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한 바퀴(퍼 옴)
제대를 눈앞에 둔 막내아들이 마지막 휴가 중에 친할머니를 뵙겠다며 제 어미와 함께 그저께 저녁경에 충남 보령시 웅천읍으로 내려왔다.
장항선의 작은 역전이 있는 웅천읍에는 7월 1일부터 공직자 공로연수에 들어간 내가 시골로 내려와 머무는 곳.
다음날인 어제(수요일)에는 보령시 관광지역을 돌기 시작했다. 군 복무에 힘들어했던 아들을 위로차 나들이 나갔다. 아흔 살인 노모는 노쇠하여 시골집 대문 밖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기에 부득이 우리 내외와 아들만 나들이 가야 했다.
집에서 12분 거리에 있는 대천해수욕장.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공영주차장이 텅 비다시피 했다. 지난 7월 12~20일 제9회 국제머드축제 첫날만 해도 수십만 명이 운집하였고 이만여 명의 외국인들이 허연하거나 까무잡잡한 몸매를 다 드러내놓고 다녀서 그네들의 요염한 자태에 나는 황홀해 하면서 눈요기를 잘 했다. 그러나 머드축제가 끝난 뒤 다시 가 본 어제는 모든 게 썰렁했다. 축제의 장소인 무대를 철거하는 작업반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벤치에 누어 잠을 잤다. 숱한 반벌거숭이 청춘남녀들이 활보하거나 말거나 나는 '밀린 숙제' 를 하듯 가수면에 빠져들었다. 시골집 뒤편 왕대밭 200평 쯤을 톱으로 베어내기에 너무 지친 탓? 집에서 준비해 간 찬밥덩어리로 점심을 마쳤다.
해수욕장 뒤편 (1.5km) 거리에 있는 포구에서 대하(왕새우)와 마른 쥐포를 샀다. 비린내 나는 곳, 장화를 신은 여자 생선장수가 호객하는 곳...
차는 거침없이 대천시내를 빠져나와 40번 국도를 타고 부여 쪽으로 내달았다.
국보 제8호 낭혜화상비가 있는 성주사址 입구를 스쳐 지난 뒤 성주산자연휴양림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휴양림에는 들르지 않고 다시 남하하다가 산 깊고 골 깊은 미산면 개화리의 '모산공원'에 들렀다. 개화리는 검은 돌(비석) 원석이 생산되는 곳. 험준한 산 자락 아래에 6만 평의 땅에 최근에 조성된 돌조각 공원. 입구에 벌거벗은 여인의 풍만한 몸매가 길가에 세워져 있다.
경내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烏石(검은 돌)에 문인(文人)들의 시와 소설, 문화(文畵)를 새긴 글들이 참으로 많았다. 하도 많아서 건성으로 쳐다보는 체해야 했다. 돌에 새긴 樂譜, 글, 그림, 삽화, 유명인사의 손도장들이 새겨져 있기에 글을 사랑하는 문학인들이 한번 방문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 공원 안에는 미술관, 허브농장, 찜질방, 서바이벌경기장도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적합했다. 입장료 2,000원이 싸서 나처럼 빈자에게도 입장할 수 있는,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터다.
차는 다시 부여쪽으로 내닫다가 미산면 보령호(보령댐) 동측 도로를 탔다.
滿水된 保寧湖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달렸다. 이봉주 육상선수가 육상연습을 했다는 곳... 경치와 운치가 정말로 좋았다. 몇 군데의 휴게소에 들르고, 전망대에 올라서서 수심 70여m의 댐물을 내려다보았다.
우리 국보문학의 상임고문인 강범우 교수가 기거하신다는 보령시 주산면 방면을 통해 서천군 춘장대해수욕장에도 들르려고 했으나 막내아들은 구경에 힘들어 했다. 언제 틈을 내어 강 교수님이 사시는 주산면에 들러야겠다. 보령댐에서 갈림길인 샛길을 선택한 뒤 웅천읍 수부리 잔미산(417m) 산자락을 끼고 지방도로를 탄 뒤 무창포해수욕장 쪽으로 달렸다. 저녁 경에 귀가.
보령군에는 보령8경이 있다. 대천해수욕장, 무창포해수욕장, 죽도(대섬), 외연도, 오천항, 오서산, 성주산자연휴양림, 석탄박물관(무연탄 갱도를 이용하였기에 한여름에 한기가 들 정도로 서늘하다.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1박2일이면 구경 한번 할 수 있는 곳. 대천항에서 외연도 섬에 들어갈 경우에는 하루를 더 잡아야 할 터.
7월 1일부터 서천군의 춘장대해수욕장을 시작해서 보령시 소재 해수욕장 여러 군데를 들렀다. 말 그대로 동네 한바퀴 돈 셈.
2008. 7. 24. 목요일.
오늘 동네 초상 장례에 참가한 뒤 오후에 귀경했다.
내일 귀대하는 아들과 함께 귀경하는데 비는 서산휴게소를 지난 뒤부터는 억수로 쏟아지더라. 운전 제일 못한다는 듯이 시속60km 최저속으로 달렸어도 앞 유리창에 바께스로 물을 퍼붙 듯하더라. 시야가 가로막혀서 이따금 가슴이 철렁거렸다. 안전이 최고라는 듯이 느긋하게 마음먹고 저속으로만 달렸다.
귀경 직후 글 한 줄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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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1. 12. 29. 수요일.
나는 회원들의 글만 읽을 게 아니라 나도 하나를 올린다.
함께 참여하는 '삶의 이야기'방이니까. 예전에 써 둔 일기를 꺼내서...
첫댓글 13년 6개월 전, 최 선생님 고향쪽을 한바퀴 돈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인데
지금은 떠나시고 안 계시지요.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면
장독대와 우물, 부엌을 오가며
불 때서 식구들 밥상 준비하시던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머니가 해 주던 음식은
무엇이든지 맛이 있었지요.
동짓날에는 팥죽도 쑤워 주시고.....
댓글 고맙습니다.
예... 그당시에는 하나뿐인 어머니가 계셨지요.
지금은 서해안 무창포해수욕장 남쪽이 보이는 서낭댕이 산 말랭이에 무덤-집을 지어서 아버지와 둘이서 누워서 계시지요.
장독대, 우물, 재래식부엌 등은 제 시골집에 아직껏 남아 있지요.
큰 장독대 등 농기구는 많이도 훔쳐 갔대요. 대문 빗장을 열어제켜서 트럭으로 실고 갔대요.
하기사. 나무로 둘러싸인 외진 집이라서..
재탕하시면 오천원입니다..
보령은 많이 가봤는데 보령팔경은 다 못가본거 같아요.
대천 무창포 오천항은 가봄..ㅎ
재탕에 5천원....
저... 퇴직한 뒤 오래되어서 지금은 백수건달이지요.
5천원이면 저한테는 무척이나 큰 돈인데... 손이 덜덜 떨리네요.
대신에 충남 보령지방으로 놀러오시라고 권유할께유.
내년에 따뜻하고, 더울 때에..
예전에 대천해수욕장, 무창포, 오천항 등을 돌아보셨다니.. 해산물도 맛을 보셨겠지요.
보령8경 또 구경하러 오셔유.
2021. 12. 1.자로 충남 태안군과 보령 대천해수욕장 지역을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대천해저터널>이 개통되었지요.
바닷속 터널을 한번 달려 보셔유,
잘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행,,
댓글 고맙습니다.
그냥 생활일기이지요.
조금만 더 정성을 들였을 뿐.. 본질은 일기이지요.
@최윤환 삶의 이야기가 일기이고 일기가 삶의 이야기입니다.
@미국보리 예...
그렇지요.
내고향 탐방기 장
잘읽었답니다
보령 수몰지구에 가본적이 있지요 아직 수몰되기전쯤 입니다
골재때문에
아.. 골재라..
지금도 보령지방에는 석재가 많이 나오지요.
예전에는 탄광지대였기에 오석류의 빗돌, 청석이 나왔고, 바닷속에서는 애석/쑥돌이 나왔지요.
지금은 해외에서도 돌이 많이 들어오대요.
하여튼 보령 남포는 예전부터 석공예가 발달했지요.
건축자재인 골재라.. 보령호 만들기 이전인 시대라.. 수몰된 난민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보령호 남단에는 애향의 집이 있어서 수몰지구 사람들의 사진 등을 전시했지요.
고향이 사라진다는 것은 때로는 가슴 아픈 일이지요.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나들목이 있는 화망마을도 고속도로, 농공단지, 산업단지 등으로 집과 땅을 잃어버린 동네사람도 있지요.
제 집은 도로를 비켜서 북쪽 산 밑에 있기에 다행히도 지금껏 남아 있지요.
지존 님은 발이 엄청나게 넓군요.
보령지방 돌은 전북 부안군 새만금사업 때 축대건축용으로 많이도 배로 실어날랐지요.
돌이 단단하기에...
산 말랭이라 하시니 어릴때 쓰던 언어가 떠오릅니다
늘 글을 사랑하시고 가까이 하시니 언제라도 글로 만날수있어
기쁩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좋은 일만 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고맙습니다
예.
운선작가님.
사실은 저도 운선작가님처럼 글을 좋아하지요.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니와 헤어져서 객지로 전학을 갔기에.. 어린아이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저 구석에 쑤셔박혀서 눈치껏 책이나 보면서 지냈지요.
그런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나 봅니다.
글은 일상의 삶에서 건져야 하고, 때로는 멀리 나들이를 가서 글감을 얻으면 좋겠지요.
운선작가님도 늘 건강하세요.
댓글 고맙습니다.
동네한바퀴?
우린 최소 1박2일 여행코스네요
잔잔한 가족얘기도 ,웅천읍 얘기도
삶의 이야기지요
예.
댓글 고맙습니다.
충남 보령지방은 해안을 감싸안았고, 또 내륙에는 산이 제법 많지요.
보령에 있는 성주산은 충남에서 3번째 높은 산이지요.
이제는 '보령해저터널'이 뚫려서 여행 다니기가 더욱 편리해졌시유.
내년 날이 따뜻하거든 혜자 님도 갯바람 쐬셔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