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13)-맥주 세 병 안주 하나
-시공을 부여하라 -
권대근
수필가, 문학평론가
어거스틴은 시간은 확장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정신 자체의 확장이라고 보았는데, 시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정신의 기폭에 따라 시간의 범위는 무한대로 늘어나거나 축소될 수 있는 질량적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에서의 시간과 공간은 상상력의 세계 때문에 질량적인 측면보다는 임계량을 파악할 수 없는 무시간적 뫼비우스 띠의 세계로 유입되고 만다. 따라서 문학이 시간과 공간을 동일선상에서 다룰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같은 무의식의 축으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는 우리가 “어떤 단어를 선택했다고 하자. 어쩐지 그 단어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시간성과 공간성을 부여해 보자. 대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물 중에서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만 붙박여 있는 사물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 그런데도 그대의 의식이 현실에만 붙박여 있다면 그대의 글쓰기 또한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고 말한다. 우리 인간의 인지시스템이 문장보다는 단어를 먼저 인지한다고 생각할 때, 단어를 잘 선택해서 쓰여하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존재는 시간과 공간성을 갖는다. 단어의 조합으로 하나의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에 시공을 부여하면, 피와 맥박이 도는 듯한 살아있는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외수 작가의 시공성 부여하기 관련 진술을 계속 들어 보자. “여기 ‘개’라는 단어가 있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부여하고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음미해 보자.
오전, 새벽, 꼭두새벽, 동틀 무렵, 아침, 아침나절, 점심, 정오, 낮, 한낮, 오후, 퇴근 무렵, 저물녘, 해거름, 해질녘, 저녁, 밤, 밤중, 한밤중, 자정, 초하루, 그믐, 보름, 대보름, 봄, 봄날, 봄철, 입춘, 춘삼월, 농번기, 모내기철, 여름, 여름날, 여름철, 여름방학, 삼복, 입추, 가을, 가을날, 추석, 추수기, 입동, 겨울, 겨울날, 동지, 동지섣달, 크리스마스, 겨울방학, 설날,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장년기, 노년기, 현대, 왜정시대, 개화기, 구한말, 조선시대, 삼국시대, 상고시대, 고생대, 중생대, 쥐라기, 신생대, 태초
모든 시간에 개를 대입시켜 보자. 동틀 무렵의 개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퇴근 무렵의 개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동지섣달의 개는 어떤 느낌을 주는가. 그대와 가장 닮은 개는 어떤 개인가.
집, 마을, 안방, 주방, 목욕탕, 거실, 다락, 옥상, 베란다, 마루, 사랑방, 원두막, 정자, 과수원, 논둑길, 밀밭, 보리밭, 꽃밭, 수목원, 쥐구멍, 둥지, 도시, 운동장, 광장, 대합실, 터미널, 휴게실, 상담실, 병원, 식당, 국회의사당, 절, 교회, 성당, 백화점, 마천루, 미술관, 동물원, 청와대, 경복궁, 에펠탑, 만리장성, 버킹검궁, 금문교, 노트르담, 백악관, 나라, 고속도로, 땅, 하늘 하공, 지구, 태양계, 은하계, 우주, 사막, 고비사막, 늪, 초원, 들판, 호수, 강, 연못, 섬, 고원, 정글, 태백산, 바다, 남태평양, 아프리카, 북극, 남극, 설원, 계곡, 심해, 빙판
이외수는 모든 공간에 개를 대입시켜 사유해 보자고 말한다. 국회의사당의 개는 누구를 상징할까. 고속도로에 방치된 개는 어떤 기분일까. 고비사막의 개는 얼마나 목이 마를까. 가장 행복한 개는 어디에 있는 개일까. 가장 불행한 개는 어디에 있는 개일까. 그대에게 가장 친근감을 주는 개를 찾아보라고 주문한다. 그러면 글이 생명체가 되고 유기체가 될 것이 아닌가. 살아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좋은 글은 힘이 있다. 힘이 있는 글이 활어다. 자갈치시장에서 파닥파닥 뛰는 생선처럼 언어는 언어도 존재인만큼 그도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출처 : 이외수의 <글쓰기 공중부양>, p.45~47.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