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영평동 2794번지(하천번지임) 영평동 882번지의 서쪽 길가
유형 ; 민간신앙(방사용탑)
시대 ; 조선∼현대
규격 : 거욱높이 86cm, 너비 36cm, 폭 27cm, 얼굴길이 36cm
기단 높이 114cm, 가로 200㎝, 세로 215cm
제주시 아라동에 속하는 영평 마을은 상동과 하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새가름(현 영평하동)은 원래 전못(영평동 500번지 일대)이라 불리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알무두내 마을인 이곳은 남과 북이 높은 분지로서 수구불통(水口不通)지대라 신체장애자가 많이 출생하고 청장년들이 단명하였다 한다. 마을이 위쪽(남쪽)으로 이주하여 살면 평안하고 자손만대에 영화를 누릴 것이라는 풍수학설에 의하여 새가름으로 이주했다. 맨 먼저 이주한 성씨는 부씨로서 세보의 기록에 의하면 1754년으로 기록되어 있다. 새로 이주한 곳인 영평하동도 오방(午方=남쪽)에 상여(喪輿)가 있는 형태여서 마을에 화재가 많았다.
대와 관련된 구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평하동은 午方에 상여(喪輿)가 있는 형태여서 마을에 화재가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화재로 인한 걱정이 많았는데 어느 날 고승이 지나가다가 午方에 거욱을 세우면 화재를 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고승의 말대로 午方인 자리에 거욱을 만들어 세웠다. 그 후에는 마을에 화재가 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거욱대는 하동 주거 밀집 지역 남쪽 100여 m 떨어진 곳 하천 동편에 있다. 현무암을 이용하여 불규칙하게 쌓아져 있는 대는 가로 240cm, 세로 200cm, 높이 120cm, 정도로 보통 방사용 탑에 비하면 크기가 작고 낮은 편이다. 대 위에는 돌하르방이라고 불리는 석상이 있다. 석상은 현무암을 이용하여 사람 형태로 거칠게 다듬질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94cm, 너비 29cm, 폭 19cm, 얼굴 높이 36cm, 얼굴 너비 25cm,이다. 코와 귀는 음각, 눈은 반양각, 입은 음각으로 처리되었다.
원래는 돌하르방 옆에 긴 나무에 열십자 모양의 나무를 걸쳐 세웠었다. 왼쪽 어깨로 포수가 총을 맨 것처럼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평하동은 원래 '남대북탑'이라 하여 남쪽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대를 세우고, 북쪽에는 허(虛)하기 때문에 주거 지역 북서쪽인 아라동 1136번지에 원뿔 형태로 탑을 세웠었다고 한다. 탑은 1980년경에 훼손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은 거욱대가 있는 지경을 '거욱대왓', 상여를 메고 가는 형태인 나즈막한 동산을 '상여동산'이라고 이름붙여져 있다.(제주민속유적 170∼171쪽, 제민일보 4328년 6월 7일 '제주도의 석조물')
거욱은 1998년 누가 도둑질해서 없어져 버렸고, 받침대는 2002년 하천공사와 관련하여 멸실되어 직육면체 모양으로 다시 축조했다. 석상은 2005년 12월에 새로 새겨 세웠다. 받침대에는 ‘거욱대 ; 이 거욱은 마을의 액운과 살(殺)을 막기 위해 설치한 석조물이다. 옛날 영평하동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남쪽(午方)에 상여동산이란 형태의 지형이라서 마을에 화재가 잦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던 중에 한 고승이 그 방편을 가르쳐 주므로 이곳에 거욱을 세우니 그로부터 화재가 면액(免厄)되었다고 한다. 그 후 거욱이 분실되어 2005년 12월에 새로 자각하여 세운다. 영평하동 마을회’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위의 글 중에 살(殺)은 살(煞)의 오기일 것이다.
《작성 2005.05.24. 보완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