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기분이 좋을 때나 행복할 때 사람들은 노래를 부릅니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슬플 때도 노래를 부르면 곧 그 감정이 해소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래는 우리의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노래는 가사와 멜로디를 통해 영혼의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기 때문에, 항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의 감정을 대표하는 노래들이 생겨나곤 하지요. 당신은 요즈음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당신의 영혼에서는 오늘 어떤 노래가 흘러나오나요?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노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이 꼭 부르기를 원하는 노래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니,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에게 꼭 가르치시고 싶어하는 노래를 가지고 계십니다. 구속함을 받아 새 하늘에 가서 살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노래를 반드시 배워야 한답니다. 그것이 무슨 노래이냐고요? 그것은 성경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노래인데, 특별히 이 노래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계 14:3).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계 15:3).
구원을 받아 하늘에 가서 살 성도들은 이 땅에서 이 노래를 배워야만 합니다. 이 노래는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를 찬양한 모세의 노래이며,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법을 배운 십사만사천이 부르는 경험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구원을 받아 하늘에 올라가서 살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험의 노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셨던 그 기이한 섭리에 대하여 가슴 속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감동과 감사의 노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노래는 하늘에 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무리 찬양대인 십사만 사천이 우주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부를 간증의 노래이기 때문에, 그때 그 찬양대에서 노래를 부르려면 지금 이 땅에서 자기만의 간증과 경험의 노래를 꼭 배워야 한답니다.
시련 속에서 배우는 노래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의 주인은 자기 새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노래가 있었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래를 가르치려고 해도, 밝은 대낮에, 그리고 주인의 목소리 외에 여러 다른 소리들이 들려오는 동안에는, 그 새는 주인이 가르쳐주려고 애쓰는 노래를 배우려고 하지 않았답니다. 어쩌다 주인이 가르쳐 준 노래의 한 절씩을 여기저기에서 떼어내어 짤막하게 부르는 흉내를 낼 수는 있었지만, 결코 혼자서는 그 노래의 완전한 곡조를 다 부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주인은 매우 검고 두꺼운 천으로 새장을 덮고, 그 새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곳에 두고 그 노래를 가르친답니다. 외롭고 단절된 곳, 고독하고 고립된 어두움 속에서, 그리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지고 오로지 주인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고요한 곳에서, 그 새는 주인이 가르쳐주는 노래를 되풀이해서 부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새는 주인의 노래를 배워 완전한 곡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런 다음 그 새를 밝은 곳으로 내어 놓으면, 그 새는 비로소 자기가 배운 노래를 부른답니다. 아무리 다른 소음들이 들려와도, 그 새는 오직 주인이 가르쳐준 그 노래만을 부르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치시려고 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세상의 소리들이 시끄럽게 들려오는 동안에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노래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캄캄한 시련의 어두움 속에서, 뼈아픈 고통의 그늘에서, 모든 것이 떠나버린 뒤의 소외감과 외로움의 빈 둥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배워주시려고 하는 노래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때에야만이 오로지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하니까요! 그리고 고통 속에서 아픔을 이기며 배운 노래여야만이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고 부를 수 있으니까요!
감사함으로 부르는 노래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의 노래의 주제들을 만들어 줍니다. 어려운 시련을 하나하나 견디고 겪을 때마다 우리에게는 노래의 제목들이 하나 둘 더 늘어납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서 배워주시려고 하는 공과들을 잘 배웠을지라도, 감사함으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 노래를 완전히 배운 것이 아닙니다. 그 노래가 감사함으로 충만한 멜로디가 되기 전에는 완전한 곡조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하는 일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택해 주신 것으로 늘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일이든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이든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무 불평 없이&&.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무엇을 만들든지 진흙이 묵묵히 있듯이&&.
토기장이는 도자기나 그릇을 만들 때에 진흙을 가지고 자기의 뜻대로 형체를 만들지요. 그는 진흙을 떼어서 빚다가, 또 그것을 누르고 뭉쳐서 물로 축이고 말립니다. 또 얼마 동안은 손을 대지 않고 그 진흙 덩어리를 그대로 놓아두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진흙 반죽이 완전히 말랑말랑해지면, 그것으로 그릇 만드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모양을 만든 다음, 다시 깎고 다듬은 후에 그것을 햇빛에 말리고 솥에서 굽습니다. 그런 모든 성가신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사용하기에 알맞은 그릇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빚어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마치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분의 손에 가만히 놓여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토기장이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을 바침으로 토기장이 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꼴 지어지는 일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반드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때는 우리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계획과 의도를 버리는 것이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최선의 길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정말 좋은 것을 희생하도록 요구받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바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은, 하늘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쓸 데 없는 것을 버리는 것에 불과한 것이랍니다.
우리가 아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을 때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훌륭하고 좋은 일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인생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길을 한숨과 비탄에 찬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의 삶 속에 예수님의 임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속에 거하는 사람들은 밝고 맑고 행복하고 감사한 표정으로,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 갈 것입니다.
장차 오는 생애에서는 이 땅에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실망하게 했던 신비들이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는 응답을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였던 우리의 기도와 좌절당했던 희망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길을 노래로 넘치게 하십시오! 더 많은 가사와 주제들을 만드십시오! 머지않아 하늘에 가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찬양하는 경험의 노래를 부르게 될 때, 더 많은 곡들이 있게 하십시오. 지금 당신은 그 노래를 배우고 계십니까? 요즈음 당신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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