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뽀 아내
남편과 아침밥을 먹다 갑자기 남편이 밥술을 놓고는 화장실에 쫓아가서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헛구역질을 한다. 갈치 가시가 목에 걸린 것 같다며 얼굴이 벌겋도록 헛구역질을 해도 가시가 나오질 않는 모양이다. 현직에 있을 때 가시가 목에 걸려 출근길에 병원에 가서 금방 가시를 뽑고 출근한 적이 있었다.
길 건너 이비인후과에 가서 아픈 부위를 의사 선생님께 보여주었더니 의료용 해드라이트를 켜고 목안을 들여다보던 의사 선생님은 도저히 못 찾겠다며 소견서를 써주면서 경산에 있는 준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금방 가시를 뽑고 나올 줄 알았는데 준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말에 약간은 당황했지만 준 종합병원에 갔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도 의사가 한참을 목안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정확도가 높은 기기가 본 병원에는 없다면서 대구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소견서를 받아 일단은 집으로 왔다고 한다. 별것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한 가시가 별것이 되어 대학병원까지 가야 된다고 하니 나도 등달아 마음이 불안했다. 목구멍 어딘가 모르게 박혀 눈에 띄어지지도 않는 하잘 것 없는 작은 가시가 대학병원까지 가라는 바람에 걱정이 되었다. 때가 되어서 일단은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가자고하니 ‘밥을 먹겠나?’ 라고 하더니 뜨끔 거리지만 ‘그럼 한 술 뜨고 갈까 ’라고 말 하여 나는 참기름을 뜸뿍 넣고 나물에 밥을 비벼 한입 가득 넣고 넘겨보라고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옛날 어르신 분들이 하시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는 서당 개 3년 이면 풍월을 옲는 다고 그 풍월을 남편에게 써먹었다. 병원 내왕이 쉽지 않았던 어린 시절 민간요법으로 질병을 다스리시던 할머니, 어머니께서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남편에게 그대로 옲어 보았다. 보통 때 같아서면 막무가내 권하는 나한테 무지 막 하게 군다고 화를 낼 법도 한데 대학병원 가보라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지 순순히 내 말을 들어주었다. 한 입을 넘기고 난 뒤 나는 연거푸 또 한술 더 떠서 넘겨보라고 했더니 시키는 대로 잘 했다. 밥 두 숟가락을 넘기고 나더니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상하다 영 좀 나은 것 같다고 하면서 밥그릇을 다 비웠다.
처음에는 작은 가시 하나를 뽑으려고 대학병원에까지 가라는 소견서를 받고 놀랐고 또 나물밥을 먹고 금방 덜하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심쩍어 목이 아프다고 하면 병원에 따라가려고 나도 옷을 갈아입고 만반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하는 걸 보니 남편이 아픈 엄살은 보통이 넘는데 견딜만한지 병원 가자는 말이 없다.
몇 시간이 흘렀지만 목에 박힌 가시로 괴로워하지 않아 나물 비빔밥이 나를 명의로 만들어 주었나 하고 속으로 피식 웃으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가시를 뽑지 못하고 대학병원까지 가라는 소견서를 받고 풀이 죽었던 남편은 금새 얼굴빛이 환하다. 생선가시의 효험은 비싼 고기반찬도 해물 반찬도 아닌 빈들의 띄엄띄엄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은 봄나물 시금치와 냉이 나물이었다. 다음날도 그다음날도 남편은 들에도 가고 볼일도 보러 갔지만 아프다는 말이 없었다.
소견서를 들고 큰 병원에 갔으면 여러 군데 사진을 찍고 하루 이틀 입원이라도 했다면 적어도 몇 십만 원은 작살이 나고 정신적 부담도 컷을 텐데 준 종합병원에서 바로 대학병원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가려고 집으로 왔다가 어설픈 아내의 약발이 남편에게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종종 텔레비전에서 암 선고나 희귀병에 걸려 삶을 포기하고 산속에서 생활하다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건강을 찾았다는 “나는 자연이다”라는 프로를 우리는 즐겨보고 있다. 아픈 사람으로서는 기적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도 남편 목에 박힌 가시가 사라진 것은 작은 기적이라는 생각에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며칠 후 아들이 집에 왔을 때 자랑삼아 아버지 목에 가시 박힌 것을 엄마가 낫게 했다고 이야기 했더니 칭찬할 줄 알았던 아들은 깜짝 놀라며 ‘엄마 요번에는 운이 좋아 민간요법이 통했는지 모르지만 준 종합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할 때는 상태가 위급하다는 신호이니 앞으로는 바로 큰 병원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라고 말하며 칭찬보다는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찾아올지 모르는 부모 건강에 대하여 걱정을 했다. 무대뽀가 통한 엄마를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봄에 써둔 것을 옮겨 보았습니다.
첫댓글 무대뽀 아내가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훌륭한 의사 선생님 입니다. 저도 어릴적 생선 가시가 목에걸려 어쩔줄 몰라 할때 어머니가 비벼주신 시레기 밥을 입이 터져라 입안 가득 씹어 삼키고 나니 괜찮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네 조상들이 전수해온 삶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