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나찌 수용소에서 실제 있었던 위조화폐 제조자들의 이야기 [카운터 페이터]는, 이색적 소재의 선정성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소재주의를 극복하는 곳에 진정한 휴머니즘이 있다. [베른하트 작전 Operation Bernhard]이라고 불렸던 나찌의 위조화폐 만들기 작전은 성공해서, 영국 국고에 저장되어 있던 돈의 4배에 달하는 1억 3천 2백만 파운드를 위조화폐로 제조했다. 독일은 비밀스러운 돈 세탁 과정을 통해 월 평균 100만 파운드를 영국에서 할동하고 있는 나찌 비밀 요원들의 활동비로 지급했었다. 영국 은행에서도 정밀 감정 끝에 진품이라고 판정했던 그 위조화폐를 만든 사람들은, 나찌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태인 위조 화폐 전문가와 인쇄기술자들이다.
1942년부터 1945년 종전 때까지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유태인 중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 140여명이 투입되어 역사상 최대 규모로 위조 화폐를 조직적으로 제조했던 과정이 [카운터 페이터]에 펼쳐진다.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영국 파운드화를 성공적으로 제조한 후 그들은 미국 달러 제조에 돌입했다. 그동안 그들은 다른 수용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스실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 탁구를 치고, 탱고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그들의 특권이 아니다. 가장 끔찍한 상황 속에서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묻는 성찰의 시선이 [카운터 페이터]에는 담겨 있다.
살로몬 소로비치(카알 마르코빅스 분)는 최고의 위조화폐 전문가다. 위조 화폐를 만들어서 아르헨티나로 도피하기 직전, 그는 독일 경찰에 체포되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림에 대한 예술적 재능을 이용해 수용소 간부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편안하게 지내던 소로비치는, 독일이 세계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위조화폐를 만들려는 계획을 세움에 따라 최고의 위폐 전문가로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된다. 은행 직원, 위조 전문가, 인쇄기술자 등 위조 화폐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영국 파운드화의 위조화폐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언제 가스실에 끌려갈지 모르며 살던 불안한 삶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특급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들 내부에도 갈등은 존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양심을 저버리는 행위였다. 자신들의 생존에만 매달려서 위조 화폐를 만들면 그들은 결국 독일의 승리에 기여하는 것이다. 옆 방에서 죽어가는 유태인들을 외면하며 기름진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그리고 탁구나 탱고 등 다른 수용자들은 감히 꿈꿀 수 없는 사치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것인가, 그들 역시 고민하고 갈등한다. 살로몬 소로비치는 범법자이지만 양심까지 저버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파운드화를 만드는데 성공한 후, 두 번째로 부여받은 달러화 위조 과정에서는 일부러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지연작전을 쓴다.
그 자신 베른하트 작전에 투입되어 위조지폐를 만들었던 아돌프 브루거는, 베일에 가려져 있던 나찌의 위조지폐 제조 과정을 [악마의 공장 : 작센하우센 위조지폐 공작소]라는 책으로 2006년 출간했다. 이 책을 본 많은 제작사들이 영화로 만들려고 했고 결국 베타 시네마에 의해서 독일과 오스트리아 자본의 합작으로 영화화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편집으로 빠른 속도감을 갖고 전개되는 [카운터 페이터]는 세부 설명없이 상황은 펼쳐지지만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는 많은 컷트를 할애하고 있다. [신이 버린 특공대][아나토미] 등을 통해 휴머니즘의 따뜻한 정신을 보여준 스테판 루조비츠키 감독은 [카운터 페이터]에서도 상황의 거친 전개보다는 인간애의 미세한 드러냄에 집중한다.
특히 생존의 절박함 때문에 파운드화를 성공적으로 만든 후, 자신이 만든 위조지폐가 어떻게 쓰여질 것인지 생각하면서 갈등하는 솔로몬의 내면은 후반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소재 자체의 선정성에 이끌리지 않고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시도한 제작진의 노력은 [카운터 페이터]가 보편적이며 폭넓은 공감대를 획득할 수 있게 했다.
독일의 위조지폐 제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차대전 종전 후 한참 지난 뒤인 1959년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짤스감마구트에 있는 토플리츠 호수에서 9개의 초대형 철제함이 발견되었고 그 속에는 나치 친위대의 비밀문서와 어마어마한 양의 영국 파운드 위조지폐가 숨겨져 있었다. 원래 나찌는 막대한 양의 위조지폐를 비행기를 이용해 영국 상공에서 공중 투하함으로써 영국 경제를 혼란에 빠트리려고 계획했지만 연합군의 추격이 심해지자 그 계획을 포기하고 대부분의 위조지폐를 철제함에 넣어 토플리츠 호수에 던졌다.절벽으로 둘러 쌓여 잇어서 햇빛이 바닥까지 잘 비치지 않기 때문에 나찌의 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보물 탐사꾼들은 아직도 토플리츠 호수의 바닥을 탐사하고 있다. [카운터 페이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위조 지폐 전문가 솔로몬 소로비츠의 실제 인물은 실로몬 스몰리아노프로서 종전 후 아르헨티나로 가서 1960년대 사망했다. 아직도 남미 카지노 등에서는 2차대전 종전 후, 출처를 알 수 었는 거액의 돈을 쓰던 슬픈 표정의 유태인들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카운터 페이터]에는 탱고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하모니카 연주자인 휴고 디아즈(1927년생)는 7살 때부터 라디오에 출연해 하모니카 연주를 했을 정도로 뛰어난 탱고 음악가다.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이나 셀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 등에도 삽입되었던 휴고 디아즈의 하모니카 탱고 연주는, [카운터 페티어]에서 까를로스 가르델의 [Volver][Amores De Estudiante][Cuesta Abajo][Guitarra Mía][Mano a Mano][Silencio] 등으로 애잔하게 흘러나온다. 바로 옆 방에서 유태인 동료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탁구를 치고 탱고 음악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의 비극적 세계가 탱고의 선율로 표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