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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텔라의 마음공부 >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글 | 스텔라 박 |
2013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Frozen)>은 전 세계적으로 12억76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디즈니 최고의 성공작이다. 한참 양분법적인 표현이 유행하던 시절, “이 세상 사람은 <겨울왕국>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었다.
영화가 나오면 가능한 한 빨리 극장에 가서 큰 화면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지만 2013년 겨울, 나는 바빠도 너무 바빴던 것 같다. 어영부영 극장 상영 기간을 놓치자 좀처럼 영화 볼 기회가 생기질 않았다.
여자아이들의 로망, <겨울왕국>
그렇다가 <겨울왕국>을 보게 된 것은 런던에 살고 있는 나의 예쁜 조카, 나오미 덕분이었다.
당시 3살이던 나오미는 <겨울왕국>과 함께 자란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로 앵앵 울 때엔 엄마(내 동생)가 <겨울왕국> 동영상을 틀어 울음을 그치게 했고,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먼저 부른 노래가 <겨울왕국>의 주제가인 <렛잇고(Let It Go)>였으며, 안나의 드레스와 엘사의 드레스를 각각 한 벌씩 갖고 있을 만큼 <겨울왕국> 사랑이 유별난 아이였다.
“당신을 보여주세요.
당신의 능력에게 다가가 그 안에서 새롭게 성장해봐요.
당신은 바로 평생 동안 당신이 기다려온 존재입니다.”
- <겨울왕국2> 중
<너를 보여줘(Show Yourself)>라는 엘사의 솔로곡 중
나오미는 LA 여행을 올 때에도 안나와 엘사의 드레스를 바리바리 챙겨왔다. 안나 드레스에 함께 곁들이는 약간의 흰 머리가 섞여 있는 헤어피스(Hair Piece)까지 가져왔을 정도이다. LA 방문 기간 동안 함께 게티 빌라에 간 나오미는 귀족의 성 같은 그곳을 슈퍼맨 가운처럼 끌리는 엘사의 드레스를 입고서 활보했다.
그러니 집에 <겨울왕국> DVD가 있는 것은 당연지사. 나는 런던 동생네 집에 가서 있는 동안, 뭐 볼 영화 없나, DVD 모아둔 곳을 뒤적이다가 <겨울왕국>을 발견하고는 DVD 플레이어에 디스크를 넣고 느긋하게 시청하기 시작했다.
지나간 과거는 내려놔, Let it go!
<겨울왕국> 1편을 지켜보며 재미와 감동을 맛봤고 완성도 높은 음악에 혹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작품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였다.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갖고 태어난 엘사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며 “내려놔. 과거는 지났어.”라고 선포하는 장면은 진지한 대하 드라마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언니인 엘사의 실수로 인해 가슴이 얼어붙어 생명이 위험해진 안나가 회생할 수 있는 길이 진정한 사랑의 입맞춤밖에 없었을 때, 그녀에게 이미 청혼도 했던 한스 왕자에게 달려가 키스를 받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제껏 디즈니가 여자아이들에게 심어줬던, 완벽한 왕자로부터 키스를 받는 순간 마법이 풀린다는 꿈 아닌 망상을 제대로 깨주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엘사
<겨울왕국2>에서는 주인공들의 내면 성장이 더욱 심화된다. 늘 코믹한 눈사람 올라프까지도 “아무 것도 영원한 건 없다는 게 슬프지 않아?”라며 무상, 고, 무아에 대해 성찰하니까.
거기에다 엘사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에게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마치 샤먼들이 무병을 앓으며 내면의 능력이 깨어나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에게만 들리는 소리에 잠못 이루는 밤이 점점 많아진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와 싸우기를 그만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나에게 나를 항복시키는 것은 모든 영적 여행의 시작이라는 것을 <겨울왕국2>는 엘사에게 들려오는 미지의 목소리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엘사와 안나는 아버지인 아그나르 왕으로부터 ‘마법의 숲(Enchanted Forest)’에 사는 노덜드라 종족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덜드라는 정령들이 인간의 삶에 깊게 관여하는 영적 공동체로 마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또는 샤먼을 중심으로 제정일치를 이뤘던 인류의 조상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하지만… 무얼까. 엘사에게만 들리는 이 목소리는 무얼 얘기하고 싶은 걸까. 이런 가운데 엘사는 트롤의 지도자인 패비 할아버지로부터 “밝혀야 하는 숨겨진 진실을 해결하러 마법의 숲으로 떠나지 않으면 아렌델의 미래는 없다.”는 예언을 듣게 된다.
내면의 목소리에 항복하는 엘사
엘사는 현재의 경험이 지금처럼 일어나고 있는 데에는 과거에 심겨진 원인이 있었을 것임을 알고 이에 항복한다. 진정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이 순간의 경험에 대한 완벽한 항복밖에 없다.
그래서 그녀는 내면의 목소리에 순종한다. 현재 아렌델이 아렌델일 수밖에 없는 이유, 자신이 자신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이다. 용서를 빌거나 화해를 이뤄야 할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모험의 시작
엘사는 안나, 그 외 일행과 함께 마법의 숲을 지나 정령의 땅에 도착한다. 4개의 석상들이 지키고 있는 정령의 땅에 들어서니 노덜드라 부족과 아렌델의 병사들은 안개에 갇혀 아직까지도 대치하고 있었다. 노덜드라 부족들은 엘사가 정령들을 다루는 것을 목격한데다가 두 자매가 가지고 온 어머니 이두나의 스카프를 보고 그녀들이 자신의 후손임을 확신한다. 엘사는 어머니의 스카프에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중요한 단서가 그려져 있었음을 감지한다. 물, 불, 땅, 바람 4원소 이외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무늬는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섯번째 정령을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다.
엘사와 안나와 올라프는 ‘정령의 땅’ 해변 근처에서 6년 전 부모님이 타고 가다가 난파된 배를 발견한다. 방수 처리된 사물함에서 찾아낸 지도에는 “엘사의 근원을 찾아서..”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부모님들은 엘사의 마법의 기원을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토할란으로 떠나다가 이런 변을 당했던 것이다.
마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어머니 이두나 왕비는 엘사와 안나가 어렸을 때,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는데 “아토할란 강을 따라가면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가사였다. 엘사는 자신의 마법의 비밀, 아렌델과 노덜드라의 갈등 등을 알아내고자 아토할란 섬으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아토할란 섬으로의 접근이 그리 용이하지만은 않다. 엘사는 여러 차례 파도를 얼려 올라타는 도전을 행한다. 말의 형상을 한 물의 정령 나크는 야생마처럼 그녀를 공격하지만 결국 엘사는 이를 길들여 올라타고 아토할란 섬으로 질주한다. 예로부터 마음은 심우도에서의 소 등 올라탈 수 있는 동물에 자주 비유된다. 마음을 길들이면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음을 말해주는 비유일 것이다.
모든 기억을 기록하는 물…. 강….
<겨울왕국2>는 또한 우주의 모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엘사가 나크의 등에 올라타고 도착한 아토할란 섬에는 기억의 강인 아토할란 강이 있다. 아토할란 강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기록하는 물이 흐르고 있는 강이다. 어디 물뿐일까. 몸의 70퍼센트가 물로 이뤄져 있는 인체 역시 개인적 삶과 인류 전체의 역사를 모두 기록하고 있다.
엘사는 아토할란 강에서 과거에 실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 장면 역시 수행자들에게는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수행의 날들이 지난 후, 살아온 날들이 영화처럼 펼쳐지는 경험을 우리들 또한 하지 않았던가. 이떄 과거처럼 내가 보고자 하는 바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여실지견’ 하게 되면서 과거가 새롭게 재편성되는 경험을 하게 되곤 한다. 내가 믿고 있었던 방식의 과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과거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믿어 그에 대한 원한을 갖고 있다가도 사실은 내가 보고자 한 몇 개의 증거만으로 만들어낸 허상임을 알게 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임을 깨닫게 되어 원한이 녹아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토할란 강에 선 엘사는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온 카르마를 알게 된다. 다음은 아토할란 강에서 엘사가 목격한 과거의 진실이다.
엘사 할아버지 대로부터의 카르마
루나드 왕은 역사상 나타났던 모든 왕조와 마찬가지로, 왕권에 반한다는 이유 때문에 정령과 마법을 없애야 한다는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그는 정령과 친화하는 기운을 약화시키고 정령과 친밀한 노덜드라 족을 말살하기 위해 댐을 지어 사람들과 정령과의 교감을 끊고 정령들의 기반을 약화시키려 한다. 즉 루나드 왕이 세워준 댐은 친선의 목적이 아니라 노덜드라를 침략하기 위한 핑계요, 노덜드라를 파괴하기 위한 장치였던 것이다.
그러한 세력들에 의해 사라진 전통을 찾아내고 되살려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일 터. 이 부분에서 왜 갑작스레 21세기 대한민국의 4대강 사업이 떠올랐는지… 녹조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강은 어쩌면 본래 강이 흘러야 할 곳으로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분노한 자연의 울부짖음인지도 모른다.
댐의 완성을 축하하는 행사에 아직 어린 왕자이던 아그나르 왕이 아버지를 따라 참가하게 된다. 이때 소년 아그나르는 바람의 정령에 몸을 맡기고 공중으로 떠다니는 노덜드라의 소녀 이두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이도 잠깐, 루나드 왕의 군사들은 무방비 상태의 노덜드라 부족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소년 아그나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이를 구해준 것은 노덜드라 소녀인 이두나이다.
지(땅), 수(물), 화(불), 풍(바람) 등 노덜드라의 4대 정령들은 댐으로 인해 흐르지 못하는 물에 대해, 그리고 루나드 왕 군대의 폭력에 분노한다. 정령들은 그곳에서 싸우던 이들 모두를 숲에서 추방하는 한편, 노덜드라 땅을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안개의 벽을 쳐버린다.
훗날 아그나르는 아렌델의 왕이 되었고, 소녀 이두나는 아그나르의 아내가 되었다. 즉 엘사와 안나는 노덜드라 여인인 이두나를 엄마로, 아렌델의 왕자 아그나르를 아빠로 태어난 것이다. 이 두 자매의 어머니인 이두나는 바람의 정령에 몸을 맡기고 공중으로 떠다녔던 존재이다. 얼음 마법 능력자인 엘사는 어머니 쪽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은 게 틀림 없다. 정령들이 엘사에게 마법의 힘을 부여한 것은 이를 통해 선대로부터 이어져온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진정한 자신을 깨닫는 엘사
그녀는 아토할란 강에서 이처럼 장대한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접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는다. 노덜드라 족의 전설에서 전해져오는 지수화풍 등 자연의 정령과 인간을 이어주는 5번째 정령, 그것이 자신이었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입고 있던 하늘색 드레스가 거의 하얀 색에 가깝게 변하고 탐스럽게 땋았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엘사는 더 이상 “과거는 내려놔!”라며 요염하게 걷던 그 존재가 아니다. 그녀는 이곳에서 본래 자신이었던 그 존재로 변형된다.
나는 내가 기다려왔던 바로 그 존재
<겨울왕국2> 가운데 <너를 보여줘(Show Yourself)>라는 엘사의 솔로곡을 보고 들으며 난 극장 좌석에 앉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 노래는 내가 이제껏 피해왔던 나를 비로서 만나주고, 나를 용서해주고, 나를 알아주고, 나를 도닥여주며 나와 진정으로 화해한 순간의 감동과 가슴벅참을 완벽하게 노래로, 그리고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보면서 깨달았다. 이 영화를 만든 이도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의 기쁨을 맛본 거구나.
“꿈에서 본 것처럼 낯이 익어요. 항상 알아왔던 친구처럼, 마치 내 집에 온 것 같은 느낌…
당신을 보여주세요.
당신은 내가 평생을 기다려온 바로 그 존재…
이렇게 확신에 차 있던 때는 없었습니다.
난 늘 남들과 달랐어요…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답니다.
나는 이 행성에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거에요.
당신은 내가 한평생 기다려온 해답.
나는 드디어 나를 찾았습니다.
당신을 보여주세요. 당신의 능력에게 다가가 그 안에서 새롭게 성장해봐요.
당신은 바로 평생 동안 당신이 기다려온 존재입니다.”
이 노래 가사는 구구절절,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수행 중, 어느 날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이제껏 내가 믿고 있던 내가 내가 아닌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만나기 위해 이제껏 나라고 믿고 있던 내가 필요했음을… 나는 내가 평생 동안 기다려오고 만나고 싶어했던 그 존재였다.
한 번에 하나씩 해결하라
<겨울왕국1>에서 왕자와의 사랑이나 꿈꾸던 안나는 <겨울왕국2>에서 성숙해진 여전사가 된다. 그녀는 엘사가 아토할란 섬으로 떠났을 때 혼자 정령의 땅에 남겨지자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할지 몰라 당황한다.
이때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전해져오는 삶의 교훈을 기억해낸다. “힘들어서 뭘 해야할지 모를 때는, 너무 먼 일을 생각지 않고 당장 해결해야 할 눈앞의 한 가지 일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매번 올바른 일밖에 없다. 걸을 때도 한 걸음, 한 걸음씩밖에 못 겯고 호흡도 한 호흡, 한 호흡씩밖에 못한다. 밥 먹을 때에도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밖에 못 먹는다. 매번 한번씩(One step at a time)이다. 수행할 때에도 뭔가 대단한 깨달음에 얻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한 번에 숨 한 번씩….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내려놓고…. 그러면 된다. 주변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아도 한 번에 한 개씩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안나는 정령들이 원하는것이 강을 흐르게 하는 것, 즉 강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댐의 파괴임을 알게 된다. 댐을 무너뜨리면 아렌델이 모두 침몰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마지막 순간 엘사는 거대한 얼음 벽을 만들어 댐의 파괴로 쏟아져내리는 격류를 막아내 아렌델을 구한다.
<겨울왕국2>의 피날레는 1편에서 조금은 철부지이고 나약하게 보였던 안나가 아렌델의 여왕으로 즉위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노덜드라 족 전승에서 말한 5번째 정령임을 알려 주면서 “다섯번째 정령은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야. 다리에는 양쪽 연결점이 필요하지. 나와 너는 그 양 쪽 연결점이야. 나는 노덜드라에 남아 자연의 뜻을 펼칠께, 안나 너는 아렌델로 돌아가 인간의 뜻을 펼쳐.”라고 한 엘사의 뜻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애니메이션 영화였지만 깊은 통찰과 영감으로 가득한 <겨울왕국2>. 박스오피스 흥행으로도 또 다른 신화를 연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더 많은 이들이 깨어나기를…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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