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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자료는 백제가 동성대왕 시절 산동성 래주만 유역에 도읍을 하고 있으면서
한반도의 충청, 전라 땅의 20배가 넘는 중국대륙을 통치하였다는 중국 정사의 기록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대륙 백제의 위상을 느끼어 보시길 바랍니다.
(해설1) 488년 1차 전쟁 (북위를 멸망으로 몰고간 대륙백제의 진실)
오늘은 최진 선생님의 자료중
“대륙백제”와 “북위”의 5차례 전쟁중 제 1차 전쟁인 488년의 전쟁을 살펴봅니다
(1차) 488년 - 오늘 살펴볼 전쟁
(2차) 489년
(3차) 494년
(4차) 497년, 기병 20만으로 침공
(5차) 498년
대부분의 내용이 이미 언급된 부분이므로 다소 이견이 있는 부분은 다른 사이트 내용들과 비교하여
가장 합당하고 객관적이라 생각되는 자료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자세한 것은 오재성 선생님의 저서 “백제는 중국에 있었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창피한 현실이지만 중국 25사중 동이전을 제대로 해석하는 국내학자가 없습니다
(제 1차 전쟁) 백제/남제 연합군과 위(魏)의 488년 전쟁
(3개국 존속기간)
먼저 백제, 위(북위), 남제의 존속기간을 살펴보면
(1) 백제(B.C 18년 ~ AD660) : 678년 존속
(2) 북위(AD 386 ~ 534) : 149년 존속
(3) 남제(AD 479 ~ 502) : 24년 존속
참고로 남제는
국회 국사청문회때 고 임승국 교수님의 증언대로
백제 제24대 동성대왕(재위 479∼501) 한분의 재위기간과 같은 초미니 소국이다
남제는 24년 동안 왕이 일곱 번 바뀌며 호북성 “형주”를 중심으로 활동한 나라이다
(별도지도 게시예정 : 지도상 중심강역 표시)
(3개국의 국력 추정 : 운영자 개인생각)
사서에 기록된 대로 당시 국력을 추정해 보면
백제 > 북위 > 남제
의 역학관계를 알수 있다
운영자의 개인생각을 반영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개인견해 포함)
(1) 백제
백제는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등 중국의 옥토(논농사를 지을수 있는땅의 대부분)를
점유하고 있으면서
태행산맥의 동쪽을 모조리 차지한 대륙의 강자로 존재하였다,
(2) 북위
북위는 산서성 북쪽 대동시 유역에서부터 낙양을 연하는 선을 오가며
호시탐탐 동쪽의 옥토인 “화북평원”을 차지하고자
태행산맥을 넘어 끊임없이 침략하는 등 필사의 노력을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백제와의 10년 전쟁에 패하여 국력을 소진 멸망하고 만다
(3) 남제
남제는 힘의 역학 관계에 의하여 잠시 북위와 우호관계를 맺기도 하나
결국 백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백제를 상국으로 모시면서 겨우 나라의 생명을 유지하는 약소국이었다
(주)
중국정사인 남제서에 백제관련 기록이 많은 이유가 이해 가능하다
바로 상국의 힘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삭제된 남제서 백제전 15줄의 기록을 일본놈들은 “백년째” 찾고 있다한다
우리는 있는 기록도 부정하는 현실이지만
도대체 이 삭제된 15줄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
“중국인이 두려워하는 대륙백제의 영광이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원문소개 : 별도 게시예정)
(488년의 전쟁기록)
(1) 자치통감
자치통감 권 136 제기齊紀 2 세조世祖 상지하上之下 영명6永明六년(488년)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게 패했다.
백제는 진나라때부터 요서진평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永明六年, 魏遣兵擊百濟. 晉世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也]
[영명육년, 위견병격백제. 진세백제역거유요서진평이군야]
(2)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 10년(488년) 위가 군사를 보내어 우리를 치다가 우리에게 패하였다.”
[東城王十年, 魏兵來伐, 爲我所敗]
[동성왕십년, 위병래벌, 위아소패]
(3) 위서
위서 권7하 고조기高祖紀
“태화 12년(488년) 소색(남제의 세조世祖를 낮추어 부름)의 장군 진현달 등의
외적이 침입해 왔다.
갑인일 예주자사 원근을 시켜 외국인부대를 지휘하여 막도록 했다.“
[太和十二年, 簫?將軍陳顯達等寇過, 甲寅詔豫州刺史元斤, 率衆禦之]
[태화십이년, 소색장군진현달등구과, 갑인조예주자사원근, 솔중어지]
“태화 13년(489년) 정월 소색이 외국인 부대를 보내어 변방을 침략했다.
회양태수 왕승준이 반격해 쫓아냈다.“
[太和十三年春正月, 簫?遣衆寇邊. 淮陽太守王僧儁擊走之] (주1)
[태화십삼년춘정월, 소색견중구변. 회양태수왕승준격주지]
(주 1 : 최 진)
중국본토에서는 예부터 여러 종족이 침입하여 얽히고 설킨 역사활동을 벌려왔다.
중군衆軍은 중국사서에서 외국인 부대를 말한다.
여기 남제/북위의 전쟁기록에 나오는 중군은 중국내 진출한 백제의 식민지군을 일컷는다.
(이기록은 대륙에서 일어난 전쟁)
최 진 선생님의 글을 계속설명해 보면
위에서 언급한 3가지 사서에 나오는 전쟁은 대륙에서 있었던 전쟁임을
다음 내용을 보면 알수가 있다
동성대왕은 488년의 “위”와의 전쟁이후
전쟁성과를 치하하고 이를 보상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인사조치를 행하고
이를 남제에 통고하게 되는데 그지역이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 일대이다
[남제서 권58 동남이전東南夷傳 백제국조百濟國條]
“건위建威장군 광양廣陽태수 겸 장사長史인 고달高達을 용양龍?장군 “대방帶方태수”로,
건위장군 조선朝鮮태수 겸 사마司馬인 양무楊茂를 건위장군 “광릉廣陵태수”로,
선위宣威장군 겸 참군參軍인 회매會邁를 광무廣武장군 청하淸河태수로 명하다.“
즉
기존의 건위장군 겸 장사였던 광양태수 “고달”을 “용양장군 대방태수”로 보내고
기존의 건위장군 겸 사마였던 조선태수 “양무”는 “건위장군 광릉태수”로 보내고
선위장군 겸 참군이었던 “광무”는 “청하태수”로 신규임명을 하였다는 내용이다
기존에 본 홈페이지에 설명하였던 내용을 토대로
“임명지”를 지도에 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대방태수 = 하북성 석문지방
“석문 접 대방”이 기억 나실 것입니다(본문 대방설명 참고)
하북성 “석문”이 지금은 “석가장”으로 변경되어 있으나
고지명이 “석문(우적도)”으로 대방은 석문과 접하여 있었습니다
바로 태행산맥에 붙어 있지요
최진 선생님은 발해만 연안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이 있는 부분입니다만 반도로 절대 가져올수 없는 지명입니다
(2) 청하태수
청하는 하북성에 지금도 남아 있으니 중국 군사지도를 참고바랍니다
대륙 내부 깊숙한 곳에 있었습니다
(3) 광릉태수
광릉는 양자강 하구 강소성 “양주시”를 말한다
(4) 광양태수
북경대 고금지명대조표에는 하북성 북경 "방산" 동북이라 하고 있다
최진 선생님은 광양이 하북성 북경동북쪽 “상곡” 지방 즉 탁록 유역이라 주장한다
이지도를 보면 북위는 태행산맥을 넘지 못하였다
하북성, 산동성은 해발 1미터 미만 평지 옥토이고
산서성은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이며
태행산맥은 성을 쌓을수도 없는 해발 2500미터 이상 고산지대이다
이 태행산맥을 중심에 두고 북위가 동쪽의 땅을 한없이 그리워 하였으나
백제 동성대왕에게 한번도 이겨보지 못하였다는 사연이다
이해를 돕기위해 중국 군사지도를 보충하여 올려본다
(해설) 488년 전쟁, 백제는 본래 대륙에 있었다 (2)
하북성, 산동성, 강소성은 본래 백제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1) 언제 반도에서 대륙으로 진출하였다는 기록이 없으며
(2) 북위가 강성시 백제땅을 침략하였지만 백제에 패하였으며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백제는 강성했다
(3) 당나라 군사가 반도백제를 멸하기 위해 중국땅을 떠날 때 대륙백제인을 멸했다는 기록이 없다
(4) 동성대왕은 산동성에 있었고 그기서 죽었다
(5)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백제 일식기록을 분석한 결과 최적관측지가 발해만으로 나왔다
(6) 만약 반도의 백제가 본토라면 본토의 20배나 되는 크기의 땅을 백제가 진출하여 수백년간을 다스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7) 인구의 역사로 보아도 백제의 수도는 산동성 유역에 있어야 합리적이다
(8) 백제의 8대 성씨가 반도에는 없고 대륙에 있다
무엇이 상식이고 합리적인가 ?
현대 과학물질 문명하에 인터넷 세대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
이것이 바로 실증이다
20년전에 산동성에 치우천자의 무덤이 있다고 정사에 기록되어 있음을
오재성 선생님이 세상에 알렸을때 반응이 어떠하였는가 ?
전부 “미친사람”이라 하였다
20년 후는 어떠한가 ?
산동성에서 치우천자의 무덤이 발굴되어 복원되고 있으며
20년 동안 국내 학자들이 치우는 중국의 악신이라 치부하고 있는 동안
중국인들은 치우를 악신에서 자기들의 3대 시조화 하였다
정사의 기록을 지워버리려 해서는 안된다
바로 우리선조들의 일기장이다
그 속에서 역사적 진실을 찾으려 노력해야한다
백제는 분명히 대륙에 있었다
잠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대륙의 강자로 이미 그기에 존재한 것이다
2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산동성에 백제 유물이 발굴되면
이땅의 식민사학자들은 모조리 OO의 형을 당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반도가 백제의 진출지일 가능성은 왜 고려하지 않는가 ?
아래 지도를 다시 보면서 자세히 살펴보자
어디가 본토인가 ?
(지도 1) 488년 북위의 침략을 물리친 후 동성대왕이 전공에 따라 신규 또는 이동시킨 태수의 위치
488년 북위는 산서성 평성(대동시)에 도읍을 하고 있었다
여기는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이다
백제의 도읍인 산동성을 치기위해서는
(1) 상간하를 따라 탁록쪽으로 우회하여 북경으로 오는 길과
(2) 태원으로 내려와 석문(석가장, 대방유역)쪽으로 경유하여 남하하는 방법이 있고
(3) 아니면 진평2군(고평/진성)이 있는 낙양 쪽에서 황하를 따라 산동성 유역으로
내려오는 3가지 방법이 있다
그래서 백제 동성대왕은
(1) 광양태수
(2) 대방태수
(3) 청하태수
를 두어 방어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자 !
동성대왕이 “래주”에 도읍을 정하였다면 왜 그랬을까 ?
임류각(臨流閣)이라는 호화로운 궁궐까지 있었다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왜 “래주”에 도읍을 하였을까 ?
고 임승국 교수도 이미 산동성에 동성대왕의 묘가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
아래 지형도를 보며 설명해 본다
(그림 3) 산동성 지형도
좌측에는 청하태수가 방어하고 있으며
그다음에는 하북성, 산동성 즉 화북평원을 통틀어 유일한 산지가 있는 곳이
바로 산동성 유역이다
아래쪽에는 성양태수를 두어 방어하고 있으며
동쪽은 또한 산지가 있어 방어에 유리하다
북은 발해만이 있어 방어에 유리함은 물론이다
도읍지를 둘수 있는 유리한 지형을 가지고 있는 곳은 오직 이곳 뿐이니
동성대왕이 이곳에 거처하였을 가능성은 높다고 할 것이다
“산동성 일대는 바로 백제의 주 강역이었다”
과연 이말이 과장된 것일까 ?
(계 속)
(해설) 488년 전쟁, 백제는 본래 대륙에 있었다 (2)
(지도 4) 박창범 교수의 백제일식 기록 분석
백제의 경우 최적관측지가 발해만으로 나온다
고대의 경우 왕들은 천문학자를 가까이 두고 별자리 이동 등에 관심을 두었는데
최적관측지의 위치는 바로 고대의 그나라의 위치일 가능성이 높다
(지도 5)
사서에서 백제(百濟)의 인구가 76만호(萬戶)라고 하였는데
근세조선 초기 百濟땅으로 주장하고 있는
충청, 경기, 전라도는 총합 56,003호(戶)에 불과한데 반하여
백제지명이 있는 중화국 산동성(山東省)에서
근세조선 초기와 비슷한 시기인 1491년 인구가 77만호(萬戶)로
백제와 비슷하니 어느 곳에 백제의 수도가 있었겠는가 ?
중국 25사와 우리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의 8대 성씨도 대륙에 있다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씨(或 苗氏) 協氏"
이 8대 대성이 한반도에는 없다는 말이다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
더욱 문제인 것은
남제서 백제전 앞부분 15줄을 "이하결문(以下缺文)"이라고 기록하고
정사의 기록을 삭제하여 버렸다는 사실이다
나머지 부분에 “강시단야” 라며 북위의 패전을 기록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 앞줄 삭제된 15줄에는 어떠한 내용이 들었을까 ?
중국인의 자존심을 깡그리 깔아(?) 뭉갤 정도로
백제에 당한 치욕의 역사가 들었던 것은 아닌지
중국의 정사기록 원칙을 본다면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혼자생각)
그러면 유독 남제서에 백제의 기록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
이미 살펴보았듯이 백제를 상국으로 모셨으며
강국백제에 의지하며 나라를 유지한 소국이었기에
상국 백제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긴것은 아닐까요 ?
어쨌던 일본놈들은 이 사라진 남제서의 15줄을 100년째 찾고 있다합니다
조상의 역사를 알고 싶은 게지요
현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찾고있습니다
반드시 찾아지리라 봅니다
발견되면 당연히 모조리 공개할 것입니다
그날이 하루빨리 올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 6) 남제서 삭제 부분 15줄
(그림 7) 남제서 원문 해설 (오재성 선생님 저서 “백제는 중국에 있었다” 중에서 발췌)
(계 속)
(북경대 교재상 대륙백제 관련 지명)
이 자료를 올리는 이유는
현재 북경대학에서 교육하는 “고금지명대조표”상의 백제 지명과
중국 군사지도상의 대륙백제 지명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추측과 상상이 아닌
(1) 철저한 고지도 고증과
(2) 현재 중국인들의 지명인식
(3) 현재 중국군사지도
이 세가지를 비교함으로써 과거의 그시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그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이 보다 더 정확한 지명고증이 있다면 당연히 수용함은 물론이다
백제는 대륙에도 있었다
(고금지명대조표상 대륙백제 지명)
(평성, 청하, 광릉, 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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