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지킨 여자들은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무덤을 찾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안식일이 지나자,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 등), 부활이 실제 사건임을 강조하는 기능을 합니다. 곧 ‘부활’ 은 구체적 시공간에서 발생한 현실의 사건이고, 시간 부사구들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시대’ 가 시작되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간 첫날’ 은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 ‘주님의 날’(주일)입니다. 구약 시대 창조가 이루어진 첫째 날 “빛이 생겨라.” 하신 말씀으로 빛이 생겼듯이(창세 1, 3 참조) 이제 새로운 창조의 첫째 날 ‘그리스도의 빛’ 은 어둠을 이기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합니다.
한편 무덤 입구에 도착한 여자들은 돌이 굴려져 있음을 보고 당황하는데, 이때 사용된 그리스 말 동사의 형태는 수동형(‘아포케퀼리스타이’)으로, 이 일이 ‘하느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사건’ 임을 명시합니다. 부활은 하느님께서 몸소 주도하신 사건임을 분명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그들은 흰옷을 입은 젊은이를 만나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셨으니,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건너감’(파스카)의 역사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종살이에서 자유인으로 건너감이며, 이는 어떤 변화에 대한 ‘관념’ 이나 ‘추상적 암시’ 가 아니라, 예수님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사실’ 이며 ‘현실’ 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실제적 변화와 구원의 현실을 “용약하여라!” 라는 노래로 축하하고 기념합니다. 그 건너감이 나의 현실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갈릴래아로 가는 것, 이제 부활의 빛으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