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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5장 17-21절. 은혜가 더욱 넘쳤다
1. 지난 시간에는,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소위 <원죄>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이미 아담의 허리 안에서 함께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 오늘은 아담의 범죄보다 예수님의 은혜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하수도에서 나오는 독극물이라면, 예수님의 은혜는 큰 홍수와 같아서, 능히 아담의 죄를 무력화시키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3. 그래서, 오늘은 <죄가 있는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4. 오늘 내용도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17절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사망이 들어왔으나, 예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쳐서 생명이 왕 노릇한다는 내용입니다.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if by the transgression of the one, death reigned through the one, much more those who receive the abundance of grace and of the gift of righteousness will reign in life through the One, Jesus Christ.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εἰ γὰρ, τῷ τοῦ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ι, ὁ θάνατος ἐβασίλευσεν διὰ τοῦ ἑνός,
if for, by the of the one transgression, the death reigned through the one
직역하면 ‘왜냐하면 만일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해서 왕 노릇을 했다면’이란 뜻입니다.
‘왕노릇하였다’는 동사(ἐβασίλε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reigned) 역사적으로 사망이 왕 노릇 한 분명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πολλῷ μᾶλλον οἱ τὴν περισσείαν τῆς χάριτος, καὶ τῆς δωρεᾶς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λαμβάνοντες, ἐν ζωῇ βασιλεύσουσιν διὰ τοῦ ἑνὸ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how much more those the abundance of the grace, and of the gift of the righteousness receiving, in life will reign through the One, Jesus Christ
직역하면 ‘하물며 더구나 은혜와 의의 선물을 풍성히 받고 있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받는’이란 동사(λαμβάν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receiving) 항상 받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왕 노릇 하리로다’는 동사(βασιλεύσουσιν)는 미래형으로서(will reign) 장차 왕 노릇 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1.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왕 노릇 했다’는 것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하여, 그 자손인 모든 인류가 사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은 자들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죄 용서를 받은 성도들은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뜻입니다.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자들’에서 동사(λαμβάνοντες)가 현재분사(receiving)인 것은 항상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에서 동사(βασιλεύσουσιν)는 미래형으로서(will reign) 장차 천국에서 왕 노릇 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사망에 종노릇 해서 누구나 죽게 되지만, 장차 천국에서는 사망이 폐지되고, 우리가 생명 안에서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2. 아담의 범죄의 결과와 예수님의 은혜의 결과가 어떠한지 대조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담의 후손에게는 죄와 사망이 왕 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히브리서 2장 14절 말씀대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에게 종노릇 하면서 일생 동안 죽음을 무서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 반면에,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와 의를 선물로 받고 있는 성도들은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① 본문에,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고 있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즉, 불신 시대에는 마귀에게 종 노릇 했으나,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이기고, 영생을 누리며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② 그래서,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10절에는, <저희로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왕 노릇 하리로다>
고린도전서 6장에서는 <세상을 너희가 판단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천사들도 판단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3. <사망이 왕 노릇 하였은즉>은 과거형이고, <은혜와 의를 받은 성도들이 왕 노릇 하리로다>는 미래형입니다.
불신 시대에 마귀의 종노릇 하던 때는 과거이고, 지금부터 앞으로 영원히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의를 선물로 받은 우리가 왕 노릇 하게 될 시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지금 벌써 사망 권세를 이기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즉, 우리 성도들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면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었습니다.
4.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아담의 범죄와 대조하여 <은혜와 의>를 주셨는데, 그냥 범죄를 상쇄해버리는 정도만이 아니라, 은혜와 의를 <더욱 넘치게> 주셨습니다.
그저 죄만 용서받은 것이 아니라,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아니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죄와 사망 권세 잡은 마귀에게 종 노릇 하면서, 죽음의 공포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도님들과 저는 예수님(성령님)을 모심으로써, 죄와 사망과 마귀를 물리치고, 영생을 누리며, 왕 노릇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8-19절.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나,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된다는 대표성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n as through one transgression there resulted condemnation to all men, even so through one act of righteousness there resulted justification of life to all men.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Ἄρα οὖν, ὡς δι’ ἑνὸς παραπτώματος, εἰ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εἰς κατάκριμα,
So then, just as through one trespass, to all men into condemnation
원문에는 ‘많은 사람’이 ‘모든 사람’(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all men)으로 되어 있습니다.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οὕτως καὶ δι’ ἑνὸς δικαιώματος, εἰς 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εἰς δικαίωσιν ζωῆς·
so also through one righteous act, to all men into justification of life
직역하면 ‘이처럼 또한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칭의가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본 절에서 ‘이른’이란 동사나 ‘이르렀느니라’는 동사는 원문에 없고, 전치사로 처리되어 있으나, 번역상 적절한 번역입니다.
원문에는 ‘많은 사람’이 ‘모든 사람’(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 all men)으로 되어 있습니다.
1.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는 것은 아담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모든 사람이(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all men) 정죄에 이르러 죽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위(인류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신 의로운 행위)로 말마암아 모든 사람이(πάντας ἀνθρώπους:all men)이 ‘생명의 칭의’(δικαίωσιν ζωῆς·:justification of life)를 얻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9절.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as through the one man's disobedience the many were made sinners, even so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the many will be made righteous.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ὥσπερ γὰρ διὰ τῆς παρ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 ἀνθρώπου, ἁμαρτωλοὶ κατεστάθησαν οἱ πολλοί,
For as for through the disobedience of the one man, sinners were made the many
직역하면 ‘왜냐하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들이 되었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함’(παρακοῆς)은 ‘곁으로’(παρα)란 접두어와 ‘듣다’(ἀκούω)의 합성어로서, 겉으로 듣고 순종하지 않는 것을 가리킵니다.
‘된’이란 동사(κατεστά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made), 과거에 확실한 죄인이 된 사실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οὕτως καὶ διὰ τῆς ὑπακοῆς τοῦ ἑνὸς, δίκαιοι κατασταθήσονται οἱ πολλοί.
so also through the obedience of the One, righteous will be made the many
‘순종하심’(ὑπακοῆς)이란 단어는 ‘위로’(ὑπό)라는 접두어와 ‘듣다’(ἀκούω)의 합성어로서 듣고 순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되리라’는 동사(κατασταθήσονται)는 미래 수동태로서(will be made) 장차 될 것을 가리킵니다.
1. 대표성의 원리가 어렵고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각도에서 반복하고 있습니다.
(1) 첫째는, <아담의 원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한 범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2) 다음으로, <대표성의 원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죄인 된 인류의 대표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의 대표입니다.
18절.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절.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즉, 아담의 원죄로 많은 사람이 죽게 된 것 같이, 예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살게 된 이것은 정반대의 모형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3) 그 다음으로, 지금까지의 <칭의 교리에 대한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대 주제는 <칭의 교리>입니다.
3장 21절 이후로, 이 칭의 교리를 죽~ 설명해오고 있습니다.
① 이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② 이 의는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 믿음으로!
③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이 의를 어떻게 주십니까? - 선물로, 은혜로!
④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 누릴 축복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⑤ 하나님께서는 원수 된 인간들에게 어떻게 이 의를 마련해주셨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으로써!
이제 오늘 본문도, 칭의 교리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절.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 18-19절은 대조점과 연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대조점입니다.
18절에서 ‘한 범죄’와 ‘한 의로운 행위’가 대조되고, ‘정죄’와 ‘의롭다 하심’이 대조되었습니다.
19절에서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과 ‘한 사람의 순종하심’ 이 대조되고, ‘죄인’과 ‘의인’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2) 연결점입니다.
18절의 ‘한 범죄’와 19절의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이 연결되고, 18절의 ‘한 의로운 행위’와 19절의 ‘한 사람의 순종하심’이 연결되었습니다.
18절의 ‘정죄’와 19절의 ‘죄인’이 연결되고, 18절의 ‘의롭다 하심’과 19절의 ‘의인’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3. 18절에서는 <정죄에 이르렀다>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19절에서는 확정판결을 한 것처럼, <죄인> <의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4. 19절은 아담과 예수님을 대조하여 얻은 총 결론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었다.>
이 시간에 성경 말씀이 주시고자 하는 내용을 제가 성도님들에게 질문해보겠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는 <원죄설>을 성도님은 믿습니까? (아멘)
그렇다면, 같은 원리로, 한 분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는 말씀도 믿으십니까? (아멘)
성경은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죄인 된 것이 사실이듯이,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의인 된 것이 사실이다는 말씀입니다.
5.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유명한 설교자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9년경–407년) 목사님의 말입니다.
만일 유대인들이 성도님에게 묻기를, <왜 예수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냐?>고 하거든, 성도님은 그 유대인에게 이렇게 반문하십시오.
<그러면 왜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느냐?>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와 부활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음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도 예수님(성령님) 모시고, 모든 마귀의 정죄를 물리치고, 구원의 은혜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0-21절. 아담의 죄 보다 예수님의 은혜는 더욱 넘쳤다는 말씀입니다.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Law came in so that the transgression would increase; but where sin increased, grace abounded all the more,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νόμος δὲ παρεισῆλθεν, ἵνα πλεονάσῃ τὸ παράπτωμα·
Law but entered, so that might abound the transgression
‘들어온’이라는 동사(παρει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entered) 율법이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더 하게 하려 함이라’란 동사(πλεονά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might abound) 확실히 범죄를 더 하게 하는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οὗ δὲ ἐπλεόνασεν ἡ ἁμαρτία, ὑπερεπερίσσευσεν ἡ χάρις,
where but abounded the sin, overabounded the grace
‘더 한’이란 동사(ἐπλεόνασεν)는 부정과거로서(abounded) 역사적으로 죄가 더해진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πλεονάζω)은 ‘넘친다, 풍성하게 하다’(superabound, make to abound)는 뜻입니다.
‘더욱 넘쳤다’는 동사(ὑπερεπερίσσευσεν)도 부정과거로서(overabounded) 확실히 더욱 흘러넘친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키고. 원형(ὑπερπερισσεύω)은 ‘더욱 넘치게 한다’(abound more exceedingly)는 뜻이고, 원형(ὑπερπερισσεύω)은 ‘지나치게’(ὑπέρ)라는 접두어와 ‘넘치다’는 동사(περισσεύω)의 합성어로서 더욱 넘친다는 뜻입니다.(ὑπέρ, meaning "over" or "beyond" and περισσεύω, meaning "to abound" or "to exceed").
1.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는 것이다’는 말씀은 모세 율법이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에 가입한 것은 아담 이후 사람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정죄할 뿐만 아니라, 사람 안에 내재된 죄성을 자극해서 더욱 죄를 짓게 하고 결과적으로 죽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7:7-1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2.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더욱 선명해지고 더욱 많아졌지만, 이 죄를 덮는 예수님의 속죄의 은혜는 그 죄보다 훨씬 더 많이 넘치도록 풍성했다는 뜻입니다.
즉 ‘더욱 넘쳤다’(ὑπερεπερίσσευσεν: overabounded)는 동사는 율법으로 죄가 세상에 넘쳤으나 예수님의 피로 인한 속죄의 은혜가 죄 보다 더욱 넘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가 죄를 다 깨끗이 씻고도 남음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21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at, as sin reigned in death, even so grace would reign through righteousness to eternal life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ἵνα ὥσπερ ἐβασίλευσεν ἡ ἁμαρτία ἐν τῷ θανάτῳ,
so that just as reigned the sin in the death
‘왕 노릇 한’이란 동사(ἐβασίλε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reigned) 죄가 분명히 왕 노릇 하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οὕτως καὶ ἡ χάρις βασιλεύσῃ διὰ δικαιοσύνης
so also the grace might reign through righteousness
‘왕 노릇 하여’란 동사(βασιλεύσῃ)는 부정과거 가정법으로서(might reign) 역사적으로 틀림없이 왕 노릇 한 것을 가정한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εἰς ζωὴν αἰώνιον διὰ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unto life eternal through Jesus Christ of the Lord our
‘이르게 하려 함이라’란 동사는 원문에는 없으나 올바른 번역입니다.
1. 전치사를 볼 때, ‘사망 안에서’(ἐν τῷ θανάτῳ: in the death)란 인류가 범죄로 사망 안에 갇혀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영생에’(εἰς ζωὴν αἰώνιον into life eternal)는 우리가 영생을 향하여 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12절부터의 결론입니다.
즉,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오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들어왔습니다.
죄는 아담으로부터 들어오고, 은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입니다.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은 율법만이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씀입니다.
20절.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1) 즉, ‘은혜’가 ‘죄’를 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은혜’ 뿐입니다.
<아담의 범죄>에 <예수님의 은혜>가 대항하고 있습니다.
(2) ‘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무엇이 이를 몰아내고 있습니까?
‘은혜’입니다.
‘은혜’는 ‘죄’를 몰아낼 뿐만 아니라, ‘은혜’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인만 때려잡아서는 사회가 좋아질 수 없습니다.
자꾸,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더욱 많아져야 합니다.
(3) 그런데, <죄>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자꾸 <죄>의 세력이 더해만 갑니다.
그렇지만, <은혜> 역시 <더욱 넘칩니다.>
죄악이 이 사회에 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가 더욱 힘 있게 퍼져나갑니다!
3. ‘죄’가 들어올 때, 우리는 번번이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는 죄책감에 빠집니다.
사탄은 ‘믿음’을 ‘낙심’으로 변하도록 애씁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욱 강하게 역사합니다.
내가 약할수록 주의 능력이 더욱 강하게 역사합니다.
고린도후서 12:9-10. 주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이는 주의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라.
4. 연약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성령님)의 은혜가 원자폭탄처럼 능력이 있습니다.
<은혜>는 ‘죄’를 여지없이 격퇴시켜버립니다.
21절. 은혜가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리로다.
<은혜>란 바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는 사탄과 양심에게 정죄 받은 죄인일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속죄와 부활의 새 생명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능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워줍니다! 할렐루야!
5.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즉, 3장 20절 말씀대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려 하심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깨달아야, <은혜>를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즉 <죄>의 심각성을 모르면, <복음>의 절대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만드는 간접적 역할(몽학선생 역할)을 합니다. (갈 3:24).
6.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즉, 죄를 조금 밖에 모르면, 은혜도 조금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죄의 심각성을 절감하면, <넘치는 은혜>에 감격하게 됩니다.
7.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즉, 은혜는 아무리 많은 ‘죄’라도 덮어버리고도 남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시냇물처럼 흐를지라도, 은혜의 강물은 폭포수처럼 넘치게 흐른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 사탄이 ‘너는 죄인이다’고 공격할 때에, <그러나 나는 예수님의 은혜를 믿노라>고 대항하시기 바랍니다!
(2)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는, 마귀가 환상 중에 나타나서, 자기의 죄의 목록을 벽에 가득히 기록하여, 낙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루터는 <나는 예수님의 보혈로 승리했노라>고 외치면서, 붉은 잉크병을 벽에 집어 던졌다고 합니다.
(3) 아무쪼록, 우리 성도님들도, 마귀가 우리 마음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예수님을 생각하고, 오늘 말씀을 생각하여, 믿음으로 마귀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마귀와 죄책감을 이기시고, 항상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8. 두 왕국이 있습니다.
21절.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리라.
(1) 마귀의 왕국과 예수님의 왕국입니다.
마귀의 왕국은 죄와 사망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왕국은 은혜와 의가 가득합니다.
(2)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처럼, 사탄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로서, 성도를 사망의 불안에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은혜>가 <의>와 함께 내 안에 왕 노릇 하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3) 전에는, 죄와 사망과 사탄의 왕국에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이제는 <은혜와 의와 예수님의 왕국>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주님 모시고, 영생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을 믿고, 죄악 세상에서, 넘치는 은혜로, 항상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주 안에 감추인 새 생명 얻으니 이전에 좋던 것 이제는 값없다. 하늘의 은혜와 평화를 맛보니 찬송과 기도로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