신앙에 있어서 강한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지만 술은 아직도 마시고 있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토요일은 현충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집에서 현충일 행사를 보게 되었는데 박근혜 대통령이의 추념사와
배우 현빈의 시낭송이 인상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현충일을 맞아서 우리 나라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되었는데
아주 오래전에는 임진왜란으로 이 민족이 고난을 받고 근래에는 일제강점기와 6.25로 많은 고통을 당한 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런 과거의 슬픔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처럼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 되었고 현재의 평화와
번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서서 영업을 하는데 김해 어방동에서 영업이 성사가 되었고 하나는 김해 시내에서
작업을 해달라고 하였는데 알고보니 외국인 거리에서 옷장사를 하시는 분이셨으며 처음에 그곳을 제대로 찾아가지
못하여서 이번에도 저의 모자람을 절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김해 아버지와 저의 일당을 전부 벌게 되었으며 밥은 근처 모로코 식당에서 그 나라 음식을 먹게
되었는데 가격은 5천원 정도 하였으며 홍차가 아주 맛있었습니다. 사실 오래전 유럽 전도여행에서 스페인 남부
항구로 갔다가 스페인 아래에 있는 북 아프카 모로코로 배를 타고 가려고 하다가 처음부터 계획이 없었기에 가지를
않았었는데 아주 아쉬움이 남습니다.
일을 마치고 김해 시내에서 많은 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여호와증인들을 보게 되어 아주 씁쓸하였고 우리 한국 교회가 이단 못지않게 전도의 열심을 내었으면 하는
바램이 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