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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귀가(騎牛歸家)
소의 등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는 뜻으로, 번뇌와 욕망을 이기고 본성을 찾는다를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騎 : 말탈 기(馬/8)
牛 : 소 우(牛/0)
歸 : 돌아갈 귀(止/14)
家 : 집 가(宀/7)
가축으로 사람과 가장 오래 동행한 소는 근면과 신뢰의 상징이다. 이전에는 우골탑(牛骨塔)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 재산이어서 '소는 농가의 조상'이란 말까지 들었다.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은 느려도 끝까지 책임 완수, '소더러 한 말은 안 나도 처더러 한 말은 난다'는 입이 무거워 믿음을 준다는 속담이다.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는 소에 관해 멋진 말을 남겼다. 소는 순하다고, 어리석다고 말하지만 참을성이 많아서이고 지혜를 쓸 데가 없기 때문이라 했다. 그래서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고, 부처요 성자'라고 우러르기도 한다.
소에 관한 그림 중에 화가 이중섭의 명화가 먼저 떠오른다. 더 유명한 것이 사찰 벽화로 흔히 볼 수 있는 심우도(尋牛圖)다. 불교 선종(禪宗)의 입문 때 인간의 본성 회복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 찾기에 비유했다는 선화(禪畵)다. 불교신문의 풀이가 재미있다.
언어와 어떤 이론에 의존하지 않으면서(不立文字/ 불립문자), 부처님이 가르친 언어 밖의 의미를 되새겨(敎外別傳/ 교외별전), 사람 마음의 실상을 찾아(直指人心/ 직지인심), 바로 부처가 되는 것(見性成佛/ 견성성불)을 이상과 원리로 삼는 그림이란다. 깨달음을 얻기까지 열 단계로 나눠져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하는데 소의 등을 타고(騎牛) 집으로 돌아온다(歸家)는 이 그림은 여섯 번째다.
본성인 소를 찾기 위해 나서는 심우(尋牛)부터 소의 발자국을 따라 소를 찾은 뒤 야성을 길들인다. 그런 연후에 소를 타고 마음의 본향인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조(南朝)의 승려 보명(普明)과 송(宋)의 곽암(廓庵) 등이 그린 이 단계의 그림은 동자가 겨우 소를 찾아 등에 올라탄 뒤 피리를 불며 깨달음의 세계인 집으로 돌아온다.
번뇌와 망상, 욕망을 초탈한 경지라 소도 동자도 무심하다. 곽암의 십우도송(十牛圖頌)에는 이렇게 표현한다. ‘한 박자 한 곡조 무한한 뜻 담겼으니(一拍一歌無限意/ 일박일가무한의), 의미를 아는 이 굳이 설명이 필요하랴(知音何必鼓脣牙/ 지음하필고순아).’
불자들에 친숙한 소에게서 이렇게 깨달음을 찾는 심오함은 속세의 중생들이 알 수가 없다. 단지 소와 함께 따라다니는 부지런함과 믿음을 받아들이면 훌륭하다. 소가 우둔하다고 대우탄금(對牛彈琴)이라 욕하지 말자. 이는 턱없이 시끄러운 거문고 소리라 못들은 척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평생을 배우는 자세라면 소의 뿔에다 책을 걸고 읽은 우각괘서(牛角掛書)의 교훈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기우귀가(騎牛歸家)
제가 수행의 길을 가면서 내가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때 심우도의 그림을 보면서 판단을 해보고 있습니다. 심우도는 수행자가 길을 가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알려주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기우귀가는 생명이 몸 안에 들어오면 마음이 혼란스러워하는데 마음이 만드는 갈등과 혼란은 넘어선 다음의 상태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열 개의 그림 중에서 여섯 번째의 그림이고 이제 네 개가 남아있네요.
그림에 적혀있는 시를 보면서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를 살피겠습니다..
騎牛拖邐 欲還家(기우타리 욕환가)
소를 타고 이어진 길을 따라 바라던 집으로 돌아온다.
羌笛聲聲 送晩霞(강적성성 속만하)
나의 피리 소리는 노을이 저문 밤의 정적 속으로 울려 퍼진다.
一拍一歌 無限意(일박일가 무한의)
하나의 손뼉 하나의 노래 속에는 무한의 뜻이 담겨있다.
知音何必 鼓唇牙(지음하필 고진아)
이 가락을 알아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놀란 어금니가 북소리를 낼 것이다.
수행자의 적은 자신의 마음입니다. 탐욕 두려움 자만 같은 마음들은 나를 혼란과 갈등 속에서 살게 만들지요. 그런 마음들을 벗어나려면 수행은 깊이를 더해가야 합니다. 그림에서 등장하는 소는 대우주 하늘의 기운이며 하늘의 기운을 몸 안에 받아들여서 마음을 변화시키고 진정시켜 가는 것입니다. 대우주 하늘은 만물의 근원이며 만물의 부모입니다. 마음 또한 그 부모는 대우주 하늘이지요.
그런데 마음은 하늘이 부모라는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늘이 부모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몸 안에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도 인정하지 못하고 의심하며 끊임없이 거부하지요. 그게 소를 찾고 만나고 길들이는 과정입니다. 몸 안에 들어온 하늘의 기운이 생명이며 생명을 계속 마음에게 확인시키는 과정이 소를 길들이는 겁니다. 소를 길들이는 과정에서 마음은 적이고 원수입니다. 생명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거부하며 생명이 들어오는 길을 막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생명에 익숙해지고 낯설음이 사라지면 생명을 받아들입니다. 그때부터 내면의 길등은 사라지게 됩니다. 기우귀가는 수행자가 내면의 갈등을 벗어난 상태이지요. 시에서 소는 하늘의 기운이며 내 안에 들어오면 생명이라는 이야기는 저의 글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 수행자가 가고 싶은 바라던 집이 나오는데 아파트나 호화빌라는 아닙니다. 근원인 대우주가 사는 집이고 바로 자신의 몸이 대우주가 들어와서 사는 집입니다.
마음의 갈등이 사라지고 몸 안에 생명이 충만해지면 삶은 노래가 됩니다. 산에 가면 나무와 바위들과 어울려 축제를 즐깁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대우주와 자연과 함께하는 환희의 장이 펼쳐집니다.
삶이 축제가 되지요. 이런 게 사는 겁니다. 마음의 눈으로 사는 것이 밤의 정적이고 나의 피리 소리는 삶의 환희입니다. 이제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하늘을 생명을 외면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를 않습니다.
손뼉을 치더라도 하나인 생명이고 콧노래를 부르더라도 하나인 생명이며 그 하나는 무한한 대우주를 근원으로 하며 우리는 대우주의 품 안에서 산다는 평범하고도 명백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이런 이치를 몸으로 체득하고 경험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신이 대우주였다는 사실에 놀라서 어금니를 부딪쳐 북소리가 날 정도로 경이로움에 빠져들게 됩니다.
라즈니쉬 할배가 그랬던가요? 삶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라고요. 삶을 숙제로 생각하고 살면 삶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받아들여서 그 생명으로 살면 삶은 축제이고 신비가 됩니다. 마음이 만든 모든 고통들은 생명의 불꽃에 녹아서 사라져 버리지요. 무엇이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듭니까? 바로 내 마음입니다. 무엇이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만듭니까? 그것은 대우주로부터 들어오는 생명입니다.
▶️ 騎(말탈 기)는 ❶형성문자로 骑(기)는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말 마(馬; 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걸터 탄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奇(기)로 이루어지며 말에 걸터 타다의 뜻이다. ❷상형문자로 騎자는 '말을 타다'나 '걸터앉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騎자는 馬(말 마)자와 奇(기이할 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奇자는 마치 사람이 곡괭이 위에 올라가 있는 듯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騎자는 이렇게 사람이 곡괭이에 올라간 모습을 그린 奇자에 馬자를 결합한 것으로 사람이 말 위에 올라탔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騎자를 보면 단순히 말 등에 올라탄 사람만이 그려져 있었다. 말이 획 하나로 생략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말 위에 올라탄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奇자가 발음과 함께 올라탄 모습을 표현하게 되면서 지금의 騎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騎(기)는 말 탄 사람의 수효(數爻)를 세는 단위(單位)의 뜻으로 ①말을 타다 ②걸터 앉다 ③기병(騎兵), 기사(騎士) ④기마(騎馬) ⑤말을 탄 사람 ⑥타는 말 ⑦필(말을 세는 단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타는 말 또는 말을 탐을 기마(騎馬), 말 타는 무사를 기사(騎士), 말 탄 병정으로 전시에 말 타고 싸우는 군사를 기병(騎兵), 말을 타고 활을 쏨을 기사(騎射), 전문으로 말을 타는 사람을 기수(騎手), 기병과 보병을 기보(騎步), 싸움터에서 쓰는 북을 기고(騎鼓), 용감하고 날랜 기병을 효기(驍騎), 갑옷을 입고 무장한 기병을 갑기(甲騎), 차림이 가볍고 날쌘 기병을 경기(輕騎), 혼자 말을 타고 감 또는 그 사람을 단기(單騎), 만 명의 기병으로 많은 기마의 군세를 만기(萬騎), 매우 날쌘 기병을 비기(飛騎),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애기(愛騎), 말을 나란히 타고 감을 연기(聯騎), 탐내어 즐김을 탐기(探騎), 남을 대신하여 말이나 배 따위를 탐을 대기(代騎), 감시할 목적으로 한 배를 함께 탐을 압기(押騎),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말을 타면 노비를 거느리고 싶다라는 뜻으로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라는 속담과 같은 말로 곧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을 기마욕솔노(騎馬欲率奴),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아다닌다는 뜻으로 가까이에 있는 것을 도리어 먼 데서 구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기려멱려(騎驢覓驢),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간다는 뜻으로 손님을 박대하는 것을 빗대어 이르는 말을 차계기환(借鷄騎還), 한 기병이 천 명의 적을 당해 냄이란 뜻으로 남달리 뛰어난 기술이나 경험이 있음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일기당천(一騎當千), 혼자 한 필의 말을 타고 감을 이르는 말을 필마단기(匹馬單騎) 등에 쓰인다.
▶️ 牛(소 우)는 ❶상형문자로 뿔이 달린 소의 머리 모양을 본뜬 글자로 소를 뜻한다. 뿔을 강조하여 羊(양)과 구별한 글자 모양으로,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 양을 신에게 빌 때의 희생의 짐승으로 삼고 신성한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글자도 상징적이며 단순한 동물의 모양은 아니다. ❷상형문자로 牛자는 '소'를 뜻하는 글자이다. 牛자의 갑골문을 보면 뿔이 달린 소의 머리가 간략하게 그려져 있었다. 갑골문에서부터 소전까지는 이렇게 소의 양쪽 뿔이 잘 묘사되어 있었지만, 해서에서는 한쪽 뿔을 생략해 '절반'을 뜻하는 半(반 반)자와의 혼동을 피하고 있다. 농경 생활을 하는 민족에게 소는 매우 중요한 동물이었다. 느리지만 묵직한 힘으로 밭을 갈거나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편 소는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牛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제물(祭物)'이나 '농사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牛(우)는 성(姓)의 하나로 ①소(솟과의 포유류) ②별의 이름, 견우성(牽牛星) ③우수(牛宿: 28수의 하나) ④희생(犧牲) ⑤고집스럽다 ⑥순종(順從)하지 않다 ⑦무릅쓰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소 축(丑),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소의 젖을 우유(牛乳), 소의 뿔을 우각(牛角), 소와 말을 우마(牛馬), 소를 부려 밭을 갊을 우경(牛耕), 소를 잡는 데 쓰는 칼을 우도(牛刀), 소의 가죽을 우피(牛皮), 소 걸음이란 뜻으로 느린 걸음을 우보(牛步), 소의 궁둥이로 전하여 세력이 큰 자의 부하에 대한 비유를 우후(牛後), 소의 수컷으로 수소를 모우(牡牛), 소의 암컷으로 암소를 빈우(牝牛), 털빛이 검은 소를 흑우(黑牛), 소싸움 또는 싸움 소를 투우(鬪牛),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하는 소를 육우(肉牛), 주로 일을 시키려고 기르는 소를 역우(役牛), 쇠귀에 경 읽기란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소가 물을 마시듯 말이 풀을 먹듯이 많이 먹고 많이 마심을 우음마식(牛飮馬食),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으로 큰 일을 처리할 기능을 작은 일을 처리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을 우도할계(牛刀割鷄), 소가 밟아도 안 깨어진다는 뜻으로 사물의 견고함의 비유를 우답불파(牛踏不破), 소를 삶을 수 있는 큰 가마솥에 닭을 삶는다는 뜻으로 큰 재목을 알맞은 곳에 쓰지 못하고 소소한 일을 맡기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을 우정팽계(牛鼎烹鷄), 소 궁둥이에 꼴 던지기라는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가르쳐도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우후투추(牛後投芻), 양으로 소와 바꾼다는 뜻으로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 대신으로 쓰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이양역우(以羊易牛) 등에 쓰인다.
▶️ 歸(돌아갈 귀)는 ❶형성문자로 帰(귀)의 본자(本字), 归(귀)는 통자(通字), 归(귀)는 간자(簡字)이다. 追(추; 따라가다)의 변형과 婦(부)의 생략형인 帚(추)로 이루어졌다. 고대(古代)에는 처가(妻家)에서 일정 기간의 노동을 한 후 새색시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 데서, '돌아오다'의 뜻이 되고, 전(轉)하여 '시집가다'의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歸자는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歸자는 阜(언덕 부)자와 止(발 지)자, 帚(비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阜자와 帚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阜자는 '쌓이다'라는 뜻의 堆(언덕 퇴)자가 생략된 것이다. 이렇게 '쌓이다'라는 뜻을 가진 堆자에 帚자가 더해진 것은 집안에 쌓인 먼지를 쓸어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歸자의 본래 의미는 '시집을 가다'였다. 아마도 시집간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는 뜻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止자가 더해지면서 '돌아가다'나 '돌아오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歸(귀)는 ①돌아가다, 돌아오다 ②돌려 보내다 ③따르다, 붙좇다(존경하거나 섬겨 따르다) ④몸을 의탁하다 ⑤맡기다, 위임하다 ⑥마치다, 끝내다 ⑦시집가다 ⑧편들다 ⑨맞다, 적합하다 ⑩모이다, 합치다 ⑪선물하다, 음식을 보내다 ⑫자수하다 ⑬죽다 ⑭부끄러워하다 ⑮몸을 의탁할 곳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돌아올 회(回)이다. 용례로는 외국에서 본국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국(歸國), 본디의 처소로 돌아옴을 귀환(歸還), 집으로 돌아감 또는 돌아옴을 귀가(歸家), 사람의 마음이나 사물의 돌아가는 형편을 귀추(歸趨),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향(歸鄕), 끝을 맺음을 귀결(歸結), 재산이나 권리 따위가 특정한 사람이나 단체에 속하게 됨을 귀속(歸屬), 돌아가 몸을 기댐을 귀의(歸依), 적이 굴복하고 순종함을 귀순(歸順), 돌아와 닿음을 귀착(歸着),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길을 귀로(歸路), 객지에서 부모를 뵈러 고향에 돌아감을 귀성(歸省), 한 군데로 돌아감을 귀일(歸一), 집으로 돌아가 쉼을 귀휴(歸休), 서울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귀경(歸京), 집으로 돌아가 부모를 봉양함을 귀양(歸養),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옴을 귀래(歸來),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귀사(歸思), 숙박 집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귀숙(歸宿), 황천으로 돌아감이란 뜻으로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천(歸泉), 흙으로 돌아감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귀토(歸土), 여자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돌아옴을 대귀(大歸), 마음을 결정하고 돌아감을 결귀(決歸), 향하여 감이나 따라감을 적귀(適歸), 함께 돌아감을 동귀(同歸), 작별하고 돌아감을 고귀(告歸), 신부가 처음으로 시집에 들어감을 우귀(于歸), 본디 상태나 자리로 다시 돌아감을 복귀(復歸), 도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회귀(回歸), 벼슬을 내어 놓고 돌아옴을 체귀(遞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한 뒤 전쟁에 쓴 마소를 놓아주었다는 옛일에서 온 말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귀마방우(歸馬放牛), 헛되이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귀어허지(歸於虛地), 처음에는 시비 곡직을 가리지 못하여 그릇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사필귀정(事必歸正), 죽는 것을 고향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여긴다는 뜻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시사여귀(視死如歸), 구슬을 온전히 조나라로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흠이 없는 구슬이나 결점이 없이 완전함 또는 빌렸던 물건을 온전히 반환함을 일컫는 말을 완벽귀조(完璧歸趙), 옳지 않은 일에 부화뇌동 함을 이르는 말을 난만동귀(爛漫同歸),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처음으로 돌아감을 이르는 말을 낙엽귀근(落葉歸根), 넷이 결과적으로 하나를 이룸을 일컫는 말을 사귀일성(四歸一成),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이 이 세상에 사는 것은 잠깐 동안 머물러 있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죽는 것은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생기사귀(生寄死歸), 나이를 먹어서 머리털이 희어져도 학문이 성취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백수공귀(白首空歸), 합심하여 같은 목적으로 향함을 일컫는 말을 일심동귀(一心同歸),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옴을 일컫는 말을 조왕모귀(朝往暮歸), 가는 길은 각각 다르나 닿는 곳은 같다는 뜻으로 방법은 다르지만 귀착하는 결과는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로동귀(異路同歸) 등에 쓰인다.
▶️ 家(집 가, 여자 고)는 ❶회의문자로 宊(가)와 동자(同字)이고, 姑(시어미 고)와 통한다. 갓머리(宀; 집, 집 안)部와 안에서 돼지(豕)를 기른다는 뜻을 합(合)하여 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家자는 '집'이나 '가족'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家자는 宀(집 면)자와 豕(돼지 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소나 돼지와 같은 가축은 집안의 귀중한 재산이었다. 그러니 도둑이 훔쳐가지 못하도록 곁에 두는 것이 가장 안전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대 중국에서는 돼지우리를 반지하에 두고 그 위로는 사람이 함께 사는 특이한 구조의 집을 지었었다.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중국의 일부 소수민족은 집안에 돼지를 기르고 있다. 家자는 그러한 가옥의 형태가 반영된 글자이다. 그래서 家(가)는 (1)일부 한자어 명사(名詞) 다음에 붙어 그 방면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나 또는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일에 능하거나 또는 지식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뜻을 나타내는 말 (3)어떤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 (4)성 다음에 붙어, 그 집안을 나타내는 말 (5)호적상, 한 가(家)로 등록된 친족의 단체 등의 뜻으로 ①집 ②자기(自己) 집 ③가족(家族) ④집안 ⑤문벌(門閥) ⑥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⑦조정 ⑧도성(都城) ⑨전문가 ⑩정통한 사람 ⑪용한이 ⑫학자(學者) ⑬학파(學派) ⑭남편(男便) ⑮아내 ⑯마나님(나이가 많은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 ⑰살림살이 ⑱집을 장만하여 살다 그리고 ⓐ여자(女子)(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궁(宮) 등이 있다. 용례로는 부부를 기초로 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을 가족(家族), 한 가족으로서의 집안을 가정(家庭),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집에서 나가 돌아오지 않음을 가출(家出),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집안의 보물을 가보(家寶), 집안 식구를 가구(家口),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을 가친(家親), 남에게 자기 아들을 이르는 말을 가아(家兒), 집안 살림의 수입과 지출의 상태를 가계(家計), 한 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가옥(家屋), 집안이나 문중을 가문(家門),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집안 어른이 그 자녀들에게 주는 교훈을 가훈(家訓),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에게 길들여져 집에서 기르는 짐승을 가축(家畜), 집안 살림에 관한 일을 가사(家事), 한 집안의 대대로 이어 온 계통을 가계(家系),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집마다 또는 모든 집을 일컫는 말을 가가호호(家家戶戶), 빈한한 집안이라서 아무것도 없고 네 벽만 서 있다는 뜻으로 살림이 심히 구차함을 이르는 말을 가도벽립(家徒壁立), 집안이 네 벽 뿐이라는 뜻으로 집안 형편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도사벽(家徒四壁), 석은 한 항아리고 담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조금도 없다는 말로 집에 재물의 여유가 조금도 없음을 이르는 말을 가무담석(家無擔石), 한 집안에 주인이 둘이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군신의 다름을 이르는 말을 가무이주(家無二主), 집에서 먹는 평소의 식사라는 뜻으로 일상사나 당연지사를 이르는 말을 가상다반(家常茶飯), 타국이나 타향에 살 때는 고향 가족의 편지가 더없이 반갑고 그 소식의 값이 황금 만 냥보다 더 소중하다는 말을 가서만금(家書萬金), 집집마다 알려주어 알아듣게 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다 아는 것을 이르는 말을 가유호효(家喩戶曉),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물오리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일상 흔한 것을 피하고 새로운 것 진기한 것을 존중함을 비유하는 말을 가계야목(家鷄野鶩), 집의 닭을 미워하고 들의 꿩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좋아함 또는 흔한 것을 멀리하고 언제나 새롭고 진귀한 것을 중히 여김을 이르는 말을 가계야치(家鷄野雉), 집집마다 살림이 부족함이 없이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해 살기 좋음을 이르는 말을 가급인족(家給人足), 집안이 가난하여 혼백이 땅에 떨어진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뜻을 얻지 못하고 실의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가빈낙탁(家貧落魄),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벼슬자리라도 얻어서 어버이를 봉양해야 한다는 말을 가빈친로(家貧親老) 등에 쓰인다.