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하, 이승환 등 30대 가수, 윤도현 밴드 등 록밴드,
으뜸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신인 박효신까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역량있는 뮤지션 16팀이 함께 했다.
신인 밴드 렐리쉬는 이 앨범으로 세상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소개했다.
들국화 멤버들은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음악을 할 것" 이라며 "올해 안에 새 정규 앨범을 내는 게 일차 목표" 라고 밝혔다.
함께 한 뮤지션들은 헌정 앨범에 부치는 헌사를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내왔다.
들국화로부터 음악을 할 용기를 얻고 노래하는 자세를 배웠다는 이들이 많았다.
스무 살 아래인 박효신과 함께 '그것만이 내 세상' 을 부른 권인하는 "1985년이던가, 삼청동 인권이형 집에 강인원 등과 모였다.
돌아가면서 노래도 부르고 서로의 창법에 대해 이야기도 했는데 '야, 너 노래 잘 한다. 조금만 못 부르면 되겠다' 던 인권형의 말을 듣고 용기를 가졌다" 고 회고했다.
'사랑한 후에' 를 부른 신해철은 "93?그룹 넥스트 초창기, 모교인 서강대 강당에서 합동 콘서트의 리허설을 하는데
스피커에서 아예 소리가 나지 않아 어린 마음에 마구
신경질을 부렸다.
왠 이상한 사람들이 '뭐가 문제니?' 하길래 뒤돌아보니 들국화였다.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30분 뒤에 돌아온 인권이 형의 손에는 당시 삼청동에 있던 전인권 클럽에서 쓰던 스피커가 들려있었다.
'이거면 됐어?' 하고 빙긋 웃는데…. 얼마전 '이소라의 프로포즈' 에 나와 '내가 원조 테리우스' 라고 말할 땐 정말 방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웃었다" 고 회상했다.
"언젠가 방송국 대기실에서 한동준이랑 유영석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들국화 얘기가 나왔다. 내가 '음악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들국화 때문인 것 같애. 그 형들 보면서 한국에서도 굳이 직장 안 다녀도 음악할 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 라고 말했는데, 영석이도 '어, 나도 그런데' 라고, 동준이도 동시에 '나도 그래' 라고 말했다. 80년대 초중반 음악 청년이라면 열에 아홉은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 추억한 것은 원곡에 가장 충실한 편곡으로 '제주도의 푸른 밤' 을 부른 동물원의 멤버 유준열이다.
"지난해 12월 민가협이 주최하는 '양심수를 위한 밤' 에 들국화와 함께 '사노라면' 을 불렀다. 어려서부터 목청 하나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쉰이 다 된 인권이형 목소리 때문에 내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처음 겪어 본 일이었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무대를 내려왔다" 는 것은 '행진' 을 부른 윤도현 밴드의 말이다.
'세계로 가는 기차' 를 기막히게 편곡해 부른 크라잉넛은 "들국화에 이어 한국 록음악의 계보를 잇는 록밴드가 되고 싶다" 는 바람을 밝혔다.
기이하게 왜곡된 한국 대중음악계의 모습이 바뀌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았다.
'더 이상 내게' 를 부른 밴드 긱스는 "정말 많은 이들이 들국화 노래를 들으며 숨을 가다듬고, 소리를 질러왔다. 걱정어린 말들은 많지만 누구 하나 뚜렷이 갈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의 현실에서 다시 일어선 들국화로 인해 잊었던 과거의 꿈들이 다시 돌아오는 듯하다" 고 기뻐했다.
이외에 '매일 그대와' 를 듀엣으로 부른 박학기.조규찬,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의 이은미, '사랑일 뿐이야' 를 완전히 자신의 노래로 다시 만든 이승환, '제발' 을 부른 김장훈, '내가 찾는 아이' 의 델리 스파이스, '그것만이 내 세상' 의 강산에 등이 들국화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
'너는' 의 렐리쉬와 '솔직할 수 있도록' 의 언니네 이발관은 가장 어렵다는 두 곡을 훌륭히 소화해냈다는 평가를 들을 만하다.
오는 14일 밤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기념 콘서트가 열린다. 02-324-9442.
2001년 02월 11일
들국화 헌정앨범 잉태하기까지…
들국화의 헌정 앨범이 처음 논의된 것은 지난해 4월. 음악평론가 강헌(39) 씨등 대중음악 관계자 몇 명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였다.
들국화의 컴백 이야기가 나왔고, 소모적인 댄스 음악이 판치는 대중음악계의 현실을 우려하는 말들이 오갔다.
그러다 들국화의 음악이 새삼 그립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본 끝에 "이제 헌정 앨범 한 장 쯤 나와도 되지 않느냐" 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강헌씨는 "어찌 하다보니 내가 일을 맡게 됐다" 고 말했다.
앨범에 참여할 뮤지션을 선정하는 작업부터 벌였다.
자유로우면서도 치열한 들국화의 음악 정신을 수용할 수 있고, 들국화의 노래를 편곡해 다시 부를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으며, 무엇보다 작업에 적극 참여할 의사가 있는 뮤지션으로 한정했다. 노브레인등 참여가 논의됐다가 아쉽게 빠진 밴드도 있다.
제작할 음반사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각기 소속이 다른 뮤지션들을 한데 묶는 일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크게 돈을 벌 것 같지도 않다고 판단한 음반사들은 심드렁했다.
낙담할 무렵 강헌씨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이 작가 야설록(42) 씨. 열렬한 들국화 팬인 야설록씨는 "어떻게 들국화 헌정 앨범을 낼 음반사가 없다는 말이냐" 고 흥분하며 제작비 3억원을 내놨고, 작업이 궤도에 올랐다.
각자 따로 작업하고 녹음해 모으는 방식을 택했다. 편곡도 각자 알아서 했다. 누가 어떤 곡을 부를 것인가 결정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보컬에서 들국화의 노래를 소화한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고 결국 '돌고 돌고 돌고' '사노라면' 등은 수록하지 못했다.
당초 들국화 자신도 한 곡을 수록할 예정이었으나 최종 제작 단계에서 빼기로 결정했다.
2001년 02월 11일
중앙일보에 오늘 난 기사예요..
간만에 이사늙 들렸는데 왔다 간다구 티내고 싶어서..^^;;
이런 멋진 음반에 공장장님이 참여하셔서 넘 뿌듯합니다.
윤뺀,긱스,해철님... 모두 제가 참 좋아하는 분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