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보내는 편지(57)
샬롬!
어느새 동백꽃 떨어지고,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라는 진달래의 화려한 봄꽃 향연도 지난 번 내린 비로 꽃잎은 떨어지고 촉촉한 땅의 물기만이 남아 나무들을 즐겁게 하고, 연둣빛 찻잎의 반짝임과 푸른 보리 바다의 물결이 빠르게 뛰어오며 반팔 입은 청춘들은 이른 여름을 고합니다. 이제 푸시시하던 산하의 구석구석이 환해지며 둔한 사람이 확실하게 눈치를 채고 봄이 왔구나! 하는 때 봄은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여 아쉽게 사라지는 파스텔 톤 봄을 잡으러 어디로 훌쩍 떠나고 싶은 데, 여간 시간내기가 어려운 게 아니어서 오늘 아침은 교정에 피어있는 보라색 노랑색 흰색 붉은색의 이름 모를 들꽃을 쭈그리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들꽃에게서 순수함과 세미함을 배웠습니다. 반기는 이 하나 없고, 오가는 이의 발에 밟혀도 청순하고 수줍어하면서도 비겁하지 않게 자신의 모습을 빛내며 끈기를 보이는 그들이 너무 당당해 보였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만을 좇아가는 세태 속에서 작고 소박한 즐거움과 기쁨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가정에도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하나님의 봄꽃 향기가 풍성하게 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최근 외모 지상주의적 분위기 확산이 사회 전반에 심상치 않습니다. 명품을 통해 외적인 두각을 보이려는 명품족, 외적인 건강과 미가 관심인 '웰루킹(Well looking)'족들이 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를 초월하여 무차별적으로 외적인 모습에 근거한 '몸짱' 또는 '얼짱'이라 불리는 범주에 범죄자까지 포함되는 사례까지 등장하였습니다. 외모의 중요성과 함께 외모를 가꾸고자 하는 태도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문제는 건전한 철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이 이슈를 접근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을 비롯한 복음 중등부 가족 모두는 꾸며진 미소와 외모보다는 들꽃처럼 보잘것없고 알아주지 않지만 진실된 마음과 생각으로 자신을 정갈하게 다듬을 줄 아는 지혜를 쌓으며, 가진 것이 적어도 나눠주는 기쁨을 맛보며 행복해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지나쳤던 사소한 순간들의 진미를 맛보는 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이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채 저녁준비를 하면서 부엌에 서있는 부인의 모습, 퇴근할 때 부인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을 고르는 아빠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 집에 돌아온 집주인을 향하여 반갑다고 꼬리치며 달려드는 강아지의 모습 등의 우리의 삶 속에 숨어있는 소박한 기쁨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는 갑자기 자리를 비워 선생님들께 걱정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렇게 저를 사랑하고 염려하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실은 경기도 포천 일대의 여러 교회를(화산, 새청, 여울목, 작은 예배당, 시냇물 흐르는 교회) 방문하고 돌아 왔습니다. 약 30년 전부터 교회가 없는 포천의 남청산 지역에 교회를 개척하며 연고를 갖기 시작해 오랫동안 여러 목회자들이 팀을 이루어 협력목회 즉 팀 목회를 해오던 곳으로 제가 목포에 내려오기 전까지 목회하던 곳으로 한번 꼭 가보고 싶었는데 왠지 맘도 술렁거리고 꿀꿀하던 차에 겸사겸사 둘러보고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교통이 좋지 않아 30리 길을 걸어 다니고, 처음엔 거처가 없어 큰 나무 밑을 교회 삼아 예배드리고 비라도 내리면 남의 집 처마 밑에 모여 예배드리면서도 조금도 불편하거나 힘들다고 군소리하거나 불평 한마디 없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불타는 열정과 사명으로 동네 모든 집을 내집처럼 드나들며 때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론 일손을 도우며 농사도 지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번은 예배 중에 교회가 동네 망친다는 청년의 도끼질에 예배드리다 말고 얼마나 급했던지 산 넘어 이웃 동네로 맨발로 도망갔던 일도 있었는데, 그때 저와 함께 일하던 신학대학의 모교수는 순교할 기회가 왔는데 못했느냐며 저를 놀려대는 바람에 나중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근데 그럴 만 한 것이 그때 청년을 말리던 할머니 여집사님은 삽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 갔었거든요. 나중에 다시 교회로 돌아와 맨 먼저 낫과 도끼 삽 등의 모든 농기구를 숨기느라 부산을 떨고 그러고도 두려워서 몇 주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지냈습니다. 또 한번은 왠 집사가 저를 찾아와 대뜸 교회를 개척하자고 합니다. 아니 처음 뵈는 분인데 어떻게? 했더니 제가 심방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 제 심방하는 모습이 어땠는데요? 하고 되물으니 목사님의 낡은 구두를 보고 알았습니다 그러더라구요. 그래 뭘 알았습니까? 했더니 그 분의 대답이 아, 저렇게 구두가 닳을 정도로 심방을 하면 틀림없겠구나 싶더랍니다. 그렇게 개척된 교회가 광촌교회입니다. 그땐 정말 그랬습니다. 구두가 너무 자주 닳는 것을 보고 안쓰럽게 생각한 권사님은 사위의 장교화(군화)를 가져다 주셨으니까요.
그런데 그토록 죽음도 무서워하지 않고 산길 밤길 먼길 가리지 않고 다니던 그 열정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한글을 태반이 몰라 성경으로 한글을 가르치며, 아무리 이해시켜도 알아듣지 못하는 대속의 은혜를 깨닫게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만 추수감사절이면 쌀과 호박 등의 예물을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오는 그들의 순수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여러분 !! 저에게 이런 열정과 불타는 소원이 다시 일어나게 기도해 주십시오.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들판으로 나가던 언니가 보고/ "얘, 너 선생님께 걱정 들었구나."// 다 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동네 샘 앞에서 누나가 보고/ "얘, 너 동무하고 쌈 했구나."// 다 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삽작문 밖에서 아버지가 보고/ "얘, 너 어디가 아픈가 보구나."// 다 저녁때 배고파서/ 고개 숙이고 오니까/ 부엌에서 밥짓던 어머니가 보고/ "얘, 너 몹시도 시장한가 보구나." (권태응 “고개 숙이고 오니까”)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우리의 형편을 읽어 내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사랑스런 마음과 배려가 우리 복음중등부 가족들에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중등부기 '비전증인500'을 선포하고 4개월이 지나갑니다만 아직도 별반 뜨거움과 변화가 없는 것은 바로 우리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이런 관심을 소홀히 하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해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 선생님들이 시간을 내어 자주색으로 변한 보성 차밭이나, 아니면 연한 새잎이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청보리가 넘실대는 고창 보리밭이라도 찾아 보리밭 사잇길 걸으며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보리 피리를 불면서 우리 서로 마음 맞추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른한 봄은 소홀해지기 쉬운 계절입니다. 게다가 각 학교들의 수련회 기간이고, 곧 있으면 중간고사로 아이들의 마음도 분주해집니다. 이럴 때에 마음을 다잡지 못하면 내리막길을 달리게 됩니다. 긴장을 늦추지 마시고 커피 한잔 마시며 음악을 듣는 느긋한 여유는 살리시되 아이들을 향한 열정과 관심은 변치 않기를 바랍니다. 학습자와 세례자 다시 한번 확인해서 권면해 주시고, 내일은 생일축하와 교사월례회도 있습니다. 또 5월 중순경에는 우리의 꿈, 세계를 향한 ‘열정과 비전’ 우주를 품는 원대함으로 한걸음씩 푯대를 향해가는 비전증인들의 준비로서 외국어 찬양대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이어 2번째 개최되는 외국어 찬양대회를 미리 준비해주시어 찬양도 하고 외국어 실력도 키워 나가는 실력있는 중등부가 되길 원합니다. 곡은 자유곡으로 외국어로 된 찬양이면 무엇이든 상관없고, 팀은 학교별 반별 개인별 가족별 사제간 등 원하는 대로 구성하시면 되고 인원제한도 없습니다. 다만 기왕 준비하시는 것 화음을 이루거나 율동과 악기 등을 곁들이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암튼 뭐니 해도 교사의 열정과 기도가 중요한 때입니다. 오늘밤엔 늦더라도 우리 영혼에 물을 좀 부어놓고 세제도 듬뿍 넣어 더러워진 영혼을 깨끗하게 닦아내어 영혼의 첫사랑과 열정을 회복했으면 합니다. 날이 너무 화창합니다. 그동안 밀린 집안 청소도 말끔히 하고 베란다의 화단도 가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잘 정리되어 열기만 하면 필요한 물건을 언제나 찾아 쓸 수 있는 서랍처럼 마음 관리를 잘 해내시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 훌륭한 과거를 가지셨군요. 지금도 훌륭하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