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31]
주기철(朱基徹, 1897-1944)②
평양 산정현교회를 담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36년 4월 첫 번째 검속(檢束, 공공의 안전을 해롭게 하거나 죄를 지을 염려가 있는 사람을 경찰이 잠시 가두는 일)을 당했습니다. 그해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있기 전 두 번째 검속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세 번째로 검속되었을 때는 1938년 8월 경북 의성에서 일어난 농우회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이유였습니다. 농우회 사건은 평양신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된 조직이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하며 신앙 운동을 이어갔는데, 이를 일본 경찰이 ‘기독교도들의 조선독립음모’라고 판단하고 의성교회를 수색하기 시작했고, 대구와 평양까지 수색과 체포를 이어간 사건입니다. 결국 74명 중 70명이 고문을 당하고 배교하거나 죽었는데 주기철 목사는 마지막까지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반년 만에 무혐의 처분으로 교회에 돌아왔지만 이미 목사직은 박탈되고 말았습니다. 산정현교회에서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리며 설교하고 나왔지만 교회당은 폐쇄되었고, 그는 또다시 검속되었습니다. 여전히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1940년 9월 5차로 검속되어 약 1년간 갇혀있다가 1941년 8월 평양형무소로 이감되었습니다. 그가 5차로 검속되기 전 늙은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 하나님께 어머니를 맡겨놓았습니다.”라고 하면서 함께 모인 교우들을 향해 마지막 설교를 했는데, 주님을 위하여 당하는 수욕을 피한다면, 고난의 잔을 피한다면, 주님을 위해 져야 할 십자가를 피한다면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941년부터 평양형무소에서 고통스러운 감옥생활을 하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4월 21일 순교했습니다.
참고: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