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라고 불리던 정영일 선생님을 기억하십니까?
70~80년대 TV만 켜면 이 분이 나왔었는데...
특히 토요일 밤 TV명화극장에서 방영할 프로 안내를 맛깔스럽게 하셨던 분,
‘이 영화 놓치지 마세요.’라는 크로징멘트가 유명했었죠.
당시 천편일률의 신사복 정장을 파격적으로 입으셨던 분. 넥타이 대신 파스텔 톤의 머플러를 목에 두르거나, 목폴라 스웨터에 밝은 색의 체크무늬 양복 상의를 입고 다니셨던 분. 베레모에 파이프 담배, 굵은 검은 뿔테 안경. 정말 멋쟁이 신사였습니다.
저는 그 분을 80년대 중반 대우 사외보인 ‘삶과꿈’이라는 월간지를 만들 때 매달 영화평론을 써주는 필자로 만났습니다. 그 분은 항상 마감 날짜보다 넉넉하게 원고를 넘겨주셔서 ‘역시 신사는 다르구나 ‘라고 저는 생각했었습니다. 그것도 내가 찾아가지 않고 당신께서 직접 회사를 찾아와 전달해주었습니다. ‘마침 시내 나올 일이 있어서.....’
그런데 어느 달인가 마감일이 임박했는데도 그에게 연락이 없었습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지금이야 누구나 핸드폰이 있어서 연락하지만, 그때는 집전화가 안 되면 집으로 찾아가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고료 영수증에 나와 있는 그의 주소지로 찾아갔습니다.
그 주소지는 서대문 사거리와 독립문 중간쯤의 이면도로에 있는 한 허름한 식당이더군요. 저는 그의 집이 그의 외모만큼이나 멋진 집일 거라고 상상했었습니다. 빨간벽돌 이층집, 잔디가 깔린 작지만 잘 정돈된 정원, 해가 잘 드는 그의 서재에서 우아하신 사모님이 타주시는 커피를 마시며 그와 영화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하며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는 그 허름한 식당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혹시 정영일 선생님 댁 아닌가요?’ 주인인듯한 아주머니가 귀찮은 표정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랍니다. 마당을 건너 안쪽에 별채로 지은 조그만 방이 하나. 노크를 하니, 한참 만에 인기척이 납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초췌한 중늙은이....바로 정영일 선생님!
햇볕도 안 들어오는 골방. 그 좁은 방의 반 이상을 차지한 옷걸이에 걸린 옷들. 조그만 책상 위에 아슬아슬 쌓아놓은 책더미. 옷들 사이에 깔아놓은 지저분한 이부자리. 머리맡에 조그만 밥상. 그 위에 치우지 않은 음식이 남은 그릇들. 그리고 방안에 들어와 있는 엄청난 구두들.
그는 심한 독감몸살로 며칠째 앓고 있는 중이랍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혼자 사신 지 꽤 오래되었다고.... 그날 저는 그의 말년의 외로움과 가난을 고스란히 보고 말았습니다. 원고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고요, 몸조리 잘하시라고 원고료만 놓고 나왔습니다. 그 방에 있던 그 멋진 옷들과 구두들이 오히려 그를 더 외롭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결국 일어나지 못하고 얼마 후에 돌아가셨습니다.
밖에서의 모습과 안에서의 모습, 무대 위의 모습과 무대 뒤의 모습, 화장한 얼굴과 그것을 지운 얼굴, 프레임 안의 풍경과 프레임 밖의 풍경.....무수한 예를 들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것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어느 것이 진짜 나의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