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가 되면 기상 컨디션에 매우 민감합니다. 일단 머리가 맑으면
허허실실합니다. 연이어 삭신이 저리고 허리 아픈 곳이 없어야 벌떡
일어나게 되는데 오늘처럼 하체가 텐트를 치면 새색시마냥 수줍어
지면서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들뜬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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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다녀오느라 예배시간 10분 지각입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담임목사 용안이 씩씩해졌고 말씀도 지금까지 설교 중 가장 잘합니다.
'성막 인생(출40:34-36)'을 살라고 하십니다. '거룩함'으로 살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살라고 하십니다.' 성도가'미드바르'(광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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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 가장 말씀이 잘 들리기 때문에 '광야가 축복'이라고 하더이다.
축도가 끝나고 ‘좋으신 하나님’이 송영으로 온 몸을 포근히 감싸줘서
밥 먹으러1등으로 나갔는데 담임이 손을 잡아 주십니다. "1부 예배
나오시더니 2부에 나오셨네요." 오, 영광입니다. 메뉴는 비빔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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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먹어보는 교회 밥이 홀앗이 과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4시 양평 결혼식을 가야해서 혼자 한 참 바빴습니다. 염색을 하고
와이셔츠를 꺼냈는데 1년 동안 안 입은 셔츠라 깔이 별로입니다.
화이트 골프 콘셉트로 해야지 하다가 설마 신랑이 화이트 재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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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면 안 될 것 같아 새미 정장으로 최종 결정을 하고 구두 대신
구찌 어그 운동화로 포인트를 줬어요. 이동 시간이 1시간 반입니다.
꽃집에 들려 장미 한 다발을 사 싣고 열라 달렸어요. 홍천44번국도
바로 전까지 1시간 반을 달린 것 같은데 나비가 구 길로 안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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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서 양평 들락거리던 과거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습격해왔어요.
경춘가도 휴게소에 영업을 했고 청년들 데리고 수련회를 퍽도 많이
다녔습니다. 가평 사는 미경이는 잘 사나 모르겠습니다. 전국에 추억이
있고 곳곳에 지인이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늙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내 젊음을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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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다운다운 골목길에 예식장이 있다니 예외입니다. 야외 결혼식을
몇 번 다니긴 했지만 그중에 가장 멋진 장소 같기도 합니다. 누나랑
매형이 반겨 줬고 웬 꽃이냐고 물어서 신부 아버지 연설한다고 해서
센스 꽃다발이라고 말했어요. 오늘 신부 아버지가 저랑 갑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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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보다는 3살 많지만 제가 딸내미 시집보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부패에 들려 두 바퀴를 돌았는데 67,000원 부패가 먹을 게 없어서 떡
두 쪽과 믹스 커피 한 잔 하고 식장으로 갔습니다. 여수 큰 누나 부부,
김 장로 부부, 명희네 부부, 희정이 부부까지 6남매가 총 출동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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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누나가 파스텔 톤으로 멋을 잔뜩 냈지만 패션모델 명희네 모녀가
오늘 패션 1등입니다. 우리 막내는 이상해졌어요. 멋을 내지 않아서
그런가 어께가 축 쳐져 촌년처럼 불쌍해보여서 속상했습니다.
진호 재킷과 옥실이 양장이 엘레강스 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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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 깡패들도 둘 셋 보였고 담양 여고 누나들(미경, 명숙, 순녀)을
사진 찍다가 만났어요. 어찌나 반갑던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환갑 나이라 그런지 누나들이 다들 컨추리합니다. 여고생 때 보고 40년이
지났으니 격세지감이 당연하겠지요. 명옥이가 제 예쁘고 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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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 동갑 호중이가 축가를 불렀고 동두천에서 경찰을 하고 있다 네요.
식순에 따라 매형이 양가 부모를 대표해 주례 문을 낭독했어요. 10분
동안 차분히 원고를 읽어 가는데 제가 뭉클하더이다. 그래도 울진 않고
원고를 다 읽은 매형이 대견합니다. 누나는 배 아파 난 딸도 아닌데 왜
눈물을 찍는지 누구 아시나요? 싸우면서 정들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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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울음은 진실 너머에 가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우리 어머니도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그렇게 슬피 울더이다. 선친 부고에
장남인 저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이번에도 남의 결혼식 내내 우리
에예공 생각만 났더이다. 향후 5년 내에 에예공이 결혼을 한다면 큰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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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줘도 1억씩은 줘야 아빠 체면이 서는데 말입니다.
딸내미! 고마워 결혼 늦게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