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한 편 보다
김 상 립
어느 늦은 봄날, 소리 소문도 없이 눈이 내렸다. 자고 일어 나 서 베란다에서 집 앞 산을 바라보니 산 위쪽으로는 제법 눈이 하 얗게 쌓였다. 옳다구나 싶어 나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근교의 산에 올라 실컷 눈 구경을 하고 집으로 오는 길이다. 시내 버스에 실려 도심으로 들어 오며 고개를 돌려 바깥만 열심히 보면서 왔다. 눈 덮인 산과는 달리 도시는 이미 본래의 모습으로 많이 돌아와 있었다. 시내를 둘러싼 성벽 같은 아파트 단지들은 눈 온 흔적만 남겼고, 회색 전봇대나 초록 교통안내판도 나 보란 듯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거리의 간판도 대충 손님 맞을 준비를 마 쳤고 지붕에 눈을 인 자동차가 줄을 이어 달리던 하얀 도로는 어느새 검은 핏줄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세상 전부가 하얀 채로 좀 더 오래 버텨주었으면 좋으련만, 편의성과 이해 관계로 똘똘 뭉친 현대도시는 눈 내린 풍경조차 오래 붙잡지 않는 모양이다. 어쩌면 갖가지 욕심이 판을 치고 간사한 생각으로 둘러 쌓인 도시의 기운(氣運)은 하얀 눈과는 상극을 이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북극의 눈이 자꾸 줄어들고 남극의 빙하조차 빠른 속도로 녹아 가는 것도, 인류의 과소비가 빚어낸 결과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런 놀라운 현상 앞에서 자신의 소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특히 우리나라는 정치권력을 향한 무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추세니, 그런 욕심 어린 열기(熱氣)를 하얀 눈이 오래 견뎌 낼 재간도 없을 터이다. 사회적으로 봐도 그렇다. 한 가족의 행복공장인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두고도 그 값을 10억이네, 얼마네 하고 불러대며 값 오르기에 목을 매니, 많은 이들이 집이 아닌 투기상품에 얹혀사는 꼴이다. 또 개발이라는 개자(開字)만 보여도 눈들이 시뻘개 닥치는 대로 땅을 사두려고 이리저리 몰려다니니, 농지는 자꾸 줄어 언젠가는 기본 먹거리도 위협받을 판에, 눈도 오래 쌓여있을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류문명은 늘 자연과 함께 발전해야 하는 데 출발부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사람의 삶이 점점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장차 기술은 놀랍게 앞서갈 것이고 자연파괴는 더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런 처지인데도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은 자연 보호와는 반대입장에 서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인류가 황폐화된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 같지만, 내 생각으로는 지구와 똑같은 별을 찾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설령 기적이 일어난다 한들, 지금과 같은 삶의 행태를 고치지 않는 한, 그 별 또한 지구와 동일한 몰락의 과정을 겪을 게 뻔하다.
한반도의 맨 남쪽 끝에 있는 통영이 고향인 나는, 어릴 때 겨울이 오면 자주 눈을 만났다. 밤새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길을 나서 남 먼저 눈길 위에 내 발 자국을 남겼다. 아무 흔적이 없는 길 위에 내 조그만 발자국으로 백지에 도장 찍듯 표식을 남기며 가는 길이 왜 그렇게 신명이 났었는지. 마치 미지의 땅을 밟는 탐험가처럼 이리저리 주변을 살피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걷고 또 걸었다. 가다가 목이 마르면 눈 한 움큼 집어 입 속으로 털어 넣으며 지칠 때까지 걷곤 했다. 그러나 내가 고학년으로 올라가자 나를 그렇게 가슴 뛰게 만들었던 새하얀 세계는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갔고, 눈은 내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말았다. 놀라운 일은, 눈을 잊은 내 기억의 창고에서는 아이들과 신나게 썰매를 타고 눈 싸움하던 시절도 함께 증발해 버린 것이다. 눈이 사라지니 추억을 잃었고, 추억이 지워지니 지난 삶의 한 부분도 날아가 버린 게다.
차에서 내려 인도에 선다. 한 줄기 바람이 지나가니 나무 위에 쌓였던 눈이 툭 하며 떨어진다. 떨어진 눈은 도로 위에 물기만 남기고 금새 사라진다. 먼저 내린 눈송이는 아스팔트 위에서 말없이 죽어가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또 다른 것이 얼른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삶 속에 죽음이 있고, 그 죽음 위에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 현장이다. 인류의 역사도 바로 저들처럼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순간이 남긴 많은 얘기가 아니겠는가? 하기야 우주의 시간으로 재면 모든 세상사가 찰나라 하더라 만. 우리는 이 찰나를 영원으로 삼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어, 인류 역사를 끝까지 잘 이어가야 한다. 만일 그러지 못하면 인간이란 종(種)은 지구상에서 더 빨리 퇴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눈은 사라지고’라는 제목의 독립영화 한 편을 한 나절에 걸쳐 감상했다. 감독이 자연이고, 주인공이 눈인 영화 앞에서 너무 무기력한 나는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보았다.
최근 지구는 온통 난리다. 대형 산불에다 화산 폭발. 해일이 밀어오고 폭우도 무작정 쏟아진다. 지진도 자주 터져 공포를 몰고 오는데, 지구 한쪽에서는 잘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전쟁한다고 상대에게 로켓포를 마구 쏘아대니 죽느니 어린아이와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더하여 기온의 변화도 장난이 아니다. 마치 4월이 초겨울 같기도 하고, 5월이 한 여름처럼 더우니 어느새 계절의 구분이 사라진 것 같다. 이런 날들을 맞으며 문득 지구의 수명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도 이 놈의 세상에는 날마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정신 없이 싸우는 여러 단체와 패거리들이, 도리어 죄 없는 백성들의 멱살을 치켜들고 저들 마음대로 흔들어 대고 있다. 참 너무 많은 백성들이 아프고 재미없는 날을 산다. 세상이 이런 지경이니 문득 년 전에 보았던 독립영화 한편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눈은 지구의 생명 선이고, 선한 백성은 나라의 생명선인데, 이것마저 지켜지지 않으면 도대체 어찌할꼬? (20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