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2&sid2=257&oid=001&aid=0002266761
딸아이더러 나물 씻으라 시켜놓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무심코 방을 들여다보니 남편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그저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푹 숙인 품이 열중해서 누가 오거나 말거나 아예 모르는 형국이다. 아까 밤 친다고 했는데?
슬쩍 들여다보니 화면에 차례상차림 그림이 떠 있다. 거 참.. 수십년 간 제사를 지내왔어도 여전히 헷갈리나보다. 하긴 더 오래 된 시아버님도 헷갈려하시니. 제사 때마다 지방을 쓰거나 병풍을 두르거나 퇴주 그릇을 놓거나 아니 그보다도 홍동육서니. 좌포우혜니 하면서 어른들 사이에 이런저런 작은 소리가 오가곤 했는데. 이제 그 일을 맡을 차례가 되었는가. 모든 일이 그렇듯 내 일이 아니면 무심코 하기 마련. 시키는 대로 하다가 막상 내 몫으로 돌아오면 보통 일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상차림.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막상 차릴라 치면 어려운 것이 명절 차례상이다. 설날엔 떡국 차례라야 하고 추석엔 송편 차례라야 하고 제사에는 진메 차례라야 하고. 주식도 달라지거니와 그 주식에 따라 차림도 달라진다. 변화야 많지 않지만 그 뻔한 절차가 어쩌자고 그리 헷갈리는지. 부침개 담는 순서도 각각 다르니 늘 헷갈린다. 어전, 육전, 소전.
습관이란 무서운 것이다. 안 지내면 되지. 간소하게 하면 되지. 늘 듣는 말이고 힘들고 시간 바빠 대강 하고 싶지만 결국에는 하던대로 하게 되고 파는 제사음식 많다 해도 못 미더워 하던 대로 하게 된다. 집안에 중병 앓는 이 있으면 안차려도 된다는 말은 그 중병 앓는 이 마음 편하라고 안할 수 없는 일이 된다. 하던 대로 해 놓아야 마음 편한 것은 아마도 사는 동안 익은 버릇 탓일 것이다. 아이들 군소리 없이 부모 돕는 것 역시 보아온 대로 되풀이 하는 탓일까.
보아온 덕분에 명절이면 부모 찾아가고 혹은 자식 찾아 역귀향하고 보아온 덕분에 명절이면 으레껏 차례상 차려 조상 기리고.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되풀이하는 일들. 진정으로 그 형식은 껍데기만 남은 걸까. 아이들의 마음속에 아이들의 기억속에 명절은 이어져 내려간다. 부모들 하던 모습 그대로.
잔뜩 찌푸려가면서 인터넷을 들여다보는 남편을 놓아두고 살그머니 빠져나온다. 덕분에 음식 하나가 늘었다. 생전 올리지 않던 잡채가 올라간 것. 늘 차례 지내고 먹을 음식이 마땅찮아 마음 먹고 해둔 잡채가 엉뚱하게 차례 잡숫는 음식이 되었다. 아무도 차례상 음식가지고 뭐라 하지 않는다. 준비하는 이 손에서 모든 일은 이루어지기 마련. 나 홀로 준비하는데다가 돕는 이라고는 아이들 뿐인데 아는 이가 누가 있나.
일찌감치 일어나 이틀 내내 마련한 음식을 식구 모두 바구니채 그릇채 솥단지채 들고와 시댁에 내려놓는다. 다시 데우고 아이들 시켜 담고 괴고.... 종합시험이 코앞인데...읽어야할 책 태산인데. 하루가 한 시간이 피처럼 아까운데. 이번 시험 떨어지면 한 학기 또 다시 고스란히 바쳐야 하는데..시간은 모두에게 평등하다. 내 세월도 흘러간다. 무슨 일을 하던 아랑곳하지 않고.
엊그제 병원에서 퇴원해 몸도 마음도 무척이나 편찮은 어머님은 하염없이 앉아만 있다가 시키는 대로 음식도 드시고 약도 드시고 걷기도 하고. 어리광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말도 어눌하고 행동도 느리고 어눌하고. 도무지 의식이라고는 없는 분 같다. 어머님이 저러시니 집안은 무덤이다. 하긴 집안에 중병 환자가 두 분이니. 지난 겨울에는 아버님이 이번 여름에는 어머님이.....돌아가실 날 받아놓은 것이나 다름 없는 아버님. 무거운 공기탓일까. 모두들 흐느적 거린다.
어디 나만 그럴까. 내 또래 아는 이들 모두 그 순간을 맞는다.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때'라는 것....반기지 않아도 의식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 과정처럼 반드시 치러야 할 과정처럼 노년과 병은 찾아온다. 그 노년의 모습이 살아온 성과 그대로라면, 정말이지 젊음을 바쳐 살아온 그 모습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라면.
빠진 음식 없나 머릿속으로 꼽아가면서 딸아이며 아들아이며 총 동원해 진설한 상차림 검토하면서 드는 생각.
내 삶이 언제 이렇게 흘러와버렸나. 내가 바라던 삶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아이들에게 은근히 기대려는 마음이 퍽 쓸쓸하다. 바라는 바 아무 것도 없지만 그저 제 몫만 해다오 싶은데.
|
|
첫댓글 제사 음식..참 많고 복잡하지만 진짜 먹을건 없습니다. 파 마늘 빼고 고춧가루도 빼고 간도 안보고 음식 해 놓으면 조상님들도 맛없다 안 드실 것 같은데...저희는 그냥 부모님 생전에 좋아 하시던 음식 해서 올립니다. 김치도 갈비찜도 삼겹살도...
그렇지요. 부모님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이 진짜인 것 같아요. 얼굴 본 선대야 그 마음이 통할테지만 후손으로 내려 갈수록 멀어지니.....
희야님의 마음도 몸도 무겁군요. 그래요. 하던 거니까 하는 게 습관이 되고, 풍습이 되고 어기자면 마음이 무겁지요. 저는 형님이 계셔서 형님 뜻을 따르지만 그 다음엔 조카들이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할 것 같아요. 어차피 시대를, 세월을 따라 가는 거니까요. 희야님 마음이 좀 가벼워졌음 좋겠습니다. 아직은 열심히 살아야 할 나이인걸요. 아리아리!^^*
그게....부모님 마음이 무거운 거지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어른들 마음이... 내 할 일 해나가노라면 그럭저럭 살아지겠지요. 명절은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모이면서 혹은 지나면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게 되니....이 세월 지나가면 내가 원했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조카들은....배우고 본 대로 하지 않을까요. 본받는다는 것이 의미를 지속한다면...형식이야 다소 달라지더라도 말이지요. 시대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정샘도 이해하실 것이고. 멀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요. 형식은 조금 달라지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또 지킬 거 지켜가면서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우리 생각과는 반대로 형제가 적은 후세대들은 어쩌면 지금의 이 풍습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워 우리보다 더 애써 지키려고 할지도 모르지요.
희야님...전 희야님 올린 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도 맏며느리여서 이제는 부모님 다 여의고 이제는 제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희야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이 참 힘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되뇌입니다. " 이것도 다 그냥 지나갈 것이야 " 하면서...희야씨 힘내세요.
아니요. 그냥 지나가지 않아요.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고 지나가지요. 고통을 겪으면서 삶에 대해서 공동체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마음을 여는 건 내 책임입니다.
맞습니다. 바라지님 말씀이 꼭 맞네요. 뭐든 다 지나가는 것이겠죠. 지나가기 때문에 가치 있기도 하구요. 아리아리!!
그래요. '지나갈 거야' 하고 되뇌는 것만으로도 한결 나은 때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