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숲(교회) (사 32:15)
한 25여 년 전 유학을 위하여 제가 미국 시카고로 갈 때의 일입니다.
비행기가 시카고 공항을 내릴 무렵 우연히 비행기 창을 통해 아래를 내다보았습니다.
저는 시카고가 처음이었고 또한 미국의 대도시 중에 하나로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큰 건물과 수많은 집을 기대했는데
정작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시카고는 거의 숲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시카고라는 도시 전체가 숲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한국 도시는 그렇지 않지만 외국의 도시는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과거에 살았던 캐나다 밴쿠버의 Surrey 지역도 숲이 많이 있습니다.
곳곳마다 공원이 있었고,
제가 섬기던 교회와 가장 가까운 Tynehead Park는 원시림을 이루는 곳도 있습니다.
나무와 숲이 많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에 환경적으로 좋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적적하고 혼잡할 때 숲을 찾게 되면
상쾌한 공기가 주는 청명함과 나무가 주는 푸근함이 있습니다.
숲은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줍니다.
어떤 분이 숲이 주는 이로움에 대해서 7가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로 숲이 만든 나무는 환경에 가장 무해한 물질입니다.
숲이 만들어내는 목재는 가장 환경 친화적인 물질로서 끊임없이 자라는 자연물입니다.
둘째로 숲은 공짜로 물을 깨끗하게 만들어 줍니다.
숲의 토양과 숲에 사는 각종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들은 오염된 물을 깨끗하게 해줍니다.
셋째로 숲은 물을 담고 있으며 홍수나 산사태를 막아줍니다.
약 60년 된 밤나무의 뿌리 길이를 모두 합해보면 20km를 넘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뿌리 속에 담고 있는 물의 양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숲은 물을 담아내며 토양을 비옥하게 한답니다.
1ha의 숲은 무려 20만 리터의 물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숲에는 많은 생물들이 살아갑니다.
잘 발달된 숲에는 무려 7000여종 이상의 동물들이 살아갑니다.
다섯째로 숲은 습도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넓은 잎사귀가 많이 사는 숲 한 평은 한 여름에 약 15리터의 물을 증발시켜
많은 생물이 살 수 있는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시켜줍니다.
여섯째로 숲은 천연에어컨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지역 주변의 숲은 자연적인 에어컨 기능을 합니다.
일곱째로 숲은 공기를 깨끗이 해줍니다.
한 평의 숲은 1년에 약 10kg의 각종 먼지를 흡착해 낸다고 합니다.
따라서 1ha의 숲은 40,000kg의 먼지를 흡수한다고 합니다.
저는 세상에 있는 교회들이 이런 아름다운 숲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영혼이 치유되고 쉼과 안식을 얻는 은혜의 처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교회에 대한 비전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숲과 같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이 그 방법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영"은 "성령"을 이야기 하는데,
성령이 임하면 광야, 즉 사막과 같이 황무한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아름다운 밭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광야는 황무지처럼 못 쓰는 땅인데, 위에서 내려오는 성령을 받으면
그 황무지 같은 땅이 아름다운 밭,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풍성한 과수원이 됩니다.
몹쓸 땅이 쓸모 있는 풍성한 과수원이 되었다는 것은 가치가 업그레이드,
다른 말로 하면 용도가 변경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만 용도 변경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용도 변경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목사였던 이기풍 목사는 처음에는 선교사를 때려눕힌 핍박자였습니다.
그는 평양에서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한 그는 어릴 때부터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을 미워했습니다.
한 번은 평양 거리를 지나가던 평양 좌수의 거만한 행렬을 바라보다가
울화통이 치밀어 달려들어 좌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일로 체포되어 고생했다고 합니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는 깡패로 유명했지만 학문에 대한 소질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섯 살 때 사서오경을 줄줄 외웠고
열두 살 때는 백일장에 나가서 붓글씨를 써서 장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서양 사람들을 미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는
음흉한 계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양 선교사 중의 한 사람인 마포 삼열 선교사가
이기풍이 있던 평양에 들어와서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며 전도하였습니다.
이기풍은 그 말이 너무나 듣기 싫어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던
마포 삼열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그의 턱을 부서뜨렸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마포 삼열 선교사가 장대현 교회 건축을 시작하자
이기풍은 깡패들을 동원해서 교회당 건축현장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선교사의 턱을 부서뜨리고 교회당을 때려 부순 이기풍은 의기양양했지만
양심 한 구석에 찔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잠을 자는데, 꿈에서 예수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기풍아! 기풍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의 증인이 될 사람이다!"
그는 너무 놀라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항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 청일전쟁으로 나라가 어수선해서 잠시 원산으로 가서 피신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의 앞에 이상한 옷차림을 한 서양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평양 거리의 마포 삼열 선교사와 비슷한 모습의 서양 사람이었는데,
그는 원산에서 선교하고 있던 스왈렌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이기풍을 보자마자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우렛소리와 같았습니다.
결국 이기풍은 스왈렌 선교사 앞에 무릎을 꿇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마포삼열 선교사를 찾아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어 백배 사죄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 후부터 이기풍은 평양 시내를 누비며 예수를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깡패가 전도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평양 온 성안을 발칵 뒤집었습니다.
그는 동만 트면 나가서 전도하는 한국의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예수를 전하기에는 너무 무식하다는 것을 깨닫고
1903년에는 평양 신학교에 입학하여 전도자와 목회자로서의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장로교회의 최초 7인 목사들 중의 한 사람으로 안수를 받고
나중에는 제주도로 파송되어 그 지역을 복음화 하게 됩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광야가 아름다운 밭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용도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땅이 생산적인 밭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깡패 이기풍에서 목사 이기풍으로 변한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용도가 변해야 합니다. 신자들도 그 쓰임이 달라져야 합니다.
루시엥 골드만이라는 사람이 가치에는 사용 가치와 교환 가치가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하면, 집은 사용가치가 있습니다.
즉 집의 사용 가치와 목적은 거주하기 위해서입니다.
집은 거주를 해야 하고 편안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집을 소유하여 편안하게 살면 그 집의 사용 가치는 제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집이 교환가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집의 시세차액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집은 거주의 목적이 아니라 부의 축적 수단이 되며
이걸 경우 집은 교환 가치가 됩니다.
교환가지로서의 집은 사용도 안 하고 교환하기 위해서 소유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도 마찬가지인데 일꾼은 명예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명함만 가지고 다니면서 일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교회 일꾼은 일꾼답게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내가 사용됨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름만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교환가치의 인생입니다.
제대로 사용되어야 사용 가치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용 가치적인 용도 변경이 되어야 하는데
성령이 임하면 황무지 같은 인생이 아름다운 밭과 같은 인생이 됩니다.
황무지는 아무 쓸모가 없지만 밭은 농작물을 내는 곳입니다.
즉 신자에게 성령이 임하면 사용 가치적인 용도 변경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분이 바뀌는 것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평범한 사람이 기름부음을 받으면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평범한 목동이었던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자 왕이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기름부음을 받자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기름부음을 받아야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름부음을 받으면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기름부음을 현대적으로 말하면 성령 충만입니다.
교회에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죄인 된 우리가 왕, 제사장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상태도 변화됩니다.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었다는 것은 상태가 변화된 것을 말합니다.
광야는 메마른 상태이고 아름다운 밭은 기름진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이 임할 때 광야가 비옥한 토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비유하면 사람의 인격이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기풍 목사처럼 사람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죄인에서 의인으로 상태가 변하는 곳입니다.
황무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예수를 믿으면
용도가 변경되고 신분과 상태가 변해서 아름다운 밭과 같은 인생이 됩니다.
사람이 달라지면, 즉 죄인이 예수 믿어 의인이 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숲에 동반되는 것은 바로 상쾌한 공기입니다.
상쾌한 공기는 우리에게 평안함을 줍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좋은 나무가 되고
그래서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면
저절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고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마치 아름다운 숲에 들어가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처럼,
우리 교회는 치유함이 있는 교회,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에 발만 들여놓으면 세상의
모든 더러워진 것이 깨끗해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불면 이런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나가면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 태풍 샌디가 불어 2조원 넘는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처럼 바람은 보이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성령의 바람이 지나가면 황무지가 아름다운 밭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 오면 다른 생각 말고 성령의 바람을 쐐서 내가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교, 기도, 구제 등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 되어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가 되면
우리 교회는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쉬는 그런 안식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이미 심각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숨쉬기도 곤란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가 아름다운 숲이 되면 사람들은 저절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지친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성령의 공기만 마셔도 그 영혼이 변화되는
그런 역사가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는 늘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오는 새신자들에게 꼭 세 마디의 말과 기도를 합니다.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신앙생활은 아름다운 숲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늘 기분이 좋아야 하고 상쾌해야 합니다.
늘 활력이 넘치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받았지만
기쁨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기쁨 없이 교회를 그저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한 번 빛을 받았다는 것은 은혜를 체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한 번 은혜를 맛보아서 신앙인 척하며 돌아다는데
정작 그 마음을 보면 더 이상 하나님의 빛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력이 없습니다.
황무지가 변하여 아름다운 밭이 되어야 하는데
은혜의 빛을 받았음에도 아름다운 밭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다시 회개할 기회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늘 은혜 안에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전쟁터나 권력 암투가 벌어지는 정치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교회는 장터도 아니며 권투를 하는 링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리고 교회가 극장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극장은 영화를 보는 곳인데 영화가 끝나면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흩어집니다.
교회는 늘 생명력이 넘쳐야 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육적인 병과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숲을 찾는 분이 있습니다.
왜 숲에서 치유가 일어날까요?
자연의 숲은 맑은 공기와 편안함을 주기 때문에 긴장을 풀어주며
그로 인하여 사람은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아름다운 숲이 되었을 때 교회에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치유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지만 치유의 근원은 주님께 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친구 네 명이 한 명의 병자를 고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가 그 지붕을 뚫고예수님 앞에 내려놓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인 남자 네 명이 지붕에 올라가 그 지붕을 뚫고
그 밑으로 한 병자를 내려준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네 명과 한 명의 병자의 체중 때문에 잘못하면 지붕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네 명이 한 사람을 위해 지붕을 뚫고 제대로 내린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협력과 조화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숲이 되지 않습니다.
숲은 나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곳입니다.
소나무, 잣나무, 떡갈나무, 이름 없는 작은 나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숲이 되듯이 우리 성도들이 마음을 모아 서로 협력하고 돌보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면 우리 교회가 아름다운 숲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 명의 친구의 노력이 그 병자를 살린 것이 아니라
그 병자를 근본적으로 치유한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치유가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숲”이라는 시를 소개하겠습니다.
"나무가 주는 선물은 맑은 공기
보이지 않는 선물에 만족치 못해
그 몸뚱아리를 베어서 씁니다.
잠시 눈을 감아도 그 선물을 느낄 수 있을 텐데......
꽃이 주는 선물은 풋풋한 향기.
만져지지 않는 선물에 만족치 못한 채
그 가녀린 줄기를 꺾어듭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그 선물을 느낄 수 있을텐데......
숲은 우리에게 선물을 줍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선물을 합니다.
느낄 수 있는 선물을 합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숲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즉 맑은 공기, 풋풋한 향기를 영적으로 풀이하면 예수님이 됩니다.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은혜가 있고, 성령의 바람이 있습니다.
즉 교회는 이런 선물을 우리에게 줍니다.
결국 아름다운 숲은 예수님이 거하시는 교회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가 죄인에서 의인으로 상태가 변하며 또한 그 쓰임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우리 가운데 염려와 불안이 사라지고 영혼이 치유함을 받고
신자들은 완벽한 조화 협력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한빛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일을 더욱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전 모습보다 더 나은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힘입어 우리 성도들이 변화되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어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쉬는 한빛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