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얼마만이야 !
사당동 어느 음식점에서 열다섯명이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다 사당역 게이트를 나오며 너무나 많이 변해있는 친구를 보자 "아니 저사람이 내친구야 "하는 생각에 의아해서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다 변해도 너무 변해 있었다 전번에 만났을때는 몰랐는데 지금보니 너무도 낯선 모습이다 아마도 녀석도 나를보고 그리 생각하지 않았을가 ? 우리가 자주 만나는 친구가 있고 이따금 만나는 친구가 있지만 워낙히 70여년전에 졸업한 친구들이니 우리의 나이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될것이다 다른 식탁에도 우리와 거의 나이를 구별하기 어렵지 않은 노친들의 모임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자신만이 볼수있는 거울을 달아 놓은 것처럼 그들을 보니 내 얼굴을 보고있는 듯하다 물론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백발에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걸음걸이는 어기적 거리고 있다
- 야 너 무얼 먹었는데 얼굴이 그리 패등패등하냐 도로 처녀되고 있구나 - 말로는 그리 반농담울 던저보지만 마음 한구석엔 연민의 정이 가슴을 파고든다 한잔술이 들어가자 짜글짜글하던 얼굴에 구김살이 슬며시 사라지고 붉으스럼하게 변하며 서서히 옛날의 어릴적 모습이 드러난다 그토록 짖궂던 녀석은 해를 거듭하면서 병고에 시달려 변해있고 으례히 앞장서서 촐싹거리던 계집애도 과속을 멈추지 못하고 많이도 변했다 세월에 장사없다는 옛 노인의 말씀이 새롭지 않다 노년의 병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건너뛰지 않고 예약되어있다 부지런히 운동하고 영양식하고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라고 하지만 과연 그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가 오는세월 방패로 막고 몽둥이를 휘둘러 쫏으라지만 세월이 미리 알아채고 지름길로 오지 않는가
한잔술이 들어가면 어느새 저잘났다고 열을 올리지만 도토리 키재기라는 말이 무색하다 역시 그놈이 그놈이다 돈이 많다는 놈도 젊어서 행세깨나 했다는 놈도 얼굴에 주름과 죽은깨는 비껴가지 못했다 누구는 몸이 부실하여 꼼짝도 못하고 누구는 언덕에서 굴러 뼈다귀가 부러지고 누구는 소식도없이 슬며시 가버렸다 좋은소식이라곤 귀를 씻어도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자식자랑 손자자랑은 팔불출을 떠나 씨가 먹히지 않는다 전같으면 열을 올리고 자랑을 할터인데 이제는 자랑해봤자 본전이 나오지 않으니 슬며시 사라젓다 그렇다고 신세타령한다고 해도 누구하나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이럴땐 묵묵히 술한잔에 고기 한점이 실속차리는 것이다
밖에나오니 12월의 차거운 바람이 반갑다며 가슴으로 파고든다 늙은이 가슴속은 차거운 바람만 휭휭부는데 염치없이 파고 들기는 여의도 녀석들을 닮아서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다 여의도 바람은 벌판이라서 그런지 그리도 드세거늘 이곳 사당동의 바람도 무당처럼 덩달아 춤을 추고있다 - 어디가서 한잔더할가 ? - 이제껏 마셨으면 되였지 무에그리 아쉬운지 두리번두리번 거리다 맥주집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말 또하고 한말 또하기는 꼭 다람쥐 쳇바퀴 도는것과 다름없건만 그래도 치킨과 벙튀기는 바닥이 나는줄 모르고 한잔술로 속을 달랜다 그래 그러니까 친구라지 ! 마누라한테도 못한 하소연이 씨가 먹히는곳이 술집이요 친구 아니든가 ?
쪼그라진 늙은이 뱃속에 또 무었이 얼마나 들어가야 미련없이 일어날가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동서로 나뉘여서 전철에 오른다 이쯤이면 경로석이 듬성듬성 비여있을 시간이건만 65세 이상 경로자 대우를 받다보니 반늙은 아저씨도 반젊은 아줌마도 경로석에 거리낌없이 앉아 스마트폰에 몰두해있다 지팡이에 의지해 있거나 머리가 희다 못해 황구가 된 노인도 비집을 틈이 전혀없이 힘들게 손잡이에 매달려 앞에앉은이가 언제나 일어날가 눈치만 보고있지만 반늙은 아저씨와 아짐씨는 스마트폰 에 빠저있다 이럴땐 아예 문앞에서 기대서있는게 가장 편하다 그래도 손잡벽이에 기대어 의지할 수있으니까 세상에 공짜로 태워다 주거늘 자리까지도 찾이 하겠다는것은 왠지 지나친 욕심이 아닐가 아예 의자없이 철푸데기 앉을수있는 전용 무임칸을 만들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 앉으세요 - 얼핏 보기에는 내나이나 별로 다를바 없어 보이는 희긋희긋한 할망구이다 - 아니요 앉으세요 나는 곧 내릴겁니다 마음놓고 편히 앉으세요 - - 아네요 저두 곧 내릴거예요 - 마음이 그토록 고우니 얼굴도 곱겠지 하고 자세히 보니 나보다는 한참이나 아래가 아닐가싶다 다행히 옆자리에 있든사람이 나가면서 둘이는 나란히 앉게 되였다 - 무얼 자꾸봐요 늙은이 얼굴을.... - - 글쎄요 ? 아는 사람 같아서요 - 여인의 얼굴이 어인일인지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 아짐씨 얼굴도 예뻐서 그런지 아주 익숙한 느낌이 드네요 -
- 맞다 맞아 그때 그아가씨 이경희 ? - 멀쩡한 직장을 마음에 안든다고 팽개치고 힘들어 하던시절 필경사 사무실에서 두달이나 같이있던 아가씨 아닌가 반에서 반토막도 않되는 급료를 받고 결국은 두달만에 팽개치고 나오는것을 보고 자신은 어쩌지 못하고 매여있어야 한다며 오히려 나를 부러워하든 아가씨였다 세상은 넓다지만 어느곳이든 인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단지 모르고 스처지나갈 뿐이다 반세기 세월이 지나면서 내나 그녀가 이렇게 알아보기 힘들게 변할줄이야 만나면 헤여지고 헤여젓다가 또다시 어느때 어느곳에서 우연히 만나는게 또한 인간사가 아니든가 언젠가는 또만나리라는 가벼운 인사로 전철에서 내렸다 지금도 구수한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있는 집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아스팔트위에 거리의 가로등불빛이 그림자를 짓고 싸늘함이 목덜미에 스친다 |
첫댓글 늙은이보다 어르신이란 호칭이 고상하다고 합디다만, 그렇다고 쭈그렁 모습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노년들의 동창 모임이 선하게 그려집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때까지 귀중한 시간 만들며 사시길 기원합니다.
未修任!
感謝합니다
아름다운 단편소설 읽고 갑니다.
늙어가는 아니고 익어간다는 말 그말 맞네요.
행복한 명절 되세요.
석야님의 좋은글 잘보고 있슴니다
글을 쓰자니 주제선정이 어려운데 석야님은 잘이어 나가시든군요
재미난글 계속 보여주세요 감사합니다
좋은명절 보내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