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낯선 곳으로의 여행/靑石 전 성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간다면 그곳은 어떤 세상일까 혹은 아주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떤 사람일까 궁금증이 솟아나 호기심이 생긴다. 잔득 흥분한 가슴을 가라앉히고 숨을 조금 멈추며 익숙지 않은 고장의 공기를 찬찬히 들어 마시거나, 상대를 재빠르게 살피며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제법 그림이 그려지고 호기심이 조금 가라앉을 즈음에는 일말의 두려움이 겨드랑이 밑으로 살금살금 찾아온다. 우연한 만남으로 그쳐야 할지 아니면 사귐을 가져도 될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처음 가본 곳이라면 또 다시 가고 싶은 곳인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장소인지는 처음 보는 순간에 정해진다. 첫인상은 혼자만의 느낌이기에 실체적 사실이나 진실과는 관련이 없다.
경상북도 군위군은 처음 가 보는 고장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며칠 동안 흐리며 주춤하던 장맛비가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도봉문화원 옆 공터에서 오전 6시 반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길이 막히어 더디게 움직이며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선다. 경기도 광주부근을 지나자 차량들이 별로 없어서 신나게 달린다. 고속도로 주변 나무들은 비를 머금고 있어서 그런지 푸르고 푸르다. 관광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벗어나 강릉고속도로로 가다가 중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달리더니 충북 괴산 휴게소에서 잠시 멈춘다. 문화원 임원 중 한 분이 선물로 보내준 흰색 ‘절편’으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한다. 다행히 여기는 비가 내리지 않고 간간히 바람도 불고 습도도 높지 않아 더위를 느끼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조상의 얼과 문화를 찾아서 떠나는 탐방을 즐기면 그것대로 운치가 있을 것 같다.
버스는 문경과 영천을 지나서 오전 10시반경 군위에 도착한다. 군위로 들어가는 도로 좌우에는 산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길 주변 과수원에는 파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햇볕을 잘 받아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들어 먹음직스럽게 변할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니 잎이 무성한 커다란 나무에 간난 아기 주먹만 한 작은 열매들이 탐스럽게 열려있어 무슨 나무인가 궁금했는데 옆에 있는 분이 ‘호두나무’라고 가르쳐준다. 아아, 이 나무가 부럼으로 먹는 호두나무였구나, 처음 보는 모습이라 신기하다. 군위(軍威)는 경상북도 중앙에 위치한 곳으로, 동쪽은 영천시, 서쪽은 구미시, 남쪽은 대구시와 칠곡군 그리고 북쪽은 의성군과 접하고 있다. 군위군 최남단에 팔공산(1,193m)이 우뚝 솟아 대구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삼국시대 이전의 군위에 대한 역사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고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왕건의 군대가 주둔하였다고 한다. (도봉문화원 자료 참조)
현지 해설사 말씀을 들으며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군위군 아미타여래삼존석굴(국보109호)이다. 극락교을 건너자 눈앞에 보이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坐像), 서기 9세기경에 조성된 비로자나불은 자비스런 모습이라기보다는 조금 투박해 보인다. 경상도 지역 풍토에 어울리는 듯한 모습이다. 결가부좌한 부처님 왼손에 올려놓은 백 원 동전이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동전을 올려놓으며 간절한 염원을 빌었을지도 모른다. 삼존석굴(三尊石窟)은 통일신라시기에 조성된 석굴사원로, 석굴의 높이는 4.25m, 본존상은 2.18m, 우협시보살상은 1.92m, 좌협시보살상은 1.8m이다. 우리나라 석굴사원은 대부분 암벽에 마애불을 새기고, 그 위에 목조 전실(前室)을 세운 소규모의 석굴사원을 모방하고 있는데 비하여, 군위 삼존석굴은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안치한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거의 100년 정도 이른 시기에 조성되어 석굴암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도봉문화원 자료 참조) 부처님 모습을 가까이 보고 싶어 석굴로 가려고하니까 유물을 보존하기위한 보호조치로 접근할 수 없어 유감이다. 1960년대 초반 한 스님이 석청을 따면서 밧줄을 타고 절벽에서 내려오다가 발견했을 때에는 동굴 입구가 무성한 칡덩굴로 뒤덮여서 그 안에 삼존불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한다. 아찔한 절벽위에는 늠름한 모습의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한밤마을(대율리전통마을)이다. 마을 이름이 대야(大夜), 율리(栗里), 그 외에도 여러 번 바뀌어서 지금의 한밤마을로 정해졌다고 한다. 서기 950년 이래 부림홍씨의 집성마을로 영천최씨와 전주이씨 등이 함께 산다. 마을에는 팔공산에서 굴러왔다는 돌이 많아 아기자기한 자연석 돌담으로 경관이 아름답고 옛 정취를 풍기는 고가, 재실등이 있는데, 예약을 하면 고택에서 숙박할 수 있다. 산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있고, 마을 한가운데는 중요한 행사를 거행하던 ‘대율동중서당’이라는 커다란 대청이 있다. 주변에 몇 그루의 배롱나무가 요염한 포즈를 취하며 붉은 색 꽃을 자랑하고 있다. 전란을 한 번도 겪지 않았다는 한밤마을은 속세를 떠난 ‘무릉도원’같은 느낌을 준다. 제주도 돌담길과는 다른 분위기의 작고 귀여운 아름다운 돌담길 골목은 TV 연속극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서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오전 탐방을 마치고 ‘작은 영토’라는 음식점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이 잘 드셨다는 옹기그릇에 담긴 소고기시래깃국을 맛본다. 행복한 ‘바보밥상’이라 이름 지어진 밥상에는 소고기시래깃국, 장떡, 등겨장, 고등어구이, 장아찌, 제철채소 3색 나물 그리고 김치가 오른다. 정갈한 음식이 입맛을 돋우어 게눈 감추듯이 밥 한 그릇을 비우고 제일 먼저 식탁에서 일어선다. 처음 맛본 ‘등겨장’은 고운 보리쌀겨로 만드는 경상북도 지역의 별미라고 한다.
오후 첫 번째 방문지는 우리나라 3대 아름다운 간이역의 하나로 알려진 화본역(花本驛)이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 2월 영업을 개시한 중앙선 간이역인 화본역에는 옛 모습 그대로의 급수탑이 남아있고, 역의 외양은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여 사진 동호회의 촬영지로 유명하고, 여러 방송 프로그램의 무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역 광장에는 “꽃 진 물자리 젖꼭지 달렸네.....”로 시작하는 시인 박해수의 ‘화본역’ 시비가 세워져있다. 자두는 군위의 명물로 앙금 속에 자두를 넣은 자두빵도 팔고 있는데 먹어보지 못해 그 맛이 자못 궁금하다. 주차장 부근에는 자두나무가 꽤 많다. 비바람에 견디지 못한 자두들이 땅에 떨어져서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시큼한 자두를 무척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삼국유사를 지은 보각국사 일연스님과 관련 있는 인각사지(麟角寺址)이다. 강원도 영월군에 ‘무릉도원면’이 있듯이 인각사 절터가 있는 이곳의 행정구역명은 ‘삼국유사면’이다. 일연스님이 말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거주하시며, 고려 김부식이 대표로 저술한 정사인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는 우리민족의 전설과 설화가 담긴 ‘삼국유사’를 지은 곳이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으나 전화를 피해가지 못하였다. 인각사 보각국사탑비는 손상이 심한 상태인데, 오대산 월정사에 소장된 탁본 비문에 의하면 이 비를 세운 시기는 1295년(고려 충렬왕 21)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우리시대의 어른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가이다. 소박한 모습의 생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복원하며 기념관을 만들고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김수환 추기경다운 모습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내세우려는 듯한 손길이 보여서 아쉽다. 차분히 내리는 빗속에 우산을 쓰고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세상을 바꾸는 바보들을 위한 무대’ 아래에 제법 많은 옹기들이 놓여 있고, 옹기그릇에 써 놓은, “옹기는 ... 빚다, 질박하다, 견디다, 품다, 비우다, 숨쉬다”라는 글이 마음에 스며든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도봉문화원 관계자분이 2021년부터 문화재인 국보나 보물에 대하여 번호를 부여하는 제도가 폐지되어, 국보 제1호라고 하던 숭례문도 국보이고, 전국의 모든 국보나 보물도 일련번호가 없이 똑 같이 국보와 보물로 불린다고 알려준다. 군위군의 첫 인상은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수룩한 시골 사람 같은 느낌이다. 자연의 풍경을 간직하고 얄팍한 도시물이 들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산허리에서 내려온 깨끗한 공기를 마음껏 들어 마시니 속이 시원하다. 군위지역 탐방은 그 동안 다녀보았던 경상북도의 오지인 영양과 봉화처럼 세상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듯한 인상은 준다. 젊은 시절이라면 한적하고 고요하여 답답한 느낌도 들 수 있지만, 나이가 제법 든 지금은 복잡한 곳이 아니라 평온하고 느긋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군위 지역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세월 따라 나이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나 감정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다리가 떨릴 때가 아니라 가슴이 떨리는 젊은 날에 이곳저곳 다른 고장이나 나라를 다녀보면서 세상 견문을 넓히라고 하는 옛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202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