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세상 모든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행복일까.
영화 '
슈퍼스타'가 이야기하는 답은 불편이고
불안함이다. 거부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의 관심은 폭력에 가깝다. 관심에서 멀어지려 애를 쓰지만 그것조차 소리 없는 몸부림으로 치부될 뿐이다. 대중들의 밑도 끝도 없는 관심은 한 사람의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만들기 충분했고 또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불현듯 '내가 저런 상황에 처하면'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영화는 수많은
기자들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키 크고 잘 생긴 남성이나 예쁘고 섹시한 여성의 등장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막상 등장한 사람은 대머리에 평범한 회사원 마탕 카진스키였다. 영화가 시작하며 들기 시작한 의문. '과연 이 사람이 어떻게 슈퍼스타가 됐을까'라는 의문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점차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왜?'라는 의문은 더 이상 관객들의 몫이 아니다. 카진스키 본인조차 모르는 그 이유로 인해 주인공이 찾는 '내가 왜?'라는 의문이 영화를 주도해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그러한 의문에 대해 철저히 무시한다. 그저 세상의 관심과 사랑 또 핍박과 오해 속에서
상처 받고 망가져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신랄하게 그려낼 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이유조차 없는 것. 이는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삶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카진스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세상의 관심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돈과 권력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유혹하고 언론은 그를 이용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사랑하는 여자 플루 아나우드 역시도 그를 상업의 도구로 이용하고 만다. 그야말로 만신창이다. 업무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본연의 삶에서 버림받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이용당하고 결국 그에게 무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던 대중들에게 조차 왜곡된 사실로 인해 공격받게 된다.
사랑과 관심의
대상이던 주인공이 하루
아침에 비난과 혐오의 대상으로 떠오르자 다시 한 번 세상은 그를 매몰차게 차가운 맨바닥에 패대기친다. 그토록 유혹의 손길을 뻗치던 이들조차 차가운 냉대로 대할 뿐이다.
주인공은 세상을 향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다시는 반복되게 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지만 이조차도 철저하게 묵살당하고 만다. 이 상황을 책임져 줄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온전히 스스로가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원하던 원하지 않던 주인공에게 쏱아지는 비난과 비판은 오롯이 본인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문제였다. 여기에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언론'과 '
SNS'라는 또 다른 세상의 문제가 고스란히 영화에 투영되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뜻하지 않은 관심과 비난,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지만 결국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은 언론과 SNS를 통해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쉽게 판단해 관심을 갖기도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구에게도 사람을 판단할 자격은 없다. 그저 다름을 인정하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영화가 꼬집어 내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쉽게 왜곡될 수 있는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
그 사람이 그랬다는 듯이 비난과 비판을 쏟아낸다. 결국 상처 입은 이의 판단은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다행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주인공은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