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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재라 재밌을지 모르겠어요. 재밌게 보신 분은 댓글 살포시 남겨주세요^^
앞으로 열심히 연재해보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01.
“나 선 봐.”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듯 확고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자의 말에 괄오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 여자는 조금 더 강수를 두기로 했다. 괄오는 손톱 끝을 튕기며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 무심한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의 표정이 조금이라도 움찔하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 기필코!
보고야 말 것이다. 꿀-꺽. 여자는 만천하에 다 들리도록 침을 삼키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혼 할거야.”
움-찔.
“결혼할 거라니까?”
“어.”
……은 개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여자는 절망에 빠졌다. 요 근래 들어 최고의 미끼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괄오가 보통놈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물 여섯의 꽃다운 여인, 황갈매는 2년 넘도록 자신을 개무시하고 있는 6살 연하의 고등학생을 짝사랑 중이었다.
여기서 혹자는 두 가지의 궁금증을 가질 수 있을텐데, 하나는 어찌 그 꽃다운 여인이 황갈매라는 우스운 이름을
갖고 있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6살 연하의, 즉 스무 살의 이괄오군이 고등학생일 수 있냐는 것이겠다. 흐음,
하나하나 차분히 설명을 늘어놓자면 이렇다.
여자는 황금갈매기가춤추는밤-이라는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학생시절, 여자의 긴 이름을 담기엔 명찰이
터무니없이 작았기에 학교에서 임의대로 여자의 이름 열 자 중 세 개를 골라 명찰에 박아놓은 것이 황갈매라는
세 글자였을 뿐이다. 하지만 갈매는 그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후에도 줄곧 동창들에게 그 우스운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차라리 황 밤이었으면 좋았을 걸. 안 그래도 그 때 당장에 학교에 건의하지 않은 것을 가슴 깊이
후회하는 중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길다란 이름을 붙여준 황회장님을 원망해야 하는걸까.
스무 살이 된 청년 괄오가 교복을 입고 한 다리 어린 후배놈들과 수업을 듣는 것은 괄오에게도 역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과거가 있었다. 심지어 한 때 화성고 학생들의 사이를 오가던
소문 중에는 일본 야쿠자의 오른팔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아무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가는 그러한 일들로
괄오는 퇴학 위기에 처했었다ㅡ그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위기란 말이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말이다. 어찌됬든,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던 그에게 아리따운 한 여인이 나타났으니, 그 만남으로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어버렸다.
화성고의 교사들은 느닷없이 나타나 모든 죄를 봉사로 갚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은 괄오를 보고
기절할만큼의 충격에 휩싸여 ‘저 자식이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가’를 의심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제자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터라 수업일수가 부족할 시 1년 유급이라는 학교 규정에 따라 학교에 남아 3학년 생활을 한 번 더,
충실히 할 것으로 합의를 보기로 했다. 물론 안타깝게도,
“나 알바시간 다 됬는데. 가봐도 되지?”
“…너 진짜 후회 안 할 자신있어?”
“결혼 할거면 청첩장이나 빨리 보내. 알바 대타 뛸 사람 구해야 되니까.”
“너 진짜!”
“인상 찌푸리지마. 그러니까 더 못생겼어.”
그 여인은 갈매가 아니었다.
보기 좋게 빙긋 웃고는 뒤를 돌아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가는 괄오의 뒷모습은 늘 그랬지만, 참 야속했다.
잘난 주둥이로 얼마나 가슴에 못을 박아댔는지 이제 저 심드렁한 태도에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갈매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정말 끝이야, 이괄오! 쪽팔리게 2년 동안, 쪽팔리게 여섯 살 연하를, 쪽팔리게 짝사랑했던 거!
정말정말정말정-말! 끝이라고! 드럽고 치사해서 못해먹겠으니까! 알아? 이 천하에 매정하고 못 되 쳐먹은 놈아!”
평소의 갈매와는 확실히 달랐다. 갈매는 괄오의 길죽한 뒤통수에 대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괄오는 갈매의 고함소리를
똑똑이 들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조금 전, 갈매의 갑작스런 결혼 발표에 놀란
기색없이 대꾸하려고 노력했듯이.
괄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소리를 질러댄 갈매는 목을 움켜잡으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런, 놀이터에서 놀던 꼬마녀석들과 경로당 앞 정자에서 부채질을 하며 웃고 있던 할머니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를 향해 있다. 갈매는 이마에 흐른 땀을 대충 손으로 문지르며 공원을 빠져나왔다. 선 약속은 오후 2시였다. 괄오녀석이 속눈썹 하나라도 미세하게 떨어주었다면 이번 역시 그냥 파토를 낼 생각이었지만, 자존심 다 꺾고 마지막 보루를 꺼내든 자신을 눈 하나 꿈쩍않고 쳐다보던 그의 얼굴이 뇌리에 콕 박힌 이상 이대로 끝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한 번도 나가본 적은 없지만) 모든 선자리가 정략결혼을 토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지나가던 네 살짜리 꼬마도 알만큼 뻔한 일일터. 어차피 진심이 아닌 결혼, 괄오녀석의 콧대를 꺾어줄만큼 멋지게 치르고 싶다. 갈매는 결연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버스정류장을 향해 걸어나갔다. 오랜만에 입는 원피스와 하이힐이 익숙하지 않아 뒤뚱뒤뚱 걸으면서도 표정 하난 일품이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청첩장에 순금가루를 뿌릴까? 다이아를 하나씩 박아넣는 건…? 에이씨, 그딴 걸로 기죽을 놈 아닌데. 어쩌지.
저런. 아무래도 괄오가 갈매의 가슴에 돌이킬 수 없는 큰 불을 지른 모양이다.
남자들이 하나같이 밤맛이다
드럽게 늦네.
민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이 반 쯤 줄어든 잔을 거칠게 입에 갖다댔다. 여러 번의 선 경험자로서, 여자 체면상 10분 정도는 늦어줘야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때까지 기다려줄 생각도, 기다렸던 적도 없었던 그에게 오늘의 이 기다림은 수치 그 자체였다. 이미 이름난 기업들 사이에서는 그의 맞선녀 킬러라는 별명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제일 극진한 대우를 받았던 여자와의 마지막이 약속 시간을 3분 넘긴 시각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몇 마디를 나눈 것이었으니 말 다했다.
‘어? 노민우씨 아니세요?’
‘아, 차지연씨?’
‘예- 근데, 지금 어디가시는 거예요? 만나기로 한 장소는 카페 안으로 알고 있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하도 안 오시길래 집에 가려던 중이었습니다.’
‘예? 하하. 고작 3분 지났는데요. 누가 들으면 제가 엄청 늦은 줄 알겠어요.
그럼 제가 왔으니 다시 들어가요. 차라도 마시면서 얘기…’
‘아, 됬습니다. 여기서 끝낼 수 있는 얘깁니다. 저는 딱 한 가지만 물어보면 되거든요.’
‘네? 무슨…’
‘제가 지금 당신한테 섹스를 요구하면 어떡할 겁니까?’
‘뭐, 뭐라구요? 초면에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네요!’
‘어차피 초면에 결혼할 사이 아닙니까? 댁이 내 타입은 아니라서 그럴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만에 하나 오늘
선이 잘 됬다는 말이 두 집안 어른들 귀에 들어가면 결혼은 한 달내로 진행될 거고, 그 전에 안 사람과의
속궁합은 맞춰봐야 할테니까 드린 말씀입니다. 제가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어찌어찌해서 그 인공적인 눈코입은
이해하고 넘어간다쳐도 잠자리 하나는 좀 까탈스러운 편이거든요. 어차피 텅 빈 머리로 부모덕에 손 하나 까딱않고
명품옷 걸치고 있는 와이프가 할 수 있는 내조라곤 그것 뿐일테……’
쫘-악!
민우는 5일 전 명품녀가 후려친 오른쪽 뺨이 다시금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불쾌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카페 입구를 노려보았다.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SH의 외동딸을 험한 꼴로 돌려보낸 그가 이토록 얌전히(는 아니었지만) 맞선녀를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 오늘 아침 그의 어머니 양여사가 강경대응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카드정지에 통장, 차, 집까지 모두 압수하겠다니. 이거 너무 식상하고 유치한 거 아니냐고.
“여기 잔 좀 채워줘요.”
“예, 손님.”
뭐, 양여사의 그 식상함과 유치함 덕에 30분 동안이나 꼼짝없이 맞선녀를 기다리고는 있지만 말이다. 망할 노친네.
민우는 턱을 괸 왼손을 까딱이며 입을 삐죽 내민 채 여전히 입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때, 한 여자가
땀이 범벅이 된 모습을 하고 카페에 들어섰다. 저 각설이 같은 머리하며 촌스러운 코디하며…… 이렇게 대놓고 깔 거리를 주는 여자는 드물었다. 민우는 그 여자가 맞선녀이길 빌며 여자의 행동을 주시했다. 물을 다 따른 종업원이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종업원에게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여자의 걸음이 점점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아, 안녕하세요. 노민호씨 맞으시죠?”
노민호?
민우는 잠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곧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노민호든 노민우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다시 볼 사이도 아니었으니. 이런 여자라면 양여사도 분명 그를 탓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사실에 좀 전까지 그가 온 몸으로 느꼈던 수치심이 씻은 듯 사라졌다. 지루한 선자리에 계속 앉아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시간개념도 없어, 패션감각도 떨어져, 들어오기 전 거울 한 번 들여다 보지 않는 남다른 배려심에, 무엇보다 맞선남 앞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짓는 없는 정도 떨어져 나가는 미소까지. 여자는 자고로 교양과 품위가 넘쳐야 한다는 양여사의 신조에 한참을 어긋나는 여자였다. 민우는 여자가 손부채질을 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의기양양하게 지켜보았다. 팔짱을 낀 오른손을 까딱거리는 그의 얼굴엔 어렴풋이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양여사, 나의 승리라고.
“죄송합니다. 장소를 착각하는 바람에. 하아- 언니, 여기 물 좀 주세요!”
갈매는 헉헉거리며 종업원이 물을 채 다 따르기도 전에 컵을 들어 입에 들이 부었다. 늦을까봐 택시를 탔는데 하필 똑같은 이름의 카페가 있을 게 뭐람. 화장 좀 고치고 들어가려해도 너무 늦어서 그럴 수도 없었으니, 대체 자기 꼴이 어떤 지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자신의 온몸이 땀범벅이 됬다는 것 밖엔. 의문스러운 건 눈 앞의 남자가 자신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거였다. 갈매는 잔이 빌 때까지 물을 들이키며 몰래 남자를 훑었다. 세상 어느 남자가 땀을 찔찔도 아닌 콸콸 흘리는 맞선녀를 보며 저리 웃을 수 있겠는가. 성격이 좋다기엔 저 건방진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다면, 땀 흘리는 여자를 보면 성욕이 넘치는 변태라거나…… 에이, 설마. 갈매는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남자와 조심스레 눈을 맞췄다. 그녀의 모친은 선자리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며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못이 박히도록 얘기했었다. 고로, 이괄오의 코를 납작하게 뭉개줄 그녀의 결혼 상대가 바로 이 남자, 라 이거다. 미소 속에 교묘히 가려진 저 눈매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설마 결혼 후 술주정을 한다거나 해서 날 때려눕히진 않겠지. 흐음. 그것빼곤 꽤나 봐줄만한 남잔데 말이야-
“그만 일어나시죠.”
라고, 갈매는 생각했다.
“네? 저 온 지 2분도 안됬는데요.”
“그러니까 피차 더 험한꼴 보기 전에 일어나자는 말씀입니다.”
그가 입을 열기 전까진.
“차는 가져오셨습니까?”
“저 차 없는데요. 아니, 그리고 대체 왜 제가 오자마자 가야되는 건데요?”
“택시 잡아드릴테니 타고 가시죠. 일어나세요.”
그냥 잔말말고 일어나라, 좀. 이 여편네야.
민우는 속으로 이를 갈며 억지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무리 이런 여자라도 또 다시 막말을 했다간 양여사가 어떻게 나올 지 알 수 없으니 일단 조심해두어야 했다. 그런데 이 여자, 천하의 노민우가 이런 극빈 대우를 해주겠다는데도 반항적인 눈빛을 하고서 그냥 일어서 있는 그를 올려다볼 뿐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게다가 ‘잠깐 앉으세요, 민호씨. 할 말이 있으니까.’라며 땀으로 떡진 미소를 띠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 불쾌함을 참을 수 없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몇 마디 쏘아붙이고 뺨 한 대, 물 한 잔으로 떼우면 될 일이었을텐데 차마 그럴 수는 없는 이 상황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런 민우의 심정을 알 리 없는 갈매는 다시 한 번 그에게 앉으라는 듯 그가 조금 전까지 요지부동으로 그녀를 기다렸던
의자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젠장할. 이 여자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있으면 참아왔던 말들이 전부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민우는 그냥 자리를 뜨기로 했다.
“계속 그렇게 있고 싶으시면 좋을대로 하시죠. 계산은 제가 하고 가겠습니다. 그럼.”
“할 얘기가 있다고 했잖아요.”
“가보겠습니다.”
“잠깐.”
갈매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들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뜨는 그를 불러세웠다. 민우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랐다.
여자가 한 마디 쏘아붙이면 열 마디고 백 마디고 꽂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민우는 이를 악 물고 돌아섰다.
“당신 못 보내. 내가, 댁이랑 결혼할 생각이거든.”
그에게 피할 수 없는 무서운 위력의 직격타가 날아올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못한 채.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악 재밌어요 담편!!!!저 업쪽 주세요 작가님!!!!!
우와!감사합니다^^♥♥♥♥♥♥♥업쪽드릴께요!
근데 업쪽이뭐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