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여기는 ‘화산섬’으로 511m 높이의 산이 제일 높은데,
겉으로 보기엔 제주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검은 현무암으로 뒤덮인, 그렇지만 여기는 어디를 가든 바닷가에 닿으면 언덕이라는 게 좋았습니다.
제주도의,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섭지코지’ 같은 분위기가 넘치는 곳이라서요.
그저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널려 있는 거지요...
다만, 여기는 ‘모아이’ 상이 육지를 향해 침묵을 지키고 서 있는 게 엄숙하기까지 한데,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방향을 정해놓지 않고 서 있는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기는 하드라구요.
그리고 기후가 그래선지 잔디가 그 언덕을 뒤덮어, 바닷길을 걷기에 참 좋은 환경인 것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 숙소는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으로 ‘따하이(Tahai)’에서 가까운데,
돈이 없는 관계로 바다가 보이는 전망좋은 숙소는 구할 수가 없어 마을 안 쪽에 있는(집 마당밖에 보이지 않는) 곳이긴 한데,
처음 배정 받은 방은, 넓고 개인적인 화장실까지 있어서 좋긴 한데, 어둡고 2층 침대라서, 작업할 공간도 없고 조명도 어두워 일을 할 수가 없어서(이틀을 자고),
그래서 주인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방을 바꿔주었는데, 화장실은 밖에 있지만 밝고 침대도 1층이어서, 게다가 부탁했던 탁자도 하나 갖다 줘,
제 일을(그림 작업도 시작)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아래)
그런데 이 ‘따하이(Tahai)’란 곳이 유명한 건, 이 섬 곳곳에 서 있는 ‘모아이 상’ 중 유일하게 눈이 그려져 있는 상(도심이나 관광지엔 그 모조품은 많지만)이 있기 때문이랍니다.
붉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화산재 같기도 한 잿빛 토양에, 도로인지 흙길인지 색깔만으론 구분이 잘 안 되지만, 여기 취락지역인 ‘항가로아(Hanga Roa)’ 도심은 규칙적으로 난 도로가 아닌 제 멋대로의 도로가 낮은 집들로(여긴 고층 건물이 없는 곳입니다.), 각 집마다 실내 공간은 널찍하게 잡는 게 특징인 것 같고,
물맛은 별론데, 그래도 비가 많은 지역이라(하루에도 수시로 소나기가 내립니다.) 청정지역임에는 분명한 것 같은데요...
사람들은 퍽 친절한 것 같은데, 동양인에게도 아주 우호적이드라구요.
(여기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은데,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술을 권하기도 하는 등...)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관광지 폐쇄를 했다가 이제 다시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니(그래서 검색이 심하고 철저합니다.), 나름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돼 있거나 깨끗한 건 사실인 것 같구요.
물가가 엄청 비싸다기에 저도 여기 오면서 산티아고에서 제가 먹을 식량은 어느 정도 가져왔는데(쌀, 콩(가르반소스), 스파게티 면, 라면 몇 개, 토마토 소스, 고추장, 간장, 견과류, 치즈 등), 과일 같은 건 가져올 수 없어서, 현지 과일인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걸로 때울 수밖에 없는 것 같구요,
또 한 가지,
제가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에서 개에 물려서, 그 뒤론 개만 보면 겁이 나는데,
여기도 길거리에는 개가 많아(물론 위협하는 개는 묶어놓고, 거리의 개들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기도 하던데),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구요,
아무튼 숙소가 ‘따하이’란 곳에 가까워서, 주로 그 주변을 다니고 있는데(제가 이 섬에서 약 한 달 머물 예정입니다.),
그저께는 오후에 나가 주변 한 바퀴를 돈 뒤, 돌아오는데 마을 주민인 듯한 사람이 불러서 인사를 나누다,따하이의 석양이 아름답다고 해서, 시간을 물으니 6시 쯤 나가보라고 해서,
조금 늦게 나갔는데, 여기 ‘공동묘지’ 쪽으로 해서 나갔더니 거기도 바닷가 언덕이라 좋긴 했지만,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언제 석양을 봐? 하다가,
언뜻 바다 한 가운데 점 하나가 사람 같아서 자세히 보니, ‘윈드서핑’하는 사람인 것 같아, 거기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아, 좋은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의 자세를 그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제 심정을 가져보고서야 알게 되었답니다.
그렇지만 그런 덕분에, 좋지 않은 카메라임에도 불구하고 몇 컷(수없이 사진을 찍어댔는데) 건질 수는 있었습니다.
그렇게 석양을 보러 나왔다가 윈드서핑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보냈더니, 아닌 게 아니라 해가 수평선을 향해 내려앉기는 해서,
다시 서서히 ‘따하이’ 쪽으로 걸어갔는데요,
그래도 아직은 일러 더 기다려야만 했고,
그리고 해가 기우는데도, ‘해넘이’는 그리 아름답지가 않아 실망만 하고 돌아왔는데요,
문득, 여기가 ‘절해의 고도’인 것도 그렇지만 인터넷도 안 되니, 나는 이중 적으로 고립된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지금 인터넷을 이용하다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입니다.)
그렇다고 외롭다거나 하는 감정은 아니었고, 뭔가 ‘너무나 멀리 떨어진 느낌’은 분명한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그게 외로움인가요? 아닌 것 같은데......
첫댓글 절해의 고도 그 먼 곳에서도 그나마 인터넷으로 소통할 수 있다니 세상 참 좋네요.
며칠 동안 목포 부근을 싸돌아다니다가 오늘 고창으로 갑니다.
고창에서 며칠 머물면서 일 좀 하고 다시 서울로.
떠돌이인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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