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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삼천 냥을 갖다 바쳤으니 반드시 지방의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붙들어 주겠지 하고 김선비는 조마조마 가슴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으음!...... 그래! 그거라면 저기 사랑방에 가서 며칠 묵으면서 기다려보시게나!”
지난번과 똑같은 이정승의 이 말을 들은 김선비는 이번에는 절대로 거짓이 아니겠지 하고 굳게 믿으면서 사랑방으로 물러나왔다.
그런데 아뿔싸! 이제나 저제나 이정승이 언제나 불러주려나 하고 가슴 졸이며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도무지 소식 한 점 없었다.
삼천 냥을 갖다 바쳤는데도 도무지 이정승에게서 이렇다 할 소식 한 자락 없자 김선비는 아무래도 그 삼천 냥이란 돈도 이 나라의 벼슬자리 하나 사기에는 아직 작은가 보다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심고심 하던 어느 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는 다시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집안에 있는 남은 논과 밭과 세간을 모두 팔아 돈이란 돈은 전부 다 긁어모아서 하인 편에 올려 보내라고 말이다.
이왕 작정한 것 몇 만 냥이라도 긁어다가 죄다 갖다 바쳐 기필코 뿌리를 뽑자고 김선비는 생각했던 것이었고, 또 이정승 하는 꼴에 어디 한번 누가 이기나 해보자하는 단단한 오기가 옹이처럼 가슴에 들어차 이글이글 타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하인 편에 들려 편지가 가고 한 달 뒤 아내에게서 답장이 왔다.
부랴부랴 편지를 읽는 김선비의 낯빛이 일순 침통하게 일그러져 버렸다.
내용인즉슨 이제 집안의 돈이란 돈은 죄다 없어지고 그간 삼천 냥 바친 돈 마련하느라 가산을 모두 탕진하였고, 더구나 늙은 어머니의 몸이 많이 편찮은 데다가 사실은 식구들이 모조리 굶어 죽게 생겼으니 벼슬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이 편지를 받은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김선비는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학문을 연마해 과거를 치렀는데도 보는 족족히 낙방을 했고, 또 벼슬을 구걸해 뇌물을 바치기를 삼천 냥, 삼 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있는 대로 모조리 돈을 긁어다 바쳐서라도 반드시 뜻을 이루고 난 다음에야 고향에 떳떳이 내려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제 그 길도 아예 끊어져 버린 것이었다.
당장에 이정승에게 쫓아가 멱살이라도 부여잡고 패대기를 치며 벼슬을 주지 않으려거든 돈 삼천 냥을 당장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며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기실은 돈 달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제 손으로 돈을 싸들고 가 바리바리 바치지 않았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도무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낙망한 김선비는 당장 혀라도 콱 깨물고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막상 또 그러지도 못하겠고 그만 뜬눈으로 한밤을 꼬박 지새우며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지난 세월을 홀로 아련히 회상해 보는 것이었다.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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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에휴
어째~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