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맞잡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왼손의 일이 있고, 오른손의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은 손을 맞잡음으로 이뤄가지면
우리 하는 일 대부분은 손 놓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글을 쓸 때도, 물건을 들 때도
두 손은 함께이지만 따로 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한 직장에서 일하는 후배 사회사업가와 어떻게 지내야 하나고요.
늘 그렇듯, 우리는 '한시적 계약관계'라 했습니다.
사회사업 동료로 서로 격있게 지낼 뿐이라고 말입니다.
친밀하게 지내는 게 정말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관계 만족'은 직장 밖 다른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저처럼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지내는 가운데도 어떤 동료와는 친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참 고마운 일이요, 부러운 관계입니다.
친해지려 애쓰는 데 힘쓰지 않겠다 했습니다.
사회사업 하러 직장에 왔으니,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회사업에 관해 묻고 함께 공부하고 서로 격려합니다.
그렇죠. 어렵습니다. 그 적당한 거리가요.
그럴 때마다 양손을 바라봅니다.
후배 사회사업가를 지도하는 이유는 '당사자' 때문입니다.
당사자를 바르게 돕기 위하여 그를 만나는 후배 사회사업가를 지도합니다.
후배 사회사업가와 함께하는 이유도 같습니다.
함께 하면서도 따로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한시적 계약 관계이니) 주어진 진 시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하며
때때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로 만나고 싶습니다.
자유와 친밀의 균형, 관계 속에서 독립을 생각합니다.
언젠가 직장 동료 같은, 한시적 계약관계조차
사무치게 그리울 때도 있을 겁니다.
그때는 말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주지만, 서로에게 맡기지는 마십시오.
오직 생명의 손길만이 여러분의 마음을 담을 수 있습니다.
함께 서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마십시오.
성전의 기둥들은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는 서로의 그늘에서 자라지 못합니다.
Give your hearts, but not into each other’s keeping.
For only the hand of Life can contain your hearts.
And stand together, yet not too near together:
For the pillars of the temple stand apart,
And the oak tree and the cypress grow not in each other’s shadow.
시인 루미의 'On Marriage' 가운데, Coleman Barks 번역
나무는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눈을 감지 않아도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류시화 시인 <나무는> 가운데
첫댓글 적.당.한.거.리 그림책을 읽었습니다.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우리네 사이처럼.'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직장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양한 식물처럼 모두 다르고, 그에 맞는 손길이 다릅니다. 같지 않음을 받아들여 봅니다.
사회사업가와 사회사업가의 관계
당사자와 사회사업가의 관계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혼자 일한다는 이유로 실무자 네트워크에 에너지를 너무 쓰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당사자와 관계에서도 에너지를 쏟았는 지 돌아봅니다.
항상 사회사업가로서 고민할 수 있는 이야기 기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고경화 선생님, 고맙습니다. <적당한 거리>
사회사업 어떻게 하면 바르게, 잘하는지를 공부하는 자리에서
제게 위로를 기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로와 공감이 없다며 서운해 하기도 합니다.
자리를 잘못 보고 누운 겁니다.
사회사업 바르게 공부하는 곳에서 위로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위로는 다른 곳에서...
둘레에 좋은 관계, 위로와 공감의 관계,
지지와 격려의 관계가 없으니
직장에서 이를 충족하려 하는 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