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율댁 유씨의 도박
천석꾼 부자에 천하의 수전노 도 진사의 악취미는
기생도 싫고 처녀도 싫고 치마를 벗기는 여자는 오로지 유부녀다.
곱상한 찬모가 새로 들어왔는데 더더욱 도 진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행랑아범이 됐다.
이곳 풍천이 원래 도 진사의 고향은 아니고 은율에서 양반 대갓집 머슴으로 살았다.
그집 딸이 혼례를 올린 지 석달도 안돼 청상과부가 돼 친정에 돌아와 살다가
꽃 피고 새 우는 어느 봄날 디딜방앗간에서 목을 매는 걸 총각머슴인 도씨가 낫으로 밧줄을 끊어 살려냈다.
그 인연으로 유 대감이 몰래 혼인시켜 먼 곳인 이곳 풍천에 세간을 내준 것이다.
장인이 된 유 대감이 넉넉하게 돈 보따리를 챙겨줘 서른마지기나 되는 문전옥답을 사고
저잣거리에 가게도 사서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천석꾼 부자가 되더니 돈을 주고 진사 벼슬을 사서 양반 행세를 하기 시작하며
유부녀 치마를 벗기는 못된 버릇도 생겼다.
부인 은율댁 유씨는 남편 도 진사가 무슨 짓을 하든 모른 척 안방에서 사군자나 치고 아들딸 잘 키우고
때때로 도 진사가 사고를 치면 나서서 뒷수습을 했다.
도 진사는 사랑방에 박혀 부인이 내준 천자문 숙제를 하다가도 호시탐탐 찬모의 치마 벗길 궁리를 하며
빙긋이 웃었다. 기회는 쉽게 찾아왔다.
딱 십년 만에 유 대감이 사인교 가마를 보냈다.
회갑 때 손자와 손녀를 데리고 친정으로 오라는 아버지 유 대감의 서찰을 읽고 유씨는 만감이 교차해
눈물을 흠뻑 쏟았다.
도 진사는 은인이자 장인인 유 대감 회갑연에 가지 않기로 했다.
부인도 유 대감도 자기가 오지 않기를 원한다는 걸 도 진사는 알고 있었다.
산삼·녹용·경면주사·우황을 어렵게 구해 비단 보따리에 쌌다.
그것을 찬모 남편 행랑아범이 직접 들고 뒤따랐다.
은율까지는 머나먼 길이다.
첫날은 사십리를 걷고 날이 어두워져 주막에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비단 보따리를 유씨 방에 던져두고 행랑아범이 사라졌다.
가마꾼들도 그를 보지 못했다.
한식경이 지난 시간 도 진사네 사랑방에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찬모와 도진사가 일합을 치르고
막 이합째 들어갔는데 문고리째 빠지며 문이 열리고 시퍼런 낫을 치켜든 행랑아범이
눈에서 불을 활활 뿜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한 장날 터울 만에 친정 갔던 유씨가 돌아왔다.
상황 파악을 금방 한 유씨가 혀를 끌끌 차며 익숙한 솜씨로 뒷수습에 나섰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벽에 부딪혔다.
쌀 댓가마로부터 시작된 협상이 큰 논 다섯마지기로 커졌지만 행랑아범은 고개를 저었다.
논 열마지기에도 고개를 저어 유씨가 신경질적으로 “도대체 행랑아범이 원하는 게 뭐요?” 묻자
“열마지기도 싫고 스무마지기도 싫소!
내가 원하는 것은 눈에는 눈! 코에는 코! 안방마님을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방구석에 처박혀 얼굴을 두 무릎에 묻고 있던 도 진사가 “이 자식이 미쳤구나”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날 밤 찬모가 행랑아범에게 “논 열마지기? 어머나∼ 그거 받고 끝내세요.
나는 네마지기만 할 테니 오 서방이 여섯마지기 가지시오”라고 말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신 행랑아범이 “솔밭댁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시지요”라고 덧붙였다.
이튿날 사랑방에선 팽팽한 협상이 이어졌다.
행랑아범이 “이것이 마지막 제안이요. 논 스무마지기를 넘기든가 마님을 주시든가 택일하시오”라고 했다.
그때 안방마님 유씨가 “모두 나가시지요”라고 외쳤다.
행랑아범과 유씨만 남고 모두 나가자
안방마님이 요를 깔고 서슴없이 저고리와 치마를 벗고 고쟁이도 벗어 던졌다.
“그만 그만” 행랑아범이 손사래를 치면서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찬모가 들어와서 모깃소리만 하게 “그냥 열마지기로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안방마님이 단돈 백냥을 던지며
“여봐라, 이 연놈들을 대문 밖으로 쫓아내렷다!”라고 소리쳤다.
장맛비를 맞아 비 맞은 수탉 같은 몰골로 주막에 들어와 탁배기 한 호리병을 마시며 둘은 한숨을 토했다.
“욕심이 과하면 이 꼴이 나!”
두 연놈들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 탄식이다.
찬모는 이웃 고을 주막을 맴도는 창녀 들병이고 행랑아범은 떠도는 노름꾼이다.
도 진사는 매독에 걸려 이태 동안 고생했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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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과하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