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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말부터 광주 시내 노래방에는 때아닌 ‘비상’이 걸렸다.
새벽마다 업주와 손님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는 한 괴한 때문이었다. 피해가 늘어나자 경찰은 현상금까지 걸고 검거에 나섰으나 범인의 신출귀몰한 강도행각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경찰의 집중단속 및 수사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을 상대로 행해지는 범인의 능수능란한 강도행각은 무려 5개월 넘게 계속됐다.
노래방 업주들 사이에서는 “언제 ‘그 놈’이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해서 영업을 못하겠다” “광주 노래방에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러는지 모르겠다”라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 업주들에게서는 “고사라도 지내야겠다” “잠잠해질 때까지 휴업을 고려해야겠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이번에 광주북부경찰서 강력 3팀 김영래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6개월여 동안 경찰의 속을 까맣게 태웠던 일명 ‘광주노래방 연쇄강도사건’이다.
공권력을 우롱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범인과 잔뜩 약이 오른 경찰의 숨바꼭질, 140여 일간의 숨막히는 수사기록을 따라가보자.
연말 분위기로 들떠있던 2006년 12월 28일 새벽 4시경.
광주 북부 두암동의 한 노래방에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한 젊은 남성이 들어서고 있었다.
복면으로 무장한 이 남성은 순식간에 업주 A 씨(여·48)를 비롯해 노래방에 있던 손님 4명을 흉기로 제압, 현금 49만 원과 휴대전화 등 109만 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범인이 노래방에 들어서서 ‘작업’을 마치고 달아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수 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당시 피해자들의 증언이었다.
범행 장소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노래방이라는 점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처음에는 단순 강도사건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것은 범인이 경찰에 보내는 신호탄에 불과했다”는 것이 당시 상황에 대한 김 팀장의 얘기다.
그로부터 9일 후인 2007년 1월 6일 새벽 2시 30분경 광주 광산구 월계동의 한 노래방에 또 강도가 들었다.
한 젊은 남자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던 여주인을 위협해 5만 원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꼭 일주일 만인 1월 13일 새벽 4시 10분께 광주 북구 오치동의 노래방에서 또다시 동일수법으로 보이는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업주 등 2명을 순식간에 제압해 결박해놓고 현금 40만 원과 10만 원권 수표 2매 등을 빼앗아 유유히 달아났다.
김 팀장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범행수법이나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른 범인의 체격과 말투 등을 따져볼 때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는데도 경찰을 희롱하듯 범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놈’은 분명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로도 노래방을 무대로 한 동일 수법의 강도사건이 줄을 이었다.
1월 26일 새벽 1시경 북구 일곡동의 노래방에서 손님 2명을 위협, 현금 51만 원과 금거북이 휴대전화 고리 등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을 비롯해 2월 8일에는 북구 두암동, 2월 15일에는 서구 화정동, 2월 16일에는 북구 임동의 노래방에서 사건이 터졌다.
며칠 간격으로 터지는 범인의 과감한 강도행각은 3월과 4월이 되어서도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그러나 현장에는 범인을 특징지을 만한 어떤 단서도 남아있지 않아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범인은 비교적 손님이 적은 새벽 2시 이후를 범행시간대로 택했는데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흉기를 소지하고 다니며 업주와 손님들을 한 방에 몰아넣고 순식간에 제압하는 수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색이 보이면 서슴지 않고 흉기를 사용했다고 하더라. 실제로 범인에게 상해를 입은 피해자 중 한 명은 그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장에 있던 광주 조폭 행동대원도 꼼짝하지 못하고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범인의 수법은 더욱 과감해졌다.
범인은 개점하기 전에 노래방 입구에 적힌 업주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손님 5명을 데리고 갈테니 가게 문을 열어달라’는 식으로 속이고 범행을 하기도 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계속 사건이 터지니 노래방의 ‘노’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졌다.
답답한 날들이 계속됐다. 경찰은 범행 시간대 통화내역 10만여 건을 분석하고 10만여 명에 달하는 관내 20~30대 남성의 사진과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동일수법 전과자를 탐문하는 등 저인망식 수사까지 펼쳤으나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팀은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분석하기 시작했다.
범인을 특징지을 만한 작은 단서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얘기.
오치동의 노래방에서 범인은 범행 후 직접 경찰에 ‘○○노래방에 가보시라’며 신고를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피해자에 따르면 범인이 피해자들을 묶어놓고 신용카드를 빼앗은 후 비밀번호를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는 번호를 제대로 알려주면 경찰에 신고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확인 결과 범인은 구호전사거리에서 빼앗은 신용카드로 40만 원을 인출했고 약속대로 약 39분 후 112에 강도신고를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팀은 범인의 예상 동선을 집중분석했다.
돈을 인출한 후 112에 신고하기까지 39분 동안 북구 중흥동 현금인출기 인근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점, 또 빼앗은 수표를 현금지급기에서 약 500m 떨어진 복권판매처에서 사용한 점 등으로 보아 범인은 이 일대 지리에 밝고 상당한 연고가 있는 인물로 판단됐다.
그리고 범인은 일정한 직업없이 소일거리로 게임방 등을 전전할 것으로 추측, 인흥동 인근 PC방 회원 수만 명의 명단을 확보해서 용의자를 압축시켜 나갔다.
동시에 수사팀은 범인이 1월 말 일곡동에 소재한 노래방 사건 당시 피해자로부터 빼앗은 쌍거북이 휴대폰 고리와 금목걸이 등 귀금속을 처분할 것을 예상하고 광주시내 372개에 달하는 금은방을 돌며 일일이 탐문수사를 병행했다.
한 달 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수사팀의 노력 때문이었을까.
4월 초 PC방 회원과 금은방 거래자와 중복되는 인물을 50여 명선으로 압축하는 데 성공했다.
베일에 가려져 있던 범인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수사팀은 범인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게 된다.
범인은 빼앗은 수표를 사용하면서 서명을 했더라.
그런데 배서 필적을 자세히 살펴본 결과 특이한 점이 발견됐다.
보통 5자는 2~3획으로 완성되는데 범인은 ‘5’자를 한 획으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범인은 당시 수표에 ‘김성철’이라는 이름으로 서명했는데, 결정적인 실수가 발견됐다.
가명으로 보이는 ‘김성철’이라는 이름 앞에 본인의 진짜 성으로 보이는 글씨를 쓴 흔적이 있는 게 아닌가.
무심코 자신의 본성을 쓴 후에 ‘아차’ 싶어서 검게 덧칠해 감춘 게 분명했다.
지운 성 씨의 종성이 ‘ㄱ’이라는 점과 주민등록 뒷 번호를 토대로 용의자를 압축한 수사팀은 PC 방과 금은방을 돌며 사전에 분석해둔 용의자들의 명단과 일일이 대조, 유력한 용의자로 한 30대 남성을 추출하게 됐다”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수사팀이 지목한 인물은 옥영환 씨(가명·34)였다.
옥 씨의 주소지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그는 강도사건이 발생한 지역과 상당부분 일치하는 동선을 갖고 있는 인물임이 확인됐다.
또 그의 사진을 피해자들에게 보여준 결과 비슷하다는 진술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결정적인 증거는 옥 씨의 필적이었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설명.
옥영환이 작성한 주민등록 전입신고서 필적을 확보해 수표에 쓰여진 배서필적과 대조해본 결과 한번에 흘려쓰는 ‘5’자의 필적이 유사했다.
또 마지막이었던 동구 계림동 노래방 강도사건이 발생하기 약 1시간 30분 전에 해당 노래방 인근 PC방에서 인터넷에 접속한 사실도 확인됐다.
얼마 후 국과수로부터 주민등록 전입신고서와 수표 배서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결과를 통보받으면서 옥영환이 범인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애초 수사팀의 예상대로 특정한 직업이 없었던 옥 씨는 평소 게임을 즐겨하는 게임마니아였다.
인터넷 IP추적과 휴대폰 실시간 위치추적에 들어간 수사팀은 2007년 5월 8일 동구 계림동의 한 PC방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옥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5개월여 동안 경찰을 비웃으며 벌여온 옥 씨의 무차별적인 강도행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옥 씨는 검거된 날에도 새벽에 노래방에 침입, 강도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 수사팀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5개월간 경찰을 희롱하며 신출귀몰한 강도행각을 벌이고 다닌 옥 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 팀장은 “그의 범행동기는 돈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옥 씨는 한때 미용실에서 일했는데 보수가 시원치 않자 미용실을 그만두고 PC방을 전전하며 게임을 하며 지내왔다고 한다.
수입이 없으니 생활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옥 씨의 삶이 어긋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고 한다.
수년 전 그는 형의 애인을 괴롭히는 한 남성을 폭행했는데 그 사람이 그만 실명이 되고 말았다는 것.
결국 피해자로부터 옥 씨는 거액의 민사소송을 당하게 됐고 그 후 신용불량자로 전락,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한다.
약 5개월 동안 옥 씨에게 피해를 입은 광주시내 노래방은 총 14곳으로, 총 피해 금액은 2000만 원이 넘었다.
그렇다면 옥 씨는 왜 하필 노래방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게 된 것일까.
김 팀장은 이에 대해 “범행의 용이성 때문에 노래방을 표적으로 삼았던 같다”고 말했다.
막막한 생활을 해나가고 있던 옥 씨는 어느날 밤 노래방 간판을 보고 ‘기가 막힌’ 범행을 계획하게 된다.
야심한 시각 노래방에는 업주가 혼자 지키고 있거나 소수의 손님들만 있을 것이고 손님들도 대부분 술에 취해 있을 것이라 범행이 수월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
더구나 옥 씨는 태권도 공인4단의 유단자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라고 김 팀장은 설명했다.
옥 씨는 강도상해죄 치고는 중형에 해당하는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단기간에 14차례나 범행을 반복했고 여기에 징역 7년 이상에 처하도록 돼 있는 강도상해죄와 징역 5년 이상의 단순강도죄, 강제추행, 신용카드 부정사용 등의 범죄를 함께 저지른 점도 중형 선고 이유로 설명됐다.
특히 자신의 범행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와중에도 공권력을 비웃어가며 범행을 멈추지 않은 ‘괘씸죄’도 반영됐을 것이라는 게 경찰과 법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