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가 어떻게 해서 우리 수학사에 나타나게 되었나?

사실 수학 발견의 역사는 기존의 수학적 질서에 대한 모순과 그를 해결하려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충돌의 역사라 표현할 수 있는데요 이런 상상의 영역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허수의 발견입니다
허수(虛數, imaginary number)는 그 이름에서부터 인간의 합리적 이해로는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이해되어 ‘허황된 수’, ‘상상의 수’로 이름 지어졌는데요
기존의 정수, 유리수, 무리수로 구성된 실수와는 달라 수학자들은 그 존재를 감지하고도 부인하거나 숨겨두기 일쑤였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입장에서 허수는 이탈리아의 수학자 카르다노(Cardano, 1501~1576)가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표했을 시기부터 허수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삼차방정식의 해법은 사실 수학자 타르탈리아가 발견하였으나 카르다노가 비열한 수법으로 가로챈 것이라고 합니다.
봄벨리(Rafael Bombelli, 1526~1572)는 1572년 삼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허수를 이용한 복소수를 생각했는데, 그는 복소수의 연산을 실제적으로 현대적인 방법으로 형식화하였지만 허수와 실수의 결합 형태인 복소수를 쓸모없고 궤변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후에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그의 저서 ‘기하학’에서 “참인 근이나 거짓인 근(음수근)이 반드시 실수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허수일 때도 있다”고 말함으로서 허수(imaginary numbe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지만 수가 아니라고 경멸하였다고 합니다.
실례로 'x²+1' 방정식을 생각해보면 허수가 왜필요한지 알게됩니다
실수 즉 유리수나 무리수 혹은 정수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데요
따라서 해가 존재하도록 하려면 새로운 수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국 일종의 약속이 필요한데요

그래서 바로 그 약속을 x² = -1 공식에서 x값을 i라 쓰고, 이것을 상상의 수 허수로 인정한 것입니다 .
이 공식 외에도 허수는 다양한 수학적 경우에 나타나는데요
아무리 약속이라고 하지만, 수(실수) 집합을 수직선과 일치시켜서 생각해 왔던
우리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데가 많았습니다.
즉 기존에는 실수대 실수의 등식관계로만 생각해왔다는 겁니다.
제곱해서 마이너스가 되는 수는 수직선 위의 어디에도 없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새로운 수는 단지 방정식의 해로서만 등장했지
수직선과 관련지어서 생각한다는 따위의 약속이나 규정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약속에 의하여 i = √-1이 성립될 뿐인데요, i 가 수라면 결국 a + bi (a, b는 실수)는 수여야 합니다. 게다가 이것들 사이에 사칙연산이 성립해야 하는데요
이러한 허수의 연산에는 실수의 연산과는 너무나 다른 기존의 수의 성질로는 해명할 수 없는 특성이 있습니다
왜냐햐면 기본적인 연산이 성립되지 않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그리고 실수와 허수사이의 더욱 중요한 특징은 허수는 그 크기와 순서를 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수의 특징은 생각할수록 기묘한 느낌을 주는것 같은데요
허수는 기존의 수의 질서를 모두 무시하고도 그 존재의 영역을 그림자로 또는 부인할 수 없는 실체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허수는 수학세계에서 인정받기까지 수 백 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는데요
어쩌면 수학은 언제나 새로운 혁명을 필요로 한건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체계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여도 그 체계에서 안주할 수 없는 모순이 대두되는 것인데요 이 모순을 해결하게 되면 다시 또 다른 모순에 부딪치게 되고
그 때마다 이 모순을 기존의 체계 속에 통합하는 발전의 과정을 거치게 된것입니다
즉 현재의 수학은 계속해서 모순과 부딪히는 혁명을 반복하며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현실의 세상에서 허수와같은 존재는 실재한다고 생각한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적으로 감지하고 인식하는 형상을 환상으로 보고 허수적인 존재를 실재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이들 중에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파르메니데스입니다.
물론 이분들은 그당시에는 궤변자로 낙이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양자역학의 미시세계를 탐구하는 지경에 이른 오늘날에는 허수이 존재를 인정한 그분들이 옳다고 생각하게됩니다.
또한 종교를 믿는 분들은 허수의 존재를 가상의 것이라고 생각히지 않습니다.
실재한다고 봅니다.
허수는 가상의 허구의 수가 아니라 실재한ㄴ 수라는 겁니다.
초고대의 사회에서는 신화화된 이야리로 마구 폄화하지만 사실 이미 초고대사회에서부터 허수의 존재를 인정한 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고 무지몽매한 것은 이들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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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보면 i는 x² = -1 의 해를 구하기 위해서 도입되었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많은 수학자들에게 있어서 허수의 개념은 사실 그다지 필요가 없었죠.
수학과 함께 발전한 물리학에서조차 20C 현대물리학의 양자역학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실제로 허수의 개념이 별로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실수의 개념만으로도 실세계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기에 새로운 수체계에 대한 필요성이 그다지 없었습니다.
즉, 실수의 제곱이 양수라는 것으로(혹은0)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에서 x² = -1의 해라는 것은
'허수를 도입해야 겠네!!' 라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x² = -1은 해가 없는 방정식 이군!' 이라고 받아 들여졌죠.
따라서 뭔가 새로운 개념을 얻기위해서 방정식 x² = -1의 해를 구하는 시도는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허수의 도입은 어디에서 요구되었을까요?
역사적으로는 x² = -1 같은 이차방정식이 아니라 3차방정식을 푸는 과정에서 요구 되었습니다.
16세기경 유럽에서는 수학자들간에 명예를 걸고 수학대결을 펼치는 일이 빈번했는데,
'타르탈리아'라는 수학자가 수학대결을 하는 과정에서 최초로 일반적인 3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얻어냅니다.
이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전해들은 '카르다노'라는 수학자는 해를 구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방정식의 '실근' 을 근의 공식을 통해서 얻으려고 하면, 그 중간 계산과정에서 허수가 존재하는 경우가 생긴겁니다.
위에 링크되어 있는 위키의 다음과 같은 3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 일부를 카르다노는 발견 하였습니다.
그는 방정식 x3 = 15 x + 4 가 x=4를 근으로 가짐을 알고 있었는데 (4를 대입하면 등식이 성립하므로)
위 공식을 사용하면 다음과 같은 근을 얻습니다.
카르다노는 직관적으로 얻은 근인 x=4와 위의 근이 일치할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실제로도 계산하면 정확하게 4와 일치함)
그 추측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루트안의 -121을 해결해야 했던 것이지요
즉, 'x² = -1의 근과 같은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실근'을 구하기 위해서는 '허수'를 계산하여 간단히 하는 연산이 필요하게 된겁니다. 하지만 카르다노는 허수에 있어서 수학적으로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합니다.
그 이후에 내노라 하는 수학자들에 의해서 복소수의 기본 개념이 잡혀가기 시작합니다.
ps1. 역사적인 배경이나 이론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시다면 책을 하나 추천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