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8막61장 (6부)
회갑연.
초여름 회갑연을 열게 되였다.
한살이 적은 아내는 육순이 되였고 ,나는 한국 나이로 61세가 되여 회갑이 된것이다.
회갑연은 갑자를 사용하는 동남아 국가 에서만 행해지고 있으며 고령화에 밀려 회갑연이 퇴색되고 있으나
환갑은 틀림없이 평생에 돐잔치 다음으로 행해지는 뜻깊은 행사였다.
27년전 증조 할아버지는 여의도 부페 식당을 예약하여 장구 북 치는 기생들을 초빙하고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절을 올린 기억이 생생하다.
방문객만 100여명 이상에 달하였고 인생 최고의 술판이 펼쳐졌고. 풍악소리에 춤을 추던 수많은 인파에 귀가 멍할 지경이였다.
그러나 나는 가까운 친인척과 아들및 딸네미 가족들과 정민이 채담이를 데리고 조촐한 환갑연을 열었으나 그래도 방문객이 20여명 가까이 되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78세 내외 이거늘 앞으로는 20여년(?)을 더 살아야 하건만 환갑 잔치는 그냥 뜻깊은 생일 정도로 실감이 가질 않았다.
나이 셈함에 흰수염 늘어나고 얼굴에 검버섯 피어나니
나무가 나이테를 먹듯 우리들도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내만 쳐다보니 신혼때 얼굴 그대론지 알았건만 손녀외손녀를 보니 세월의 유구함에 숙연해 지기도 한다.
하나.
둘.
셋.
육십 하나까지 셀레면 1~2분 이면 된다.
그래 나는 지금 하나 둘을 세는 것처럼 1~2분안에 육십 하나가 된것이다.
세월의 빠름에 소름이 끼칠 따름이다.
그 회갑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였다.
회갑연의 주인공은 정민이와 채담이 였다.
나의 분신인 두 후손의 탄생은 나를 진정으로 "할아버지" 만드는데 헌신(?)한 이들이다.
만약 두 후손이 없었다면 환갑연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되였을 것이다.
회갑연.
그곳에는 색동저고리 입은 후손들의 재롱잔치 였다.
뒤안길로 쳐진 나는 그들을 끌어 안으며 입마춤을 하였다.
"그려
나는 지금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