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기애 (180으로 측정)
새롭고 '진보적'이라고 소문난,
수용 가능한 행동의 기준으로서의 사회적 자기애는
사회적 왜곡으로 귀착되며 더불어 자신과 사회에 큰 부정적 귀결을 낳는다.
부풀어 오른 자만심은 '민감성'으로 귀착되고,
그러한 민감성에 의해 개인적 책임을 피해망상적 양식으로 문화적 담론에 투사된다.
지각된 '신경을 건드린 사람'이 가해자로 묘사되는데,
그 다음에 그는 분개한 독선적 요구와 피해자임의 선언을 통해 사과를 강요당한다.
그러한 사회적 왜곡에 더해, 가설적 가해자는 원인이 된 데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자기를 재비난하도록 세뇌당하고 ,
이렇게 해서 불명예스럽게 죄책감 속의 복종으로 빠져든다.
그리하여, 추정된 가해자는 이제 강요는 물론이고 도덕적 협박을 당하는사실상의 피해자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미국 정신의학회의 분류인데,
그것은 지속적 유치증에 대해, 더불어 관련된 대인 관계 왜곡과 갈등에 대해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간주된다.
조지 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자기애적 위기는 히스테리로 표현될 수 잇으며
판단력 손상은 물론 생리적 붕괴와 감정 불균형 및 감정의 과도함을 수반한다.
윌이 말한 것처럼, 캠퍼스를 터전으로 하는 분개는 지금,
상상적 편견을 전도하는 사회적 산업이자 '상상된 무시에 대한 오페라적 반응들'이다.
인간 능력의 일부 측면에서 생물학이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하버드대학 총장의 발언이,
널리 보도된 어떤 사건을 촉발시킨 적이 있다.
어떤 청취자에게 그런 식의 생각은 너무도 불쾌한 것이어서,
그녀는 개탄하며 주요 언론 매체에 즉각 제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표면상으로 그런 이야기는 희비극적이지만,
법관이 피해자학의 왜곡을 실상으로 인정할 때 그것의 사회적 귀결은 대단히 해롭다.
누구든 즉흥적으로 죄지은 가해자로 경박하게 선언될 수 있는 사회에서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런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논리와 이성과 전통적 법 지배의 균형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위험에 처해 있다.
이렇게 해서, 피해자학은 운용상으로, 억지로 뜯어낸 이득 더하기 '유사 - 중요성'이라는
인위적으로 재가받은 팽창된 자만심을 수반하는 사회적 공갈이 된다.
딸려갈 방향에 대해 결정권을 갖지 못한 자기장 속의 쇳가루와는 달리,
인간 영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를 수여받았으며,
자신의 손(영적 의지)으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
의식 자체의 진화의 본성을 이해함으로써,
무지와 순진함의 귀결인 인간고와 고뇌를 목격할 때
용서와 연민이 솟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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